스스로를 배아픈 가수라고 표현해서 이목을 끌었던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가 있었다. 질투 없는 사람이 있을까? 질투가 없는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욕망이 없는 사람은 없으니 욕망에서 비롯된 질투 또한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을 거라고 내 마음대로 단정한다. 그래야 한다. 질투 없이 사람 좋고 속 편한 사람의 존재기를 인정할 수 없다.
육아휴직 후 복직했을 때, 저만치 앞서간 또래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휴직할 동안 이것도 이루고 저것도 해낸 그들과 육아 때문에 이것도 못 하고 저것도 단념한 나. 대학부터 취업까지 재수 없이 한번에 잘 건너온 감사한 인생은 거꾸로 말하면 뒤쳐짐에서 비롯된 감정을 다루어본 경험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제는 그 위치가 내 삶의 기본이 되었다. 육아가 우선인 삶. 직장에서의 좋은 기회들은 모두 나와 관련없는 삶.
그래서 글을 쓰기로 했었다. 글쓰기가 질투와 불안을 해결해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 쓰는 것보단 쓰는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하루키도 규칙적인 생활과 글쓰기로 유명하고 발자크는 중노동에 가까운 글쓰기 시간을 보냈다는데, 나도 일단 쓰려고 한다. 하나씩 둘씩 쌓아나가다 보면 뭐든 달라져 있지 않겠는가. 브런치를 처음 시작하면서 다짐했던 건 글을 모아둔 데서 안정감을 느끼지 말고 꺼내놓자는 것이었다. 저장과 발행 사이의 간극을 줄이자는 것.
질투와 정체감이 글쓰기의 동력이었다고 했지만, 어쩌면 정체된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속도감 있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 못 하던 딸이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지 않고 친구 부르듯 이름을 부르고는 키득키득 웃는다. 목도 못 가누던 아들이 덥석덥석 뒤집기를 하고, 먹을 것이 앞에 보이면 기기까지 한다. 내가 보고 싶은 곳의 속도를 보지 말고 날 위해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자. 너무 빠르게 지나가기 전에 그 현장을 맘껏 즐기고 누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