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서 인간의 모습을 본다.
나는 여섯 살, 네 살 난 아이들의 하나뿐인 고모이다.
귀여운 두 얼굴을 가만히 쳐다만 보아도 솜사탕처럼 마음이 부푼다. 조카들이 눈앞에 아른거려 그리움에 사무쳤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애틋하다. 특히 말솜씨가 좋은 여섯 살 조카에게는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총명함을 한꺼번에 배운다.
런던에 돌아오기 일주일 전쯤, 서울에서 살던 집을 정리하고 오빠네에서 며칠을 지냈다. 고모가 집에 있다는 생각에 너무 설렌 나머지 우리 첫째는 아침 6시가 되면 눈이 번쩍 떠지나 보다. 내가 자고 있는 놀이방에 들어와서 이른 아침부터 부루마블을 하자며 귀여운 몸짓으로 나를 깨운다.
부루마블이 지겨워진 찰나에 오늘은 다른 놀이를 해보자고 슬며시 꼬셔보았다. 그러다가 발견한 코딩 놀이.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 요즘은 어린이집에서 코딩을 배운단다. 오! 고모도 요즘 시대에 맞게 코딩 좀 배우고 싶은데 네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가도 되냐고 장난스럽게 물어보았다. 돌아온 여섯 살 꼬마의 대답.
고모, 그럼 벤자민 버튼이 되어서 찬이 나이가 되면 그때 어린이집 오세요!
저 5살 때 고모가 나이를 거꾸로 먹는 벤자민 버튼 이야기해줬잖아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조카 사랑 고모는 또 호들갑이다. 저걸 어떻게 기억하지? 정말 대단하다 우리 찬이. 이러면서.
그런 찬이가 코딩 놀이를 하다가 다시 부루마블을 하자고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나는 커다란 판때기를 바닥에 펼친다. 고모보다 각 땅의 가격이 얼마인지 척척 잘 기억하고 황금열쇠 카드 글귀도 누구보다 민첩하게 잘 읽는 녀석. 규칙도 느슨하고 돈이 모자라면 실컷 봐주기도 하는, 의리로 하는 부루마블 게임이다. 뭐 한껏 판이 벌어질 때는 본능적으로 승부욕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그런데 오늘은 게임하다 말고 갑자기 고집을 부린다. 내 땅에 딱 걸리더니 본인이 내야 하는 돈이 120만 원이 아니라 100만 원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승부욕이 발동하려는 찰나. 한글을 읽을 줄 아는 녀석이, 땅 가격을 누구보다 잘 기억하는 녀석이, 왜 이러지?
요 녀석 그동안 많이 봐줬지만 이번엔 확실하게 공정한 승부에 대해 알려줘야겠다 싶어서 잠시 게임을 멈췄다.
찬아, 너 이거 120만 원이라고 적힌 거 알잖아. 승부는 정정당당해야 하는 거야. 100만 원 밖에 없으면 고모한테 솔직하게 깎아달라고 부탁하면 되잖아.
오늘따라 대체 왜 아닌 걸 맞다고 우기는 거야?
아이는 대뜸 120만 원을 주더니 알겠으니까 그냥 계속 주사위를 던지란다. 나는 마치 연인과 다툼을 하듯이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어린아이에게 대답을 강요했다. 그렇게 어찌어찌 무승부로 게임을 마무리했다.
잠시 뒤, 다른 놀이를 하는가 싶더니 아이 얼굴이 시무룩하다.
찬이야 왜 그래, 삐졌어? 화났어?
물어봐도 대답이 없다. 이때까지만 해도 뭣 때문에 시무룩했는지 긴가민가 했다.
다음 날 아침, 새언니가 살짝 귀띔해준다. 어젯밤 자기 전에 찬이한테 살짝 물어보니 고모한테 삐진 이유가 부루마블 때문이 맞단다.
나는 당황했다. 정말? 고작 그런 것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졌다고? 대체 왜?
아빠랑 할 때는 지고 있으면 땅 가격을 살짝 내려서 돈을 내기도 한단다. 그래서 당연히 고모도 규칙을 알고 있을 줄 알았다는 것이다.
언니 말이 예전에 육아 멘토로 유명한 오은영 박사님이 어린아이의 거짓말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말라고 했단다. 나는 거짓말, 사실이 아닌 것을 맞다고 우기는 것은 좋지 않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솔직하게 상대에게 부탁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하는 게 더 좋다고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냥 넘어갈 수 있었던 것에 너무 오버했나 싶었다. 아이의 총명함에 깜빡 속아 이 귀여운 녀석이 여섯 살 꼬마라는 것을 잠시 잊었던 것. 아이에게 어른스러움과 논리를 강요한 것 같아 미안해졌다.
지는 것이 두려웠을까? 갈등이 있을 때나 아이가 본인 주장을 강하게 할 때 가르치려 들기보다 어떤 마음에서 그런 행동이 나오는지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게 우선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아이의 총명함과 두려움을 오가는 모습에서 인간의 모습이 떠올랐다.
성숙하게 서로를 대하다가 어느 날은 상대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고 시무룩해 있는,
평소 현명하게 싸움에 대처하다가 어떤 날은 버럭 성질을 내는 사랑의 모습.
사회생활을 할 때는 한없이 쿨하고 아는 것도 많은 멋진 사람 냄새를 풀풀 풍기지만,
집에 와서 나의 배우자 앞에서는 사소한 것을 빌미로 어떤 감정에 복받쳐서 울부짖기도 토라지기도 하는 그런 어른 인간의 모습.
아이에게도 다양한 감정을 지닌,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 있다 싶었다.
누군가를 '이 사람은 이런 사람' 혹은 '이 사람 이랬는데 왜 저러지'와 같은 한 가지 모습으로 단정 짓고 그 기대에 어긋날 때 실망하고 뒤돌아 서는 것이 아니라, '이럴 때도 저럴 때도 있는' 존재 그 자체로 받아들일 때. 그것이 관계를 풍요롭게 하고 나 자신 또한 풍요롭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국 날이 되었다. 귀여운 꼬마들이 아침을 먹고 있다. 둘째가 갑자기 울부짖는다. 아침부터 눈물바람이라 온 가족이 피곤하던 찰나. 이번엔 뭐 때문에 우는 걸까?
커다란 눈망울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니.
돈까쯔~~!!!!!! 으아아 앙
라고 외치며 식탁 바닥에 엎드려 서럽게 운다.
어제부터 돈가스가 먹고 싶었는데 아침 메뉴가 미역국이라 실망했나 보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조카들에게서 우리 남매의 모습을 본다. 그 옆에서 태연하게 찬이가 말한다.
고모 오늘 런던가? 그럼 이거 가지고가~!
어제의 시무룩함은 다 씻어버린 맑은 표정으로 부루마블 런던 땅 카드를 내민다. 귀여운 녀석.
"괜찮아. 고모는 티켓 따로 있으니까 그건 찬이 해."
고모가 된다는 것도 가끔은 어려운데 엄마는 감히 상상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