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 유제이 Aug 02. 2021

일요일 오후의 기쁨

꼬박 일 년 하고도 반년을 기다린 평화로운 주말

그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테라스로 나가더니 자전거를 닦기 시작한다. 때마침 오후 햇살이 잔잔한 바람과 함께 구름 사이를 가르고 방으로 슬며시 들어온다.


하늘색 등짝을 바라보며 소파에 앉아서 한국에서 가져온 책을 읽는다. 철학자 김진영 님의 아침의 피아노. 그는 생의 마지막 시간들을 보내며 이렇게 썼다. '세상이 사랑의 대상들과 소란하고 무의미한 소음들의 대상들로 나뉘어 있다는 걸 알았다'라고.


2019 여름, 나는 한국으로 돌아갔고 우리가 적어도 3~4개월에  번은 만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후 코로나가 터졌고 그와 나는   하고도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만나지 못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우리 관계에도 유효할까. 매일같이 페이스타임을 했기에 정확히 말하면 눈에서 완전히 멀어진  아니겠지만. 어찌 됐던 우리는 계속되는 비행 취소에 가끔씩 좌절하며 불확실함 속에서 관계를 지속시켜나갔다.


떨어져 있는 동안에 사랑에 대해 오히려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다고 사랑이 갑자기 고개를 돌리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를 더 가까이서,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을지도 모른다. 가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갑갑한 상황이 두려워 다투기도 했고 서로에게 스크린 창을 먼저 닫아버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늘 그랬듯 때가 되면 먼저 다가가 다친 마음에 손을 내밀었다.


꼬박 일 년 하고도 반년을 기다린, 우리의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가 지나간다. 사랑으로 누릴 수 있는 평범한 주말의 기쁨. 가벼운 산책을 하고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깔깔댄다. 그러다 또 별거 아닌 말에 투덜대고 입술을 삐질 내밀기도 한다.


오늘 저녁은 넷플릭스를 보면서 오랜만에 그가 만든 빈 칠리 나쵸에 무알콜 맥주를 더한다. 이 얼마나 기다리던 평범하고도 사랑스러운 일요일인지. 맥주를 즐기는 그가 오랫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이 별건가. 사랑하겠다고 마음먹으니 이 평범함도 눈물 나게 사랑스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