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4년 차 여성 대표의 눈물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만으로 충분해!

by 외로우니까대표다

지난 화요일이었다.
매주 화요일은 세 아이들의 구몬 선생님이 집에 오는 날이라 외부 약속을 좀처럼 잡지 않는다.
그날도 늘 그렇듯 아이들 저녁을 일찍 차려주고, 학습하는 동안 침대에 누워 잠깐 숨을 돌리고 있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내 손에, 동네 친구 수영(가명)에게서 평소와 다른 느낌의 문자가 도착했다.

"나 OO에서 소주 한잔하고 있어. 시간 되면 잠깐 와서 한잔하자. 사는 게 뭐가 이리 힘든지… 바쁘면 담에 보구.."

그제야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던 걸 봤다.
전화를 걸어보니, 친구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많이 힘든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구몬샘 수업이 끝나자마자 동네 치킨집으로 달려갔다.
멀리서 혼자 앉아있는 친구의 뒷모습이 더 처량해 보였다.
“비 오는 날, 왜 이러고 있어?”라며 자리에 앉자, 친구가 나지막이 말했다.

"오늘은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이대로 있자."

그렇게 우리는 말없이 술잔을 주고받았다.
비 오는 소리와 함께 그저 묵묵한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 순간 옆 테이블 대화가 귓가에 걸렸다.
여성분이 크게 울었다 멈췄다, 다시 울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맞은편 남자분은 남편은 아닌 듯했고, 동료나 지인처럼 보였다.

그때 친구가 갑자기 내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그 여성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울 때는 더 크게 우세요. 그 사람 나쁜 사람 맞아요."


나는 친구의 그런 행동이 불편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그렇게 다가가는 게 내 상식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어색하게 웃고만 있었는데, 어느새 우리 셋 사이에 대화가 시작됐다.

알고 보니, 그 여성은 4년 차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였다.

믿었던 후배에게 배신을 당하고, 그 분노와 상처를 회사에 새로 영입하려던 남자 이사님 앞에서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리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대표’라는 말 하나가 마음을 흔들었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이 해병대 선후배라는 걸 알게 된 순간, 갑자기 ‘충성’ 모드로 돌변하는 그런 친밀감과 비슷했다. '대표'라는 단어 하나가 만든 낯선 동질감이 들었던 순간이다.


나도 모르게 내 소개를 했다.
“저도 13년 차 작은 기업 대표예요.”
그리고 또 한마디를 덧붙였다.
"4년 차 때가 제일 힘들어요.”

지금 생각하면 나도 오지랖을 부린 셈이다. 내가 뭘 안다고 그렇게 말했을까.
그저 같은 대표라는 이유만으로, 속마음을 쉽게 꺼내는 그 순간이 참 이상하면서도 어딘가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짧은 대화가 오간 뒤,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고 자정이 되기 전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 누웠는데, 그 여성 대표가 자꾸 생각났다.
부러웠다. 믿었던 직장 후배에게 배신을 당하고도, 그 끓어오르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쏟아낼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생각해보면 내 곁에도 20년 지기 후배가 있다. 하지만 내가 힘들 때 그 친구 앞에서 그렇게 울 수 있을까.

내 마음속 대답은 ‘아니다’였다.

13년 동안 대표로 살며, 힘든 일은 늘 혼자 감내하는 게 당연해졌다. 혼자 울고, 혼자 술 마시고, 혼자 마음을 달래는 식이었다.


6개월 전, 6년을 함께한 후배를 떠나보냈을 때도 그랬다.
배신감에 눈물을 흘렸고, 그걸로도 분이 풀리지 않아 집에 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같이 욕도 해주며, 오늘까지만 울고 내일부터는 울지 말라고 했었다.
그런데도 나는 며칠을 더 몰래 울었다. 그 4년 차 여성 대표가 부러웠던 건, 결국 '한 사람'의 존재 때문이었다.

자신을 대표가 아닌, 그냥 '한 사람'으로 바라봐 주고, 무너지는 감정을 묵묵히 받아주는 그 남자 이사님 같은 사람. 2시간 가까이 우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주는 일이 쉬웠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옆에 있어준 그 이사님에게 마음으로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문득, 나도 그런 ‘단 한 사람’을 곁에 둘 수 있기를 바라본다.

대표라는 이름을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사람으로서 울 수 있는 그런 순간이 언젠가 내게도 찾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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