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den Alley Trip
수십 년간 면도날로 수염을 다듬어온 이발소, 100년이 훌쩍 넘도록 자리를 지키는 성당 등 옛것을 품은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만리재로. 고가도로가 사람이 다니는 길이 된다는 소식에 고갯길이 굳게 감은 눈을 서서히 뜨기 시작했다.
언덕에 오르자 번잡한 도시가 금세 고요해진다. 조용히 기도를 올리는 한두 명의 신도가 곁을 스쳐 지나갈 뿐, 아무도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언덕 위에 앉아 염천교를 굽어보는 붉은 건물은 사적 제252호로 지정된 약현성당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 1998년 화재 이후 복원한 모습이 현재 남아 있다. 고딕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절충된 아담하고 소박한 모습이다. 건물을 완공한 1892년 당시 조선인의 눈에 비친 성당은 충분히 낯설고 기이했을 테다. 10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약현성당은 만리재를 변화시킬 또 다른 역사를 지켜보는 중이다. yakhyeon.or.kr
“이발의 기본은 도구를 다룰 줄 아는 거야. 가위를 만지는 데만 30년이 걸려. 말로 해서는 몰라.” 만리재 고개에 1927년 문을 열고 90여 년간 한자리를 지킨 성우이용원. 기와집의 지붕은 기울어 가지만, 3대째 이발을 하는 이남열 씨의 목소리만큼은 그 누구보다 또랑또랑하다. 가위와 면도용 칼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다는 그에 따르면, 도구의 특성을 알고 사용할 줄 알아야 두상과 모발, 건강 상태에 알맞은 이발을 할 수 있다고. 손님의 마음을 읽기 위해 관상까지 공부했다고 한다. 단지 오래된 이용원의 주인이 아니라, 이발의 가치를 보존하는 장인과 다름없다. 그 노고를 인정받았을까. 이곳은 2014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이발 1만3,000원, 8am~9pm, 수요일 휴무, 02 714 2968.
방부제를 넣지 않은 정직한 빵을 만드는 동네 빵집. 25년 경력의 베테랑 제빵사가 모든 빵을 직접 굽는다.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어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는 동네 빵집의 장점 덕분에 달보드레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신선한 빵을 낸다. 타르트의 단호박, 크로켓의 감자, 찰빵의 쌀 등 식자재는 모두 강원도 철원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텃밭에서 기른 것이다. 추천 메뉴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는 자연 발효종 빵. 도쿄제과제빵학교에서 발효 과정을 이수한 박종수 대표의 실력을 한껏 발휘한 빵이다. 고소하고 담백하며, 이스트와 달걀, 설탕, 버터를 전혀 넣지 않아 건강하다.
감자 크로켓(고로케) 1,500원, 깡파뉴 3,800원, 7:30am~11pm, 명절 당일 휴무, 02 365 1962.
음식이 주는 즐거움은 종종 뛰어난 요리가 아닌, 좋아하는 사람과 나누는 따스한 시간에서 온다. 유월의 마들렌은 소소하지만 따뜻한 먹거리를 나누기 위해 매일 아침 정성껏 마들렌을 굽는다. 녹차, 홍차, 커피, 복분자 등 아홉 가지 맛의 마들렌은 고운 빛깔 안에 제각각 식자재 본연의 맛을 담고 있다. 밀가루 대신 우리 몸에 맞는 국내산 쌀가루를 사용해 빵을 만드는 것이 특징. 색소와 방부제를 넣지 않고, 서울우유의 동물성 버터를 사용하는 등 좋은 재료를 선별해 건강한 음식을 만든다. 그날 만든 마들렌은 당일에만 판매하는 것이 원칙이다. 심플한 패키지는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좋다.
마들렌 1,100원, 11am~5pm, 토·일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yourmadeleine
‘깊숙한 골목, 흰 식탁보를 비추는 은은한 조명, 봉투에 넣어 편지처럼 건네는 메뉴판….’ 디자인, 유통, 요리 등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던 청년 5인이 모여 생각하는 서울의 낭만이란 이런 것이다. 영화 필름 현상소가 있던 자리에 착안해 현상소라는 이름을 붙였다. 점심에는 커피, 저녁에는 가정식 코스 요리를 만날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의 다이닝 카페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이는 대신 모카 포트에 손수 커피를 끓인다. 소스를 얹은 생굴, 사과 소스를 곁들인 삼겹살 튀김 등 다섯 가지 요리로 나오는 코스 메뉴는 하나하나 정성스럽다.
커피 7,000원, 2인 코스 요리 6만 원, 카페 11am~5pm, 레스토랑 6pm~10pm, 인스타그램 hyunsangso
“모카 포트로 끓인 바닷소금 크림 에스프레소가 현상소의 시그너처 커피입니다. 뜨거운 에스프레소 위에 뉴질랜드 바닷소금과 시럽을 섞은 차가운 크림을 얹어 조금씩 섞어 마시면 궁극의 맛을 즐길 수 있죠.”
- 현상소의 전성범 매니저
따뜻한 밥과 술, 커피까지 맛볼 수 있는 모던한 가정식 식당. 신선한 국내산 생닭으로 조리한 닭볶음탕이 주 메뉴로, 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고 양조간장과 고춧가루로만 맛을 낸다. 열전도율이 낮은 주물 팬에 오랫동안 조리해 맛이 깊으면서도 자극적이지 않고 깔끔하다. 고기를 먹은 후 남은 양념에 볶아주는 볶음밥이 하이라이트. 오픈 주방 앞에 바를 두어 ‘혼밥’ ‘혼술’을 하기에도 좋으며, 맥주와 소주 외에 반주로 곁들이기 좋은 다양한 전통주도 갖췄다. 닭볶음탕은 기본 2인 메뉴지만 점심시간에는 1인용 닭볶음탕과 카레덮밥을 제공한다. 조만간 1인 안주 메뉴 역시 추가할 예정이라고.
닭볶음탕 2만3,000원, 11:30am~10:30pm, 2:30pm~5:30pm 쉬는 시간, 일요일 휴무, 02 363 5008.
“만리동은 남대문시장으로 들어가는 옷의 마지막 공정을 담당하던 동네입니다. 하지만 서울역 고가도로를 폐쇄하고 남대문 쪽으로 가는 길이 멀어지면서 상권이 죽고 있죠. 고가도로 위에 보행로를 조성하는 ‘서울로 7017’ 프로젝트 오픈을 앞두고, 염천교 수제화 거리와 중림동을 중심으로 근처의 낙후된 지역을 살리려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어요. 아직 유동 인구가 많지 않지만, 발전 가능성이 큰 지역이죠.
고가도로 입구와 가깝고 충정로역도 근접한 골목에 리즈너블한식당을 열었어요. 3개월 동안 직접 시공했습니다. 오래된 건물이기에 하자가 많아 좀 힘들었죠(웃음). 깔끔한 닭볶음탕 맛의 비결은 간단해요. 재료를 가지고 장난치지 않는 것이죠. 혼합 간장 대신 양조간장을 쓰고, 조미료가 들어 있는 고추장을 쓰지 않아요. 밴댕이, 멸치, 다시마, 대파, 양파 등 재료를 듬뿍 넣어 펄펄 끓인 육수도 한몫을 하죠. 이 동네엔 서부역 앞에서 인력시장이 크게 열리던 때 생긴 오래된 맛집이 많아요.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곳은 영덕물회집입니다.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은 물회는 소주 1잔과 즐기기 좋습니다. 마포갈비 아주머니의 손맛도 좋아요. 여러 가지 메뉴가 두루 맛있습니다.”
시장 안쪽 골목으로 들어서자 참기름을 짜는 방앗간의 고소한 냄새가 코끝에 감긴다. 그 옆에서 커피콩을 볶는 커피방앗간은 재래시장 안에 자리한 로스팅 카페로, 이름처럼 다정하고 따뜻한 분위기다. 1970년대에 지은 오래된 아파트 상가에 들어섰는데,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품질 좋은 커피를 합리적인 가격대로 낸다. 월·수·금요일마다 직접 로스팅한 신선한 원두로 커피를 내리며, 생두의 특성에 알맞은 숙성 과정을 거쳐 로스팅해 그 맛이 부드럽다. 묵직하지 않으며, 달고 신 생두 본연의 개성을 살린 로스팅을 추구한다. 찬물에 원두를 넣어 숙성 추출한 콜드 브루도 맛볼 수 있다.
아메리카노 1,500원, 콜드 브루 3,000원, 월~금요일 8am~8pm, 토요일 10am~5pm, 일요일 휴무, 010 3210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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