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일기> 안구커플의 그곳
백두대간 한복판, 높게 솟은 산줄기가 차창 밖으로 한 폭의 산수화를 펼쳐 보인다. 첩첩산중의 자연이 보내는 위무와 소박한 삶의 풍요는 회화보다 짙게 여행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임도는 인제의 자연이 연출한 겨울 왕국이다. 겨우내 내린 순백의 눈이 차곡차곡 쌓이고, 그 위를 셀 수 없는 발걸음이 지나갔으리라. 저벅저벅. 적막을 거두는 발자국 소리 틈으로 새의 울음이 아득히 울려 퍼진다. 이른 아침, 여명이 밝아오자 지난밤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미세한 눈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해발 884미터 원대봉 자락에 숨어든 자작나무 숲으로 일반인의 발길이 향하게 된 것은 몇 년 전의 일이다. 솔잎혹파리가 확산되자 본래 있던 소나무 숲을 모두 벌채한 후, 1989년부터 7년에 걸쳐 70만 그루의 자작나무를 심어 새로운 군락을 조성했다. 2008년, ‘숲유치원’으로 자작나무 숲을 처음 개방하면서부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3년 후 진입로와 탐방로를 조성한 뒤 일반인 출입을 허가했다. 6만 제곱미터 안에 빼곡히 도열한 41만 그루의 자작나무는 그 자체로 생경한 풍경을 자아낸다. 늘씬하게 쭉 뻗은 나무는 눈처럼 새하얗게 빛나는 수피를 뽐내고 있다. 자작나무 숲이 시야에 가득 차면, 숨가쁘게 언덕길을 올라오며 쌓였던 피로가 말끔히 씻겨 내려간다.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감흥이 밀려온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바람에 힘없이 고개를 흔들 때는 나지막한 목소리마저 들리는 듯하다. 동화 속 풍경에서 발췌한 표지판 속 지명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 글자 그대로다.
국내에 서식하고 있는 자작나무는 대부분 식재한 것이다. 덕분에 북유럽이나 시베리아 횡단 기차에서 보던 이국적인 풍경을 강원도 산 중턱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자작나무는 추위에 강하고 고위도에서 자라기 때문에 강원도 산간 지방에 주로 분포하는데, 대표 군락지가 바로 인제다. 원대리 외에 소양호 안쪽 깊은 산중에는 수산리 자작나무 숲이 하나 더 조성돼 있다. 가벼운 트레킹 코스로 숲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굽잇길이 이어지는 수산리보다 원대리가 수월하다. 자작나무 숲 안에는 산책로 3개가 친절하게 방문객을 반겨준다. 탐험 코스, 치유 코스, 자작나무 코스 3개의 갈림길은 모두 연결되어 있어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구석구석 숲을 누빌 수 있다. 숲 탐방에 나섰다면, 매끄러운 자작나무의 수피를 매만지고, 눈꽃 핀 숲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느긋하게 흘려 보내야 마땅하다. 숲은 그 자체로 사람을 품고 어루만지며 달랜다. 그곳이 어두운 터널을 지나 만난 설국일지도.
인제의 겨울은 혹독하다. 작정하고 눈이 퍼붓기 시작하면 무릎까지 금세 차오르고, 한겨울 기온은 영하 20도까지 뚝 떨어져 세상을 꽁꽁 얼려버린다. 기온이 영하 5도를 웃도는 날에도 강추위를 운운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한겨울에는 매일 영하 30도였어요. 아마 그보다 더 추웠던 날도 많을 거예요.” 50여 년 전 용대리에서 황태덕장을 가장 처음 시작한 최귀철 씨가 말한다. 70세가 훌쩍 넘은 그는 황태마을의 산증인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앞마당에 걸어둔 빛 바랜 온도계를 들여다보는 것. 낡은 온도계가 표시할 수 있는 지점은 최대 영하 30도까지다. 한겨울 폭설과 한파는 용대리 주민이 생계를 위해 맞서야 하는 숙명과 같다. 인제군 북면, 진부령과 미시령이 갈라지는 삼거리 뒤쪽에 위치한 용대리는 한국 최대의 황태덕장으로 꼽힌다. 전국에서 생산하는 황태의 70퍼센트가 이곳에서 혹독한 겨울을 난다. 좁다란 길을 따라 자동차를 몰고 들어가니 창문 틈으로 비릿한 냄새가 비집고 들어온다. 1년 중 가장 바쁜 황태 작업이 시작됐다는 신호다.
나무로 엮은 덕에 대롱대롱 매달린 명태는 밤사이 꽁꽁 얼어붙었다가 낮 시간 햇볕에 살짝 녹기를 반복한다. 온전히 하늘이 내린 날씨에 순응하며 겨우내 물기를 빼고, 봄이 찾아오면 태백산맥에서 불어온 봄바람에 한 번 더 바짝 말린다. 이 과정은 빠르면 12월 말, 요즘처럼 기온이 더디게 내려가면 1월 중순부터 시작해 5월까지 이어진다.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잘 마른 황태는 배가 통통하게 부풀어 올라 쫄깃하고 구수한 맛을 낸다. 반면 연일 추운 날씨 속에서만 꽁꽁 언 채 말라버리거나 날씨가 따뜻해 물이 쭉 빠져버리면 거뭇한 색을 띠며 배가 쏙 들어가고 푸석푸석한 맛이 난다고. “함경도 원산에서는 황태를 노랑태라고 불러요. 한때 동해안에서 건져 올린 명태를 바깥에서 그대로 말렸는데, 그게 북어고요. 바싹 마른 북어와 달리 원산의 노랑태는 통통하고 속살이 노랬지요.” 최귀철 씨가 말한다. 인제 용대리는 원산의 노랑태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황태를 만든다. 노랑태 대신 황태라고 부른 것도 용대리 덕장이 시초였다고. 황태를 자연에서 맛있게 말리기 위해서는 영하 10도 이하의 겨울이 2달여 동안 지속되어야 한다. 용대리는 기온도 적합하고 바람이 많이 불며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음지에 위치한다. 현재 용대리 마을의 황태덕장은 10개 남짓. 그의 집 뒷마당에는 1,060칸의 덕이 끝을 가늠하기 힘들 만큼 펼쳐져 있다. 손수 덕을 쌓고, 황태를 줄에 꿰어 걸고, 매일같이 지켜보는 일. 공장에서 기계로 말리는 먹태와 달리 황태는 인간의 정성과 고된 노동이 있어야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인제에 겨울이 찾아오면, 용대리 주민은 어김없이 자연과 인간이 함께 빚는 먹거리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덕장을 지킨다.
미시령 46번 국도를 타고 남교리 방향으로 접어들면 십이선녀탕 들머리가 있는 내설악 자락에 들어선다. 백두대간을 경계로 서쪽 인제군에 속하는 지역을 내설악이라고 부르는데, 인제 8경으로 꼽는 백담사와 대청봉, 십이선녀탕, 대승폭포 모두 내설악이 품고 있다. 여름 내내 캠핑객이 북적이던 계곡은 겨울이면 적막이 감돈다. 저 멀리 희미한 구름 사이로 겹겹이 포개진 봉우리는 수려한 위용을 자랑한다. 남교리에서 한계리까지 이어지는 한적한 길목을 따라가면, 여초서예관부터 내설악공공예술촌까지 자연과 어우러진 문화 공간이 띄엄띄엄 자리한다. 2003년, 만해문학박물관이 한용운 스님의 발자취를 따라 백담사 아래 자리 잡은 후, 이곳 산간 마을은 인제를 대표하는 문화 벨트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푸르른 자연 속에 둘러싸인 만해문학박물관의 회색 노출 콘크리트는 다소 차가운 첫인상을 풍긴다. 이곳을 설계한 국민대 김개천 교수는 일찍이 만해의 사상을 바탕으로 인공미와 자연미가 하나가 되도록 의도한 것이라 설명한 바 있다. “불교와 자연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곳은 힐링부터 아카데미까지 누구나 머물다 갈 수 있는 휴식 공간입니다.” 동국대학교 만해마을 캠퍼스 문화예술학 박사 김진섭 교수가 말한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공기에서 경건함이 흐르는 듯 마음이 차분해지고 발걸음이 느려진다. 건물 사이를 구석구석 걸어야만 공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현대적 건축은 산속 풍경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진다. 예를 들면, 동선을 따라 펼쳐진 콘크리트 벽 틈으로 적송이 보이는데, 마치 걸음에 맞춰 함께 움직이는 것처럼 다가온다. 또 법당으로 향하는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내설악 겨울 풍광이 시시각각 변하기도 한다. 이렇듯 야외 산책길은 회색 인공 프레임 안에 자연 작품이 걸려있는 것처럼 각별한 경험의 장이다. “이곳 건축의 특징 중 하나는 채움과 비움입니다. 적당히 비워둔 자리를 자연으로 채울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죠.” 김진섭 교수가 법당에 들어서며 말한다. 여느 법당과 달리 이곳에는 화려한 장식이 일절 없다. 노출 콘크리트 건물에 석불이 우두커니 자리하고, 격자무늬 창살과 빗살무늬 창이 교대로 벽을 대신한다. 창살 사이로 아른거리는 내설악의 풍경. 그의 말대로 빈자리를 자연의 고귀함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만해마을 건너편에는 한국시집박물관과 여초서예관이 맞닿아 자리한다. 두 곳 모두 만해마을과 더불어 아름다운 건축과 수준 높은 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장소다. 한국시집박물관은 1900년대 개화기 근대문학 태동기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근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시집을 전시하는 곳.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 최초 근대 창작 시집 <해파리의 노래>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1950년대 이전에 간행된 희귀 시집도 찾아볼 수 있다. 딱딱한 문학 전시를 상상한다면, 2층으로 올라가보길. 시집을 연대기로 나눠놓은 사이버 전시장에서는 시 낭송 비디오를 만들거나 창작 시를 스크린에 띄어볼 수 있다. 시집박물관에서 언덕길을 오르면 바로 여초서예관으로 이어진다. 근현대 한국 서예사의 최고 대가로 평가받는 여초 김응현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곳으로, 그와 제자들이 남긴 유려한 붓글씨를 감상할 수 있다. 내설악과 어우러진 건축물은 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의미 있는 공간으로 꼽힌다.
인제는 북쪽으로 휴전선에 가로막히고 대부분 마을은 해발 1,000미터 이상의 수많은 산기슭에 흩어져 있다. 지방 소도시가 각종 개발로 골몰하지만, 이곳의 토지는 사방으로 군사 규제, 산림 규제, 소양호 상수원 규제 등이 겹쳐 있어 공장이나 관광호텔이 비집고 들어오기 어렵다. 여전히 강원도 내 가장 넓은 규제 면적(2016년 기준 2,405제곱킬로미터)을 차지하는 곳도 인제다. 바꿔 말하면, 인제의 전체 면적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산림 지역 대부분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보존되고 있는 청정 자연이라는 것. “인제는 곧 서울 시민의 허파로 불릴 거예요.” 젊은 시절부터 백담사와 설악산을 자주 찾았다는 민근홍 씨가 말한다. 그는 4년 전 서울을 떠나 인제로 적을 옮겨 살고 있다. 내린천 지류가 흐르는 4번 도로를 따라 하추자연휴양림 방면으로 향하면 필례계곡으로 이어진다. 설악산 끝자락, 한계령과 가리봉에서 발원해 흐르는 깊은 계곡은 바위를 타고 내려와 완만한 골짜기를 이룬다. 행정 지명은 인제읍 귀둔리. 한계령에서 500미터쯤 아래로 걸쳐진 고갯길은 이순원의 소설 속에서 은비령(隱秘嶺)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필례약수터 근처, 화전민이 일구던 마을로 알려진 이곳은 인제가 품은 자연 보고 중 1곳이다. 도로가 들어서기 전에는 오지 트레킹을 즐기던 등산객의 비밀코스로 통했지만, 요새는 가로수가 울창한 드라이브 코스로 꼽힌다. <대동여지도>에서 이 고갯길을 필노령(弼奴嶺)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당시엔 70여 가호가 살던 마을로 주막과 양조장이 있는 교통의 요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옛날 상인들은 동해에서 생산한 소금을 나귀 등에 실어 4.5킬로미터의 산길을 걸어왔다고 한다. 이곳 주민이 이따금 이 고개를 소금길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30여 년 전, 민근홍 씨는 인적 드문 산골짜기에 새로운 터를 닦았다. 사방으로 설악산국립공원이 둘러싼 깊은 산속, 노른자처럼 자리한 사유지에 자신만의 휴식처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놀러 오면 물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우연히 나사(NASA) 웹사이트에서 자료를 보다가 이곳의 지온경사(지하 온도 상승률)가 높다는 걸 알게 됐죠. 온천일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는 지질조사를 통해 지하 730미터에서 기이한 물이 뿜어져 나온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이곳 온천수는 인체에 유익한 게르마늄 함량이 세계 2번째, 국내 최고 수준(7.34㎍/ℓ)의 수치를 기록했다. 9년에 걸친 부지 변경 심사와 수질 검사 끝에 2015년 필례마을은 온천 보호구역으로 정식 승인을 마쳤다. 민근홍 씨 가족이 직접 운영하는 ‘필레온천’은 넓은 부지에 비하면 내부는 놀라울 정도로 소박하다. “언제나 소소한 것이 감동을 주는 법이죠.” 그가 웃으며 말한다. 이곳은 지방 도시의 흔한 관광 온천이 아니다. 아직은 물의 효능을 체감하고 꾸준히 찾는 동네 주민과 천혜의 자연 속 고요한 휴식처를 찾아 들어온 이방인만의 은밀한 쉼터다. 하늘이 뻥 뚫린 노천탕에 들어서자 그가 말한 감동이 점점 차오른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히노키 탕에 들어앉으면 시야에 설악의 비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미끌미끌하고 보드라운 온천수가 서서히 몸을 데우고, 흩날리는 눈은 차갑게 얼굴을 스친다. 지하 700미터에서 끌어올린 자연의 은혜가 몸과 마음을 뜨끈하게 데우는 적요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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