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검은 숲, 블랙 포레스트에 눈이 내렸다. 흑과 백, 도드라진 명도의 대비 속에서 걷거나 스노슈잉을 하거나 스키를 탔다. 그 전에 잠깐 프랑크푸르트에 들렀다.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서 이틀 밤을 보냈다. 늦은 오후 도착과 이른 아침 출발 그리고 약간의 해프닝이 겹치면서 유럽 금융의 중심지를 살펴본 것은 실질적으로 한나절에 불과했다. 개인적으로는 9년 만의 재회라 못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취재를 위해 빠듯하게 짜인 다음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언어학 전공자인 가이드 니나 아담(Nina Adam)을 앞세우고 주로 마인 강(Main River) 북쪽의 구시가를 걸어 다녔다.
며칠 전 내린 눈으로 일시 폐쇄된 마인 타워(Main Tower) 전망대 대신, 갈레리아 카우프호프(Galeria Kaufhof) 백화점의 루프톱에서 도시의 윤곽을 살폈고, 옛 시청사와 중세 목조건물(제2차 세계대전 당시 거의 대부분 파괴됐으나 1986년 복원했다)로 에워싸인 뢰머(Römer) 광장을 가로질렀으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탄생한 괴테 하우스(Goethe House) 앞을 서성거렸다. 깊고 차분한 분위기의 레스토랑 브리즈(Breeze)에서 아시안 요리로 점심을 해결한 뒤에는 마인 강을 가로지르는 보행자 전용 다리 아이제너 슈테크(Eiserner Steg)에 섰다. 철교 난간에는 사랑을 단속하려는 연인들의 수많은 자물쇠가 단단하게 물려 있었다. 징표를 내건 커플 가운데 생존한 연인은 과연 얼마나 될까. 흔하고도 부질없는 풍경이었다. 봄이 아직 찾아오지 않은 계절, 해는 일찌감치 이울기 시작했다. 조명의 도움을 받은 다리와 일제히 불이 켜진 강변의 마천루가 힘을 합치니 도시의 야경이 완성됐다. 원래는 다리 건너 알트작센하우젠(Alt-Sachsenhausen) 지구의 비어가르텐(biergarten)에서 목을 축일 작정이었으나 밤의 경치에 홀린 일행의 걸음이 한없이 늘어졌다. 결국 밤거리를 조금 더 배회하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을 거쳐 숙소로 돌아왔다.
이번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독일 남서부의 울창한 삼림지대 블랙 포레스트(Black Forest)다. 말 그대로 흑림(黑林), 검은 숲이다. 독일어로는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우리나라 전남 여수에 금오도라는 섬이 있다. 섬의 생김새를 빗대 ‘자라 오(鰲)’ 자를 썼는데, 우거진 숲이 검게 보여 ‘거무섬’이라고도 불렸다. 블랙 포레스트 역시 마찬가지다. 한 줌의 햇살도 침범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멀리서 바라보거나 위에서 굽어보면 검은색을 띤다는 것이다. 블랙 포레스트의 정확한 위치는 발음도 어려운 바덴 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 주 서쪽에 자리한다. 이 거대한 숲 주변에는 주도 슈투트가르트(Stuttgart)를 위시한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프라이부르크(Freiburg), 바덴바덴(Baden Baden) 등 몇몇 도시와 올망졸망한 마을이 동거한다. 블랙 포레스트는 남북 길이가 160킬로미터에 달하고, 폭이 50킬로미터에 이른다. 그중 남부 고원 지대는 별도로 블랙 포레스트 하일랜즈(Black Forest Highlands)라 칭한다. 독일어로는 호흐 슈바르츠발트(Hoch Schwarzwald). 해발 700미터에서 1,500미터 사이에 위치한 덕에 공기가 깨끗하고 더불어 풍광도 수려하니 휴양지로 개발하고, 점점 유명해지고, 널리 사랑받는 것은 당연지사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고속열차 이체(ICE)를 타고 2시간 8분 만에 프라이부르크 중앙역에 도착한다. 수많은 사람이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한다는 친환경 도시다. 열차에서 내리자 알싸한 공기가 콧속을 파고든다. 준비된 차량에 올라타 곧장 알레마넨 호프(Alemannen Hof)로 향한다. 티티제(Titisee, 독일어로 ‘see’는 호수를 의미)가 내다보이는 비탈면에 둥지를 튼 부티크 호텔이다. 티티제 입장에서 보면 블랙 포레스트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다소 억울할 법도 하다. 길이 1.8킬로미터, 폭 750미터로 펼쳐진 이 호수는 슈바르츠발트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이자 그 매력이 검은 숲 못지않기 때문이다. 블랙 포레스트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역시 티티제의 몫이다. 철철이 수려한 경관을 내어줄 뿐만 아니라 호수 주변에 숙박 시설, 레스토랑, 기념품 상점 등이 몰려 있다. 알레마넨 호프 내 식당에서 블랙 포레스트 관광청 대표 토르슈텐 루돌프(Thorsten Rudolph)와 점심 식사를 했다. “지난주에 3일 동안 80센티미터가량 눈이 내렸지요. 현재 호수는 8센티미터 두께로 얼어 있는 상태인데, 16센티미터는 돼야 ‘호수 위 산책’이 가능합니다.” 그가 귀띔한다. 그래도 꽝꽝 언 호수 가장자리를 조심스레 걷는 사람들이 간혹 눈에 띄기는 하다.
블랙 포레스트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수종은 타넨(Tanne, 전나무)과 피히테(Fichte, 가문비나무)다. 전체 삼림의 70퍼센트를 차지한다.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 라벨에 타넨차펜(Tannenzapfen, 전나무의 솔방울)이 쓰일 정도다. 전나무와 가문비나무 모두 늘 푸르른 상록수이며, 하늘을 향해 곧게 치고 올라간 교목이다. 두 종류의 나무가 대종을 이루는 블랙 포레스트는 언제 마주쳐도 눈부시다. 날이 샐 무렵 안개에 휩싸인 숲은 완강하면서 고혹적이다. 아침 햇발이 퍼지며 또렷하게 다가오는 상고대는 계절감을 마비시킬 만큼 화사하다. 솜이불을 뒤집어쓴 나무들은 그 자체로 장대한 크리스마스트리다.
블랙 포레스트 하일랜즈에 나흘간 머물며 경험한 가장 신비로운 풍경은 마지막 날 밤 찾아왔다. 밤 10시가 넘어 묵고 있는 알레마넨 호프의 객실 테라스로 나가니 불과 20분 전만 해도 존재를 드러내지 않던 물안개가 어느새 스멀스멀 피어올라 호수 위를 자옥하게 메웠고, 그 배후의 산등성이마저 휘감았다. 높낮이의 차이는 있지만 마치 북반구 오로라의 ‘커튼 퍼포먼스’를 보는 듯했다. 신묘한 빛깔의 밤안개, 그리고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합창하듯 내뿜는 광채 때문에 옷깃을 파고드는 된바람 속에서도 한참이나 3층 테라스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방금 전 목격한 자연의 오케스트라가 밤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블랙 포레스트에 다가서는 방법은 다채롭지만 겨울철에는 모름지기 눈과 한 몸이 되어야 한다. 설피를 신고 눈밭을 누비거나 스키 부츠에 두 발을 꿰고 활강이나 질주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식으로 말이다. 사실 블랙 포레스트를 터전으로 삼은 현지인에게 크로스컨트리 스키는 따로 시간을 내서 하는 레저 스포츠가 아니라 일상생활에 가깝다. 동네 어귀나 벌판에서 스키와 스틱을 이용해 이동하는 이들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특수 차량이 스키 트랙을 미리 닦아놓기 때문에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타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슐루흐제(Schluchsee) 서쪽의 아담한 촌락인 멘첸슈반트(Menzenschwand)에서 직접 스노슈잉을 체험하는데, 마을 뒤편의 초지가 설원이고, 설원이 곧 스키 트랙이다. 철로를 떠올리게 하는, 깊게 팬 홈을 따라 스키를 장착한 사람이 전진을 거듭한다.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3명의 사람이 멀리서 느릿느릿하게 움직인다. 가운데 아이는 자신의 스키 폴을 내맡긴 채 아버지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있다. 귀여운 ‘무임승차’. 능선에는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다. 엷은 웃음이 새나오는 단출한 차림이지만 경사면을 짓쳐 내려오는 아이들의 스키 솜씨는 예사롭지 않다. 눈과 분리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자란 이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능수능란한 면모다.
블랙 포레스트 체류 사흘째 오후. 길 안내를 맡은 지역 관광청 직원에게 ‘숲속 스키’ 촬영을 부탁하니 어느 주유소와 슈퍼마켓 앞에 차를 세운다. 좀 뜬금없다 싶은 찰나, 건물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니 족히 30~40미터는 됨직한 헌걸찬 침엽수가 나타난다. 도로에서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곳에 늠름한 풍채의 숲이 조성되어 있고, 숲 사이로 난 눈길을 노르딕 스키어가 허연 입김을 뿜으며 지나간다. 언뜻 봐도 연령대가 다양하다. 물론, 장비가 없어도 상관없다. 발밑을 조심스레 살펴가며 그냥 걸으면 되니까. 관광청 자료에 의하면 블랙 포레스트에는 1,000킬로미터에 이르는 하이킹 코스 9개가 있다고 한다. 안전을 책임지고 편의를 제공하는 안내원도 일정 거리마다 상주한다.
펠트베르크(Feldberg) 산은 블랙 포레스트 하일랜즈에서 가장 높은 지대를 점하고 있다. 해발 1,493미터. 이 흑림 최고봉은 알파인 스키의 발상지라 알려져 있다. 1891년 한 프랑스 인이 자신의 키보다 높게 쌓인 눈을 헤치고 허위허위 정상에 올라 널빤지와 막대기를 이용해 하강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세계 최초의 스키 챔피언십 개최, 스키장 최초의 리프트 설치, 가장 오래된 스키 강습 학교 등도 펠트베르크가 자랑하는 스키 관련 훈장이다. 동명의 스키장에 눈이 내리지 않는 나머지 계절을 견딘 사람들은 개장 직후부터 몰려든다. 스키장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거칠게 말해 지역 유일의 교통 정체 구간이기도 하다. 사람이 북적이지만 슬로프가 워낙 광활하다 보니 활강 도중 다른 이와 부딪힐까 봐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내려오기 위해서는 올라가야 하는 법. 스키어는 리프트나 곤돌라를 타고 정상까지 손쉽게 다다를 수 있고, 슬로프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걷거나 스노슈잉으로 등정하기도 한다. 꼭대기에 서면 시야가 툭 터지면서 스위스 알프스의 산봉우리인 아이거(Eiger)와 묀히(Mönch)까지 눈에 들어온다. 스키 리조트에는 실내 스케이트장과 트램펄린 등 흥미로운 놀이 시설을 두루 갖춘 레저 단지가 들어서 있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곳이다. 참고로 블랙 포레스트에는 펠트베르크를 포함해 스키나 스노보드를 즐기기 위한 60여 개의 리프트와 크로스컨트리 스키어를 위한 약 700킬로미터의 트랙이 마련되어 있다.
블랙 포레스트에 ‘최초’와 ‘원조’란 명예를 붙여준 또 다른 아이템은 다름 아닌 뻐꾸기시계다. 맞다. 매 시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뻐꾹뻐꾹’ 울어대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바로 그 시계. 폭설 때문에 자주 고립되는 산간 마을 주민이 나무를 깎아 뻐꾸기시계를 만들었고, 1956년에 문을 연 드루바(Drubba) 가족의 호텔에서 이 시계를 판매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탄생지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대부분의 식당과 상점에 뻐꾸기시계가 비치되어 있다. 드루바가 운영하는 쇼핑센터에서는 뻐꾸기시계의 연원과 변천사, 제조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뻐꾸기 소리가 구슬프게 인식되지만, 검은 숲의 뻐꾸기 울음은 사냥감인 동물에게 사냥꾼의 출몰을 알리는 일종의 경고음, 즉 알람 소리였다. 뻐꾸기가 고장의 특산품인 시계의 주인공으로 ‘간택’된 이유다. 거품 가득한 맥주잔을 받아든 남녀, 쇠스랑을 움켜쥔 젊은 농부, 여인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다락방 창문을 향해 사다리를 기어오르는 사내 등 뻐꾸기시계의 장식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프라이부르크에서 흑림으로 들어가는 길머리에 형성된 호프구트 슈테르넨(Hofgut Sternen)은 블랙 포레스트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다. 예전에는 짐이나 우편물 따위를 실은 역마차가 목적지로 가는 도중 잠시 들르는 곳이었다고 한다. 사람도 쉬고 말도 쉬어야 하니 우리로 치면 주막과 마방인 셈이다. 마을에서는 예의 뻐꾸기시계 이외에 유리공예 상점을 만날 수 있는데, 가게 한쪽에서 15분 정도 진행하는 제작 시연이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강력한 불길과 투명한 유리, 인간의 호흡과 손놀림이 빈틈없이 어우러져 삽시간에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한다. 마을에는 철로가 놓인 높다랗고 육중한 다리가 버티고 있다. 프라이부르크와 티티제 사이를 운행하는 열차가 이따금씩 지나간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진행한 짧은 시티 투어 동안 나름 중요한 두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독일의 전통 파스타인 슈페츨레(Spätzle)의 맛이 궁금하던 터였는데, 20대 중ᆞ후반으로 짐작되는 가이드 아담은 이렇게 잘라 말했다. “젊은 층에게는 그다지 인기 없는 음식이죠.” 실제 블랙 포레스트에서 슈페츨레를 두 번 맛보았는데, 우리나라 강원도 영월이나 정선의 토속 음식처럼 검박한 맛이었다. 밀가루와 달걀을 섞은 묽은 반죽을 국수틀을 통해 끓는 물에 떨어뜨려 익혀 먹는 슈페츨레는 한마디로 ‘독일판 올챙이국수’다. 보통 그레이비소스를 끼얹거나 치즈에 버무려 먹고, 튀긴 양파를 올리기도 한다. 더 중요한 조언은 맥주에 관한 것이었다. 프랑크푸르트의 레스토랑 브리즈에서 식사에 동석한 프랑크푸르트 관광청 직원은 “블랙 포레스트에서는 반드시 로트하우스(Rothaus) 맥주를 마셔보세요”라고 입을 모았다. 이외에도 아우구스티너(Augustiner), 파울라너(Paulaner), 슐라페제플(Schlappeseppl), 벡스(Becks) 등의 맥주 브랜드가 나머지 추천 리스트를 차지했다.
화이트 와인도 손색없지만 독일은 누가 뭐래도 맥주의 나라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종류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자기 고장 맥주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 독일에 있는 맥주 회사가 무려 1,200개가 넘는다는 얘기도 있다. 독일 사람에게 맥주는 기호품이라기보다 하루도 빠뜨릴 수 없는 식사에 가깝다. 슐루흐제에서 동쪽으로 약 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로트하우스(Rothaus) 양조장이 있다. 1791년에 설립된 상당히 긴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물론 대형 설비를 갖춘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로트하우스의 인기 비결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로트하우스는 독일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설립된 맥주 양조장입니다. 청정 환경에서 솟아난 물의 수질이 워낙 좋으니 당연히 맥주 맛이 빼어날 수밖에 없죠.” 양조장 곳곳을 안내하는 인상 좋은 발터 슐로처(Walter Schlotzer)가 힘주어 말한다. 블랙 포레스트 관광청에서 커뮤니케이션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레베카 보러(Rebecca Bohrer)도 로트하우스 예찬론을 편다. “무엇보다 달콤하거나 부드럽지 않아서 좋아요. 베를린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 2년 정도 머문 적이 있는데, 로트하우스 맥주를 발견하고 뛸 듯이 기뻐했던 일이 지금도 생각나네요.”
맥주 시음장이 마련돼 있고, 시중보다 맥주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로트하우스 양조장의 숍은 인테리어가 기가 막히다. 시음 장소 뒤쪽과 화장실 입구 쪽 벽면에 엄청난 수의 맥주를 유리 진열장 안에 세워놓았다. 두주불사(斗酒不辭) 입장에서는 영화 <매트릭스>의 가상공간을 떠올릴 만큼 매혹적이다. 로트하우스는 필스, 바이젠, 아이스 등 각기 다른 맛의 라인업을 선보인다. 레모네이드를 섞어 청량감이 폭발하는 맥주와 무알코올 맥주도 갖췄다. 슐로처의 말을 빌리자면 레몬을 제외한 모든 양조 재료는 지역에서 공급받는다고 한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맥주 마시는 테이블에 소시지가 빠질 수 없겠다. 독일에서 맥주만큼 종류가 다양한 것이 바로 소시지, 부르스트(Wurst)다. 놀랍게도 1,200종이 넘는다고 한다. 대게 프랑크푸르터(Frankfurter), 뉘른베르거(Nürnberger), 레겐스부르거(Regensburger)처럼 각 도시의 이름을 달고 있는 경우다 많다. 이 또한 자부심의 반영이다. 양조장 투어를 마치고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겨 각종 소시지와 햄, 치즈를 곁들이며 맥주를 정신없이 목구멍에 마구 쏟아붓는다. 모양과 빛깔은 제각각이지만 맛은 예외 없이 준수하다. 소시지 중에는 우리나라 피순대를 닮은 슈바르츠부르스트(Schwarzwurst)의 맛이 가장 각별하다. 훌륭한 안주의 도움을 받으니 맥주의 맛이 더욱 풍성해질 수밖에.
사족 하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프랑크푸르트국제공항의 레스토랑에서 마지막 맥주잔을 기울였다. 피자와 소시지도 함께 주문했다. 맥주는 눈감아줄 만했지만 피자와 소시지는 영 껄끄러웠다. 맛있는 ‘공항 음식’을 만나기 쉽지 않다는 기존의 편견을 공고하게 해주었을 뿐이다. 역시 ‘미주(美酒, 맛 좋은 술)’에는 ‘가효(佳肴, 맛 좋은 안주)’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
노중훈은 여행의 맛을 탐구하는 칼럼니스트다. 여러 신문과 잡지 등에 여행기를 기고하고 있으며, MBC 라디오에서 매주 토요일 아침 <노중훈의 여행의 맛>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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