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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May 18. 2017

괌 액티비티 여행 '괌이라서 좋아'


오래전 괌 바닷속에 가라앉은 SMS 코모란호는 100년의 시간을 달려
지금의 전설이 됐다. 그리고 오늘날 새벽을 열고 해변을 달리는 러너들이
괌의 새로운 이야기와 문화를 써내려간다.


ⓒ 이두용



괌 액티비티 여행

괌이라서 좋아




괌의 전설이 된 배 한 척

두 번째 괌. 며칠 만에 온 듯 낯익다. 괌은 사시사철 비슷한 기후로 3년 전 처음 방문하던 때와 여전히 닮아 있다. 지금껏 누군가 괌에 관해 물으면 ‘미국령 휴양지’라는 답변이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100년 전 이곳 바다에 가라앉은 배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궁금증은 고스란히 관심이 되는 법이다.

1917년 4월 7일, 독일의 순양함 SMS 코모란호(SMS Cormoran II)가 아프라 항(Apra Harbor)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선장이 스스로 배를 침몰시킨 것이다. 그는 적군에게 배를 넘기는 대신 선원 6명과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걸 택해 후대에 영웅담을 남겼다. 이 이야기는 독일과 괌뿐 아니라 미국에도 감동을 안겨줬고, 이곳에선 매년 그들의 넋을 기리며 행사를 연다. 그렇게 꼭 100년이 흘렀다.



지금도 아프라 항 앞바다에 가라앉아 있는 SMS 코모란호. ⓒ GUAM VISITORS BUREAU


기념행사가 열리는 날. 하늘은 새벽부터 청명하다. 어스름이 거치니 사방이 더욱 푸르다. 요 며칠 새벽에 비가 내렸다는데 날씨마저 코모란호를 축원해주는가 보다. 배가 채비를 마치고 아프라 항으로 향한다. 항구에는 여러 척의 배가 준비돼 있다. 미국과 독일 등에서 참석한 행사 관계자와 세계 곳곳에서 날아온 미디어가 둘로 나뉘어 배에 오른다. 물속에 남겨진 SMS 코모란호는 이보다 훨씬 클 것이다. 배에 오르니 마음이 사뭇 진지해진다.


줄지어 가던 배가 차례로 멈춰선다. 바로 SMS 코모란호가 가라앉은 곳이다. 스쿠버다이버 7명이 물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100년 전 배에 오른 선원 수와 일치한다. 다이버가 물속을 드나들자 기독교식 예배로 행사를 시작한다. 가장 먼저 괌 원주민이 죽은 이를 위해 노래 한다. 마이크도 없는데 노랫소리가 수면을 지나 귀에 와서 꽂힌다. 노래는 물결만큼이나 잔잔하고, 가라앉은 배 이야기만큼이나 울림을 전한다. 각국에서 온 관계자의 축사가 이어진다. 배 위에 마련한 무대가 인상적이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평화를 이야기한다. 100년의 세월은 적을 친구로 만들었고, 슬픔이 깃든 요충지를 관광 명소로 바꾸어 놓았다.

해마다 SNS 코모란호가 침몰한 시간에 맞춰 기념행사를 시작한다. ⓒ 이두용

SMS 코모란호에 대해 좀 더 설명하자면 이렇다. 이 배가 괌에 정박한 건 침몰 3년 전인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중 태평양 일대에서 전투를 벌인 SMS 코모란호는 일본 전함에 추격당하다가 연료를 소진해 괌까지 들어왔다. 단순히 연료만 채우고 떠나려 했지만, 전쟁에도 참전하지 않던 미군은 연료 공급을 거부했다. 어쩔 수 없이 선원들은 3년 가까이 이곳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1917년 4월 6일, 미국은 공식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독일과 적국이 된 미국은 코모란호의 선장에게 배를 넘겨줄 것을 명령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선장은 스스로를 희생해 배를 침몰시키는 것으로 응수했다.




원주민이 차모로 부족의 의식으로 장엄한 의식을 치룬다. ⓒ 이두용

물속에 들어갔던 다이버가 하나둘 나오면서 엄지를 치켜든다. 이곳이 다이버 사이에서 세계적 명소로 꼽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1917년 SMS 코모란호가 물속으로 가라앉고 26년이 지난 1943년, 일본군 수송선 도카이 마루 (Tokai Maru)호가 같은 곳에서 침몰했다. 근해를 지나던 중 미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고 가라앉고 말았는데 놀랍게도 SMS 코모란호 위에 기대 얹은 것처럼 수장됐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망망대해에서 2척의 난파선이 포개질 수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바다 한복판에서 두 가지 역사를 지닌 유적을 만나는 셈이다.


배가 항구로 돌아온다. 오전엔 SMS 코모란호가 가라앉은 수상에서, 오후엔 선원이 잠든 묘역에서 기념행사를 진행한다. 선원이 잠든 묘역. 7명이 물속에서 숨을 거뒀지만, 시신 1구는 발견하지 못해 6개의 묘비만 서 있다. 물 위에서 열린 행사와 분위기가 다르다. 고적대의 반주와 함께 장엄한 의식이 시작된다. 괌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원주민이 과거 차모로 부족의 의식으로 100년 전 사라져간 선원의 넋을 달랜다. 머리에 빨간 화관을 쓴 여인은 오래전 이곳에 살던 원주민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서구 문명이 들어온 것이 과연 이들에게 행복일까? 우람 한 덩치의 원주민 남성이 화려한 치장을 하고 묘비를 돌며 그들만의 의식을 치른다. 서구화한 수상 행사보다 괌의 자연과 맞물려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아름답다.



새벽을 달리는 사람들

박람회장에서 “I Love GUAM Marathon”이라고 쓰인 푯말이 참가자를 맞이한다. ⓒ 이두용

해가 뜨기 무섭게 밖이 소란스럽다. 뜨거운 날씨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이곳에 연중 열리는 마라톤 행사의 열기가 더해진 것이다. 매년 4월엔 괌 마라톤이 ‘핫’ 그 자체 다. 4월 9일 본 경기를 위해 전날부터 분위기가 시끌시끌 하다. PIC 괌 리조트에 펼쳐진 괌 마라톤 박람회. 입구에 차모로 말로 ‘안녕하세요’를 뜻하는 “Hafa Adai” 문구 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박람회장으로 들어서자 별세계다. 신나는 음악 덕분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I Love GUAM Marathon”이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서 있는 직원의 표정이 밝다. 웃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한쪽에는 마라톤 참가자의 이름을 써놓았다. 대회는 마라톤 풀코스인 42.195킬로미터와 절반인 하프 코스, 10킬로미터, 5킬로미터로 나누어 진행한다. 나는 10킬로미터 코스를 신청했다. 이름을 찾는데, 마치 어려운 시험에 응시했다가 합격자 발표날 찾아 온 것처럼 설렌다.


10킬로미터 부스에서 번호표와 티셔츠, 안내문 등을 받아서 챙긴다. 오래전에 일본 오사카 마라톤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때도 10킬로미터를 뛰었는데, 한국에서 뛸 때와 크게 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선 봄 소풍 가기 전날 초등학생 같다. 10킬로미터를 뛰기로 한 가수 션이 박람회장으로 들어온다. 괌 마라톤 조직위원장인 벤 퍼거슨(Ben Ferguson)이 나와서 그를 반긴다. 이번 괌 마라톤에는 국내 최고의 마라토너이자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이봉주 선수와 방송인 엄현경, 김새론, 경리 등이 10킬로미터 부문에 참가한다. 본 대회에 앞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벤 퍼거슨이 마라톤 행사에 강한 자신감을 드러낸다. “세계적으로 출전자가 매년 늘고 있는 마라톤 대회가 많지 않다. 올해 괌 마라톤 은 지난해보다 427명 늘어난 4,335명이 참가했다.”


퍼거슨의 말대로 괌 마라톤의 참가자 수는 매년 성장세다. 더욱 놀라운 건 전체 참가자 중 현지인이 가장 많고 그다음이 일본, 세 번째가 한국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참가자 수는 2014년 340여 명에서 지난해 약 450명으로 점차 늘어 올해는 약 550명에 육박했다. 수만 명 이상이 달리는 국내외 마라톤 대회는 많이 있지만, 거제도 크기의 작은 땅에서 열리는 국제 마라톤 경기에 한국인 참가자가 매년 늘어나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 이두용

괌은 해가 일찍 뜨고 날씨가 무더운 탓에 대회는 보통 이른 새벽에 시작한다. ‘일찍’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대충 6~7시라고 예상했는데, 풀코스 출발이 3시라고 한다. 너무 이른 일찍이 아닌가.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유니폼과 번호표를 챙겨 숙소를 나선다. 아직 사방은 어둡지만 마라톤 현장은 축제 분위기다. 대회장으로 나오니 이미 풀코스 첫 주자들이 출발한 상태다. 선수들은 잘 뛰기도 하지만 일단 부지런하다. 하프 코스 선수가 준비를 한다.


각각 코스의 주자가 출발할 때마다 똑같은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등에 날개를 달고 나타난 응원 복장의 여성이 신나게 춤을 추며 카메라 앞에선다. 날개를 펼치면 풀 코스도 단숨에 뛸 수 있을 것처럼 에너지가 넘친다. 곧이어 양손에 불꽃을 들고 원주민 복장의 남녀가 나타난다. 이들은 선수가 달려나갈 길 위에서 불꽃을 휘날리며 응원을 한다. 괌 마라톤에서만 볼 수 있는 쇼가 아닐까 생각한다. 출발 총성이 울리자 선수들이 뛰어나간다. 달리 기만큼 공평한 경기도 없을 것이다. 인종과 빈부, 남녀와 노소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배움이나 자격 없이 평등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 바로 달리는 것이니까. 최고가 되기까지의 눈물과 땀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즐거움’이란 조건에서 겨루는 건전하고 공평한 스포츠다.


마라톤 참가자를 응원하는 행사 운영 스태프. ⓒ 이두용

고백하자면, 이번 대회에서 난 뛰지 못했다. 출발 마지막까지 ‘좋은 사진’과 ‘10킬로미터의 추억’을 고민하다가 결국 사진을 택했다. 좋은 사진을 남기자는 일념으로 일찌감치 결승선에 다가가 우승자가 들어오길 기다린다. 하프 코스 선수가 하나둘 들어오면서 결승선의 분위기도 한껏 달아오른다. 마라톤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42.195 킬로미터의 우승자도 곧 도착할 시간이다. 2시간 20여 분이 지나자 결승선에서 우승자를 위한 띠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우승자가 뛰어온다. 그런데 아뿔싸! 하프 코스 선수가 풀코스 우승자를 위해 준비한 결승선 띠를 보고는 자신을 위한 것인 줄 착각한 모양이다. 코스와 상관없이 결승선이 같은 지점이라 생긴 해프닝이다. 결국 하프 코스 순위권에도 들지 못한 선수는 결승선 바로 앞에서 풀코스 우승자를 밀치며 앞서 들어온다. 실제로 풀코스 우승자는 그 앞에서 살짝 넘어지고 만다.


코스를 완주한 참가자가 음악을 들으며 지친 몸을 풀고 있다. ⓒ 이두용

이 같은 해프닝을 뒤로하고 올해 우승은 일본의 나카 지마 히로키(Nakajima Hiroki)가 차지했다. 히로키는 2 시간 30분 37초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우승을 거머쥔 것이다. 지난 대회보다 1초 앞당긴 기록이다. 여성으로는 한국의 유승화가 3시간 1분 58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유승화 선수는 괌 마라톤에서 풀코스 여성 부문 3년 연속 우승자다. 하프 코스에서 한국의 이병도 선수가 3위를 수상했다. 괌 마라톤에서 한국인 선수의 활약은 매년 이슈다.



괌의 자연환경을 그대로 연출해놓은 PIC 괌 리조트. ⓒ 이두용

대회는 새벽 3시 풀코스 출발로 시작해 4시에 하프 코스, 5시에 10킬로미터, 6시에 5킬로미터 코스로 이어진다. 해가 뜨는 시간과 맞물린 6시 30분을 기점으로 선수 대부분이 들어온다. 결승선을 통과한 사람은 순위와 상관없이 축하를 받으며 목에 완주 메달을 건다. 새벽부터 달리기를 한 사람이라고 하기엔 하나같이 축제에 온 듯한 표정이다. 몸이 불편한 아들을 휠체어에 태우고 코스를 완주한 일본인 아주머니는 “아들의 다리가 되어 뛴 것 같아 함께 한 오늘이 기쁘다”고 소감을 전한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완주한 부모도 많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있지만 참가자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골인한다. 대회 마무리 무렵 분위기는 한층 고조된다. 이번 대회의 슬로건은 “EAT, RUN, SHOP”. 말 그대로 먹고, 달리고, 쇼핑하자는 취지다. 참가자는 대회를 마친 후, 비치 바비큐파티에서 다양한 음식과 음료, 맥주를 즐길 수 있다. 괌 내에 있는 25개 레스토랑과 쇼핑센터에서 할인도 받는다. 괌 마라톤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파오(Ypao) 해변 중앙 무대에서 공연이 펼쳐진다. 달리기를 마친 참가자는 바다를 향해 편하게 누워 있거나 앉아서 쉰다. 물속에 뛰어들거나 놀이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공식 행사는 끝났지만, 마지막 주자가 들어오기까지 레이스는 이어진다.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큰 환호 소리에 돌아보니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한 분이 결승선을 향해 달리고 있다. 시간은 낮 12시. 만약 풀코스 주자라면 9시간 넘게 달린 셈이다. 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넘는 땡볕에서 할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느린 걸음을 내딛는다. 놀라운 건 그를 응원하는 친구들인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몇몇을 위해 뙤약볕 아래에서 팻말을 들고 큰 소리로 응원을 한다. 이들이 보여준 긍정의 에너지는 지켜보는 이에게도 힘을 전달한다.


글. 이두용





괌 액티비티 여행 두 번째 이야기

괌 여행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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