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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Jul 20. 2017

제주 서부의 마을로 떠나다
<제주시 한경면>


인간보다 자연의 스토리가 파란만장하게 펼쳐지는 제주 서부의 숨은 마을을 찾아간다. 수만 년 전 화산 지형부터 최신 카페와 숍까지 아우르는 탐험 같은 여행.



제주 서부의 마을로 떠나다

- 제주시 한경면







오름 보러 갔다가 쇼핑하고 오지요

프란츠스토어


저지리의 가정집을 개조한 프란츠스토어 내부. © 김주원

“한경면이야말로 제주에서 가장 제주스러운 분위기가 남아 있는 곳이에요.” LP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존 콜트레인의 ‘My Favorite Things’를 들으며 프란츠스토어의 김민정 대표가 말한다. 이곳은 한라산 서북부 중산간. 제주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저지오름 앞 농가 마을로 이주한 김민정 · 배민덕 부부는 마을회관 근처의 오래된 주택을 편집매장으로 개조했다. 예전에 비해 변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다홍색으로 칠한 슬레이트 지붕과 에메랄드빛 외벽, 붓으로 휘갈겨 쓴 듯한 작은 간판은 마을의 조용한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프란츠스토어에서는 주인 부부가 일본 교토에서 직접 구매해 온 소품과 미도리 문구류, 여성용 의상을 선보인다. 실내 구석구석 아기자기한 물건으로 가득하다. 집주인 할머니가 쓰던 반질반질한 서랍장 위에는 일본제 식기와 소품, 스카프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벽에는 회화 작품과 LP 앨범, 밀짚모자, 드레스가 걸려 있다. 강렬한 붉은 색채를 사용한 바스키아풍 작품은 한쪽 벽면을 전부 차지한다. 사실 제주에서 수공예 소품을 취급하는 매장은 종종 찾아볼 수 있지만, 수입품을 선보이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프란츠스토어가 오픈하자마자 인기를 끈 이유도 여기에 있을 터. 그럼에도 김민정 대표는 이곳이 단순히 물건만 파는 곳보다는 서로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한때 밀감나무밭이던 넓은 뒷마당은 바로 그런 공간인 듯. 나무 그늘 아래 놓인 목조 의자는 느긋한 한때를 누리기 제격이다.



11am~5pm, 일요일 휴무, 064 772 5962, 제주시 한경면 중산간서로 3721, 

Instagram @franz_store





오래된 정원에 머물다

저녁정원


카페 저녁정원은 판포리 마을 안쪽의 단층 주택을 개조했다. 오른쪽 사진, 저녁정원의 현관 너머로 보이는 정원은 부부가 매일 가꾼다. © 김주원


스노클링 명소로 유명한 판포포구 앞의 한적한 농가 마을. 돌담길을 따라 마을 깊숙이 들어가면 최근 인스타그래머에게 인기를 끄는 카페 저녁정원이 나온다. 50년 넘은 제주도 단층 주택을 개조한 카페다. 현관에서 실내용 슬리퍼로 갈아 신고 수십 년간 그 자리를 지켰을 목조 마루를 디디고 들어서자 여느 가정집에 초대받은 듯한 기분이 든다. 벽에는 앙리 루소와 고갱, 마티스의 그림이 걸려 있고 공중 식물이 잎을 축 늘어뜨리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고 부모가 나이 들어갔을 방 4칸짜리 집 안 곳곳에 자리를 잡은 손님은 먹다 남은 카스텔라를 내버려둔 채 책을 읽거나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다. 부엌을 개조한 카운터에 놓인 손글씨 메뉴판도 고즈넉한 분위기에 한몫한다.



왼쪽 사진은 수박주스와 수제 카스텔라. 저녁정원의 모든 메뉴는 대부분 제주산 식자재로 만든다. 오른쪽은 손으로 직접 메뉴를 그려 넣은 메뉴판이다. © 김주원


“저녁정원이라는 카페 이름대로 정원처럼 아늑한 분위기를 내고 싶었어요.” 권영진 대표가 설명한다. 그 말대로 커다란 통유리창 밖으로 뒤뜰의 대나무 숲이 보인다. 예스러운 문양의 목조 창틀 너머로는 푸른 정원이 펼쳐진다. 정원 입구에는 수령이 100년은 넘었을 법한 팽나무가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데, 마을 사람 모두 아끼는 명물이라고. “농사철이면 동네 분들이 양파 같은 농작물을 던져주고 가시곤 해요.” 권영진 대표가 웃으며 말한다. 음료는 커피부터 긴가코겐(銀河高原) 맥주, 하우스 와인까지 선보이는데, 여름에는 단연 제주산 수박을 갈아 넣은 수박주스나 한라봉에이드가 인기. 주방에서 직접 굽는 카스텔라에는 합성 첨가물 대신 한라산 꿀을 듬뿍 넣는다고. “제주에서는 제사상에 카스텔라를 올리는 풍습이 있고 선물용으로도 좋지요.” 조만간 저녁정원에서는 정원의 스몰 웨딩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커피 5,000원부터, 12pm~8pm, 화요일 휴무, 010 6407 5676, 제주시 한경면 판포중길 31,

 Instagram @evening_garden





제주의 숨은 지질학 박물관

수월봉 엉알길

주올레 12코스의 일부인 수월봉 엉알길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수월봉 어귀에서 시작한다. © 김주원

제주에서 드넓기로 꼽는 고산리 들판 너머에 천연기념물 제513호로 지정된 수월봉이 솟아 있다. 1만8,000여 년 전 마그마가 폭발해 화산재가 쌓여 생긴 야트막한 오름으로, 인기 일몰 포인트기도 하다. 해발 77미터 남짓한 정상까지는 차로 올라갈 수 있다. 정상에 서면 서쪽으로는 차귀도와 와도가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있고, 동쪽의 고산리 들판 너머로 몇몇 오름이 더 보인다. 저 어딘가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기 신석기 유적인 고산리 유적이 숨어 있을 것이다. 거친 바닷바람이 머리칼을 사정 없이 흩뜨리지만, 가족과 연인은 행복한 얼굴로 망원경을 통해 바다 저편을 바라보거나 사진을 찍으며 노을이 지기를 기다린다.


수월봉 지질 트레일은 수월봉에서 당산봉까지 뻗은 해안길과 차귀도 둘레길을 포함한다. 이 중 수월봉 엉알길은 수월봉에서 북쪽으로 차귀도 선착장까지, 해안 절벽을 따라 1.6킬로미터 이어지는 길로 지질학적 보고(寶庫)나 다름없다. 수월봉 아래편의 해안 절벽으로 내려가자 70미터 두께로 쌓인 장엄한 화산재 지층이 모습을 드러낸다. 해안 절벽과 짙푸른 파도, 검은 현무암 해변이 어우러져 여름 달력 사진에 어울릴 법한 풍광을 완성한다. 짭짤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엉알길을 걷다 보면 일제강점기에 절벽을 뚫어 만든 갱도진지와 ‘녹고의 눈물’이라 불리는, 샘물이 똑똑 흘러나오는 절벽 지형을 만날 수 있다.



안내사 해설 시간 9am~4pm, 064 772 3334,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3674-7.





파밭 앞 미니멀리즘 아파트

청수리 아파트

청수리 아파트는 투숙객 간의 교류를 위해 건물 전체를 통유리로 마감했다. 가운데는 1층의 카페 아파트먼트 커피 옆에 자리한 라운지, 오른쪽은 아파트먼트 커피의 오픈 키친에서 핸드 드립 커피를 내리는 엄태준 대표의 어머니. © 김주원


곶자왈 인근 농촌 마을인 청수리의 파밭 앞에 아파트 콘셉트의 렌털 하우스가 들어섰다. 바로 건축 설계 사무소 이룩에서 디자인을 맡은 청수리 아파트다. 이곳이 빠르게 입소문을 탄 데는 1층의 카페 아파트먼트 커피의 공이 크다. 흰 소파가 늘어선 라운지 공간, 묵직한 목조 테이블, 누군가의 서재에서 옮겨 온 듯한 책상, 탁 트인 오픈 키친 등, 먼지 하나 없고 결벽증에 가까운 미니멀리즘을 보여주는 공간에서 친구에게 자랑할 만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 메뉴 면면도 훌륭하다. 카페에서 로스팅한 원두를 사용하는 핸드 드립 커피와 매일 직접 내리는 콜드 브루, 맥주와 와인, 잡곡 빵과 무화과 파이 등을 선보인다. 그중 라벤더 라테는 진보랏빛 라벤더 시럽을 넉넉히 뿌리고 콜드 브루 라테를 따른 뒤 말린 라벤더 줄기를 꽂아 내는데, 달콤한 라벤더 향과 진한 커피가 참신한 조화를 이룬다.


청수리 아파트에 투숙하면 아파트먼트 커피를 숙소 라운지로 이용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기하학적 도형이 그려진 심플한 금속 키를 쥐고 2층으로 향하자. 201호부터 204호까지 아파트 호수처럼 이름을 붙인 객실이 복도를 따라 자리한다. 객실 통유리창 밖으로 펼쳐지는 파밭과 탁 트인 하늘은 선(禪)적인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아래층 카페를 잠식한 미니멀리즘이 객실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여기에 제주 돌담을 적용해 자연주의적 분위기를 더했다. 주방 겸 식탁 역할을 하는 바에는 무인양품 토스터와 전기 주전자가, 욕실에는 친환경 브랜드 인비아포테케의 어메니티가 놓여 있다. 조식은 아파트먼트 커피에서 제공하며, 양송이 수프와 잡곡 빵, 카야 잼, 핸드 드립 커피로 구성했다. 눈뜰 때부터 침대에 누울 때까지, 명상적이고도 편리한 하루를 보장한다는 얘기다.



1박 15만 원부터(14세 이하 숙박 불가), 조식 사전 신청 필수, 아파트먼트 커피 11am~10pm, 

070 4117 4186, 제주시 한경면 청수서2길 96, blog.naver.com/daily_rental_house





제주에 상륙한 뉴욕 할머니표 비빔밥

뉴욕할망

뉴욕할망의 모든 메뉴는 재활용 가능한 테이크아웃 용기에 담아 내준다. © 김주원

판포리 내륙으로 뻗은 2차선 도로를 달리다 보면 도로변에서 범상치 않은 컨테이너 박스를 마주치게 된다. 올봄에 오픈한 뉴욕식 샐러드 비빔밥 전문점 뉴욕할망은 미국 지방 고속도로 변의 카페테리아를 떠올리게 한다. 야외에 캠핑 체어와 테이블을 비치했고, 가게 안팎을 온통 ‘NEW YORK’ ‘BROADWAY’ 같은 단어를 새긴 엠블럼이나 뉴욕 사진을 담은 액자로 꾸몄다.


뉴욕할망의 이은 대표는 수년간 뉴욕에서 한식 레스토랑 셰프로 일했다. 최근 뉴요커에게 건강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샐러드 비빔밥은 밥이 적게 들어가는 대신 로메인, 양상추 등 채소를 풍성하게 얹는 것이 특징. “제주에 어울리게 로메인 대신 양상추와 나물을 넉넉히 넣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소스를 개발했어요. 밭일하는 분들이 단체로 주문한 적도 있죠.” 이은 대표가 말한다. ‘할망볼’이라 이름 붙인 이곳의 샐러드 비빔밥에는 불고기, 제육, 주꾸미 등의 고명이 올라가는데, 소스보다 식자재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주력한다. 초사이언 할망볼은 새콤달콤한 오징어 초무침이 올라가는 여름 메뉴. 주문 방식도 독특하다. 먼저 매장 내의 자판기에서 원하는 메뉴를 골라 계산한 뒤 영수증을 카운터로 가져가면 된다. 조만간 비빔국수 샐러드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해변까지 차로 불과 10분 거리니 테이크아웃해 바닷가에서 즐겨도 좋겠다.



커피 1,000원, 할망볼 8,000원부터, 9:30am~7:30pm, 화요일 휴무, 064 773 2153, 

제주시 한경면 대한로 944, Instagram @newyorkhalmang





책을 위한 박물관

파파사이트

북 갤러리 파파사이트는 예부터 닥나무가 많기로 유명하던 저지리 입구에 위치한다.  홍영주 대표가 절판 도서 중 1권인 만화 을 살펴보고 있다. © 김주원


제주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갤러리, 공방 등이 흩어져 자리하는 저지리 문화예술인마을. 최근에는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이 문을 열며 방문객이 늘고 있다. 마을 입구의 파파사이트는 ‘책 전시’라는 독특한 콘셉트의 북 갤러리. 배나무, 목련나무, 허브 등이 자라는 널따란 정원 안쪽에 갤러리 같은 건축물이 자리한다. 과거 박물관 전시 디자이너로 일하던 홍영주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운명적으로 책에 이끌렸다고 고백한다. “제가 디자인한 전시 중에 책 관련 전시는 유독 기억에 많이 남더군요. 또 책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이상하게 마음이 아팠어요.” 애초에 갤러리를 목적으로 설계한 건물이라 실내가 탁 트여 있고, 태권브이를 테마로 한 설치 작품 등 곳곳의 예술 작품이 갤러리다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파파사이트는 주로 예술과 제주, 순례에 관한 책을 선정하고, 그때그때 화제에 맞춰 책 전시를 선보이기도 한다. 절판되었으나 가치가 높은 책도 부러 소개한다. ‘짝짓기 북 큐레이션’은 장르와 시대에 상관없이 함께 읽기 좋은 책 2권을 선보이는 코너다. 예컨대 크레이그 톰슨(Craig Thomson)의 그래픽 노블 <담요>와 올리버 색스(Oliver Sacks)의 자서전 <온 더 무브>를 나란히 놓는 식. 두 작가는 모두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고 아웃사이더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북 갤러리 옆 카페에서 홈메이드 호두 파이를 먹으며 방금 산 책을 읽어도 좋겠다. 7월 둘째 주에는 마을 내의 다른 문화 공간과 함께 종이 관련 플리마켓을 개최할 예정이다.



커피 3,000원부터, 11am~6pm, 토요일 3pm부터, 일 · 월요일 휴무, 070 4217 5821, 

제주시 한림읍 용금로 889, papasite.blog.me




글. 이기선   사진. 김주원




제주 서부의 마을로 떠나다 - 서귀포시 대정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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