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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Sep 18. 2017

대구의 소울 푸드와 소울 푸드





Searching for Soul Food

대구의 소울 푸드와 소울 푸드


대구 10미(味)가 태어났다는 유구한 노포 그리고 이에 견줄 떠오르는 식당을 차례로 찾는다. 같은 장르의 음식을 다루거나 한 골목에 자리하거나, 혹은 유사한 태도를 견지한 곳들이다. 함께 들러도 좋고 양자택일해도 좋다. 맛있는 음식을 둘러싼 추억은 시대를 뛰어넘는 것이니까.








막창과 미트볼


젊은 층도 즐겨 찾는 안지랑 곱창 골목의 밤. © 임학현

3일간의 여름휴가를 마치고 온 노부부는 오늘 다시 삼거리 식당의 문을 열었다. 긴 여름 해가 아직 환하건만 벌써 오늘의 두 번째 손님 무리가 어둑한 실내에 자리를 잡는다. 좁은 실내에 테이블은 5개. 벽에 붙은 빛 바랜 OB 라거 광고 포스터 속 상반신을 벗은 젊은 여자는 십수 년째 변함 없이 상쾌한 미소를 띠고 있다. 곱게 눈 화장을 한 채자순 씨는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굽은 허리로 찬찬히 손님을 맞는다. 만촌동 분점은 본점보다 맛이 덜하더라는 단골의 푸념에 채자순 씨가 “여기는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그렇지”라고 답하자, 손님은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테이블에는 변변한 밑반찬 하나 없이 막창 소스와 파, 마늘, 채 썬 고추, 쌈 상추 정도가 놓인다. 그사이 남편 김성운 씨는 가게 앞에서 뭉게뭉게 숯불 연기를 피우며 막창을 굽고, 손님은 막창 소스에 파와 고추를 넣고 뒤섞는다. “소스가 하도 맛있어서 그것만 떠먹어도 맛있다고 몇 그릇씩 먹고 가더라”고 채자순 씨가 푸념하듯 말하니 “막창 소스 남기지 마세요”라는 안내문이 괜히 붙어 있는 게 아닐 것이다.



대구 복주식당에서는 소 막창과 돼지 막창을 우선 초벌구이해서 낸다. © 임학현
복주식당을 운영하는 채자순 씨가 막창을 굽고 있다. © 임학현

대구 명물인 소 막창의 맛을 결정짓는 요소는 바로 가게마다 직접 만드는 소스다. 된장을 기반으로 마늘, 파, 땅콩 등 저마다 다른 재료를 사용한다. 동성로 로데오거리 인근의 뒷골목, 대구의 1세대 막창 가게로 꼽는 복주식당에선 과일을 갈아 넣은 듯 산뜻하고 묽은 소스를 낸다. 이 소스가 그토록 많은 손님을 끌어 모은 것이다. 초벌구이를 마친 막창을 테이블에서 마저 굽는데 금방 타니 서둘러 뒤집어 구워 먹어야 한다. 소 막창을 만드는 부위는 소의 네 번째 위인 홍창. 식감이 꼬들꼬들하고 돼지 막창보다 질긴 편이지만, 씹을수록 진한 풍미의 육즙이 배어 나와 입안을 가득 채운다. “내장끼리는 서로 통한다지. 그래서 막창은 아무리 먹어도 체하지 않는다고 해.” 채자순 씨가 긴한 비밀을 전하듯 위 언저리를 어루만지며 말한다. “사실 우리 소 막창은 밥이랑 같이 쌈에 싸서 먹는 게 제일 맛있는데, 우리는 밥도 안 팔고 다른 반찬도 일절 안 내. 대신 밥을 싸 와서 먹어도 돼.”


일설에 따르면 1970년대 초, 대구 중구 남산동의 몇몇 가게에서 처음으로 연탄불에 구운 소 막창을 술 안주로 내놓기 시작했다. 혹자는 남구 대명동의 옛 미도극장 앞이 처음이라고도 한다. 남부시장 근처, 대구 최초의 소 막창 전문점이라고 알려진 황금막창이 있던 건물은 얼마전 헐고 신축 공사를 진행 중이다. 굽은 허리로 홀로 가게를 운영하던 할머니의 행방은 묘연한 채. 한편 남구 안지랑 곱창 골목은 최근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1970년대 말 안지랑 시장 앞에 충북식당 등의 곱창 가게가 들어서기 시작해 이제는 수십 개의 곱창 식당이 쭉 늘어서 있다. 해가 지면 가게 앞에 숯불을 내놓고 막창 굽는 연기가 골목 가득 퍼지고, 트럼펫 연습에 몰두한 전파상 주인의 구성진 트로트 가락이 넘실거리곤 한다.





핑퐁챔피온의 미트볼 스테이크와 일러스트레이터 키미앤일과 협업해 제작한 팸플릿. © 임학현

안지랑 곱창 골목의 뒤쪽에는 미국 포틀랜드 출신인 오리슨의 집이 자리한다. 학창 시절 오리슨은 키 176센티미터에 몸무게가 100킬로그램인 비만 소년이었는데, 미트볼이면 사족을 못 써서 한 끼에 미트볼 여섯 접시를 해치울 정도였다. 담임선생인 니콜라스는 자꾸만 뚱뚱해지는 오리슨이 걱정스러워 교내 탁구 클럽에 가입하길 권유했고, 이후 오리슨은 탁구의 매력에 푹 빠져 살게 되었다. 이듬해에는 오리건주 주니어 탁구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핑퐁 챔피온으로 이름을 알린다.


“오리슨이 실존 인물이냐고 묻는 손님이 많아요.” 박신우 씨가 웃으며 말한다. 그는 미국 가정식 다이닝 핑퐁챔피온 오픈을 준비하며 오리슨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오리슨의 집’을 콘셉트로 오래된 2층 상가 건물을 개조했다. 핑퐁챔피온의 오후 브레이크타임. 헤진 가죽 소파 앞의 흑백 텔레비전에선 영화 <백 투 더 퓨처> 속 장면이 빠르게 지나가고, 꽃무늬 커튼 앞에서 유니폼인 흰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건장한 직원 셋이 둘러앉아 미트볼을 둥글려 빚고 있다. 쇠고기 함량이 높은 미국식 미트볼이다. “투박한 느낌을 내기 위해 일부러 쇠고기 냄새를 잡지 않고 거친 식감을 살렸어요. 토마토소스 대신 로제 소스를 사용하는 것도 특징이고요. 처음 개발할 때는 미트볼을 하루에 10끼나 먹었죠.”



왼쪽부터 매일 직접 반죽하는 미트볼. 핑퐁챔피온의 미트볼 스테이크와 미트볼 파스타, 잭 코크. 실내 곳곳에 숨어 있는 빈티지 소품. © 임학현


실내에는 아이러니한 요소가 가득하다. 레트로풍 디스코를 들으며 테이블 위의 구겨진 종이를 펴보면 메뉴판이고, 바 자리에 앉으면 카드 게임을 할 수 있다. 소리가 나오지 않는 흑백 텔레비전에서는 <중경삼림> <화양연화> <몽상가들> <톰과 제리>가 하루 종일 번갈아 재생된다. 1층의 방으로 연결되는 턱, 2층의 낮은 층고 같은 낯선 구조도 핑퐁챔피온에서는 재미를 주는 요소다. 물론, 결정적 위트는 안지랑 곱창 골목이라는 위치일 것이다. “불편하지만 재미있는 공간을 찾던 중 이곳을 발견했어요. 오픈할 때는 동네 할머니들에게 피자를 돌리기도 했죠. 가게 뒤쪽 골목에도 흥미로운 구조의 건물이 꽤 남아 있어요.” 박신우 씨가 말한다. 거리의 오래된 방앗간 앞을 어슬렁거리거나 야자수 옆 초록색 간이 테이블에 앉아 브레이크타임이 끝나기만 기다리던 젊은 손님은 오후 5시가 되기 무섭게 가게 문을 열고 모습을 감춘다.



복주식당 소 막창 1인분 1만2,000원, 5:30pm~11pm, 일요일 휴무, 053 422 5821, 대구광역시 중구 명륜로23길 101.


핑퐁챔피온 메인 요리 8,500원부터, 음료 2,000원부터, 12pm~1am(당분간 10pm 마감), 브레이크타임 3:30pm~5:30pm, 화요일 휴무, 053 621 8721,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로36길 63 안지랑시장.






납작만두와 카스테라


50여 년째 영업 중인 미성당납작만두 본점. © 임학현

“하루는 정우가 떡볶이 포장 주문을 하러 와서 ‘이모, 나는 엎어주이소’ 했지. 떡볶이와 만두를 한데 섞어달라고. 그걸 본 다른 손님이 너도나도 저렇게 해달라고 하더라고.” 신내당시장의 유명한 분식집인 달고떡볶이 주인아주머니가 10년도 더 된 이야기를 어제 일인 양 입담 좋게 풀어놓는다. 그리하여 떡볶이와 납작만두를 합친 ‘달떡’은 달고떡볶이의 간판 메뉴가 됐다. 진한 떡볶이 국물이 배어 눅눅해진 납작만두와 밀떡이 들어 있을 뿐인데, 이 국물의 중독성이 상당하다. 요새 유행하는 ‘짠단짠단’이라는 표현대로 짭짤한 간장 맛과 단맛, 매운맛이 딱 적당한 균형을 이룬다. 매일 손으로 직접 빚는다는 납작만두만 따로 주문할 수도 있다. 기름에 튀기듯 바삭바삭하게 구운 만두를 간장이나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으면 된다.


달고떡볶이에서 튀기듯 구워 내는 납작만두. © 임학현

대구의 분식점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납작만두의 기원은 한국전쟁 후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밀가루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만두 소로 당면만 넣고 얇게 빚어 구워 먹던 것이 시초라고 한다. 1963년, 남산초등학교 건너편에 문을 연 미성당납작만두에 가면 대구 납작만두의 정석을 접할 수 있다. 오전 10시, 영업을 시작하자마자 첫 손님이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이후로 낡은 가게 문은 쉴 틈 없이 여닫힌다. 메뉴판에 적힌 것은 납작만두와 쫄면, 우동, 라면뿐. 대부분의 손님은 납작만두만 시키거나 쫄면 1그릇을 곁들일 따름이다. 이들이 수다를 떨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배용진 씨는 철판에 기름을 두르고 재래식으로 한 번 쪄놓은 납작만두를 지지기 시작한다. 작은 분식집 안에 익숙하고 노릇노릇한 기름 냄새가 퍼진다. “만두를 구울 때는 불의 세기와 기름 양이 가장 중요하죠.” 배용진 씨가 말한다.“그날그날 만두의 상태, 예컨대 만두가 얼마나 촉촉한지에 따라 매번 다르게 구워야 하고요.”



왼쪽부터 주방에 쌓인 접시. 미성당납작만두 본점의 대구식 납작만두와 쫄면.  © 임학현  


파를 송송 뿌린 따끈한 만두 1접시가 나오면 테이블마다 놓인 간장과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다. 얇은 만두피는 잘 부친 전병처럼 쫄깃하고 고소하다. 당면과 부추, 파가 소로 들어갔지만 역시 밀가루와 기름 맛이 지배적이다. 혼자 점심을 먹으러 온 박정환 씨는 구석 자리에 앉아 납작만두 대(大)자를 주문한다. 주름진 얼굴에 소년처럼 살짝 기대감이 돈다. “사실 영양가가 높은 건 아니지만, 단순하고 고소한 맛에 자꾸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그 맛에 이끌리는 이는 학창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픈 중·장년층만은 아닌 듯, 곱게 차려입은 옆자리 아가씨들도 접시를 맛있게 비운다.



어쿠스틱카스테라의 외관. © 임학현

대구 앞산 카페 거리나 동성로에 비해 임대료가 저렴한 삼덕동에는 최근 세련된 카페가 여럿 들어섰다. 2년 전, 이 골목에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어쿠스틱카스테라의 맞은편에는 올봄 마카롱 전문점 삼더크가 문을 열었고, 몇 주 전에는 모퉁이 건너편에 소셜클럽대구가 가오픈했다. 오로지 카스텔라만 취급하고, 인테리어도 투박한 이곳과 사뭇 다른 콘셉트의 카페다. “삼덕동이 이렇게 뜰 줄 전혀 몰랐어요. 대만 카스텔라 열풍 때문에 가게에 손님이 줄을 서다가 다시 줄어드는 것도요. 단순히 유행을 타지 않는 빵이라 선택했거든요.” 최우혁 씨가 카스텔라 1모와 막 우린 밀크티를 내준다. 카스텔라는 학창 시절 동경하던 프랑도르베이커리의 사장에게서 전수받은 레시피로 만든다고.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던, 단순하고 직관적인 맛이 난다. 보슬보슬하고 달콤하다. 


카스텔라를 1모씩 포장하고 있다. © 임학현

“옛날에 결혼식장에서 하객에게 답례품으로 카스텔라를 나눠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런 기억을 불러일으키는지도 몰라요. 저희 카스텔라에는 밀가루, 달걀, 설탕, 소금, 우유가 들어가고 기포 유화제 등의 합성 첨가물은 일절 사용하지 않죠.” 카스텔라가 달걀 함량이 유독 높은 빵인 만큼 이곳에서는 경주산 1등급 특란만 고집한다. 오븐에서 센 불에 22분 구운 뒤 꺼내서 식히고, 낮은 불에서 다시 1시간 정도 굽는데 단순한 듯하지만 의외로 만들기 까다롭다. 반죽 상태 그리고 운에 따라 매번 미세하게 차이가 난다. 


두 번째 카스텔라를 굽는 동안 최우혁 씨가 지금 준비 중인 앨범 계획을 이야기한다. 오븐에서 이따금 추임새를 넣듯 탁탁 소리가 난다. “제 이야기를 곡으로 쓰고 있어요. 예컨대 일요일에 지인 결혼식에 갔다가 끝난 뒤 친구들과도 헤어지고, 혼자 할 일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허한 기분 같은 것을요.” 가게 앞에 승용차 1대가 멈춰선다. 차창이 열리고 단골인 듯 선글라스를 낀 아주머니가 손가락 2개를 보이자, 최우혁 씨가 카스텔라 2모를 갖다준다. “서울 가는 길에 요기라도 하세요.” 최우혁 씨가 들려주는 카스텔라 1모를 들고 가게를 나선다.



왼쪽부터 어쿠스틱카스테라의 갓 구운 카스텔라. 농도가 진한 삼덕동 밀크티. © 임학현




달고떡볶이 달떡 소 1,000원, 흰 만두 1,000원, 10:30am~9pm, 일요일 8pm까지, 053 655 0877, 대구광역시 달서구 야외음악당로39길 54 삼정그린빌.

미성당납작만두 납작만두 소 3,000원, 10am~9pm, 주말 8pm까지, 053 255 0742,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 75-1.

어쿠스틱카스테라 카스텔라 1모 4,000원(전화 예약 권장), 삼덕동 밀크티 3,500원, 9am~9pm, 일요일 휴무, 070 4101 0104,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443길 44-20.





글. 이기선






소울 푸드와 소울 푸드 Part. 2 누른국수와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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