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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Oct 26. 2017

77번 국도 자동차 여행




77번 국도 자동차 여행

77번 국도를 따라 서해안의 점점이 흩어진 섬과 완만한 평원이 이룬 유유한 비경을 감상하고 자연 속 맛을 찾는 가을 여정.




1. 브루어리304

고색창연한 공세리성당. ⓒ 김주원

충청남도 아산은 서해안 자동차 여행의 기점으로 알맞다. 오랜 세월 자연 침식을 견딘 잔구성(殘丘性) 평원은 잔잔한 국도 여행의 배경이 되고 지역의 볼거리도 꽤나 다채롭다. 차령산맥이 도시를 감싸고 아산만이 내륙 깊숙이 만입한 지형은 기름진 옥토와 국내 유수의 온천수를 자랑한다. 산 좋고 물 좋은 고장에 일찍이 터를 잡은 조선 시대 사대부의 세거지 외암리 민속마을에선 아산의 영화로운 시절을 뽐내듯 전시하고 있다. 충청도에 초창기 천주교를 뿌린내린 공세리성당, 이순신의 정신을 기리는 현충사 등 유적이 산재한 도시는 오랜 세월이 깎아 만든 평평한 구릉의 흔적처럼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왼쪽부터 숙성을 마친 비스킷브라운을 갓 따라든 모습. 맥아 분쇄에서 홉을 넣고 숙성하는 일련의 양조 과정이 모두 이루어지는 양조실. ⓒ 김주원


아산의 풍광은 첨단산업 단지를 거치면서 이면을 서서히 드러낸다. 지중해마을이나 피나클랜드 같은 인공 볼거리가 들어서고, 드넓게 펼쳐진 평야 한가운데로 차로 몰고 들어가면 기막힌 수제 맥주를 맛볼 수 있는 마이크로브루어리도 있다. 브루어리304는 반도체 회사가 모여 있는 탕정면에 지난해 문을 열었다. “저희는 완성도 있는 맥주만 만듭니다.” 브루마스터 민성준 씨가 다부진 목소리로 말한다. 사실 이곳의 실제 주인은 따로 있다. 산업 용수 정수와 폐수 처리 회사인 범한정수의 대표가 유학 시절 미국에서 즐기던 수제 맥주가 그리워 직접 양조 시설을 구비했고, 사옥 옆에 소규모 맥주 양조장을 만들었다. 취미로 시작한 양조장에 전문 양조사 민성준 씨가 합류하면서 플루토(PLUTO)라는 수제 맥주 브랜드가 탄생한 것이다. 민성준 양조사가 선보이는 기본 맥주는 블론드 에일, 스타우트, 페일 에일 세 가지. 신선한 홉이 많이 들어간 이곳의 에일 맥주는 색이 유독 선명하고 풍미가 날카롭다. 흑맥주는 마치 캐러멜처럼 진득하고 단맛이 입안을 감싼다. “기본 맥주 외에 계절마다 어울리는 맥주를 단발적으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그가 양조장에서 막 뽑아온 비스킷브라운 1잔을 자신 있게 건넨다. 가을에 새로 선보일 흑맥주다. 질소가 만든 갈색 그러데이션이 유리잔을 타고 올라오더니 서서히 사그라진다. 목구멍을 간지럽히듯 부드럽게 넘어가는 맥주는 미식 여행의 기분 좋은 서막을 알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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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루토 블론드 에일 보틀 5,000원, 토요일 10am~5pm, 010 2288 1331,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탕정로 540-26, brewery304.com



세종·천안 방면으로 43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용두교차로에서 예산·아산 방면으로 진입한다. 온양순환로를 따라 장촌교차로를 지나면 외암로에서 당림미술관으로 이어지는 마을길이 나온다. 




2. 당림미술관

이종무 화백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한 작업실. ⓒ 김주원

 1997년 충청남도에 1호 미술관이 문을 연 지 20년. 올해 개관 20주년을 맞은 당림미술관은 우리나라에 초창기 서양미술을 들여온 당림(棠林) 이종무 화백이 귀향해 설립한 곳이다. 회화, 조각, 공예 등 그가 남긴 1,0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은 현재 가족이 직접 운영한다. 미술관까지 오르는 길목은 100미터도 안 되지만, 단정하게 가꾼 야외 정원을 그냥 지나쳐 가는 이는 없다. 정원 깊숙이 들어가 조각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고 연못 앞 벤치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거나 콘크리트 바닥에 그린 어린아이의 순수한 작품 세계에 심취해 시간을 천천히 흘려 보낸다. “당림 선생은 고향 아산에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뜻을 이어받아 현재도 지역 주민, 아이들을 위한 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연중 운영하고 있어요.” 교육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김계완 씨가 미술관을 안내하며 이야기한다. 이곳의 운영 방식은 여타 미술관과는 조금 다르다. 입장권을 판매하는 티켓 부스는 찾기 힘들고 2층 가정집처럼 생긴 전시관의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당황하기 쉽다. “전시 관람은 도슨트 투어로만 진행합니다. 한 명 한 명 직접 문을 열어주고 안내하고 있어요.” 김계완 씨가 말을 잇는다. 텅 빈 전시관에 들어서자 마치 은밀하게 초대받은 듯한 기분이다. 당림미술관은 1년에 6~7회 기획 전시를 여는데, 그중 1회 정도는 이종무 화백 작품으로만 꾸민다. 작년에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추모 회고전을 마련했다.


전시관으로 올라가는 길, 아이들의 그림이 관람객을 반긴다. ⓒ 김주원

 전시관에서 텍스타일 아트를 주제로 한 신진 작가의 전시가 한창이다. 여기서 비밀을 하나 털어놓자면, 2층에는 공개되지 않은 방이 숨어 있다. 바로 이종무 화백이 작업하던 화실. 방금 전까지 그림을 그리다 잠시 자리를 비운 것처럼 붓과 담배 파이프, 안경, 오래된 플립폰이 테이블 위에 흩어져 있다. 그리고 당대 작가에게 선물 받은 진귀한 작품, 조상의 흑백사진과 초상화, 빛바랜 화집 등이 좁은 방을 빼곡히 채운다. “흐트러짐 없이 매일 먼지만 털어내는 정도로 조심히 관리해요.” 김계완 씨가 말한다. 화실은 훼손되는 것을 우려해 요청하는 일부 관람객에게만 보여주거나 이종무 화백 특별전이 열릴 때만 개방한다. 예술가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은 미술관 곳곳을 구경하고 싶다면 도슨트와 함께 정원부터 느긋하게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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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입장료 4,000원, 10am~6pm(주말 5pm까지), 월요일 휴무, 041 543 6969,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로 1182번길 34-19, dangnim.co.kr





온양순환로에서 홍성·예산 방향으로 진입하면 온천대로, 아산만로를 차례로 지나 70번 지방도와 만난다. 아디스브라운에서 면천로로 다시 빠져나와 성상사거리에서 아산·합덕 방면으로 20분 정도 가면 태신목장이 있다. 





3. 아디스브라운 & 아그로랜드 태신목장

 

넓은 실내에 프라이빗 룸을 갖춘 아디스브라운 카페 전경. ⓒ 김주원

“당진에서 바다보다 산을 찾는 손님이 꽤 많아요.” 아디스브라운 카페를 운영하는 이훈영 대표가 의아한 듯 말한다. 아디스브라운은 대중교통으로는 찾아오기 힘든 외딴곳에 위치하지만, 늦은 밤 실내에는 사람들이 꽤 들어차 있다. 10년 동안 커피를 연구해온 이훈영 대표는 지난해 고향에 오랜 시간 꿈꿔온 로스터리 카페를 열었다. 그는 창밖 풍광이 커피 맛을 대신하는 바닷가보다 한적한 내륙이 더 좋아 이 장소를 택했다고 한다. 

당진은 바다를 면한 북부 해안과 삽교천 유역의 평야가 펼쳐진 동부 내륙이 대조적 풍광을 드러낸다. 1970년대 섬과 육지를 잇는 방조제를 건설하면서 그 위를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가 각광받았지만, 단조로운 해안로 대신 구불구불한 내륙 도로를 택하는 자동차 여행객은 꾸준하다.


이훈영 대표는 손님의 커피 취향에 맞춰 원두를 추천하고 정성껏 커피를 내려준다. ⓒ 김주원

 이훈영 대표의 커피 열정은 남다르다. 2년 동안 에티오피아의 커피 농장에서 원두 감별사로 일한 경험을 살려 자신만의 로스팅 기술을 선보인다. 아디스브라운 한쪽 로스팅 룸에서는 참기름을 짜내는 듯한 고소한 향이 연기와 함께 모락모락 피어난다. 이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아카시아꽃 향이 나더니 푸른색 커피콩이 잘 익은 갈색으로 변해 우두두 쏟아져 내린다. “저만의 커피를 통해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이훈영 대표가 로스팅 기계 앞에서 당당히 말한다. 이곳에선 핸드 드립 커피를 주문하면 바리스타가 테이블로 직접 찾아와 커피를 내려준다. 손님과 대면하면서 커피 취향과 기호, 맛에 관한 설명을 덧붙이기 위해서다. 아디스브라운이 내는 ‘아날로그식 커피’는 나이 지긋한 노년의 얼굴에도 미소를 머금게 만드는 소통의 맛을 더한 게 분명하다.








아그로랜드 태신목장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 김주원
트랙터를 개조한 목장 관람 열차. ⓒ 김주원

 아디스브라운에서 산길을 따라 예산 방향으로 넘어가면 목가적 풍경이 펼쳐지는 아그로랜드 태신목장으로 여정을 이어갈 수 있다. 목장 입구는 당진에 걸쳐 있지만, 약 99만 제곱미터의 부지 대부분이 예산에 있어 두 지역이 모두 명소로 꼽는다. 국내 최대 규모의 자연 목장인 태신목장은 1960년대 후반 우리나라 낙농업 태동기에 설립해 오랜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미로처럼 끝없이 이어진 방목 초지에는 말과 양, 소가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금방이라도 울타리를 넘을 듯 동물이 사람과 교감한다. 드넓은 초목 전체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트랙터 열차에 올라타보자. 구불구불한 흙길 위를 덜컹거리며 느릿하게 움직이는 동안 평화로운 목장이 파노라마로 스친다. 단, 열차 위라도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라마의 침은 조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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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디스브라운 핸드 드립 커피 6,000원부터, 041 355 3400, 

     충청남도 당진시 아미로 643, blog.naver.com/addisbrown

▣ 태신목장 입장료 1만 원, 10am~6pm, 041 356 3154,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면천로 1092-135, agroland.co.kr





면천삼거리에서 우회전한 뒤, 당진영덕고속도로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갈아타고 달리다 해미IC에서 서산·해미 방면으로 빠져나오자. 잠양교차로에서 남문2로, 일락골길에 접어들어 산길을 따라가면 제로플레이스 표지판이 보인다.





글. 유미정           사진. 김주원






77번 국도 자동차 여행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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