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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Nov 27. 2017

문경수 탐험가와 떠난 화천 여행
'탐험은 언제나'



Neverending Exploration

탐험은 언제나

원대한 모험을 꿈꾸지 않아도 언제든 탐험을 떠날 수 있다. 문경수 과학 탐험가와 함께 강원도 화천의 산과 강, 호수를 넘나들며 발견한 탐험의 소소한 매력.







박물관은 살아 있다

최근 JTBC의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서 과학 탐험가로 출연한 문경수 대장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티셔츠를 입고 배낭을 어깨에 걸친 그의 모습은 당초 상상하던 탐험가의 모습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배낭 속에 쌍안경이나 GPS, 서바이벌 키트 같은 도구가 담겨 있는지 물어보자 그가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탐험가라고 해서 꼭 어딘가를 정복하고, 고난을 극복하는 사람만 떠올릴 필요는 없어요. 게다가 요즘은 스마트폰 앱으로 필요한 정보를 간편하게 얻을 수 있는 시대인걸요.”


그와 함께 오늘 향한 곳은 강원도 화천. “일단 박물관부터 가보는 건 어떨까요?” 화천 붕어섬 입구에서 안내도를 살피던 중 문경수 대장이 예정에 없던 화천박물관을 가리킨다. 지역마다 박물관이 하나쯤 있게 마련이지만, 강원도 벽지의 박물관에 흥미를 갖기란 쉽지 않다. 화천박물관 안내 데스크에 놓인 오늘 날짜의 방명록에 단 1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사실도 이를 입증한다. 그럼에도 문경수 대장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친다. 



탐험을 시작할 때는 가장 먼저 적합한 안내자를 찾아야 해요. 그런 점에서 박물관은 지역을 제대로 알려주는 최고의 가이드인 셈이죠.



고려 시대의 사찰 양식을 짐작하게 하는 계성리 석등. ⓒ 이창주

먼저 2층 전시관 입구에 세워둔 석등이 눈길을 끈다. “화천에서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계성리 석등입니다.” 소박한 6각 형태의 석등을 가리키며 화천박물관의 교육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류민순 씨가 설명한다. 이는 남한과 북한에 각각 2개씩 남아 있는 고려 시대 6각 석등의 복제품. 계성리 석등 덕분에 화천에도 금강산 정양사와 동일한 형태의 사찰이 존재했음을 유추할 수 있었다. “사실 화천 주민 중 계성리 석등의 존재를 모르는 이가 태반이에요.” 류민순 씨는 석등의 진본이 군부대 사격장 내에 남아 있다고 귀띔해준다. 계성리 석등을 보기 위해선 군청에 미리 연락해 군부대의 허가를 받은 후, 1시간 남짓 숲길을 헤치고 걸어야 한다. 석등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모험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사격 훈련 기간인 요즘은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한다고.


화천은 오늘날 인구 2만 명이 조금 넘는 강원도 북단의 한적한 산촌이다. 그러나 선사시대에만 해도 전성기를 구가한 듯하다. 박물관 인근의 거례리를 비롯해 원천리, 용암리, 위라리 등 북한강변을 따라 선사시대 마을 터가 잇따라 발견됐다. 그 덕분에 빗살무늬토기부터 원삼국시대의 장신구까지 각종 유물이 화천박물관의 컬렉션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전시관 한복판에 있는 나뭇잎 토기의 잔해도 그중 하나다. 물레가 없던 시절이라 바닥에 떡잎을 깔아 토기를 빚었고 그 흔적이 자연스럽게 남았다고. 도토리나무나 참나무 문양을 관찰하며 당시 화천의 계절과 생태를 짐작해볼 수 있다. “이런 점이 바로 탐험의 매력이죠. 의외의 발견 속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니까요.” 문경수 대장이 나뭇잎 토기의 선명한 흔적을 가리키며 말한다.


오랜 세월 물길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곡운구곡의 반석. ⓒ 이창주

 상설 전시관의 조선 시대 섹션으로 넘어가자 김수증이 그린 ‘곡운구곡도(谷雲九曲圖)’가 시선을 붙든다. 김수증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의 침략에 완강하게 맞선 김상헌의 손자다. 그는 화천에 지은 농수정사에 은거하며 주자(朱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 곡운구곡을 조성했다. 사내천을 따라 구비 도는 9곳의 절경을 화폭에 담고 시비를 남겼다. ‘곡운구곡도’를 감상하던 중 익숙한 장면과 마주친다. 화천 읍내로 진입하기 전, 잠시 차를 세우고 둘러보던 너른 바위로 이뤄진 계곡이 바로 구운구곡의 3곡과 4곡 사이였던 것이다. 이어 한국전쟁 당시의 흑백사진을 지나 분단 이후 북한으로부터 무수히 살포된 ‘삐라’를 살펴보며 화천이 거쳐온 파란만장한 시간을 되짚어본다. 






화산이 되지 못한 바위에 올라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비래바위. ⓒ 이창주

“거대한 암봉이 솟아 있는 곳에는 반드시 지질학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겁니다.” 문경수 대장이 박물관 복도에 걸려 있는 화천 풍광을 담은 액자 중 비래바위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한다. 당초 박물관 관람을 마친 뒤에는 북한강변의 ‘산소 100리길’을 따라 자전거 라이딩에 나설 참이었다. 일정을 바꿔 문경수 대장이 관심을 보인 비래바위로 향하기로 한다. 호기심이야말로 탐험의 원천이니까.


차를 타고 화천읍 북서쪽으로 구운천을 따라가며 겹겹의 산봉우리를 지나자 장대한 비래바위의 모습이 드러난다. 높이 100미터, 폭 500미터에 이르는 암봉이 병풍처럼 산 정상을 두르고 있는 이곳은 국가지질공원에 속한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이나 지질공원 안내도를 볼 때마다 아쉬움이 남아요. 좀 더 알기 쉬운 그림과 표현으로 어린아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면 좋을 텐데 말이죠.” 철판에 녹이 낀 안내도에는 ‘석영반암’이라 칭한 비래바위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고 있지만, 단번에 그 과정을 파악하기에 조금 난해하다. 


쉽게 풀어서 말하면 화산이 되지 못한 화산이라 할 수 있어요. 1억 년 전 화강암질 마그마가 분화할 때 지각 틈을 뚫고 나오다가 폭발력이 약해져 그대로 굳어버린 것이죠.


바위 정상의 암벽 구간을 오르는 문경수 대장. ⓒ 이창주

비래바위 암석 정상까지 이어진 탐방로를 따라가본다. “나무뿌리가 땅 위로 드러나 있는 것은 결국 이 땅이 뿌리를 내리기 힘든 지역이라는 것을 암시해요. 돌과 양치식물이 많고, 나무의 높이가 낮은 것이 흡사 제주 곶자왈의 생태와 유사하네요.” 문경수 대장은 <효리네 민박> 촬영 이후 제주를 수차례 오가며 곶자왈을 비롯해 제주 곳곳의 생태를 탐험했다고 한다. “서호주나 몽골, 알래스카 등 이제껏 다녀온 해외가 아니라 국내에서 얼마든지 탐험할 곳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준 시간이었어요.”


해발 650미터의 비래바위 정상 부근에 이르자 가파른 암벽 코스가 등장한다. 로프를 잡은 채 조심스럽게 바위 위로 발을 내딛기를 10여 분. “마침내 화산이 되지 못한 바위 정상에 올랐습니다.” 문경수 대장이 비래바위 정상에서 외친 뒤 아래로 펼쳐진 풍경을 가만히 응시한다. 저 멀리 빽빽한 침엽수 군락과 조금전 지나친 활엽수 지대가 오묘하게 경계를 이루고 있다. “흡사 인간과 자연이 대결하는 것처럼 보이군요. 인간의 필요에 따라 조림한 침엽수 안으로 스스로 뿌리를 내린 숲은 놀라운 생명력을 지니고 있죠.” 그간 산 정상에 오르면 일말의 성취감을 느끼며 탁 트인 전망을 가벼이 만끽하곤 했다. 그러나 탐험에선 끊임없는 관찰을 통해 좀 더 큰 즐거움과 발견을 누리는 듯하다. 





 

탐험가의 트레킹

험준한 산야와 깊은 물길, DMZ가 사방을 두르고 있는 화천은 청정한 자연을 보존하고 있다. ⓒ 이창주

화천은 북쪽으로 DMZ가, 동쪽과 서쪽으로 각각 양구와 철원이 경계를 이룬다. 한국전쟁 이전 북한 영토에 속하던 이곳은 전쟁 때 숱한 격전이 벌어졌고 끝내 남한에 속하게 됐다. 이후 사단급 육군 부대 3개가 들어서면서 오랜 기간 개발 속도가 더뎠다. 평화의 댐을 건설하고 화천댐 너머 북한강 상류까지 도로를 놓은 것도 1990년대 이르러서의 일. 당시에 지은 해산터널을 지나면 ‘아흔아홉구빗길’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데, 실제 100여 차례의 커브 구간이 아찔하게 이어진다. 해발 1,010미터 고지에서 정신없이 커브를 지나 산 아래로 내려오자 사방이 어둑해진 가운데 헤드라이트 너머로 비수구미 마을 이정표가 어스름하게 보인다.


도로가 없던 시절 오로지 통통배를 타고 파로호를건너야 세상과 닿을 수 있었던 비수구미 마을은 육지 속의 섬 같았다. 호수를 따라 비포장도로를 낸 오늘날에도 길 끝 공터에 차를 세우고 20분 남짓 걸어야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과거 100가구가 넘었지만 오늘날 고작 4가구가 남아 있을 뿐이다. “비수구미 마을 일대는 과거 궁궐을 지을 때 필요한 소나무를 기르던 보호림이었어요.” 비수구미 민박을 운영하는 장복동 이장이 말한다. 과거 입산 금지를 알리던 표식인 비수구미 동표 옆으로 이제는 구름다리가 놓였고, 해산터널까지 약 14킬로미터 구간의 생태길이 조성되어 있다. 민가가 없는 숲 사이로 낸 생태길에서는 통신 신호가 잡히지 않는 일이 다반사다. 다소 불편하지만 청정하게 보존된 환경 덕분에 비수구미 생태길은 백패커 사이에서 오지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코스로 입소문 나기도 했다.



왼쪽부터 비수구미 마을의 생태길을 걷는 문경수 대장. 비수구미 마을에서 채취한 여섯 가지 나물로 차려낸 산채 정식. ⓒ 이창주


한밤중에 도착한 비수구미 민박에서 하룻밤 머문 뒤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산채 정식을 주문해본다. 곤드레, 취나물, 곰취, 고사리, 풍년나물, 모둠나물 등 인근 산야에서 채취한 향긋한 나물을 직접 담근 장과 비벼 먹는 맛이 일품이다. “인체가 탄소 화합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사실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은 모두 탄소 화합물로 이뤄져 있어요. 그 덕분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문경수 대장의 설명을 들은 후 산채비빔밥을 1그릇 비우니 비수구미의 순수한 자연과 한층 유기적으로 연결된 기분마저 든다.


이른 아침 비수구미 생태길의 풍광은 다채롭다. 파로호의 지류에서 형성된 물안개가 아스라이 산야를 감싸고, 계곡 양쪽을 따라 우거진 활엽수의 단풍이 완연하게 맺혀 있다. 계곡의 물소리와 새와 곤충의 울음소리가 규칙적으로 교차한다. 시야를 방해하는 인공 조형물이라고는 길 초입의 이정표와 안내판이 전부다. “비수구미 생태길은 마음을 한결 놓이게 하네요. 어릴 적 도시 교외에서 흔하게 보던 원시림이 그대로 우거져 있으니까요.” 문경수 대장이 생태길을 경쾌하게 오르며 말한다. 그의 발걸음은 거침없어 보인다. 길 한복판에 깊게 파인 물웅덩이를 지나갈 때도, 미끌미끌한 이끼가 낀 바위로 가득한 계곡을 건널 때도 한 치의 망설임이 없다. “그간 여러 지형을 걸으며 지나갈 수 있는 길을 체득한 덕분이죠.”



오랜 기간 뱃길로만 접근이 가능해 오지 마을로 불리는 비수구미 마을. ⓒ 이창주

 순환 코스로 이어진 둘레길과 달리 비수구미 생태길은 단선이다. 해산터널 방면에서 내려오거나 비수구미 마을에서 올라가거나 혹은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 애초 문경수 대장은 길 전체를 완주하는 일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 대신 호수와 산이 사방을 가로막은 마을을 둘러싼 청정한 자연을 관찰하고, 영감을 얻고, 지난 탐험을 반추하는 일에 집중한다. “트레킹은 숲의 품으로 들어가는 행위예요. 걷는 일 자체에만 매달린다면 자연의 신비로운 순간을 포착하기 힘들죠. 미국의 천문학자 쳇 레이모(Chet Raymo)는 37년간 매일 자신의 집과 직장인 학교 사이에 난 평범한 숲길을 걸었어요. 매번 달라지는 길의 모습을 관찰한 후 자신의 생각을 담아 <1마일 속의 우주>라는 책을 완성하기도 했죠.”




글. 고현          사진. 이창주





탐험은 언제나 Part 2. 수달 연구소와 천문대

INTERVIEW 문경수 탐험가에게 묻다

화천 여행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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