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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Dec 18. 2017

캐나다 프레리의 한복판에서


아무것도 없는 땅 위에 남은 카우보이의 흔적. 캐나다 서스캐처원의 대지와 하늘 사이에서 100년 전 서부의 시간을 되새긴다.





In the middle of Prairie

캐나다 프레리의 한복판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땅


“캐나다는 엄청나게 큰 나라야. 이 길이 캐나다를 관통하는 트랜스 캐나다 하이웨이인데, 프레리(prairie)를 지날 때 차에 탄 사람들은 이렇게 되지.” 말을 끝내자마자 샤를 로드(Charles Rod)가 부동자세를 취하더니 무표정한 얼굴에 두 눈을 반쯤 뜨고 정면을 응시한다. 가만히 수초간. 그리고 눈을 몇 번 깜빡인다. 마치 초광속 워프를 앞둔 스타트랙호의 대원처럼 무아지경의 현상을 통과하는 듯하다.


총길이 7,821킬로미터의 트랜스 캐나다 하이웨이를 달리는 차창 밖으로는 저 끝 지평선까지 평원이 이어진다. 정면으로도, 사이드미러를 통해서도 마찬가지다. 이 지구는 평평하고 지평선 너머로 가면 아래로 떨어진다는 낭설을 잠시 믿어도 될 만큼 기이하다. 여름을 거쳐 빛 바랜 황갈색의 대지는 바라보면 볼수록 초현실적이다. 문득 오늘 아침 주도 리자이나(Regina)의 호텔 방 욕실 벽에 걸려 있던 액자 속 문장을 떠올린다. “만약 서스캐처원(Saskatchewan)에서 반려견을 잃어버렸다면, 그 개가 뛰며 달아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다음 날에도 말입니다.”

서스캐처원주의 프레리를 관통하는 도로는 종착점을 가늠하기 어렵다. ⓒ 허태우

 5명의 여행자는 몇 시간 전 닷지(Dodge) 승합차에 몸을 싣고 서스캐처원의 프레리를 향해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 그룹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여행 저널리스트 3명, 서스캐처원 관광청의 조디 홀리데이(Jody Holiday) 그리고 캐나다의 100분의 1 면적의 한국에서 온 에디터 1명. 실상 캐나다인조차도 워낙 넓은 조국을 구석구석 여행하기란 쉽지 않다. 일행도 서스캐처원의 프레리 지역을 여행할 기회는 흔치 않다는 데 동의한다.


트랜스 캐나다 하이웨이를 벗어나 1시간을 달린 차량은 잠시 외딴 마을 그래블버그(Gravelbourg)에 멈춘다. 이곳은 인구가 1,000여 명에 불과해 한적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나름대로 역사적 의미를 간직한 곳이다. 올해 딱 111세의 나이를 맞이했는데, 1990년대까지 가톨릭의 주교가 관할하던 성모마리아 승천교회(Our Lady of Assumption Co-Cathedral)는 캐나다 국가 역사 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다. 또 서스캐처원주 유일의 프랑사스쿠아(Fransaskois,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서스캐처원주 거주민)를 위한 단과대학이 자리한다. 여기서 잠깐 캐나다 내 프랑코포니(Francopho-nie)의 현실을 살펴보자. 캐나다 내 프랑스어 사용자는 약 21퍼센트. 주로 퀘벡주에서나 일상어로 사용하는 것 같지만 그들은 전역에 숨바꼭질하듯 걸쳐 있다. 즉 그래블버그처럼 집단 이주민의 후손이 모여 사는 지역은 자신의 언어를 오랫동안 지켜온 것이다. 프랑스계뿐 아니라 프랑스와 캐나다 원주민의 혼혈인 메티스(Métis)족도 여기에 포함된다. 영어냐 프랑스어냐. 영국과 프랑스의 각축으로 발생한 혼란은 결과적으로 오늘날 캐나다 특유의 다양성으로 이어졌다. 존중할 것은 존중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며 쌓아온 다양성의 역사. 그렇게 이 나라는 벌써 건국 150주년을 맞았다. 그 와중에도 프랑스어를 배우러 이 한가한 소도시까지 오는 상대적 소수의 노력에는 경의를 표해야 한다. 드문드문 차량이 지나가는 그래블버그 메인 도로변에 서 있는 프랑스어 간판을 읽으며, 휴게소 옆에서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운다. 


공원 안에 집단으로 거주하는 검은꼬리프레리독. ⓒ 허태우

이 일대를 개척한 19세기 말 이주민의 옛 거주지와 그 흔적들. 그래스랜즈 국립공원에 놓인 레드 체어(Red Chair). 캐나다 전역의 국립공원에는 놀라운 풍경을 자랑하는 장소에 쉬어갈 수 있는 빨간 의자를 놓아두었다. ⓒ 허태우




여기는 외로운 보호구역


태양이 한껏 고도를 높이고 그림자가 짤막한 자취만 남길 무렵, 캐나다에서 가장 밤하늘이 어두운 것으로 유명한 지역에 들어선다. 오후 1시 무렵의 맑디맑은 하늘에는 양 떼를 닮은 구름이 행진하고 있다. 그래스랜즈 국립공원(Grasslands National Park)은 얼핏 보면 초원 그 자체다. 잔잔한 대양의 숨죽인 물결처럼 대지가 낮고 부드럽게 오르내리는 초원. 물론 그 안에는 생명과 질서가 엄연히 존재한다.


“팔을 앞으로 내밀어보세요. 저 멀리 움직이는 검은 점 같은 바이슨이 보이죠? 그쪽으로 엄지손가락을 올려보세요. 만약 엄지손가락보다 바이슨이 크면 위험한 거리라는 뜻이에요.” 국립공원의 가이드 제인 코녹(Jane Cornoc)이 알려준다. 앞으로 내민 손 뒤로는 형체를 뚜렷하게 파악하기 힘들지만, 검은 바이슨이 느릿느릿 움직인다. 한 통계에 따르면 지금껏 인류가 살해한 바이슨은 무려 5,000여 만 마리. 별 수 없이 멸종 위기에 처했지만, 오늘날 보호와 사육에 성공해 저렇게 초원을 여유롭게 거닐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가이드 제인 코녹이 공원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그래스랜즈 국립공원을 구불구불 가로지르는 프렌치먼강(Frenchman River). ⓒ 허태우


그래스랜즈 국립공원은 평범한 자연의 위대함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그저 풀투성이 땅이 얼마나 대단할까 싶어도, 실제로 그곳을 보고 또 걷노라면 얘기가 다르다. 가없는 초원 위에서는 마음이 평온하게 가라앉는다. 아무리 앞을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다. 보는 행위가 모든 것을 만족시켜줄 뿐이다. 내가 서 있는 곳과 지평선 끝 사이 어디쯤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풀과 잡초가 자라고 바이슨, 세이지 그라우스(Sage Grouse), 스위프트 여우 등 희귀 동물이 서식한다. 남쪽으로 미국과 맞닿은 국경선에서 국립공원의 영역 표시는 끝나지만, 그들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경계에는 무관심할 것이다. 만약 누가 칼로 자르듯 그 땅을 가르더라도, 귀여운 검은꼬리프레리독(black-tailed prairie dog)처럼 땅굴을 파서 검문소 따위는 무시하고 이 나라 저 나라를 쉽게 넘나들 수도 있겠다. 이들을 위해서라면 대지는 그대로 두어야 마땅한 것일지도 모르리라.


사이프레스 힐 주간 공원의 조망 포인트에서는 끝없이 펼쳐진 프레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 허태우

사이프레스 힐(Cypress Hill)에서 맞이한 아침은 고요하다. 수목 사이로 날카로운 햇살이 관통하고, 이제 막 색을 바꾸기 시작한 나뭇잎이 바람에 바스락거린다. 성수기를 지난 리조트 주변은 한가하다. 호숫가 놀이터에는 놀이 기구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보트 대여소는 문을 닫았다. 청아한 빛의 하늘과 호수, 호젓하게 자리 잡은 주택, 투명한 공기를 머금은 숲길. 주머니에 한 움큼 담아 가고 싶은 장소다.


지도를 찾아보면, 사이프레스 힐이라는 지명은 여러 가지로 변주된다. 사이프레스호(Cypress Lake), 사이프레스 힐 주간 공원(Cypress Hill Interprovincial Park), 사이프레스 힐 와이너리 등. 이 지역은 말 그대로 프레리 한복판에 슬쩍 솟아오른 넓은 구릉인데, 서스캐처원주와 앨버타주에 걸쳐 있다. 이 구릉지대의 존재는 캐나다 사람에게도 의외인 것 같다. 일행 중 1명인 팀 존슨(Tim Johnson)은 사이프레스 힐을 오르는 도로에서 이렇게 말한다. “서스캐처원에 스위치백(switchback)이라니? 놀랍기 짝이 없네!”


이름과 달리 사이프레스 힐에는 사이프레스나무 대신 뱅크스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 물길이 관통하기 때문에 숲이 우거져 있다. 1만6,000여 년 전 빙하기에는 이곳이 외로운 섬 같은 곳이었다고. 그 외로움의 깊이는 조망 포인트에 오르자마자 깨달을 수 있다. 사이프레스 힐의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해봐야 해발 1,392미터지만, 서스캐처원주의 최고봉이다.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300킬로미터 떨어진 로키산맥을 만나기까지 평지가 이어진다. 동쪽으로는 허무맹랑하다 싶을 정도로 평평하다. 무려 4,000킬로미터 넘게 달려 대서양 가까이 톤갓 산맥(Torngat Mountains)에 도착해야 사이프레스 힐보다 높은 땅이 나온다. 물론 중간중간 산과 언덕이 등장하지만 해발 1,000미터를 넘지 않는다. 하여 해발 1,251미터의 조망 포인트에 서 있으면 발아래로 망망한 평지가 끝없이 펼쳐진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글. 허태우




캐나다 프레리의 한복판에서 - Part 2

캐나다 프레리 여행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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