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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Dec 19. 2017

결코 끝나지 않은 도시, 파리


Never Ending Paris

결코 끝나지 않은 도시, 파리


센강을 따라 흐르는 예술과 낭만, 신구가 뒤섞여 시대를 초월하는 풍경. 파리를 상징하는 불변의 장면 속에는 여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파리 리옹역(Gare de Lyon)에서 빠져나오자, 가을 낙엽이 뒹구는 도로 위로 바쁜 걸음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고전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클래식 카와 고급 세단이 앞뒤를 다투는 차량의 행렬은 진전의 기미가 없어 보인다. 그 틈을 요리조리 피해 순식간에 사라지는 파리지앵의 자전거 운전 솜씨는 거의 묘기 수준에 가깝다. 파리 도심은 일정한 음표처럼 질서 정연하다. 높은 곳에 올라가 도시를 내려다보면 종단으로 쭉 뻗은 대로의 양 갈래로 골목과 공원이 변주처럼 어우러진다.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는 조르주 외젠 오스만(G. E. Haussmann) 남작의 주도하에 근대도시 건축 계획에 나섰다. 단계별로 진행한 도시 건설은 노트르담 성당처럼 역사적 건물의 대대적 보수부터 퐁피두 센터 같은 현대 도시 기능을 위한 상업 시설을 새로 세우는 것으로 이어졌다. 공공 건축 재생 프로젝트로 지금의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유리 피라미드 등이 재탄생했고, 파리 도시 미학은 방점을 찍었다. 당시 오스만의 도시 개혁은 서구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로 획기적이었다. 물론 오늘날까지 이 거리가 전 세계인이 누비는 관광지가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다음 세기 파리의 스카이라인은 아주 많이 바뀌어 있을 거예요.” 퐁피두 센터 루프톱 레스토랑 조르주(Georges)에 자리를 잡고 앉은 가이드 베로니크(Véronique)가 바깥 풍경을 내다보며 말한다. 저만치 장막으로 뒤덮인 높은 건물이 속속 눈에 들어온다. 여행자가 감지 못한 파리의 새로움은 과연 무엇일까? 지난날 파리의 도심을 유심히 내려다봤을 오스만 남작을 떠올리며 장막 속 감춰진 새로운 파리를 다시 거닌다.




The shop

취향이 예술이 되는 골목

색다른 라이프스토어를 이끄는 크리스토프 브누아스트 뤼시. 매장에 서 있는 BMW 100RS 커스텀 바이크. ©유미정 


파리 17구 몽소 공원(Parc Monceau)을 지나 한적한 골목에 접어들자 1960~1970년대 전 세계 스트리트 라이더가 탐내던 혼다 CB750FOUR 모델이 눈에 들어온다. 새것처럼 광이 나는 빈티지 오토바이는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브누아스트 뤼시(Christophe Benoist-Lucy)가 최근 커스터마이징한 작품이다. 동굴처럼 어두컴컴한 타원형 입구로 들어가자 클래식 혼다는 금세 머릿속에 잊힐 만큼 어마어마한 놀이터가 펼쳐진다. 그와 세리즈 브누아스트 뤼시 (Cérise Benoist-Lucy) 부부가 운영하는 라 파브리크 제네랄(La Fabrique Générale)은 둘의 취향을 온전히 펼쳐 놓은 라이프스타일 숍. 8개월 전, 건축가 출신 크리스토프 브누아스트 뤼시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던 폐공장을 직접 개조해 이 골목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간으로 뒤바꿔놓았다. 선박을 뒤집어놓은 듯한 천장을 유심히 훑고 나니 골동품을 정박해놓은 부둣가가 불현듯 떠오른다. 컬렉터 기질을 타고난 크리스토프 브누아스트 뤼시는 유독 빈티지 오브제에 집착한다. 매장 곳곳에 놓은 수십 가지 물건 중 그의 재능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단연 커스텀 오토바이다. 한쪽에 가지런히 놓인 트라이엄프(Triumph), 모토구찌(Moto Guzzi), 야마하(Yamaha)는 연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다. “이곳은 오토바이 숍이 아닙니다. 커스텀 오토바이를 완성하고 나면 금요일에 파티를 열고 주말 동안만 구매자를 받아요.” 그가 덤덤하게 말한다. 그날 주인을 찾지 못한 커스텀 오토바이는 매장에 그대로 전시해 두는데, 보통 한 달에서 6개월 사이 팔려나간다고.



세리즈는 지하에서 핸드메이드 모자 만들기 클래스를 진행한다. 초보자도 2시간 정도면 취향에 맞게 모자를 제작할 수 있다. ©Amelie-Laurin

진귀한 볼거리는 오토바이뿐 아니라 지하에 펼쳐진 모자 공방에도 숨어 있다. 세리즈 브누아스트 뤼시는 1965년식 아날로그 기계에서 내뿜는 뜨거운 스팀으로 모자의 틀을 잡는다. “모자와 오토바이, 헬멧과 시계, 와인과 가방. 다양함이 뒤섞이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녀가 펠트 모자를 손으로 꾹꾹 누르며 말한다. 매장에는 연관 짓기 어려운 물건이 짝지어 자리한다. 부부는 전 세계를 돌며 오래된 물건을 구분 없이 모으고, 취향이 맞는 사람과 공유한다. 이는 부부가 이곳을 자신의 집이자 놀이터라고 말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보인다. 늦은 오후 라 파브리크 제네랄의 시간은 비범한 듯 평범하게 흘러 간다. 누군가는 오토바이를 탐닉하고, 지하 공방에서 모자를 만들고, 긴 테이블에 모여 골동품을 옆에 끼고 빈티지 와인을 홀짝인다. “저에게 최고의 오토바이는 바로 다음 작품입니다. 지금보다 다음이 더욱 기대되거든요.” 크리스토프 브누아스트 뤼시가 마침내 주인을 찾은 혼다를 떠나 보내며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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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파브리크 제네랄 수~토요일 11am~7pm, 2bis Rue Léon Cosnard, lafabriquegenerale.com




The tour

클래식은 영원하다

영화 촬영지 투어 가이드를 맡은 마리가 샤넬이 즐겨 찾던 튈르리 정원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Amelie-Laurin

명품 부티크가 둘러싸고 있는 방돔 광장(Place Véndome)에서 코코 샤넬(Coco Chanel)을 흉내낸 듯 보이는 키 작은 여자가 두리번거린다.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트위드 재킷을 걸친 그녀 곁으로 서서히 사람이 모이자, 여자는 비로소 인사를 건넨다. “안타깝게도 저는 코코가 아닙니다.” 영화 <코코 샤넬>의 촬영 명소를 소개하는 마리(Marie)는 세트 인 파리스(Set in Paris) 소속 가이드다. 파리에서는 하루 10편 이상의 영상 촬영이 이루어진다. 덕분에 세트 인 파리스같이 영화 속 명소만 쫓는 테마 투어 여행사가 꾸준히 호황을 누리고 있다. 샤넬은 말년에 방돔 광장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리츠 호텔(The Ritz) 302호에 머물렀다. 그녀는 창문 너머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방돔 광장을 바라보며 넘버5(No.5) 향수를 떠올렸고, 광장에 내리쬐는 태양광의 움직임과 촘촘히 둘러싼 주얼리 부티크에서 영감을 얻어 보석 박힌 시계를 디자인했다. “샤넬은 자신의 일을 사랑했고, 큰 업적을 남겼지만 결코 좋은 사람은 아니었어요.” 마리가 사람들을 이끌며 이야기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일약 스타가 된 그녀는 당대 여성에게 의복의 해방을 안겨주었다. 답답한 코르셋과 사치스러운 드레스를 벗어 던진 여성들은 전란 속에서도 샤넬의 옷을 사기 위해 혈안이 됐다. 훗날 밝혀진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첩보 활동은 사후 그녀의 업적에 오점을 남겼지만, 패션 브랜드로서 샤넬의 독보적인 스타일은 전 세계에 각인됐다. 방돔 광장에서 빠져나와 구석구석 샤넬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녀의 절친한 친구이던 소설가 장 콕토(Jean Cocteau), 콜레트(Colette)와 자주 찾은 레스토랑, 빈티지 샤넬을 모아둔 박물관, 샤넬이 리츠 호텔에 머물기 전 살았던 아주 작은 아파트와 작업실 등. 캉봉(Cambon) 거리에 위치한 샤넬 1호 부티크의 쇼윈도 앞은 거리를 지나는 여자들의 발걸음을 여지 없이 붙든다. “샤넬은 아름답지 않은 무릎은 절대 드러내지 말라고 강조했어요. 어떤 상황에서도요.” 마리가 검은색 세단에서 내린 노부인에게서 시선을 돌리더니 속삭인다. 얌전히 무릎을 덮은 스커트에 샤넬 카디건을 걸친 노부인은 정장 차림을 한 신사의 팔짱을 끼고 매장 안으로 사라진다. 아주 잠시, 리츠 호텔에서 잠든 샤넬이 옷매무새를 다듬고 되돌아온 것 같은 모습이 머릿 속을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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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코샤넬 워킹 투어 65유로, setinparis.com/cocochanels-paris/




The Atelier

패션 혁명가의 발자취

뮤지엄의 하이라이트로 꼽는 4층 스튜디오. ©MUSÉE YVES SAINT LAURENT PARIS

지적이고 우아한 여성을 표현하는 데에 전념했던 젊은 날의 생 로랑. ©유미정   생 로랑이 남긴 스케치와 소장했던 주얼리 컬렉션. ©MUSÉE YVES SAINT LAURENT PARIS

 

역사에 이름을 올린 수많은 혁명가로 패션 디자이너를 거론하는 이는 많지 않겠지만, 파리에선 예외인 듯하다. 패션을 예술로 끌어올린 코코 샤넬을 비롯해 프랑스의 급진적 패션을 이끈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의 이름 앞에 종종 선구자 혹은 혁명가라는 수식을 붙이곤 하니까. 지난 10월, 16구에 문을 연 이브 생 로랑 박물관(Musée Yves Saint Laurent)은 20세기 파리 쿠튀르를 뒤흔든 혁명가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한다. 피에르 베르제-이브 생 로랑 재단(Foundation Pierre Bergé-Yves Saint Laurent)을 설립한 1962년부터 2002년까지 40년에 걸친 생 로랑의 작품을 보관하던 쿠튀르 하우스(Couture House)는 올해 박물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4층 규모의 건물에는 5,000여 벌의 오트 쿠튀르 의상과 1만5,000여 개의 액세서리, 수천 가지가 넘는 스케치, 수집품 등이 주제별로 펼쳐져 있다. “생 로랑은 자신의 눈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가이드 투어를 맡은 시몽(Simon)이 층별로 안내하며 이야기한다. 문학과 예술에서 주로 영감을 얻은 생 로랑은 핏 몬드리안(Piet Mondriaan)의 회화를 옮겨놓은 저지 드레스,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모티프로 한 재킷 등 예술을 덧댄 초현실적 의상을 완성했다. 샤넬이 시종일관 상류층을 겨냥한 옷을 만들었다면, 그는 20세기 후반 들어 다른 길을 택하기도 한다. 길거리 패션에 눈을 돌려 과감한 기성복을 선보인 것이다. 전형적인 여성 이브닝드레스의 판도를 바꾼 르 스모킹(Le Smocking, 턱시도)은 현대 도시 여성의 이미지를 모티프로 한 대표작으로, 훗날 샤넬의 블랙 리틀 드레스에 비견되는 그의 상징적 의상이 됐다. 생 로랑이 머물던 스튜디오는 박물관 맨 위층에 자리한다. 테이블 너머로 색색의 원단과 부자재 샘플,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가 그린 초상화, 스케치 노트 등이 멋스럽게 놓여 있다. 세상에 없던 패션을 골몰하던 젊은 혁명가는 사라졌지만, 그의 온기가 담긴 물건은 언제나 제자리를 지킨다. 꺼지지 않은 열정을 남기고 간 그의 작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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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브 생 로랑 뮤지엄 입장료 10유로, 11am~6pm, 금요일 9pm까지, 월요일 휴무, 5 Avenue Marceau, museeyslparis.com/en/




The Museum

고전 건축의 변주

조폐국 박물관에서는 동전의 원석과 다양한 광물을 전시한다. 폐기한 동전을 건축 자재로 활용한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유미정

센강을 등지고 벽에 기대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노인 옆으로 캔버스 그림이 가득 쌓여 있다. 그는 강변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초록색 좌판 끄트머리에 자리를 펴고 오늘의 장사를 막 시작하려는 참이다. 2차선 도로 사이 그가 마주선 18세기 건물은 파리 조폐국(Monnaie de Paris). 그는 여행객과 현지인이 오가는 이곳에 그림을 걸어두고 그들의 시선을 끌 모양이다. 건축가 자크 드니 앙투안(Jacques Denis Antoine)은 9년 동안 공을 들여 파리 조폐국을 완성했다. 프랑스의 화폐 주조 역사는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으로 화폐 제조 시설을 들여와 생산한 것은 건물이 완공된 1775년부터인 셈이다. 웅장한 입구를 지나면 중정으로 이어지는 문 사이로 20세기 최고의 여류 조각가로 불리는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의 설치 작품이 언뜻 보인다. 중정 한가운데에 서자, 비로소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이 시야를 감싼다. 실내는 여러 명이 동시에 미로 찾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한 구조다. 3개로 나뉜 건물에는 전시관, 레스토랑, 연회장, 미술관 등을 비롯해 연간 15억 유로에 달하는 동전을 쏟아내는 주조 공장까지 들어서 있다.

조폐국은 파리에서 손꼽는 신고전주의 건축물로, 상징 마크에도 새겨 넣었다. ©유미정

 방문객이 전시실을 돌며 전 세계 희귀 화폐와 시대별 동전의 변천사를 둘러보는 동안, 투명 유리창 너머로 기념 화폐를 조각하느라 여념이 없는 장인을 만나기도 한다. 지난 12세기 동안 파리 조폐국은 프랑스에서 유통되는 모든 동전뿐 아니라 금속 공예의 전통도 함께 이어왔다. 이곳에선 매년 10만 개의 기념 메달과 12만 개의 금화를 꾸준히 제작한다. 최근에는 일반인이 동전 드로잉부터 각인까지 해볼 수 있는 워크숍도 선보인다. 전통 주조 기술을 배우는 체험장이 별도로 마련돼 있을 정도로 전문적인 수업이 이루어진다. 미로 같은 박물관을 빠져나오면 같은 건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현대적 전시 공간이 펼쳐진다. 조폐국은 2007년 주 정부가 지원하는 상업 공간으로 지정됐고, 1년에 3~4회 특별 전시를 선보인다. 데이비드 라샤펠(David LaChapelle), 폴 매카트니(Paul McCarthy), 윌리 로니스(Willy Ronis) 등 거장의 작품도 이곳을 거쳐간 바 있다. 지금은 국립 여성 예술가 미술관(National Museum of Women in the Arts)과 공동 제작한 우먼 하우스(Women House) 전시가 한창 진행 중이다. 사실 조폐국이 여행자 사이에서 인기를 얻게 된 것은 2년 전 합류한 기 사보이(Guy Savoy)의 역할도 크다. 미슐랭 3스타 셰프의 명성을 차치하더라도 현대 작품을 곳곳에 배치한 레스토랑 기 사보이는 조폐국의 또 다른 전시관이나 다름없다. 어두침침한 내부는 개방형 창문을 통해 루브르 박물관과 퐁네프, 센강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일 수 있도록 설계했다. 파리만의 불변의 풍경과 어우러지는 맛이 여행객을 다시금 찾게 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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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조폐국 입장료 15유로(온라인 예매 시), 11am~7pm, 목요일 9pm까지, 월요일 휴무, 11 Quai de Conti, monnaiedeparis.fr/en




유미정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퐁네프 다리를 서성이다 우연히 발견한 빈티지 배지에 지갑을 모두 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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