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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Jan 11. 2018

'세상 모든 것의 풍경'
슬로베니아 로맨틱 여행


All Things in Nature

세상 모든 것의 풍경


유럽의 작은 도시 슬로베니아는 바다와 산, 숲과 물, 땅속까지 파고든 자연 만물이 한데 어우러져 비현실적 풍광을 그려낸다. 태초의 자연은 이곳에서 세상 모든 아름다움에 관한 정의를 다시 내리려는 듯하다.






피란 Piran

가만한 시간


용이 잠든 도시, 지옥을 본뜬 동굴, 영원불멸한 사랑의 종이 울리는 호수. 슬로베니아의 신화는 끝나지 않는 동화처럼 이어진다. 국토 면적이 2만 제곱킬로미터 조금 넘고, 인구는 200만 명에 불과한 소국. 영문 철자에 박힌 러브(S‘LOVE’NIA)를 찾아 국가 전체를 사랑으로 엮고 낭만을 이야기하는 나라. 우리는 이제 막 동화책 첫 장을 펼친 아이처럼 창밖의 그림을 바쁘게 더듬는 중이다.


“슬로베니아는 ‘유럽의 치킨’이라고 불립니다.” 18년 경력의 베테랑 가이드 알레슈(Aleš)는 여행객을 향해 쉴 새 없이 자국의 이야기를 던진다. 국경선이 조각조각 맞붙은 유럽 지도 위에 슬로베니아는 뾰족한 벼슬과 통통한 두 다리가 있는 닭 형상을 띠고 있다. 사방으로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헝가리와 국경을 맞댄 이 작은 나라가 유럽 역사 속에서 자립과 존속을 위해 싸워왔을 시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수도 류블랴나(Ljubljana)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의 항구도시 피란으로 가는 길, 차창 밖은 지루한 서막처럼 밋밋하다. 목가적 그림 속에 듬성듬성 세운 농가, 늘쩡늘쩡한 말이 주인공처럼 빛날 뿐이다.

타르티니에브 광장 앞 항구에서 낚시와 수영을 즐기는 현지 아이들. ©이두용



알프스산맥, 지중해, 파노니아 평원, 카르스트 지대를 모두 아우르는 자연 지형은 슬로베니아가 내세우는 큰 자랑거리다. 알레슈가 살짝 격양된 말투로 슬로베니아를 짧게 경유하는 여행자를 안타까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드리아해를 둘러싼 아름다운 마을 피란을 놓치는 아쉬움같은 거다. 피란은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슬로베니아세 도시에 걸친 이스트라반도의 최서단 지점. 슬로베니아의 해안선은 남서부로 뻗은 46.6킬로미터의 연안이 유일한데, 화려한 카지노와 역사 깊은 호텔, 국제공항이 들어선 고급 휴양지 포르토로지(Portorož)에 비하면 피란의 구시가는 구멍가게에 비할 만큼 규모가 작다. 요트가 정박해 있는 항구 인근에 여행객을 쏟아낸 자동차 행렬이 떠나고, 타르티니에브 광장(Tartinijev Trg)까지 느긋한 걸음을 옮긴다. 해가 낮게 깔린 트리에스테(Trieste)만 주변을 빙 두른 15세기 고딕 양식 건축, 돛을 내린 요트, 유유히 낚시를 즐기는 현지인. 


이런 풍광 속에서 여행자의 시간도 조금은 느리게 흐르는 듯하다. 광장을 둘러싼 식당 야외 테라스에서 사람들은 여유를 만끽하며 느긋한 식사를 즐긴다. 손이 느린 셰프의 음식을 기다리는지, 오후의 볕을 부족함 없이 쬐려는 심산인지 알 수 없지만.


피란에는 오랜 세월 영향을 받은 베네치아공화국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성 조지 대성당(Župnijska cerkev sv. Jurija)을 향하는 언덕길에 다닥다닥 붙은 4층 건물이 골목에 그늘을 드리운다. 타르티니에브 광장부터 자동차 진입은 일절 금한다. 시간이 멈춘 듯한 중세 도시를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서다. 예술적 영감을 주는 골목에서 어느 화가는 붓을 들고, 광장에서 뛰어놀던 아이는 빨래가 축 늘어진 언덕 위 테라스 집을 찾아 들어간다. 그리고 여행객은 피란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올라 저 멀리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를 가늠하며 아드리안해를 지긋이 바라본다. 수백 년 동안 시간은 지금처럼 가만히 흘렀으리라. 발밑으로 붉은 지붕이 얽혀 있고, 바다 위로 목적을 모르는 배 1척이 유유히 지나간다. 해가 저물면서 슬로베니아의 동화 같은 한 장면이 펼쳐지는 순간이다. 





포스토이나 Postojna

지옥의 파라다이스

포스토이나 동굴은 안전사고를 우려해 1회 입장 관람객 수를 450명으로 한정한다. ©이두용
지상에서 지하까지 전기로 운행하는 동굴 열차. ©유미정

 류블랴나와 아드라아해 사이에는 카르스트 지형의 기원이 숨어 있다. 카르스트의 어원이 처음 시작된 슬로베니아 남서쪽 도시 포스토이나는 석회암 지형의 전형적 모습을 띤다. 인류가 지구에 발을 딛기 전 혹은 그보다 훨씬 더 전부터 자연이 빚어놓은 지하 세계는 오늘날 장대한 볼거리로 남아 있다.


슬로베니아에는 약 1만 개가 넘는 석회동굴이 있는데, 단 15개만 일반인에게 공개한다. 그중에서도 1년 내내 개방하는 곳은 단 3곳뿐이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긴(길이 24km) 포스토이나 동굴(Postojnska Jama)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1년 내내 개방하는 곳 중 하나다. 이 동굴의 형성 시기를 정확히 기록한 문헌은 없지만, 가이드 마리오(Mario)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동굴 열차 기관사로 일하던 기억을 더듬으며 동굴의 역사를 짚어간다. “이곳 주민이 동굴을 발견하고, 1818년 일반인에게 개방했어요. 동굴 탐험을 위한 꼬마 열차가 생긴 건 1872년입니다. 동굴 안에 전기 조명을 설치하고, 열차 궤도를 만드는 일부터 쉽지 않은 작업이었죠.” 오늘날 관광객에게 허용하는 구간은 단 5킬로미터. 동굴 열차를 타고 65미터 지하로 내려가면 도보로 돌아다닐 수 있는 약 3킬로미터의 길이 열린다. 약 1시간 30분 동안 주어진 시간에 동굴 전체의 약 5분의 1만 돌아볼 뿐이지만, 사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른 아침부터 동굴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려야 하고, 지하의 차가운 공기를 견디기 위해 두툼한 점퍼도 필요하다. 무릎을 최대한 굽혀 아담한 열차에 오르면 뚝뚝 떨어지는 물을 맞거나, 낮은 천장을 지날 땐 고개를 연달아 숙여야 한다. 


무엇보다 동굴 안에서 어릴 적 상상력을 총동원해야 할지 모른다. 피사의 사탑, 도마뱀, 화이트 초콜릿 무덤, 스파게티석 등. 제멋대로 뻗은 석회암은 인간의 호기심을 끝없이 자극할 테니까.



포스토이나 동굴 전문 가이드 마리오. 포스토이나 동굴로 입장하는 길. 야마(Jama)는 슬로베니아어로 동굴이라는 뜻이다. ©이두용


“처음 동굴을 발견한 주민들은 이곳을 괴물이 사는 집, 아주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마리오는 일행이 종유석을 보고 내뱉는 추측성 얘기들을 잠시 끊으며 말한다. 당시 동굴에 처음 들어온 인간에게 어둠 속에서 어렴풋하게 드러난 울퉁불퉁한 석순과 석주, 종유석은 악마의 형상으로 다가왔으리라. 물론 인간을 위협한 건 괴기한 석회암뿐이 아닐 것이다. 압도적인 자연의 웅장함은 두려움과 공포로 인간의 한계를 실험하기에 충분하다. 지옥이라 여겼던 동굴에 ‘천국으로 향하는 다리’를 만들어놓은 건 인간이 차마 놓지 못한 희망 같은 것일까? 구름다리를 건너자마자 마리오는 다시 지옥 체험을 알리듯 잠시 소등을 알린다.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 동굴 특유의 서늘한 공기만이 주변을 맴도는 순간, 감탄사를 연신 내뱉던 모두 하나가 되어 숨을 죽인다.


동굴 투어의 종점은 종유석이 대리석 기둥과 샹들리에를 이룬 댄싱홀(dancing hall)이다. 1899년 이곳에는 세계 최초 지하 우체국이 들어서기도 했다. 같은 자리에 지금은 기념품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콘서트홀이라 불리는 널찍한 돔에는 1만 명이 동시에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자연 음향 시스템이 작동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특별히 웅장한 오케스트라 공연을 마련한다고. “동굴은 위험한 곳입니다. 반드시 전문 가이드가 동행해야 하죠. 좀 더 스릴 있는 동굴 탐험을 원한다면, 전문 장비를 갖추고 5시간 정도는 돌아다녀야 해요.” 지상으로 올라가는 열차 앞에 서서 마리오가 손을 흔든다. 지하부터 지상까지, 10분이 채 안 되는 거리임에도 전혀 다른 세계가 극명히갈린다. 과연 어느 쪽이 진정한 파라다이스일까?



글. 유미정    사진. 이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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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의 풍경 Part 2. 율리아 알프스 & 블레드 호수

슬로베니아 여행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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