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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Jan 09. 2018

오기사와 떠난 강원도 건축 기행



오기사와 떠난 

강원도 건축 기행


점과 점을 이어 선을 만들고, 선과 선을 엮어 하나의 면을 이루는 과정. 건축가 오기사와 함께 춘천과 홍천, 원주를 돌아보며 건축과 여행의 접점을 찾아본다.



Who is 오기사?

필명 오기사로 잘 알려진 오영욱은 건축 디자인 사무소 오기사디자인의 대표이자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변덕주의자들의 도시> 등을 쓴 여행 작가다. 일러스트레이터, 시간강사, 방송인, 파워 블로거 등 다방면으로 활동 반경을 넓힌 그는 최근 스마트폰으로 짤막한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해외여행 경험이 전무한 청년들과 여행을 떠나는 ‘우연한 배낭여행’ 프로젝트를 매년 진행하고 있으며, 곧 4기 멤버와 함께 프랑스 파리로 향할 예정이다. blog.naver.com/nifilwag





변방의 간이역

근대에 세운 간이역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는 경강역. © 최남용

“여행 동선에 간이역이 있으면 잠시 머물곤 해요. 텅 빈 철로는 묘한 매력이 있거든요. 제가 유독 기차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최근 모형 기차를 구입하러 홀연히 일본으로 기차 여행까지 다녀온 오기사는 이번 강원도 여정을 앞두고 경강역을 떠올렸다고 한다. “근대건축이 태동하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세계 각국은 들썩였어요. 세상에 처음 등장한 철도를 보고선 많은 이들이 새 기술에 대한 기대감과 공포를 동시에 느꼈을 것 같아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텅 빈 철로 위를 거닐던 오기사가 말한다.


경강역은 북한강이 유유히 흐르는 가평과 춘천 경계에 자리한다. 완공 당시 서천역으로 불렸으나 장항선의 서천역과 겹친다는 이유로 경기도와 강원도의 앞 글자를 따 경강역으로 이름을 고쳤고, 2010년 경춘선 복선화 이후에는 폐역으로 남았다. 남쪽에 들어선 새 역사는 굴봉산역이라는 이름을 달았기에 경강역은 완벽하게 변방의 간이역으로 남은 셈이다. 이제 이곳의 단선 철로에는 무궁화호 대신, 커플을 실은 레일바이크가 덜컹덜컹 굴러갈 뿐이다. 쓸모를 잃은 오랜 역사의 분위기는 오기사 같은 ‘기차 덕후’에게 영감을 불어넣기도 한다. “대학생 때 기차 여행을 떠나면 보통 경춘선과 중앙선을 이용하곤 했어요. 두 노선 모두 애써 먼 길을 돌아가는 듯한 느릿느릿한 여정이었지만, 그래서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요.” 경강역 주변을 서성이던 그는 잠시 지나간 여행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역사의 대합실을 고스란히 재현해놓은 역사 휴게실을 둘러보는 오기사. © 최남용

경강역 뒤편으로 낸 아담한 휴게실에서는 간이역의 원형을 살펴볼 수 있다. 80여 년의 세월을 견딘 목조 지붕은 단단한 철골이 지탱하고, 흐릿한 잿빛 벽돌이 확장의 흔적을 알려준다. 휴게실 한복판에 현대식으로 개량한 장작 난로에서 뿌연 연기가 빠져나가며 진한 노스탤지어를 완성시킨다. “간이역처럼 오래될 수밖에 없는 공간과 분위기에 쉽게 이끌리는 편이에요. 이런 과거지향적 취향은 성공하지 못한 아재의 감성이 아닐까란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요.” 자조 섞인 말을 건넨 오기사는 이내 경강역 맞은편에 자리한 한 폐가를 가리킨다. 거리낌 없이 그 집으로 걸음을 옮긴 그는 어릴 적 할머니댁에서 다락처럼 숨어 지냈다는 광을 반가워하고, 지하 창고를 살피고, 누군가 버린 양주병을 만지작거리며 낡은 공간에 또 한 번 빠져든다.








Tip. 오기사의 기차 여행 THINK

느슨한 분위기의 기차를 선호합니다. 목적지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은 여행처럼요. 가령 뉴욕에서 출퇴근 시간을 피한 통근 열차를 타면 전혀 다른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어요. 열차 안은 마치 절박하지 않은 이들이 모여 있는 곳처럼 보이기도 하죠. 





대칭과 비대칭 사이

KT&G 상상마당 춘천의 아트센터로 사용하는 옛 춘천어린이회관. 대칭을 이룬 두 동의 건물은 야외극장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 최남용

의암댐을 건너 호반을 따라 이어진 옛 경춘로는 드라이브의 청량감을 한껏 끌어올린다. 송암 레포츠타운 방면으로 핸들을 꺾은 뒤 다시 의암호와 재회하는 야트막한 언덕에 이르면 옛 춘천어린이회관이 기다린다. 춘천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이라면 사생 대회나 백일장 등으로 무수히 들락날락했던 곳. 그러나 운영 주체가 수없이 바뀌고 시설 보수를 제때 하지 않으면서 한동안 방치되고 말았다. 인근 강원체육회관과 함께 공연장, 라이브 스튜디오, 갤러리, 디자인 호텔 등이 들어선 KT&G 상상마당 춘천이 2014년 봄 개관하기 전까지 말이다. “춘천에 이런 독특한 건축물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상상마당 개관 이전까지 전혀 몰랐어요.” KT&G 상상마당 춘천의 아트센터가 들어선 옛 어린이회관은 1979년 세계 아동의 해를 맞아 전국에 어린이회관 건립 붐과 함께 탄생했다. 그것도 남산자유센터, 올림픽 주경기장 등 굵직한 건축 설계를 도맡아온 거장 김수근의 손길을 거쳐서 말이다.


오기사를 따라 가장 먼저 야외극장 객석 상단에 올라서자 눈앞으로 좌우대칭을 이룬 아트센터와 캐노피 너머 사각 프레임 안으로 의암호의 모습이 정경을 이룬다. ‘둘러싸여 있으나 막히지 않은 공간’을 내세운 김수근의 건축 철학과 일치하는 듯하다. “흔히 이 건물을 나비의 날개를 형상화했다고 평가하지요. 어린이를 감싼 듯한 분위기가 나기도 하고요.” 멀찍이 건물을 응시하며 오기사가 말한다. “사실 고전적인 건축에서 대칭은 웅장함과 위압감을 주는 요소로 사용했어요. 반면 현대건축에서는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볼 수도 있죠. 비대칭 요소를 발견하는 식으로요.” 그가 말한 대로 옛 어린이회관의 두 건물을 번갈아가며 살펴보니 창문과 돌출시킨 벽돌 형태와 테라스 공용 공간 등 은연중 디테일의 차이를 알아채게 된다. “예전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대칭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오늘 다시 보니 건물을 조합하는 단계에서 대칭의 가능성을 찾았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적벽돌과 복도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옛 춘천어린이회관의 실내. ⓒ 최남용

 아트센터 입구 역할을 하는 가동 안으로 들어선다. 경사진 육중한 복도가 자연스럽게 2층과 연결되고, 숨바꼭질을 하면 결코 끝나지 않을 것처럼 무수한 공간이 은밀하게 숨어 있다. 건물 상단에 겹겹이 난 유리창으로 새어드는 빛줄기는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김수근은 재료와 벽, 천장 등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감을 중시했어요.” 건물 외관과 내벽을 두른 어두운 적빛 벽돌은 건축 재료 중 가장 가벼운 소재다. 이를 가장 인간적인 재료로 여긴 김수근은 1970년대 이후 설계한 대다수 건물을 벽돌로 마감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여전히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옛 춘천어린이회관은 이제 지역 예술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사진 강의를 듣고, 음악을 녹음하는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쓰임새를 회복 중이다.



Tip 오기사의 건축 답사 THINK

건축 답사의 매력은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의도를 해석하는 즐거움에서 찾을 수 있어요. 현대건축은 답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요. 왜 저런 방향으로 건물을 세웠고, 왜 이런 재료를 사용했는지 끊임없이 상상해보시길. 건축은 결국 그 공간을 활용하는 사람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요. 





펜션의 통념을 넘어

유 리트리트의 숙소동은 상하부를 어긋난 형태로 설계했다. © 최남용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휴양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의류업에 종사하던 서윤원 대표는 은퇴 뒤 머물 곳을 찾던 중 넉넉하게 산과 계곡이 감싼 홍천 대곡리의 둔덕을 발견했다. 출장과 여행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건축물을 살피며 심미안을 쌓은 그는 자신이 찾은 대자연 속에서 수준 높은 펜션을 운영하기로 결심했다. 장동건·고소영 부부의 가평 신천리 주택과 최근 기장에 오픈한 웨이브온 카페 등을 설계한 이뎀건축 곽희수 건축가의 강렬한 스타일은 서윤원 대표가 그리던 건축과 가까웠고, 그렇게 두 사람은 인연을 맺게 됐다.


“과거에는 천재 건축가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다면, 오늘날에는 건축주에 따라 건축의 방향이 달라지곤 하죠. 건축가는 끊임없이 건축주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하고, 건축주 역시 뚜렷한 철학을 갖고 건축가와 많은 대화를 주고받아야 해요.” 오기사의 말처럼 유 리트리트는 1년 반에 걸쳐 열 차례 이상 설계 변경을 거치며 치열하게 고민을 축적한 결과물이다.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 도시의 자극에서 벗어나 대자연 속에서 호젓한 시간을 누리는 작품 같은 펜션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왼쪽부터 넉넉한 객실 내부는 단을 나눠 주변 풍광을 한층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유 리트리트의 외관을 드로잉하는 오기사. © 최남용


“건축가의 개성이 스민 공간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일은 의미가 남다를 거예요. 특히 이렇게 하룻밤 보낼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죠.” 오기사와 함께 오늘 머무는 유 리트리트는 단순히 숙박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듯하다. 지형의 선을 따라 포개진 육중한 노출 콘크리트 건물 3동은 총 9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 각 건물의 방향이 어긋나도록 설계한 덕분에 객실마다 조금씩 다른 전망을 선사한다. 객실은 5미터에 달할 만큼 층고가 높고 한옥의 툇마루처럼 단을 쌓아 침실을 구획해 마음을 한결 놓이게 한다. 낙엽송이 군락을 이룬 소리산 자락과 명성천 계곡을 향해 시원하게 낸 통유리는 자연의 조도를 부드럽게 받아들인다. 주변을 두른 넉넉한 풍광을 만끽할 수 있고 동시에 다른 객실과 서로 마주 보지 않도록 높이와 각도를 입체적으로 설계해 프라이빗한 휴식도 보장한다. 무엇보다 객실 덱에 딸린 온수 스파 풀은 유 리트리트의 하이라이트. 사방이 탁 트인 가운데 차분하게 묵상을 하듯 피로를 풀 수 있다. 여기에 매일 구입한 신선한 식자재로 준비해주는 조식 메뉴에서도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Tip 오기사의 숙소 선택 THINK

가족이 운영하는 소규모 숙소일지라도 세심한 배려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죠. 좋은 인상을 주는 곳은 그 지역을 여행할 때 분명 다시 찾게 됩니다. 저는 가급적 20실 이하의 소규모 숙소를 예약하곤 해요. 대형 호텔의 안락하면서도 천편일률적인 서비스를 포기하는 대신,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글. 고현      사진. 최남용






오기사와 떠난 강원도 건축 기행 Part 2. 원주

강원도 건축 기행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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