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밥정식을 주문하니 황송한 상차림이 눈앞에 펼쳐진다. 밥, 국, 장, 전, 나물, 일품요리까지 모두 합쳐 열아홉 가지가 상에 오른다. 단순히 가짓수만 많은 것이 아니다. 직접 담근 된장과 시판 된장을 섞어 끓여낸 배춧국은 맛이 진득하다. 배추를 엄청 많이 넣고 끓인다는 것이 이진숙 대표의 귀띔. 테이블 중앙을 차지한 것은 부들부들한 돔베고기와 촉촉한 고등어구이. 경북 지방에서 주로 해 먹는 배추전과 말캉한 묵도 존재감을 발휘한다. 나물 퍼레이드도 화려하다. 압권은 무나물. 푹 익히지 않고 스치듯 볶아내 아삭함과 기분 좋게 아린 맛이 살아 있다. 배춧잎, 표고버섯, 우엉, 참취, 브로콜리, 매실 등을 말리고, 불리고, 데치고, 볶고, 무치고, 절여 만든 반찬은 젓가락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모둠 쌈 채소도 싱싱하기 짝이 없다.
이 대표가 자신의 고향에 선흘곶이란 문패를 내걸고 밥장사를 시작한 지 2년 6개월가량 흘렀다. 지금은 안정됐지만 처음에는 경험 부족으로 겪은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고. 맛의 비결을 캐묻자 옅은 미소와 함께 해맑은 대답이 돌아온다. “별거 없어요. 그냥 집에서 먹던 대로 차려 낼 뿐이에요.” 타고난 손맛과 넉넉한 마음씨에 더해 제주산 식자재가 공헌한 바도 클 것이다. 텃밭에서 기른 채소도 적극 활용한다. 선흘곶에서 국내산이 아닌 식자재는 노르웨이에서 날아온 고등어밖에 없다. 건물 안팎의 꾸밈새 또한 주인장을 닮아 수수하다. 식당 가운데 놓인 난로, 거꾸로 매달아 말린 꽃, 한쪽 방에서 띄우는 메주가 손님 마음에 훈풍을 불어넣는다. 이름 모를 두 청년이 옆자리에서 나눈 대화가 지금도 귓가에 선명하다. “다음엔 꼭 부모님 모시고 와야겠어.”
ⓘ 쌈밥정식 1만2,000원, 돼지고기 추가 1만 원, 고등어 추가 8,000원, 10:30am~7pm, 화요일 휴무, 064 783 5753, 제주시 조천읍 동백로 102.
건달다방에는 건달이 없다. 아홉살 차이의 우애 좋은(정작 본인들은 자주 입씨름을 벌인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김연희·김윤아 자매가 있을 뿐이다. 사실 세 자매인데, 둘째는 파트타임으로 손을 보탠다. 2016년 1월 제주시 일도2동에서 처음 문을 열었고, 지난해 9월 아라1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건달은 ‘건강하고 달달하게, 건강하게 달라지자’에서 앞 글자만 따온 것. 굳이 구분을 짓자면 맏이는 건강을 담당하고, 막내는 달달함을 맡는다. 건강 주스는 첫째의 몫이고, 케이크와 쿠키는 셋째의 영역이란 뜻이다. 역할은 달라도 지향하는 바는 동일하다. 100퍼센트까지는 아니어도 최대한 유기농, 친환경 식자재를 이용하려 애쓴다. 때문에 귀한 유기농 밀을 고집하고, 음료에 들어가는 모든 시럽과 청도 직접 만든다. 화장실에는 일회용 티슈 대신 여러 장의 수건을 비치해놓았다. 건달다방의 언니 김연희 씨는 표선면 가시리에서 문화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환경과 식자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건달다방의 대표 메뉴는 건달치노다. 에스프레소에 캐슈너트를 직접 갈아 짜낸 우유와 당도 대비 열량이 낮은 천연 유기농 아가베 시럽을 추가한다. 건달주스는 케일, 셀러리, 레몬, 사과, 오이가 합세하는 ‘그린’과 사과, 당근, 비트가 힘을 모으는 ‘레드’로 나뉜다. 스콘, 생크림딸기티라미수, 제주오름케이크, 딸기두부컵케이크는 커피에 곁들이면 좋다. 특히 딸기두부컵케이크는 버터, 달걀, 우유가 들어가지 않아 비건 케이크로 통한다. 조붓한 카페 내부는 다양한 종류의 식물로 장식했다. 험상궂은 건달이 앉아 있을 법한 분위기가 전혀 아니라는 얘기다.
ⓘ 건달치노 5,500원, 스콘 3,000원, 제주오름케이크 6,500원, 딸기두부컵케이크 3,500원, 9am~10pm, 제주시 아란13길 32, 인스타그램 @gundaldabang
폴부엌에는 실제로 폴이 있다. 오너 셰프 황충현 씨의 호주 르 코르동 블루 유학 시절 영어 이름이 폴이다. 서울과 충남 부여, 호주 등에서 생활하던 부부는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싶어서’ 제주로 내려왔다. 레스토랑은 지난해 8월 16일 오픈했고 부부는 고심 끝에 ‘절충형 콘셉트’를 채택했다. 서양 요리 기법에 제주의 싱둥싱둥한 식자재를 결합한 것이다. 제주가 길러낸 돼지와 닭, 제주 해녀가 거둬들인 뿔소라, 시장에서 구입한 달래 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어쩌다 문어가 들어오는 날에는 메뉴판에 없는 요리도 뚝딱 만들어 제공한다. 샐러드에 투입되는 치즈 역시 제주산이다. 심지어 음료 메뉴판에는 ‘저지리 3대 미남 김철완 씨네 딸기로 만든 셰이크’라고 적어놓기까지 했다.
폴부엌은 식사 메뉴가 다양하지는 않다. 애당초 부부 둘이서 단출하게 운영할 생각이라 그렇다. 메인 요리는 12시간 넘게 저온 숙성한 제주 돼지고기에 고구마퓌레, 마늘구이, 와인 소스를 매치한 스테이크다. 제주 촌닭을 오븐에 구워 매콤한 버터커리, 구운 감자와 함께 내는 요리도 인기 몰이 중이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하나. 여유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싶다던 폴의 꿈은 과연 이뤄졌을까. 아니러니하게도 분위기 좋고 음식 맛 준수하다는 소문이 알음알음으로 퍼지면서 꽤나 바빠졌다고. 그래도 아내 김지연 씨는 서울살이보다 낫다고 망설임 없이 이야기한다. “조금만 나가면 자연이 있잖아요!”
ⓘ 카프레세샐러드 1만2,000원, 제주돼지고기스테이크 2만5,000원, 제주촌닭오븐구이 2만3,000원, 뿔소라&달래&톳 오일 파스타 1만6,500원, 11am~8pm, 브레이크타임 3pm~5pm,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2969-18, paulkitchen.co.kr
왼쪽부터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의 베지그랑 테이블. 차롱에 담은 메밀면에 개인의 입맛에 따라 고추냉이의 양을 조절해 묻혀 먹는다. 돼지고기 바싹 불고기는 사과, 꿀, 조청, 대파로 맛을 냈다. ⓒ 허태우
감귤 창고를 레스토랑으로 꾸민 베지그랑은 셰프의 꼿꼿한 자부심과 확고한 음식 철학으로 꽉 차 있다. 메뉴판 첫 장에 쓰여 있는 “나는 요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라는 문구부터가 의미심장하다. 혼자서 조리와 서빙을 도맡아하는 고지영 셰프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단순히 음식만 내는 것이 아니라 손님을 붙들고 요리의 내력과 먹는 방법을 일일이 짚어준다. 세팅과 플레이팅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식사는 자청비의 요리나 가믄장아기의 요리 코스 중 선택할 수 있다. 자청비 C 코스의 경우 연두부, 메밀면, 바싹불고기, 디저트 두 가지, 커피로 구성된다. 부드러운 연두부로 시동을 걸면 곧이어 대나무로 만든 납작한 그릇인 차롱에 메밀면이 담겨 나온다. 미량의 고추냉이를 면에 묻힌 다음, 간장을 아주 살짝 찍어 먹는다. 바싹불고기는 메밀과 궁합이 잘 맞는 돼지고기로 만든다. 잘게 다진 제주산 돼지고기를 사과, 꿀, 조청, 대파의 흰 부분을 넣고 만든 양념장에 버무린 것.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지만 모양새에 일말의 흐트러짐도 없다. 제주 전통 옹기에서 발효시킨 요거트는 꿀과 어우러져 산뜻하고 달콤한 매력을 뽐낸다. 할손트는 어릴 적 할머니가 해주신 양갱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팥을 바닥에 깔고 투명한 우뭇가사리를 이불처럼 덮었다. 커피와 함께 먹으면 영락없이 초콜릿 맛이난다.
ⓘ 자청비의 요리 A 코스 1만5,000원, B 코스 1만8,000원, C 코스 3만3,000원(2인 이상 주문), 할손트 8,000원, 11am~9pm, 수요일 휴무, 서귀포시 효돈로170번길 20, 인스타그램 @vejigeurang
제주시 용담동에 자리한 세컨드밀은 지난 3월 5일 첫발을 뗀 신생 베이커리다. 그렇다고 어쩔 줄 모르는 신출내기는 아니다. 이도2동에서 8년 전부터 영업 중인 ‘베이커스트리트 & 카페 모리’와 혈연관계다. 실제로 세컨드밀 강남웅 대표의 여동생이 그곳을 운영하고 있다. 강 대표는 디저트 위주로 꾸린 베이커스트리트 & 카페 모리에서 깊어진 제빵에 대한 갈증을 세컨드밀을 통해 본격적으로 해소한다. 상호를 이루는 두 단어 중 하나인 ‘세컨드’는 겸손과 자신감의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밥 ‘다음’ 빵이라는 뜻이 한 갈래고, 맛있어서 ‘순식간에’ 먹게 된다는 것이 또 다른 갈래다.
세컨드밀에서 내는 빵과 케이크는 강 대표의 음식에 대한 철학과 고집에서 비롯한 결과물이다. 유기농 밀, 동물성 자연 생크림, 천연 버터 등의 건강한 재료는 늘 곁에 두고 애용하지만 쇼트닝, 보존제, 식품 첨가제 등은 철저하게 배제한다. 강 대표의 부모는 성산읍에서 손수 귤, 레몬, 댕유자 농사를 짓는다. 제주 댕유자는 일반 유자에 비해 덩치가 클 뿐 아니라 껍질이 두꺼워 청을 담그기에 좋다. 세컨드밀 음료 리스트에 댕유자차가 올라 있는데, 향과 맛 모두 상당히 진하다. 몸이 움찔거리는 단맛이 아니라 느긋하게 달달한 딸기쇼트케이크, 제주산 콩가루를 꼼꼼하게 뒤집어쓴 슈아라크렘, 촘촘한 결이 빛나는 데니시식빵 등이 손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토스트를 앞세운 세 가지 브런치 메뉴도 갖췄다. 이곳의 베스트는 유제품과 버터를 전혀 쓰지 않아 일명 ‘무알레르기 빵’으로 불리는 토마토 포카치아다. 담백하면서도 묘한 중독성이 있어 손을 쉬이 내려놓을 수가 없다. 그린과 핑크 위주로 디자인한 건물의 내부와 외부 그리고 요란하지 않은 인테리어는 편안한 느낌을 자아낸다.
ⓘ 슈아라크렘 4,500원, 데니시식빵 2만 원(하프 1만 원), 토마토포카치아 4,500원, 프렌치토스트 8,500원, 댕유자차 5,500원, 10am~8pm, 수요일 휴무, 제주시 남성로4길 3, 인스타그램 @2nd.meal
아침 8시 15분. 표선면 표선리에 위치한 당케올레국수의 미닫이문을 빠끔히 열고 조심스레 인사를 건넨다. 첫 손님이다. 주인아주머니의 큼지막한 무 써는 소리로 주방 안은 활기가 넘친다. 볼 것도 없이 보말칼국수와 고기국수를 주문한다. 배추김치, 파김치, 무김치. 일찌감치 마중 나온 김치 삼총사만으로도 밥 두 공기는 잠재울 수 있지 싶다. 곧이어 메인이벤트가 시작된다. 이곳의 고기국수는 여러모로 결이 다르다. 고기꾸미는 잘하고, 국숫발은 중면보다 가늘며, 국물은 경쾌하다. 뼈 육수에 멸치 국물을 혼합한 골막식당의 그것보다도 개운한 느낌이다. 시원스레 식도를 타고 몸속으로 흘러든다. 이처럼 제주의 고기국수는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백미는 보말칼국수. 걸쭉한 국물에 밥과 국수가 함께 몸을 담그고 있는데, ‘인생’이란 접두사를 붙여줄 만큼 감칠맛이 폭발한다. 20여 년간 식당을 지켜온 추자도 태생의 주인아주머니는 보말칼국수 맛의 비결을 호탕하게 일러준다. “보말을 아낌없이 넣으면 돼.”
ⓘ 보말칼국수 1만 원, 성게칼국수 1만 원, 고기국수 7,000원, 8am~8pm, 둘째 일요일과 넷째 목요일 휴무,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당포로 4.
스몰 웨딩을 화사하게 마무리하는 케이터링, 할머니의 레시피로 맛을 낸 건강 도시락, 맛과 식감을 한껏 돋운 떡, 여기에 덧붙이는 ‘제주의’라는 수식어. 김진경 씨가 운영하는 푸드랩스튜디오 담음은 제주의 음식에 현대적 감성과 쓸모를 입히는 곳이다.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아토피 때문에 떡을 직접 만들어서 먹어보기 시작했어요. 그걸 계기로 육아 휴직 후, 2016년에 떡 카페를 열었죠. 그러다 담음을 열었어요. 케이터링도 하고 제주 음식 레시피도 개발하고 있지요.” 김진경 씨가 싹싹한 말투로 이곳의 내력을 말해준다. 제주에서 태어나 자랐던 경험은 담음을 꾸리는 데 한몫을 더했다. 동생도 담음을 함께 운영하고, 가파도에서 태어난 어머니도 돕는다. 이곳에서 선보이는 요리는 대부분 할머니에게 들은 레시피를 응용한 것이라고. 고추장 토마토소스를 쓴 보리밥아란치니, 홍옥으로 새콤한 맛을 낸 정과, 우도 땅콩 강된장을 곁들여 먹는 톳밥 등. 김진경 씨가 그중 대표 메뉴 하나를 설명한다. “지금은 접하기 어려운데 어렸을 때에는 마을 잔치에서 달걀에 고기를 입힌 튀김을 꼭 냈어요. 영국에서 많이 먹는 스카치 에그 같지만 실은 제주식이죠.”
차롱에 차린 음식은 하나같이 고슬고슬한데,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워 넘기기가 수월하다. 아란치니나 스카치 에그를 한입 가득 넣어도 부담이 없다. 제주의 음식을 편하게 내고 싶다는 주인의 바람이 잘 담긴 식사. 봄나들이마저 부추기는 그런 한 끼다.
ⓘ 제주댁 차롱세트 3만 원, 스카치 에그 3,500원, 오늘도 제주댁 도시락 세트 1만5,000원, 9am~9pm, 제주시 신성로12길 24, 인스타그램 @jeju_foodstudio
테슬라 모델S 전기 자동차로 제주도를 여행할 때는 전용 급속 충전기 슈퍼차저(Supercharger)를 이용해보자. 롯데호텔제주는 제주 유일의 테슬라 슈퍼차저 급속 충전기 12대를 갖추었다. 슈퍼차저 이용 시 30분 만에 80퍼센트까지 충전 가능한데, 이 정도면 최대 270킬로미터를 주행할 수 있다. 80퍼센트 충전 이후부터 완속 충전으로 전환되며 완충까지 75분 걸린다. ⓘ 서귀포시 중문관광로 72번길 35, lottehotel.com/jeju
글. 노중훈 사진. 허태우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와 함께 최고의 여행을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