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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Jun 29. 2018

동해선 기차 여행



East Coast Rail Trip

동해선 기차 여행


2018년 1월 동해안에 새로운 철로가 놓였다. 포항과 삼척을 잇는 동해선 철도 건설 사업의 1단계로 44.1킬로미터에 이르는 포항-영덕 구간을 먼저 개통한 것. 덕분에 영덕으로 가는 길이 한결 수월해졌다. 자동차로 약 1시간 걸리던 거리가 이제 34분이면 충분하다. 교통이 편리해졌다는 건 어쩌면 여행을 가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긴 게 아닐까? 영덕에서 포항까지, 동해선 기차 여행을 떠나보자.





영덕역


시작은 역시 든든하게

영덕역에 정차한 동해선을 달리는 무궁화호. 영덕에서는 물회에 고추장을 넣고 찬물을 부어 먹는다.  ⓒ 박소현

 

창포말등대가 그려진 동해선 기차 외관. ⓒ 박소현

오전 11시 30분, 슬슬 시장기가 밀려올 즈음 기차가 영덕역에서 멈춘다. 당초 영덕에서 점심을 해결하려던 참이었다. 딱 좋은 타이밍. 오전 8시 15분에 서울역을 출발한 KTX는 금세 한반도 최동단에 자리한 포항에 닿는다. 포항역에서 바로 환승할 수 있도록 동해선 출발 시간을 맞췄기 때문에 옆 선로의 기차로 갈아타자 3시간 만에 영덕에 도착한다. 그제야 앙증맞은 기차 외관이 눈에 들어온다. 귀여운 대게 캐릭터, 랜드마크 격인 영덕의 창포말등대와 포항의 상생의 손 등. 총 3량짜리 짤막한 무궁화호 안팎으로 포항과 영덕을 대표하는 것이 줄줄이 그려져 있다. 이는 신선한 볼거리이면서 그 자체로 재미난 추억거리다. 이러니 다들 내리자마자 허겁지겁 카메라를 꺼낼 수밖에.


역에서 조금 떨어진 시내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번 여행의 첫 끼로 택한 음식은 물회. 영덕과 포항 일대에서는 어부들이 갓 잡은 생선을 숭덩숭덩 썰은 뒤, 고추장과 물을 넣어 비벼 먹던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물회 전문점 백경에서 물회를 주문하자 자연산 회와 오이, 배 등이 소담히 담긴 사발과 고추장, 소면이 함께 나온다. 분명 물회인데 물이 없는 낯선 비주얼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더니 점원이 벽에 붙은 ‘맛있게 먹는 방법’을 가리킨다. 정석대로 고추장을 1큰술 넣고 간이 잘 배도록 슥슥 비비다가 찬물 1컵을 붓는다. 제법 물회 티가 난다. 투박하지만 깔끔한 맛에 사발을 싹싹 비우고 나니 어느덧 배가 찬다.




아카시아 향이 나는 바다

대게 모양의 조명이 설치된 해맞이공원과 창포말등대의 원경. ⓒ 박소현

가게를 나서자 통통택시가 대기 중이다. 현지 택시 기사의 관광 안내를 받을 수 있는 통통택시는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한 영덕에서 좋은 길잡이자 발이 되어준다. 푸근한 인상의 유순연 택시 기사가 능숙하게 영덕을 안내한다. “이 해안 도로에선 일출을 볼 수 있습니다.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차들이 그대로 멈춰 도로가 주차장이 되곤 하죠.” 그의 말과 동시에 짙푸른 바다가 창에 걸린다. 강축해안도로는 7번 국도의 강구와 축산을 잇는 구간. 달리는 내내 한시도 바다를 놓치지 않아 동해안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라는 찬사를 받는다. 곧이어 집게발이 태양을 집어올린 듯한 형상의 창포말등대가 나타난다. 이 등대를 중심으로 바다로 향하는 산책로가 놓인 해맞이공원이 해안을 따라 길게 뻗어 있다. 택시에서 내려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숨을 크게 들이켠다.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날 거란 예상과 달리 아카시아 향이 밀려온다. 뒤로 돌자 바다와 맞닿은 구릉마다 아카시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그 위로 우뚝 솟은 거대한 바람개비가 바쁘게 돌아간다.



물회를 먹는 모습을 한 정크 아트 작품.  영덕풍력발전단지 내 정크트릭아트 전시관 외벽에 설치된 대게 조형물.  ⓒ 박소현

“1997년 2월, 창포리에 큰 산불이 납니다. 하필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던 시기라 3일간 불길이 잡히지 않아 이 일대가 모두 타버렸죠. 황무지가 돼버린 땅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당시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한 풍력발전기를 설치했습니다.” 박문태 문화관광 해설사가 영덕풍력발전단지 조성 과정에 대해 설명한다. 해맞이공원 뒤편 언덕에 세운 발전기는 총 24대. 이는 2만 가구가 거주하는 영덕 군민 전체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한다고. 절망의 땅에 희망을 되찾아준 풍력발전기는 여행자에게 이국적 풍경도 선사한다. 짙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신록이 우거진 언덕 위에 새하얀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모습은 멋스럽다. 공장이나 발전소 같은 오염원이 없는 영덕은 동해안에서도 유난히 푸른 물빛과 투명한 바다를 자랑하는데, 이곳은 바다가 지척에 있고 지대가 높아 어디든 근사한 전망대가 된다. 연신 감탄을 하던 중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세그웨이(segway)가 시선을 끈다. 이걸 타면 마치 바람과 한몸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겠다. “여기서 세그웨이도 대여할 수 있어요. 인기가 좋고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돼 지자체 사업 중에서 흔치 않은 성공 케이스죠.” 박문태 씨의 얼굴에 뿌듯함이 서린다.




숲을 가꾸는 노인

바다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한적한 도로를 내달린다. 도착한 곳은 영해면 벌영리의 한 마을. 작은 마을에 무슨 일인지 도로를 파헤친 채 공사가 한창이다. “영덕 메타세쿼이아 숲은 사유지예요. 근데 워낙 찾는 사람이 많으니까 군청에서 도로를 확장하는 거죠.” 유순연 택시 기사가 거친 비포장도로를 능수능란하게 통과하며 말한다. 이윽고 울창한 숲이 등장한다. 이렇게 외딴곳에 메타세쿼이아가 숲을 이루는 광경이 그저 신기할 따름. 누가 여기에 숲을 가꾼 걸까? 그 답은 장상구 씨에게 들을 수 있다.


영덕 메타세쿼이아 숲은 나무가 일렬로 세워진 길을 따라 산책하기 좋다. ⓒ 박소현

 팔순이 넘은 그는 직접 사륜구동 자동차를 몰며 길을 안내한다. “여기가 원래 선산인데, 예전엔 아카시아나무로 꽉 찼었어. 일제 시대 때 산사태를 막으려고 심은 게지. 그 뿌리가 묘를 자꾸 파고들어서 베어내고 나무를 심었는데, 그 걸 모친이 잘한다하니까 조금씩 심던 게 이렇게 된 거야.” 2003년부터 시작한 그의 도전은 지금에 이르러 약 66만 제곱미터의 거대한 숲이 되었다. 손가락 두께만하던 메타세쿼이아는 하늘에 닿을 듯이 자라 아름다운 가로수길을 이루고, 알음알음 찾아오는 이들의 안락한 휴식터가 되고 있다. 삼나무, 잣나무, 편백나무 등 그는 계속해서 다양한 수종의 나무를 심고 가꾸며 숲을 다듬어가는 중이다. “아직 이름도 없어. 사람들이 그냥 메타세쿼이아 숲이라 부르는 거지. 3년쯤 더 묵어야 해. 그때 와보면 ‘이 할아버지 일 많이 했구나’ 하겠지.” 아직 준비가 안 돼 찾아오는 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장상구 씨. 산책로를 조성하고 체험 학습장, 카페 등도 갖춰 편히 쉬다 가는 명소로 만들고 싶다는 그의 주름진 눈가에 햇살이 내려앉는다. 




강구항


대게 대신 찾은 풍경

수조 위에 꺼내놓은 싱싱한 영덕대게. 영덕대게는 식감이 쫄깃하고 은은한 단맛이 돈다.  ⓒ 박소현

영덕역에서 출발한 지 10분이 채 되지 않아 강구역에 도착한다. 영덕 남동부에 자리한 아담한 포구를 끼고 있는 이 역을 수많은 사람이 거쳐 갈 거란 예감이 든다. 영덕대게 최대 집산지인 강구항과 170여 개의 대게 요리점이 줄을 잇는 영덕대게거리가 자리하기 때문. 대게 철이 막바지에 접어든 5월의 영덕대게거리는 의외로 한산하다. 요란스럽게 게 모형을 단 가게 사이를 지나자 어디선가 ‘치익’ 하고 게를 찌는 스팀 소리가 들려온다. ‘가장 저렴하게’ 또는 ‘가장 양을 많이’를 외치며 손짓하는 상인들도 기운이 빠지는지 금세 물러 나고 만다.


대게거리와 맞닿아 있는 강구항은 영덕에서 가장 큰 항구다. 오십천이 동해로 흘러나오는 하구에 놓인 범선 모양의 강구대교와 그 옆으로 기다랗게 뻗은 항구의 자태가 아름답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하루 종일 하늘이 흐리고 거센 바람이 불던 터라 항구에는 크고 작은 배가 나란히 정박해 있다. 이따금 작은 파도가 밀려오면 세월의 때가 묻은 선체가 미세하게 흔들릴 뿐. 숨이 멎은 듯 조용한 이곳도 새벽에는 무척 시끌벅적했으리라. 특히 대게잡이가 이뤄지는 11월부터 5월까지, 대게를 수북이 실은 어선이 새벽녘 항구에 도착하면 위판장에서 날마다 경매가 열린다. 바닥에 대게를 일렬로 죽 늘어놓고 씨알 굵고 싱싱한 녀석을 차지하기 위해 상인들은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인다. 



해파랑공원의 대게 조형물.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삼사해상산책로. ⓒ 박소현

부두에서 낚싯대를 던져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강태공을 지나 항구 끄트머리로 향한다. 이 근방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동광어시장의 모퉁이를 돌자 해파랑공원이 나타난다. 가장 먼저 반기는 이는 비상하는 갈매기 사이로 하늘을 향해 집게발을 뻗은 커다란 대게 조형물. 이래 봬도 주말이면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몰리는 강구의 인기 스타다. 바다를 매립해서 조성한 공원은 규모가 꽤 크다. 대게 조형물까지 걸어가는 데도 숨이 가쁠 정도. 탁 트인 너른 잔디밭을 사뿐사뿐 걸으며 산책하다가 삼사해상산책로로 가기 위해 택시에 올라탄다.


강구항 바로 밑에 자리한 삼사해상공원은 영덕의 대표 해맞이 명소다. 강구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매년 1월 1일이면 경북대종을 울리며 신년 소망을 기원하는 해맞이 축제가 열린다. 삼사해상산책로에 가려면 삼사해상공원 아래 자리한 바닷가로 방향을 살짝 틀어야 한다. 다시 마주한 바다 위에는 파도를 따라 굽이치는 듯한 산책로가 놓여 있다. 길게 늘어선 산책로는 말단에 이르러 부채꼴 모양으로 휘어져 돌아나가는 구조. 중간중간에 깔린 유리 바닥이 바다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바스러지고, 바다 위에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삼사해상산책로는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돌린다.




문지연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제1회 라이징 포토그래퍼’ 콘테스트에서 최종 우승한 사진가 박소현이 동행했고, 후지필름의 카메라 GFX 50S와 X-T2로 촬영했다.




글. 문지연       사진. 박소현




Part 2. 월포역에서 포항역까지

동해선 여행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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