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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의 방식'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나주 여행

by 온더로드


Keeping Tradition Alive in Naju

나주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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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풍을 지키는 종가, 근대유산을 탈바꿈한 문화 공간, 대를 이어 쪽물을 들이는 장인 등.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도시 나주에서 옛것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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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을 가르는 황포돛배 앞으로 나주혁신도시가 보인다. ⓒ 정수임




구도심을 돌아보다

나주곰탕 하얀집의 곰탕. ⓒ 정수임

장마 뒤, 오랜만에 고개를 바짝 든 태양이 맹렬히 내리쬐는 거리는 한산하기 그지없다. 서로 원조라 우기는 간판을 단 곰탕집만 사람들로 복작일 뿐. 가게마다 걸린 무쇠솥에는 곰탕이 쉴 새 없이 끓고, 무더운 날씨에도 손님들은 뚝배기를 붙잡고 콧등에 맺힌 땀을 훔쳐가며 연신 숟가락을 움직인다. 나주가 곰탕으로 유명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15세기 말 조선 시대, 당시 호남에서 가장 융성한 도시이던 나주에 지금은 5일장이라 부르는 장시가 최초로 섰는데, 장터에서 먹던 든든한 서민 음식이 바로 곰탕이었다. 나주는 고려 성종 때 나주목이 된 이래 약 900년간 전라남도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전라도라는 명칭이 ‘전주’와 ‘나주’의 머리글자를 딴 것만 봐도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을 터. 이제는 지방 소도시로 전락했지만 화려한 이력을 증명하듯 구도심 곳곳에는 과거 영광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관아 숙박 체험을 운영하는 나주목사내아의 전경. ⓒ 정수임


“한양을 못 가본 백성은 나주를 둘러보고 ‘한양 구경 잘했다’ 그랬대요. 북쪽으로 금성산을 등지고 남쪽으로는 영산강이 흐르는 배산임수 지형, 4대문과 성벽에 빙 둘러싸인 나주읍성의 모습 때문에 작은 한양이라 불렀죠.”


정희락 문화관광해설사가 나주목문화관을 안내하며 말한다. 이곳은 구도심을 둘러보기 전 나주의 역사를 훑기에 제격. 나주목이 전라남도 일대를 비롯해 제주까지 통할했다거나, 비옥한 나주평야와 교통의 요지인 영산강을 토대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세곡을 냈다는 등 영화롭던 시절의 이야기가 슬슬 흥미가 돋운다. 나주목문화관 바로 옆에는 나주 목사와 가족이 생활하던 살림집인 나주목사내아(羅州牧使內衙)가 자리한다. 나주를 거쳐 간 목사는 무려 300여 명. 그들의 손때가 묻은 대문으로 들어서자 아늑한 분위기에 절로 미소가 걸린다. 반듯한 마당을 포근하게 감싸는 ‘ㄷ’자 구조의 한옥과 뒤편의 500년 묵은 아름드리 팽나무 1그루.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학처럼 고고하게 살고 싶은 선비의 지조가 깃든 집. 금학헌(琴鶴軒)이란 이름과 걸맞은 정취가 흐른다. 팽나무에는 영험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어느 날, 이 나무가 벼락을 맞고 두 갈래로 쪼개졌는데 마을 주민의 보살핌으로 기적적으로 되살아났다고. 믿거나 말거나, 이 팽나무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나무가 좋은 묘안을 알려준다고 한다. 나주목사내아에서 호젓한 하룻밤을 보내도 좋겠다. 나주에서 가장 존경받는 목사였던 유석증과 김일성의 이름이 걸린 방을 비롯해 6개 객실에서 관아 숙박을 체험할 수 있다.



망화루에서 바라본 금성관의 전경. 정문부터 총 3개의 문을 거쳐야 본관으로 들어갈 수 있다. ⓒ 정수임

나주목사내아에서 약 3분 정도 걷자 금성관(錦城館)이 나타난다. 금성관은 외국 사신이나 고위 관료가 머물던 객사이자 왕을 상징하는 지방 궁궐을 겸하는 곳. 곰탕 거리와 맞닿아 있어 곰탕을 먹고 이곳을 산책하는 게 일반적인 나주 여행 코스라 할 수 있다. 먼저 정문인 망화루에 올라보자. 신작로를 따라 나직나직한 건물이 즐비해 도심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뒤를 돌면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금성관의 전경이 쫙 펼쳐진다. 마치 날개를 펼친 듯 길게 뻗은 팔작지붕 건물에 장엄함이 감도는 듯하다. 다시 아래로 내려와 돌길을 따라 겹겹이 싸인 문을 통과하자 금성관 본관에 닿는다. 너른 대청에 앉아 땀을 식히자 이곳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천일이 호남에서 최초로 의병을 모아 출병식을 하는 모습, 일제강점기에 나주 군청사로 사용되면서 겪은 뼈 아픈 역사까지도. 아마 그 옆을 650년간 지켜온 은행나무만이 이 지난한 세월의 유일한 목격자일 게다.



ⓘ 나주목문화관 무료입장, 9am~6pm, 061 332 5432, 전라남도 나주시 금성관길 15.

ⓘ 나주목사내아 무료입장, 9am~6pm, 전라남도 나주시 금성관길 13-8, moksanaea.naju.go.kr

ⓘ 금성관 무료입장, 061 339 8613, 전라남도 나주시 금성관길 8.





문화관광해설사 정희락. ⓒ 정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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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 정희락


"고고학자는 나주를 지뢰밭이라고 해요. 그만큼 많은 문화유산이 숨어 있어 땅을 파면 나온다는 거예요. 1910년 한일합병 이후 호남선이 개통되어 근대유산도 많습니다. 있는 걸 잘 지키는 것. 이게 저희의 몫인 것 같아요. 옛것을 지키고, 복원하고, 홍보해서 더 많은 사람이 나주의 매력을 느꼈으면 합니다."
















근대 고택에 머물다


근대 고택과 금목서가 운치 있는 39-17 마중의 전경. ⓒ 정수임

나주 구도심은 고샅길이 얼기설기 뒤얽혀 있다. 어깨가 닿을 만큼 좁은 사잇길이나 고불고불 이어지는 흙담길을 따라 빙 돌다 보면 자연스레 서쪽 끝에 자리한 나주향교에 닿는다. 이곳은 전국에서 가장 큰 향교이자 드라마 <성균관스캔들>의 촬영지로 더 유명해졌다. 최근에는 입소문을 듣고 나주향교와 담 하나를 둔 39-17 마중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모두 같은 곳을 향해도 방문 목적은 다양하다. 향긋한 커피를 마시거나, 신나는 공연을 즐기거나 아니면 오롯이 쉬거나.

쌀 창고를 개조한 세련된 분위기의 카페. ⓒ 정수임

화창한 오후, 키 작은 해바라기가 들쭉날쭉 자란 야트막한 언덕길을 넘자 보드라운 흙이 깔린 마당이 나온다. 그 가운데를 차지한 연둣빛 이파리가 무성한 금목서 주변으로 고즈넉한 고택이 폭 감싸 안듯 둘러 싸고 있다. 이곳에서 오늘 처음 만난 남우진 대표가 대뜸 첫눈에 반한 집이라고 고백한다. 외지인인 그가 나주에 터를 잡게 된 건 오로지 이 집 때문이다. 오랫동안 방치되던 난파고택을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되고 고심 끝에 이를 매입해 약 1만 제곱미터 규모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 완성했다고. 난파고택은 1939년에 을미 의병장이자 나주 지역 유지이던 난파 정석진의 손자인 정덕중이 어머니를 위해 지은 집이다. 흥미로운 건 이 고택이 온통 의문투성이라는 점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일본풍인데, 창호문을 달고 구들장을 놓은 건 마치 한옥 같다. 또 건물의 3분의 2는 목조건물인 데, 나머지는 벽돌로 지은 양옥이다.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자 남우진 대표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정체를 밝힌다. “한국·일본·서양식을 접목한 절충식 가옥입니다. 당시 전라남도에서 유일한 건축가였던 박영만이 설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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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고택을 보수한 목서원의 내부. 이곳은 게스트하우스이자 각종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를 겸한다. 39-17 마중 목서원의 각기 다른 모양의 창문. 나주 배를 통째로 착즙한 리얼 나주배 주스와 나주 배 필링으로 채운 수제 마카롱. ⓒ 정수임


박영만은 실로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건축 방식을 시도한 건축가다. 세 가지 건축양식이 혼재된 외관만 봐도 예상할 수 있다. 삼각형이나 사각형, 육각형까지 각기 다른 모양의 창문을 낸 건 지금 봐도 독특하다. 남우진 대표는 난파고택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많은 사람이 찾는 공간으로 만드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고택 건물은 스위치와 전등 하나 까지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목서원이라 이름 붙여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한다. 쌀 창고를 개조한 매력적인 카페는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창문으로 보이는 향교 담장과 고목이 어우러진 풍경이 참 예쁘죠?” 카페로 향하자 곱게 차려입은 아내 기애자 씨가 나주 배로 만든 주스와 수제 마카롱을 권한다. 오목조목 예쁘장한 카페는 그녀의 작품이다. 인테리어부터 메뉴까지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나주는 밤에 별이 쏟아진답니다. 이를 보며 타파스나 바비큐에 와인을 곁들이는 와인 다이닝을 즐겨도 좋아요.” 그녀의 유혹적인 말에 군침이 꿀떡 넘어간다.


“39-17 마중으로 많은 예술가가 찾아와 나주 문화를 부흥시켰으면 해요. 그래서 매달 서너 차례 인디밴드, 재즈 등의 공연을 열고 캘리그라피, 천연 비누 만들기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를 초청해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죠.”


남우진 대표가 덧붙여 말한다. 블로그에 속속 올라오는 행사 공지에서 이를 확인해보자. 곧 여름방학을 맞아 구도심을 돌아보는 나주 시간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금목서가 그윽한 향을 뿜어내는 가을이면 근사한 레스토랑을 열 예정이라고. 39-17 마중의 1년치 달력이 벌써 재미난 계획들로 빼곡하다.



ⓘ 39-17 마중 리얼 나주배 7,000원, 카페 운영시간 11am~10pm, 전라남도 나주시 향교길 42-16,

blog.naver.com/3917majung





39-17 마중 대표 남우진·기애자. ⓒ 정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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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7 마중 대표 남우진·기애자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나주는 역사의 현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명품 도시입니다. 금성관, 나주향교, 나주목사내아 등 문화재가 모여 있는 구도심 자체가 큰 자산이죠. 옛것을 뜯어 고치고 바꾸는 게 아니라 그대로 지켜나가야 해요. 여기에 문화를 덧입혀 콘텐츠로 만드는 것이 저희의 역할입니다. 나주다운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문지연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두 번째 방문한 나주에서 또다시 나주곰탕에 반해 뚝배기를 싹싹 비웠다. 취재에 동행한 사진가 정수임은 노란색 선글라스를 쓰고 아코디언 연주를 하는 멋쟁이 할아버지에게 반했다.





글. 문지연 사진. 정수임







Part 2. 종가를 방문하다

Part 3. 옛 잠사 공장에서 예술을 만나다

Part 4. 쪽물을 들이다

나주 여행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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