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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Oct 09. 2018

김종관 감독과 함께한
'부산 여행의 재구성'





부산 여행의 재구성

김종관 감독과 함께 영화적 영감이 깃든 장소를 찾아 부산으로 떠난다. 

관광지에서 비켜간 뒷골목에서 응시하고 음미하고 서성인 시간들.


글. 고현      사진. 최남용





Who is 김종관 감독? 

김종관 감독은 서정적 영상미로 호평받은 단편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 이후, <조금만 더 가까이>(2010) <최악의 하루>(2016) <더 테이블>(2017) 등 여러 저예산 장편영화를 연출했다. 영화 작업 틈틈이 쓴 글을 모아 <골목 바이 골목>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 등의 책도 펴냈다. 최근 아이유 주연의 옴니버스 영화 촬영을 마친 그는 저예산 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instagram.com/monologue707



SCENE 1 : 동구 수정동

산모퉁이의 따스한 지하실

 

모티의 술장에는 주인장이 수집한 희귀 리큐어로 가득 차 있다. © 최남용

밤 10시 40분. 부산역에 막 도착한 김종관 감독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수정동의 산복도로로 향한다. 일제강점기 때 도심에서 밀려난 민초가 부산 각지의 산자락에 판자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는데, 해방 이후 그 산자락을지그재그로 연결한 길을 산복도로라 통칭해 부른다. 그중 수정동의 산복도로는 핸들을 잡은 손에 땀이 맺힐 만큼 아찔한 곡예 구간이 반복된다.


산 중턱의 허름한 4층 빌라가 이번 여정의 첫 목적지다. 조명이 은은하게 밝힌 빨간 문을 열면 계단 아래로 어둑한 지하실이 나온다. 경상도 방언으로 모퉁이를 의미하는 모티는 수정동 주택가에 움을 튼 위스키 바다. “걱정하지 말고 설레여라” 주술 같은 문구가 벽 귀퉁이에 내걸린 가운데, 바 6자리와 테이블 6자리가 전부인 아담한 홀이 모습을 드러낸다. 벽면을 가득 채운 위스키와 코냑 등 리큐어가 이곳의 정체를 알려주지만, 요즘 유행하는 세련된 싱글 몰트 바와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위스키 덕후의 사적인 아지트 같은 오라가 느껴진다. 마스터로 칭하는 조태진 씨가 가장 먼저 차가운 산펠레그리노 1잔을 건넨다. 홀로 모티를 운영하는 그는 굴지의 IT 기업을 관두고 연고 하나 없는 부산에 정착한 지 5년이 됐다고 말한다. “한번은 부산에서 차를 몰다 길을 잘못 들었어요. 그때 여기 수정동 산자락까지 올라오게 됐죠. 부산항과 마을의 전경이 어우러진 풍경이 적적하니 마음에 들더군요.” 그렇게 부산에 정착한 그는 낡은 빌라 지하실을 손수 다듬고 그간 수집해온 위스키를 모아 산모퉁이의 바를 완성했다.



독특한 풍미를 내는 킬호먼 싱글 몰트위스키. ⓒ 최남용

 “술장 자체가 하나의 미장센이네요.” 바의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운 위스키병을 물끄러미 관찰하던 김종관 감독의 표정은 차츰 생기로 가득 찬다.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거나 여행을 떠날 때면 이런저런 바를 기웃거리곤 해요. 자연스럽게 위스키에 흥미를 두게 됐죠.” 그가 공간을 천천히 응시하는 사이 매킨토시 앰프와 보스 스피커에선 피아니스트 임인건이 야누스에 헌정한 재즈 넘버가 은은하게 새어나온다. 이따금 빈티지 벽걸이 전화기의 벨이 울린다. “사실 이곳을 예약제로 운영하는 건 아닌데, 단골들끼리 암묵적 룰로 전화를 해서 예약을 하더군요.” 조태진 씨는 종종 해외의 위스키 바를 순례하기 위해 문을 닫는다고 덧붙인다.


별도의 메뉴판이 없는 모티에선 마스터가 손님의 취향을 묻는 방식으로 주문이 이뤄진다. 조태진 씨가 가장 먼저 추천한 위스키는 산토리와 니카의 올드 위스키. “일본의 오래된 위스키는 각기 다른 매력이 있어요. 산토리가 일본인의 취향에 맞춰왔다면, 니카는 우직하게 스코틀랜드식 위스키를 구현해냈죠.” 조태진 씨가 왼손에 장갑을 끼고, 스포이드로 물 1방울을 떨어뜨려 풍미를 더한 위스키 한 잔에는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다음은 이탄의 향이 코끝을 강하게 자극하는 스코틀랜드 아일레이섬(Isle of Islay)의 싱글 몰트위스키와 대면할 차례다. “킬호먼(Kilchoman)은 아일레이에 문을 연 마지막 증류소였어요. 현재는 크래프트 싱글 몰트위스키로 수많은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죠.” 김종관 감독은 호박 빛깔이 감도는 몰트위스키를 흡족하게 음미한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채우고 덜어내길 반복하는 위스키 잔. 그렇게 수정동의 어느 지하실을 메운 서늘한 공기는 조금씩 따스하게 데워진다.




DIRECTOR’S CUT

 

© 김종관



“모티의 주인장이 건넨 한 줌의 사료로 배를 채운 어린 고양이는 호기심 넘치는 모양새로 산복도로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SCENE 2 : 서구 남부민동

단정한 복국 한 그릇


수정동과 초량동을 잇는 산복도로에서 바라본 부산항 야경. 이곳 일대는 영화  친구,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했다. ⓒ 최남용

 일단 전날 밤의 기억부터 되짚어야겠다. 모티의 주인장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우리에게 불쑥 제안을 했다. 자신이 애정하는 비밀 장소에 함께 가자는 것. 그렇게 새벽 2시가 지난 시각. 주인장의 털털거리는 구형 푸조를 타고 우리는 수정동 산복도로를 수차례 넘나들며 내려갔고, 알 수 없는 또 다른 산복도로를 거슬러 올라갔다. 최민식 갤러리와 천마산 에코하우스가 차례로 보이더니 어느 순간 시야가 탁 트인 전망대가 등장했다. 천마산 허리를 가르는 산복도로에 자리한 부산항 전망대. 적막 속 부산항과 영도의 점멸하는 불빛이 눈앞을 가득 채운다. “영업을 마치고 단골손님과 종종 여기로 마실을 나옵니다. 부산 토박이도 잘 모르는 저만의 아지트죠.”


40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주방.  조미료를 넣지 않고 미나리와 복어만으로 맛을 낸 복국. ⓒ 최남용
쫀득한 식감이 일품인 복어 수육. ⓒ 최남용

모티 주인장의 아지트는 하나 더 있다. 그는 다음 날 전망대 아래의 식당에 꼭 가보라고 당부했다. 그렇게 이른 아침. 애초 계획에 없던 남부민동 언저리로 차의 방향을 튼다. 부산 남항 일대는 외지인의 발길이 닿는 동네는 아니다. 포구에는 뱃사람이 오랜 기간 들락날락했을 빛바랜 간판의 식당이 줄지어 있을 뿐. 그중 하나인 남포식당이 모티 주인의 단골집이다. 복국, 복수육, 회 딱 세 가지 메뉴가 단출하게 적힌 식당 철문을 밀고 들어서니 주인 할머니가 길손을 반긴다. 복국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 화로에 불을 붙이고 국을 끓이기 시작한다.


“이 프레임이 참 마음에 드네요. 저는 긴 시간을 버텨낸 장소나 사람을 보면 항상 존경심이 들곤 해요.” 홀로 정성스럽게 복국을 끓이고, 찬거리를 준비하는 모습을 응시하던 김종관 감독이 말한다. 40년간 한자리를 지킨 주방의 세간은 놀랍도록 정갈하다. 사실 그의 영화에서 주인공이 음식을 먹는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거리를 걷고 잠시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신을 연결하는 식이다. 이는 감독의 여행 패턴과도 꽤 닮았다. “여행 중 먹는 일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아요. 이런 오랜 손길이 닿은 식당을 만날 때를 제외하면요.” 여든이 넘었다는 주인장은 자갈치시장에서 떼온 밀복을 손질해 국을 끓이는데, 이른 시간에 찾으면 푹 삶은 복어 알과 뱃살도 서비스로 내준다. 살이 튼실한 복어 수육을 맛본 뒤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복국이 식탁의 빈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다. 조미료를 일절 첨가하지 않은 복어 자체의 순수한 맛이라고 해야 할까? 생경하면서도 기분 좋은 복국의 향과 맛에 이끌려 어느 순간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낸다. 김종관 감독은 속삭이듯 말한다. “딱 이 집 주방과 닮은 맛이네요.”




글. 고현       사진. 최남용






부산 여행의 재구성 이어진 이야기

Part 2. 영도 & 해운대

Part 3. 기장 & 중앙동

부산 자동차 여행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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