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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Nov 08. 2018

제주에서 영화처럼 여행하기


‘영화 같다’는 흔한 표현도 제주에서만큼은 클리셰가 아니다. 영화 촬영지부터 영감을 주는 공간까지 프레임 안과 밖을 넘나들며 제주의 극적인 장면을 포착해보자.


글. 이기선           사진. 임학현



드라마 <아이리스>(2009)의 마지막 신에 등장한 흰 등대는 제주의 대표적 로케이션 중 하나다. 서귀포 표선면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앞에 자리한다. ⓒ 임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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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영화관 활용법

서귀포관광극장

서귀포관광극장의 옥상에서 본 풍경. 서귀포관광극장은 이중섭미술관을 비롯한 서귀포의 문화 명소를 아우르는 ‘작가의 산책길’에 속해 있다. © 임학현

볕 좋은 이중섭거리 비탈길에 자리 잡은 서귀포관광극장을 대표하는 것은 바로 야외 무대를 에워싼 빛바랜 벽이다. 1960년대 동네 청년들이 돌을 하나씩 쌓아 올린 벽은 이제 담쟁이덩굴에 반쯤 뒤덮여 있다. “담쟁이덩굴이 반대쪽 끝까지 덮는 데 얼마나 걸릴지 내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제 계산으론 한 5년이면 될 것 같은데.” 서귀포관광극장의 이재정 예술감독이 벽을 가리키며 말한다. 머리 위로는 지붕 대신 서귀포 하늘이 펼쳐진다.


인디 뮤지션 어쩌다밴드의 공연 장면. ⓒ SEOGWIPO LOCAL RESIDENTIAL CONFERENCE

1963년 서귀포 최초의 영화관으로 문을 연 이곳은 1993년 화재로 지붕이 소실된 후 10년 넘게 버려져 있었다. 막이 내렸다 해서 그것이 극장의 끝은 아니었다. 서귀포시에서 건물을 임대해 재단장을 거쳐 2012년부터 복합 문화 공간으로 운영하게 된 것. 건물 외벽의 ‘상영중’란에는 서귀포관광극장의 간략한 역사가, ‘다음 프로’에는 이번 주 공연 일정이 붙어 있다. 영사기를 비롯해 대부분의 시설이 과거 그대로지만 2층과 옥상은 출입 불가다. 한때 상영관이던 공연장은 옛 영화를 회복하는 중이다. 이재정 예술감독이 수십 년에 걸쳐 네 가지 색으로 페인트칠한 바닥 위 흔적, 벽에 흐릿하게 남은 ‘화장실 입구’ 문구를 가리킨다. <맨발의 청춘> <사운드 오브 뮤직> <마지막 황제> 등의 영화를 상영하던 무대에서는 이제 주말마다 마임이스트의 비눗방울 공연이나 사우스카니발 같은 제주 지역 뮤지션의 콘서트가 열린다.


“서귀포관광극장은 서귀포 시민에게 추억의 장소예요. 1960년대에 안익태 선생이 이 무대에서 피아노 공연을 하다 영화 상영 시간이 다 되었다고 쫓겨나다시피 한 적도 있어요. 그땐 영화가 최고였으니까요.” 동행한 정영자 해설사가 지난날을 회상한다. “이젠 다들 신서귀포에 생긴 롯데시네마에 가지만요.” 이재정 예술감독이 우리를 특별히 옥상으로 안내해준다. 발아래에는 공연장이, 눈앞에는 섶섬과 새섬이 떠 있는 앞바다와 서귀포 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이중섭 화백이 화폭에 담은 바 있는 그 풍경을 한참 동안 롱테이크로 눈에 담아본다.


서귀포관광극장 공연 무료(공연 일정은 블로그에서 확인, 12~2월은 공연 없음), 10am~5pm, 064 732 1963, 서귀포시 이중섭로 25, seogwinet.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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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셰라 할지라도 괜찮은 바다

빈 하루 · 바당봉봉

영화 <>계춘할망>을 촬영한 구좌읍 평대리의 앞바다. 이곳에는 실제로 물질하는 해녀가 많다. © 임학현
돌집 스테이 빈 하루의 2인실 테이블. © 임학현

공포영화 <고사>와 액션영화 <표적>으로 데뷔 직후 연이어 성공을 거둔 창감독은 차기작으로 뜻밖에 가족 영화를 택한다. 영화 <계춘할망>(2016)은 대조적인 삶을 살아온 두 여성이 가족이 되는 이야기다. 창감독이 자신의 어머니를 모티프 삼아 직접 각본에 참여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제주에 홀로 사는 해녀 계춘할망(윤여정 분)은 12년 만에 잃어버린 손녀 혜지(김고은 분)를 만난다. 서울에서 불량청소년으로 거칠게 살아온 혜지는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는 할망과 지내며 점차 마음의 문을 연다. 극 중에서 배경은 상징적 요소다. 혜지가 지내던 서울은 으슥한 밤거리와 피씨방 등 어둡고 폐쇄적 공간으로 비춰지는 반면, 제주는 비현실적일 만큼 아름답다. 윤슬이 반짝이는 탁 트인 바다를 비추는 첫 신에서부터 시작해 샛노란 유채꽃밭, 숲 등이 스크린을 그득 채운다. 뻔한 클리셰에도 불구하고 모성애에 의한 치유라는 주제 의식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어느 인터뷰에서 창감독은 제주의 관광지를 배제하고, 가급적 알려지지 않은 장소를 찾아 다녔다고 언급했다. 극 중 계춘할망과 혜지가 생활한 집은 구좌읍 평대리 바닷가의 70여 년 된 돌집으로, 지금은 독채 스테이 ‘빈 하루’로 운영한다. 할머니와 손녀가 평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고, 마을 사람들과 잔치를 벌이던 마당에는 캠핑 의자와 해먹이 놓여 있다. 집은 대들보, 서까래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내벽을 뜯어내고 모던하게 꾸몄다. 창가에 걸린 파아란 유리 공예 작품이 햇빛에 반짝인다. “저는 정말로 매일 앞바다에 나가 수영을 해요.”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한 조동진 대표가 까맣게 탄 행복한 얼굴로 말한다. 평대해수욕장까지 걸어서 불과 수 분 거리다. “이곳에 오며 일과 여가가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됐어요. 머무는 손님도 모든 것을 비우고 쉬다 가길 바라요.”


페 바당봉봉의 유리창으로 바라보이는 평대리 앞바다. 캘리그래피로 꾸민 카페 바당봉봉의 외벽. © 임학현

빈 하루에 머문다면 필시 매일같이 바다로 나가거나 마을 근처를 산책하고, 돌담 건너편의 카페 바당봉봉에 발도장을 찍게 될 것이다. 카페는 과거 당근 창고였던 흙돌집 내부를 현대적으로 개조했고, <계춘할망> 촬영 당시에는 대기실 역할을 했다. 댕유자 에이드와 우도 땅콩 스무디를 내주며 최원석 대표가 배우 윤여정에게 제주 사투리를 가르쳐준 이야기를 곁들인다. 바당봉봉은 제주 방언으로 ‘바다가 차오를 때’라는 뜻. 그 이름대로 카페의 기다란 창에 새파란 바다가 담겨 있다. ‘하늘을 오롯이 품는 바다야말로 하늘보다 더 큰 존재’라는 계춘할망의 대사가 떠오른다. 이 풍경은 누구에게라도 영감을 줄 듯하다. 언젠가 제주에서 1달간 지내며 카페의 단골이 된 어느 시인은 <바당봉봉>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내기도 했다니 말이다.


빈 하루 1박 10만 원부터, 7·8월은 13만 원부터, 070 8883 3471,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1170-1, blog.naver.com/pd_vinharu

바당봉봉 음료 4,000원부터, 10:30am~7:30pm, 064 783 1344,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1170.






다음 이야기

물영아리오름 - 카페 밝은방 : 영화 <늑대소년>의 촬영지, 가수 요조의 책방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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