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의 유서 깊은 카페를 순례하며 오스트리아의 대표 디저트를 가장 맛있게 내는 곳을 찾아가보자. 전통 조리법에 실험 정신을 더한 아펠슈트루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웅장하고 화려한 도시 빈에서는 과장된 합스부르크(Habsburg) 왕가의 궁전부터 격조 높지만 때로는 쌀쌀맞은 커피하우스, 짜증을 잘 내기로 악명 높은 웨이터까지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를 제쳐두고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환기시키는 빈의 심장부로 (그리고 위장으로) 곧장 향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아펠슈트루델(Apfelstrudel)을 맛보는 일이다.
아펠슈트루델은 오스트리아인에게 곧 유년기다. 이 디저트에 관해 논한다면, 그들은 주방에서 오마(Oma, 독일어로 할머니)와 함께 기름과 밀가루, 계피, 가루 설탕에 파묻혀 보낸 아침을 떠올린다. 아펠슈트르델은 초가을 바람에 떨어진 사과를 모아 얄팍하게 썬 다음 길고 얇은 페이스트리에 층층이 쌓아 돌돌 말아 만든다. 현지인은 이를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어린 시절의 향수를 진하게 느낀다고.
오스트리아인에게 완벽한 슈트루델의 요건이 무엇인지 물으면 이마의 주름이 깊어질 것이다. 아마도 수백 가지의 대답을 듣겠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요건에는 탄력 있는 반죽과 포크로 살짝만 찔러도 바삭거리는 페이스트리, 뚜렷하게 층을 이루며 속에 꽉 들어찬 새콤한 사과, 한쪽에 곁들인 약간의 슐라고버스(Schlagobers, 휘핑크림)가 있겠다. 최고의 슈트루델을 정의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과연 그럴까?
유서 깊은 빈 제1구의 뒷골목을 배회하는 동안 도시는 느릿하게 잠에서 깨어나 파란 가을 하늘을 드러낸다. 화려한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 파사드에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다. 아직 인적이 드문 카페 테라스에서 첫 손님이 신문을 훑어본다. 고딕 양식의 육중한 성 슈테판 대성당(St. Stephen’s Cathedral) 아래에는 마차가 줄지어 서 있다. 트램은 19세기를 상징하는 대로 링슈트라세(Ringstrasse)를 따라 슬금슬금 움직인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슈트루델을 빨리 만나고 싶은 나는 아펠슈트루델 아이스(apfelstrudel eis, 아펠슈트루델 아이스크림)를 파는 1950년대 카페 아이다(Aida)로 향한다. 차가운 선데 컵에 담겨 나온 아이스크림은 부드럽고 크림 맛이 풍부하며, 버번 바닐라의 강한 맛과 사과 덩어리의 새콤한 맛이 응축돼 있다. 맛은 꽤 훌륭하지만 과연 이것을 슈트루델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닌 것 같다.
나는 웅장한 팔라이스 페르슈텔(Palais Ferstel) 안에 위치한 호화로운 커피하우스 카페 센트랄(Café Central)로 이동한다. 팔라이스 페르슈텔은 피렌체와 베니스에서 돌아온 하인리히 폰 페르슈텔(Heinrich von Ferstel)이 1860년에 지은 이탈리아식 궁전이다. 둥근 천장을 금으로 섬세하게 장식한 이곳의 실내에는 빈에서 박식하기로 꼽히던 영혼이 깃들어 있다. 프로이트(Freud)는 환자에게 벗어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이 카페를 찾았고, 트로츠키(Trotsky)는 이곳에서 체스를 두며 혁명의 다음 단계를 구상했다. 때마침 모더니즘이 싹텄으니 빈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카페 센트랄에서 슈트루델을 주문하자 바닐라 소스와 휘핑크림, 혀에서 사르르 녹는 말린 사과 조각이 아름답게 담겨 나온다. “즐거움은 눈에서 시작됩니다.” 카페 센트랄의 직원 아나 카르넬(Anna Karnel)이 말한다. “아펠슈트루델이 상사병을 치료하고 죄마저도 숨길 수 있다는 오스트리아 속담이 전해지죠.” 그녀가 웃으며 덧붙인다. 이곳의 슈트루델은 과식을 부를 것만 같다. 진한 맛과 바삭한 식감은 물론, 다진 호두와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그래니 스미스(Granny Smith) 품종의 사과가 넉넉하게 들어 있다. 하지만 칼바도스(calvados, 사과주를 증류한 술)의 맛이 조금 과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어둑한 실내에 포스터가 잔뜩 붙은 카페 알트 빈(Kaffee Alt Wien)으로 발길을 옮긴다. 웨이터에게 슈트루델에 관해 질문을 던지자 그는 심술궂은 농담을 낮게 읊조린다. 시간이 없어서 비어니스(Viennese, 빈 현지인)가 아니면 얘기를 나누기 곤란하다는 투다. 나를 제외한 손님은 단 1명뿐인데도 말이다. 주문한 슈트루델은 금빛을 띠고 따스했으며, 버터 맛이 강해 제법 만족스럽다. 어떻게 만드는지 물어보자 웨이터는 눈동자를 굴리며 말한다. “그건 비밀입니다. 하우스프라우네나르트(Hausfrauenart, 가정에서 만드는 조리법)라고만 해두죠.”
슈트루델에 항상 사과를 넣는 건 아니다. 빈 도서관에는 1696년에 손 글씨로 쓴 가장 오래된 슈트루델 조리법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우유와 순무를 사용했다고 한다. 물론 사과를 사용한 게 맛이 더 뛰어나며, 바닐라와 계피 같은 향신료를 가미하면 풍미가 한층 풍성해진다. 슈트루델의 정확한 유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바클라바(baklava, 터키 디저트)와 유사한 이 페이스트리가 커피와 마찬가지로 터키에서 건너왔다는 설이 유력해 보인다.
슈트루델 조리법보다 시대를 앞선 것 중에는 빈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이자 레스토랑 겸 델리, 와인 선술집인 줌 슈바르첸 카멜(Zum Schwarzen Kameel)이 있다. 이곳의 이름은 당시 왕성하게 활동하던 향신료 무역상이자 1618년에 이곳을 연 요한 밥티스트 카멜(Johan Baptist Cameel)에게서 가져왔다. 4세기가 지난 오늘날 나무 부스와 포도덩굴로 장식한 금빛 타일을 두른 카페의 모습은 아르누보에 바치는 헌사처럼 보인다. 지난 10년간 이곳은 슈트루델에 관한 재해석을 시도했고, 그 결과 유리잔에 해체시킨 슈트루델을 선보이게 됐다.
“우리는 전통 조리법에 창의력을 입히고 싶었습니다.” 케이터링 담당자 한스 위르겐 제를로트(Hans-Jürgen Serloth)가 말한다. “모두가 슈트루델을 좋아하죠. 그래서 우리는 유리잔에 층층이 쌓은 슈트루델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버번 바닐라를 섞은 사워크림, 뭉근하게 끓인 사과, 휘핑크림, 달걀계피무스를 쌓고 맨 위에 그라파(grappa, 포도로 만든 이탈리아 증류주)에 절인 건포도와 바삭한 페이스트리를 얹었죠.” 이곳의 슈트루델은 한 숟가락 떠먹을 때마다 새로운 맛이 혀를 강타한다. 마치 유리잔에 담긴 크리스마스 같다.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든 즐길 수 있는 선물 같은 맛이다.
슈트루델에 관한 나의 왕성한 호기심은 링슈트라세의 카페 란트만(Café Landtmann)으로 이어진다. 링슈트라세의 공연장에선 세계적으로 칭송받는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다. 카페 란트만의 주인 베른트 케르펠트(Berndt Querfeld)는 비어니스 특유의 목이 잠긴 듯한 느릿한 말투와 슈트루델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의 소유자다. “최고의 슈트루델은 어머니나 할머니가 만든 것입니다. 표준 조리법 같은 건 따로 없어요. 사랑으로 만들어서 미지근하게 식힌 다음 곧장 먹어야 하죠. 뜨거워선 안 됩니다. 슈트루델은 절대 뜨거우면 안 돼요.” 이곳의 슈트루델이 딱 그렇다. 견과류가 없는 대신 사과층이 두텁고 얇은 페이스트리가 겹겹이 쌓여 있다.
단것을 너무 많이 먹어서 어지러울 지경이었지만 한 조각 정도는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빈에 사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마지막으로 데멜(Demel)의 슈트루델을 맛보기로 한다. 1786년 문을 연 이곳은 합스부르크 왕가에 케이크와 과자류를 공급하던 카페다. 구리 돔을 씌운 호프부르크(Hofburg) 궁전 바로 건너편에 있는 데멜은 주렁주렁 매달린 샹들리에와 치장한 벽토 덕분에 호프부르크 궁전과 흡사하게 보인다.
훤히 개방된 주방에서는 슈트루델 만들기가 한창이다. “페이스트리는 아래에 깔린 연애편지를 읽을 수 있을 만큼 얇아야 합니다.” 데멜의 제빵사가 말한다. “1밀리미터가 넘으면 안 돼죠.” 그는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반죽을 밀더니 대리석 조리대 위에 침대 시트를 털 듯 반죽을 펼친다. 길이가 2미터, 아니 3미터쯤 되는 듯하다. 이어 하얀 천을 가져오더니 반죽을 빠르고 꼼꼼하게 슈트루델 모양으로 만다. “저희는 조나골드(Jonagold)나 골든 딜리셔스(Golden Delicious)처럼 신맛이 강한 품종의 사과를 사용합니다.” 커다란 슈트루델을 오븐에 밀어 넣으며 그가 덧붙인다.
물론 맛을 봐야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슈트루델을 의무적으로 입에 넣는다. 슈트루델 안에 꽉 찬 사과가 새콤한 맛을 강하게 내고, 통통한 건포도와 잘게 다진 호두 그리고 구운 설탕 맛의 반죽 표면이 신맛을 훌륭하게 보완해준다. 너무 달거나 계피 맛이 강하지도 않은 딱 균형 잡힌 맛. 바로 이것이다. 잠시 후 나는 패배를 인정하는 한숨을 내쉬며 슈트루델을 절반 정도 남긴 접시 위에 포크를 내려놓는다. 마침내 완벽한 슈트루델을 찾았지만 한 입도 더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까.
> 재료(10인분)
페이스트리
밀가루 50g
기름 50g(식물성 혹은 유사 제품)
물 110mL(너무 차갑지 않은 상태)
소금 2g
달걀 흰자와 노른자 섞은 것 20g (작은 달걀 반개 정도 분량)
속 재료
얇게 썬 사과 1.7kg (그래니 스미스나 골든 딜리셔스 품종 추천)
레몬즙 25mL
빵가루 170g (오븐에 구운 뒤 녹인 버터를 섞어 식힌 상태)
계피 설탕 65g
굵게 다진 호두 35g
럼에 절인 씨 없는 건포도 35g
장식
가루 설탕
1. 페이스트리 재료를 모두 섞어 5분 동안 치댄 다음 반죽을 실온에서 최소 2시간 휴지한다.
2. 페이스트리에 밀가루를 넉넉히 뿌린 다음 길쭉하게 밀어서 편다.
3. 슈트루델용 천(면 티 타월 혹은 냅킨)에 밀가루를 뿌리고 손등을 이용해 크기 60cm x 70cm 정도 면적이 될 때까지 페이스트리를 얇게 편다.
4. 녹인 버터를 페이스트리에 붓으로 바른 다음 한쪽에 버터를 섞은 빵가루를 펼친다.
5. 빵가루 위에 사과를 고루 펼친 다음 계피, 설탕, 호두, 럼에 절인 건포도를 올린다.
6. 천을 이용해 슈트루델을 돌돌 만 다음 종이를 깐 제빵 틀에 넣는다. 윗면에 녹인 버터를 다시 바른다.
7. 금빛이 도는 갈색이 될 때까지 200도 온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30분 동안 굽는다.
플레이팅
식힌 슈트루델을 썰어서 가루 설탕을 뿌리고 휘핑크림과 함께 낸다.
카페 데멜 레시피 참조(demel.com)
글. 케리 크리스티아니(Kerry Christiani, 인스타그램 kerrychristiani)
사진. 소냐 프릴러(Sonja Priller, 인스타그램 prillerson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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