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서부 끝의 브르타뉴 지방은 아직까지 변방의 혼을 간직한다. 기상천외한 꿈을 꾸는 자의 섬과 혁신의 터전이 이곳에 있다.
2007년 6월 30일, 낭트 레 마신 드 릴의 주요 어트랙션인 그랑 엘레팡이 첫 발걸음을 떼었을 때 수만 명이 이를 보러 왔다. 오늘날 매년 60만여 명이 레 마신 드 릴을 방문한다. ⓒ 고아라
폐창고 앞에 몰려든 한 무리의 구경꾼이 괴수가 움직이기를 기다린다. 오후 3시 정각, 창고 그늘에서 꼼짝 않던 녀석이 드디어 한 발짝 느릿느릿 내딛는다. 높이 12미터, 길이 21미터, 무게 48.4톤짜리 육중한 몸체가 프랑스 서부의 최대 도시 낭트(Nantes)의 눈부신 햇살 아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나무와 철로 된 그랑 엘레팡(Grand Éléphant)의 행진 시간. 기계 코끼리가 긴 속눈썹을 끔뻑이고 가죽 귀를 펄럭이며 62개의 실린더로 만들어진 다리를 움직인다. 올해 초에 새로 마련한 하이브리드 모터를 장착하고 시속 1~3킬로미터로. 몸체 아래쪽에 숨은 운전수와 눈이 마주치더라도 그 자태는 여전히 경이롭다. 그랑 엘레팡은 긴 코를 구부렸다 폈다가 하고 물줄기를 뿜어대면서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프랑스에서 가장 긴 루아르(Loire)강 하단에 떠 있는 이곳 레 마신 드 릴(Les Machines de l'île)은 낭트의 버려진 공장 섬에 2007년 문을 연 놀이공원이다. 1세기 전, 공상과학소설의 아버지 쥘 베른이 근처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는데, 이는 후대에 중요한 상징성을 남겼다. 쥘 베른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를 그대로 본떠 마신 드 릴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쥘 베른의 1880년 작 <La Maison à Vapeur> 속 주인공들은 기계 코끼리가 끄는 바퀴 달린 집을 타고 여행한다. 레 마신 드 릴은 오늘날 낭트의 도전 정신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된 후 낭트 시민은 아무렇지 않게 도시를 다시 지어 올렸다. 낭트를 먹여 살리던 조선업이 1980년대부터 쇠락하면서 도심 공동화를 겪을 때에는 예술에서 답을 구했다. 빈 건물에 예술가 스튜디오가 들어섰고, 골목 구석구석에 설치미술 작품이 세워졌으며, 한때 거대 조선소와 공장이 있던 일 드 낭트(Île de Nantes)에는 기계 코끼리를 포함해 개성 넘치는 기계들이 입주했다. 배에서 괴수로 바뀐 점만 빼면 여전히 ‘기계의 섬’인 셈이다.
대서양에서 들어온 무수한 배가 항구를 드나들고, 허공에는 세계 여행의 꿈이 떠다니던 시절이었다. 시대 정신을 흡수한 쥘 베른은 12세 때 루아르강을 따라 내려가 생나제르(Saint-Nazaire)에 이르러 난생처음으로 바다를 보았고, 그 후 종종 보트를 빌려 루아르강을 따라 항해를 즐겼다고 한다. 그랑 엘레팡 행진의 종착점인 르 카루셀 데 몽드 마랭(Le Carrousel des Mondes Marins)은 쥘 베른의 1870년 작 <해저 2만 리>에서 영감을 받은 회전목마다. 3층에 걸쳐 재활용 자재로 만든 35개의 탈것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서 탈것은 목마 대신 <해저 2만 리> 속 심해 동물을 의미한다. 1층에는 수심이 가장 낮은 곳에 서식하는 게와 오징어가, 2층엔 물고기가, 꼭대기 층에는 해파리와 보트가 있다. 카루셀에서 레 마신 드 릴의 직원 리바 아브두(Riva Abdou)를 만난다. 선글라스에 겨자색 누빔 재킷, 완두콩색 카고 바지를 빼 입고 연신 농담을 하는 아브두는 베른의 소설 속 등장인물처럼 보인다. 그를 따라 라 갈레리 데 마신(La Galerie des Machines)이라는 아이디어 실험실로 향한다. 거대한 옛 공장 건물 안에서는 2016년에 제작한 2톤짜리 거미가 승객 넷을 싣고 천장까지 느릿느릿 떠오르기 시작한다. 기계 곤충과 벌새는 수풀 뒤에 웅크리고 있다. “6개월마다 기계 한두 대를 제작해요.” 아브두가 말한다. 이렇게 완성된 기계는 2021년 루아르 강둑에 모습을 드러낼 아르브르 오 제롱(Arbre aux Hérons)의 일부가 될 예정이다. 35미터 높이의 나무에는 계단 역할을 하는 가지 22개와 공중 정원이 우거지고, 기계 거미와 새가 우글거릴 것이다.
오늘날 낭트는 행정구역상 브르타뉴 남쪽 페이드라루아르(Pays de la Loire)에 속하지만, 여전히 브르타뉴의 문화 수도로 통한다. 939년부터 1532년까지 독립국가였으며, 프랑스로 통합된 이후에도 독립적 기질을 유지한 브르타뉴 공국의 수도였기 때문이다. 르 마신 드 릴 정문에서 나와 흰 곡선이 어지럽게 그려진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에는 21세기의 낭트를 탐험할 차례다. 낭트 도심의 명소와 갤러리, 설치미술 작품을 따라 바닥에 초록색 선이 그어져 있는데, 길이가 총 12킬로미터에 이른다. 이름하여 ‘초록색 선을 따라가세요’. 선을 따라가면 웬만한 볼거리는 전부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거리의 예술작품은 “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다. 가게들은 얼마나 기발한 간판을 만들지 경쟁하는 것 같고, 자르댕 데 플랑트(Jardin des Plantes)에는 거인이 앉을 법한 의자가 있다. 브르타뉴 공작의 성(Château des ducs de Bretagne)에는 성벽 꼭대기에서 바깥으로 몇 초 만에 나갈 수 있는 초대형 미끄럼틀을 설치해놓았다. 다만 오늘 저녁 식사는 완벽히 고전이다. 1895년에 문을 연 아르누보풍 브라스리 라 시갈(La Cigale)에서 해산물을 양손으로 까 먹고 몇 시간에 걸쳐 식사하기. 식전빵에는 프랑스 여느 지역과 달리 가염 버터가 곁들여 나온다. 소금이 나는 땅에 왔다는 한 가지 증거로.
낭트를 떠나 서쪽으로 방향을 튼다. 쥘 베른처럼 루아르강을 탐험하려는 건 아니고, 강을 따라 뻗은 60킬로미터의 아트 트레일 에스튀에르(Estuaire)를 따라갈 것이다. ‘강 하구’를 뜻하는 에스튀에르는 30개의 야외 설치미술 작품을 잇는 루트. 낭트부터 루아르강 하구 도시 생나제르까지 이어진다. 설치미술 작품 중 11개가 낭트에, 2개가 생나제르에 있다. 낭트 근교의 동네 카페에서 커피 1잔을 마시고 마을 외곽으로 가면, 짙은 물안개가 피어오른 건너편 강둑에 빈집 1채가 살짝 물에 잠긴 채 기우뚱 서 있는 게 보인다. 이름하여 <메종 당 라 루아르(Maison dans la Loire)>. 이 지역의 몽환적인 습지 풍경에 반한 낭트의 연극 감독 장뤼크 쿠르쿨(Jean-Luc Courcoult)은 자신의 이력에 걸맞게 연극적 효과를 발휘하는 이 작품을 설치했다. 루아르강과 대서양이 맞닿은 해안가에 이르러, 라벤더 수풀 언덕 너머로 가면 중국 현대 예술가가 제작한 130미터 길이의 알루미늄 바다뱀을 만날 수 있다. <세르펭 도세앙(Serpent D’océan)>은 대서양에서 이곳까지 거슬러 올라온 바다뱀의 형상을 띤다. 고된 여정이었는지 뼈만 남았지만.
여기에서 길이가 3,356미터에 달하는 생나제르 다리 (Le pont de Saint-Nazaire)를 건너면 150년 넘는 역사의 프랑스 최대 조선소, 광대한 샹티에 드 라틀랑티크(Chantiers de l’Atlantique)가 펼쳐진다. 이제 항구도시 생나제르에 온 것이다. 마지막 에스튀에르 작품을 보기 위해 조선소 외곽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잠수함 에스파동(Espadon) 옥상으로 올라간다. 규모가 2킬로미터에 달하는 설치미술 작품 <스위트 드 트리앙글(Suite de Triangles)>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 여러 채의 컨테이너 건물 지붕에 걸쳐 거대한 붉은 삼각형을 그려놓았는데, 특정한 지점에서야만 모든 삼각형이 완전하게 보인다. 여기에서 몇 센티미터만 벗어나도 도형이 어그러지고 만다. 그 반대쪽에 펼쳐진 대서양과 절묘한 대조를 이루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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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수많은 프랑스인이 바캉스를 위해 서부로 온다. 생 나제르에서 20분 떨어진 해변 휴양지 라 볼 에스쿠블라크 (La Baule-Escoublac), 일명 ‘라 볼’. 12킬로미터 길이의 이 초승달 해변에는 새벽이면 말을 탄 사람이 지나가고, 해가 뜨면 사람들이 선베드나 비치 타월에 드러누워 책을 읽거나 가만히 바다를 바라본다. 청바지와 스트라이프 티셔츠 차림으로 친구와 수다를 떠는 할머니의 가방에 모든 상황을 요약하는 글귀가 쓰여 있다. “Je pars a la plage(나는 해변에 간다)”.
휴양지로서 라 볼의 명성은 무일푼이던 프랑수아 앙드레(François André)가 제1차 세계대전 후 라 볼의 한 호텔을 사들이면서 시작됐다. 이것이 오텔 바리에르(Hôtel Barrière) 그룹의 두 번째 호텔, 호텔 르 루아얄 라 볼(Hotel Le Royal La Baule)의 전신이다. 해변가 천막 레스토랑에서 후식으로 형광색 플립플롭 모양의 시트롱 타르트를 먹으며, 바리에르의 홍보 책임자 릴리아 밀리에(Lilia Millier)에게 이곳을 찾은 유명 인사의 이름을 묻자 끝도 없는 답이 돌아온다. “어디 보자. 1930년대의 에디트 피아프도 있고, 제라르 디파르디외, 카트린 드뇌브, 제인 버킨, 소피 마르소, 마리옹 코티아르….” 이 정도면 굳이 따지는 게 무색할 정도다.
아직 서쪽으로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라 볼에서 그림 같은 마을 바츠 쉬르 메르(Batz-sur-Mer)를 거쳐, 염전으로 유명한 중세 도시 게랑드(Guérande)에 잠깐 들른다. 전통 방식 그대로 밀가루를 빻는 언덕 위 풍차를 지나 대륙 끝 르 크루아시크(Le Croisic)의 해안 도로를 달려간다. 대서양의 짙푸른 파도가 암벽에 시원스레 부딪치고, 해안가 벤치에는 노부부가 앉아 있곤 한다.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해초 농장 레 자르댕 드 라 메르(Les Jardins de la Mer)가 이곳에 있다. 해초는 프랑스에서 최근 떠오르는 식자재인데, 이 마을에서는 20년 전부터 해초를 먹어왔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가 이 농장의 해초를 사 간다고 한다. 레 자르댕 드 라 메르에선 방문객을 위해 해초 채취 체험과 해초 쿠킹 클래스도 제공한다. 운영자 장 마리 페드롱(Jean-Marie Pedron)이 이곳에서의 가장 행복한 순간에 대해 말한다. “매일 아침 해초를채취하러 갈 때요. 여름이면 새벽 5시 30분에 나가는데, 아무도 없는 해변에 처음 발을 담글 때 가장 기분이 좋아요.”
이기선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이번 여행 동안 매일 조식으로 크레프를 먹었다. 사진가이자 여행작가인 고아라는 저서 <그리스 홀리데이>를 출간했으며, 여러 매체에 여행기를 기고한다.
취재 협조 프랑스 관광청(kr.france.fr), 에어프랑스(airfrance.co.kr), 역사 속으로 떠나는 여행(voyage-en-bretag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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