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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Nov 27. 2018

'요즘 용인 사람들'
용인으로 떠나는 힐링 근교 여행


용인에는 그간 잊고 지내던 삶이 있다. 손으로 의식주를 짓고, 발효되는 시간을 기다리며, 새로운 사실보단 오래된 생각에 감탄하는 것. 도시와 농촌 사이, 용인에서 반보 느린 걸음을 걷는 요즘 사람들을 만난다.



글. 김수지     사진. 임학현






Bed & Breakfast

아버지가 지은 집, 아들이 짓는 음식

아담한 산 아래, 고즈넉한 정취를 가진 효종당. ⓒ 임학현

 가을 아침. 분당선 전철 안에서 출근하는 인파 사이에 몸을 섞는다. 퍼즐을 맞추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 몸을 겨우 끼워 아래로, 아래로 향한다. 탑승객의 밀도가 느슨해질 즈음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졸음을 깨운다. 행선지는 용인. 몇몇 사람과 함께 구성역에서 내린다. 일행의 차에 동승해 동백 지구 백현 마을로 이동한다. 용인의 북쪽은 택지로 조성한 신도시다. 아파트 단지 뒤편 가까이에 아담한 산이 서 있는 동네의 모습은 꽤 평화롭고 어느 정도 익숙하다.


그러니 효종당의 존재는 뜻밖이다. 원거리 이동이나, 구불구불한 길을 달릴 수고를 감수해야 마땅할 풍경이 도시 한쪽에서 느닷없이 등장하니까. 좁은 터널 뒤편, 산자락에 덩그러니 놓인 한옥 1채. 직각의 아파트 단지와 대비되는 능선이 여유롭게 흐른다. 고독한 기와집은 빽빽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신도시에는 지금도 아파트 몇 채가 새로 올라가고, 산 너머에는 신라 시대에 쌓은 할미산성이 늙어간다. 두 세계 사이에는 그리 높지 않은 언덕 하나가 있을 뿐이다.





“앞으로는 땅에서 직접 기르고, 자연 발효해 요리하는 식당이

더 늘어나고 잘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효종당 박종혁 셰프. ⓒ 임학현

  “도시에서 생활하다가 전원 생활을 꿈꾸며 부모님이 지으신 집이에요. 이 동네는 아버지의 고향이고요. 옛날엔 시골이었는데 택지 지구로 개발되면서 산 쪽에 집을 짓게 됐습니다.” 효종당을 지은 박천희 씨의 아들이자 이곳의 총괄 셰프인 박종혁 씨가 이야기한다. 그의 안내로 장독 수십여 개가 조르르 선 마당을 가로질러 안채로 향한다. 천장이 높아 탁 트인 느낌이 드는 한옥은 주택이라기엔 규모가 꽤 크다. 넓은 대청마루에 앉으니 그가 차를 내오며 말한다. “전통 한옥을 짓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목수를 지휘하는 도편수입니다. 운 좋게 수원 화성행궁을 복원한 이일구 대목이 효종당의 도편수로 참여했어요. 찾아오는 손님마다 이렇게 멋진 집을 혼자 누리지 말고, 스테이로 운영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죠.” 그렇게 그의 가족이 효종당을 개방한 것은 올해로 6년째. 박종혁 셰프는 이곳에서 17년을 살았고, 부모님이 지금도 안채 한쪽에 머문다.


박종혁 셰프의 가족은 사랑채의 방 2개와 안채에 딸린 방 하나 그리고 대청마루와 누마루를 모두 손님에게 내어준다. 침실과 다실, 작은 툇마루를 갖춘 사랑채의 객실 ‘향나무’에 들어서자 박종혁 셰프가 툇마루 쪽의 분합문을 열어 서까래에 올린다. 탁 트인 집에 선선한 가을바람이 차고, 맨드라미와 나팔꽃이 자유분방하게 핀 앞뜰이 풍경을 가득 메운다. 아늑했던 방이 금세 근사한 별장으로 변한다. “한옥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은 사계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거예요. 겨울에는 나무 틈으로 바람이 새어들어 춥지만 그런 대로 괜찮아요. 비 오는 날엔 운치가 있고, 바람 부는 날에는 풍경 소리가 아주 좋아요.” 




분합문을 천장에 걸어두고 즐기는 차한잔. 효종당 마당 한쪽을 차지한 장독. ⓒ 임학현

효종당의 진가는 건축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것에 있다. 마당을 가득 채운 장독 안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전통장이나 안채에 딸린 방 한쪽 선반 위에 보관하는 전통 소반 컬렉션처럼. 양식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박종혁 셰프가 한식으로 전향한 지는 이제 10년. 2년 전 여의도 콘래드호텔 한식 셰프로 근무하던 그는 효종당에서 또 다른 시작을 하기 위해 직장을 떠났다. “우리나라는 24절기에 맞춰 농사를 짓고, 그때그때 난 작물에 따라 철마다 먹는 음식이 다르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효종당에서 저의 음식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투숙하는 손님을 대상으로 아침상부터 점심, 저녁까지 제철에 맞는 한식을 내려고 해요.” 한 사람당 상 하나를 쓰던 우리 전통 그대로 장인의 목공방에 의뢰해 제작한 전통 소반에 아침상을 내고, 점심과 저녁은 요리 하나하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코스 메뉴로 제공할 계획이라고. 오랜 시간에 거쳐 양식에서 한식으로, 호텔에서 한옥으로 자리를 옮긴 박종혁 셰프의 다음 10년은 그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는 땅에서 직접 기른 식자재를 사용하고, 자연 발효해 요리하는 식당이 더 늘어나고 잘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해오던 것이지만, 점점 그렇게 사는 게 쉽지 않을 테니까요.”






Drink

발효가 인간을 만들었다

술샘 양조장 1층에 자리한 카페 미르 내부. ⓒ 임학현

효종당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15분 정도 이동하면 전통주를 담그는 로컬 양조장을 만날 수 있다. 고양이가 낮잠을 자는 테라스 딸린 아담한 3층 건물. 술 박물관 하나쯤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1층엔 전통주 양조장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모던한 카페가 자리한다. 술이 진열된 한쪽 벽면 앞에 바(bar)로 된 시음대가 있다. 견학보다는 커피 한잔의 여유가 어울리는 공간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매년 지역의 우수 양조장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양조장’을 선정한다. 지금까지 전국 양조장 34곳이 선정됐고, 술샘도 그중 하나다. 2012년에 시작해 현재의 사옥을 2015년에 완공했으니, 100년이 다 되어가는 다른 곳에 비해 이력은 짧지만 술샘의 양조 과정은 매우 전통적이다. 대부분의 양조장이 사용하는 일본식 개량 입국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 발효로 술을 빚는다. 통밀을 빻아 황국균을 띄운 전통 누룩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별도의 효모를 첨가하지 않고 누룩과 그 안의 효모로만 발효한다. 쌀을 100퍼센트 당으로 분해하고, 다시 알코올로 100퍼센트 전환하는 개량 입국에 비해 제조 시간도, 쓰는 재료도 배로 든다. 그러니 술샘이 추구하는 바는 기존의 양조 사업과는 맥이 좀 다르다. 





“‘프리미엄’이라는 말에는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게 아니에요.

조금 다르게 만들어보는 거죠.”

술샘 신인건 대표. ⓒ 임학현

“처음엔 취미였어요. 가양주연구소에서 양조 과정을 배웠고, 최종 단계인 지도자 과정까지 수료했습니다. 더 이상 배울 게 없으니, 1기 동기들과 함께 스터디를 만들어 누룩과 술을 제조해보던 게 시작이었죠.” 신인건 대표가 웃으며 이야기한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전통주 명인분들을 만나 조언을 들었어요. 한결 같이 ‘젊은이 그러지 말게’라는 말씀만 하셨죠.” 신인건 대표는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임을 알고도 시설에 투자했다. 지하의 제조실에는 술항아리 대신 대량생산이 가능한 스테인리스스틸 용기를 들였다. 그의 생각은 맞았다. 전통주 시장은 점점 성장하고 있으며, 올해 그는 부지에 양조장 하나를 더 지을 계획이다.


술샘의 술은 전통을 잇되 트렌디한 감각을 놓치지 않아 젊은 세대에게 반응이 좋다. 전통 누룩으로 발효한 프리미엄 탁주 ‘술취한원숭이’ ‘붉은원숭이’가 좋은 예다. 플라스틱이 아닌 유리병에 담고, 원숭이를 전각으로 표현한 패키지 디자인 또한 고급스러워 분위기를 낼 때 안성맞춤이다. 동일한 막걸리를 생주와 살균주로 구분해 출시한 것인데, 술의 빛깔이 진한 선홍색을 띤다. “막걸리를 ‘라이스 와인’에 비유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색도 예쁘고 향도 좋아 이 술을 마실 땐 와인잔을 이용합니다.” 신인건 대표가 와인잔에 따른 술을 건넨다. 그가 건넨 생막걸리 술취한원숭이는 감미료 없이 오직 물과 쌀, 누룩으로만 빚어 은은한 단맛이 돌고, 도수가 높은 편인데도 부드럽다. “슈퍼푸드인 홍국쌀로 빚은 막걸리예요. 홍국균을 배양해 건조한 쌀인데, 발효되면서 붉은 빛깔과 특유의 향을 내죠. ‘프리미엄’이라는 말에는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게 아니에요. 조금 다르게 만들어보는 거죠.”



시중 막걸리는 보통 6도 정도인데, 술취한원숭이는 10.8도다. 감미료를 넣지 않아도 쌀이 지닌 고유의 단맛을 즐길 수 있다. ⓒ 임학현

 신인건 대표의 말처럼 술샘이 기존 양조장과 조금 다른, 프리미엄 타이틀을 갖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곳은 그저 제조 시설이 아니라, 기획 단계부터 ‘찾아오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것. 지난해 사옥 1층에 카페를 오픈한 이유도 그래서다. “용인은 지역적 이점이 매우 커요. 사람들이 편하게 올 수 있으니까요. 많은 사람이 술샘을 찾아오도록 앞으로 더욱 다양한 스토리를 담으려고 해요.” 그의 말처럼 술샘의 성장은 진행 중이다. 고려 시대의 고급 술 이화주처럼 문헌에 근거해 다양한 전통주를 복원하거나, 전통 누룩으로 발효한 술을 만드는 것 외에도 누룩을 활용한 소금, 전통 발효 식초 등 발효식품 사업으로까지 저변을 넓히고 있다. “뒤쪽 부지에 발효 클러스터를 만드는 게 최종 목표예요. 맥주 브루어리도 들어올 수 있고, 식당도 들어올 수 있겠죠.” 신인건 대표의 포부는 전통술을 넘어, 좋은 먹거리와 문화에 관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김수지는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것, 생명체를 다루는 일에 관심이 많다. 디자인에 과감히 투자하는 사진가 임학현과 함께 GHGM에서 원목 소품을 하나씩 구입했다.








용인 힐링 여행 

이어진 이야기

Part 2. GHGM : 나무도 숨을 쉰다

Part 3. 동춘상회 : 가장 한국적인 것이 아름답다

Part 4. 어 로프 슬라이스 피스 : 젊은 농부가 꾸는 꿈

용인 여행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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