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다테 시간 여행
일본 최초의 개항 도시인 하코다테는 과거의 흔적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100년이 훌쩍 지난 유럽식 가옥에서 푸른 항구를 내다보고 포근한 만에 늘어선 옛 창고를 서성이며 도시에 깊게 밴 낭만적 기운을 만끽해보자.
하코다테 항구 남쪽 언덕에 걸쳐 있는 모토마치(元町)는 1854년 개항과 함께 조성된 동네다. 유럽식 가옥이 늘어선 이곳의 역사를 알아보고 싶다면 구 영국영사관으로 향하자. 1913년부터 1934년까지 영국영사관으로 쓰인 이곳은 오늘날 개항 기념관으로 활용 중이다. 앤티크 가구와 괘종시계 등으로우아하게 재현한 집무실과 도시의 개항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관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이라이트는 1층에 있는 영국식 티 룸 ‘빅토리안 로즈’. 창 밖의 장미 정원을 내다보며 향긋한 홍차와 애프터눈 티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 입장료 300엔, 애프터눈 티 세트 1,500엔, 9am~7pm(동절기 5pm까지), hakodate-kankou.com/british/kr
모토마치에서 바다를 향해 뻗은 비탈길 중 하치만자카(八幡坂)는 언제나 방문객으로 북적이는 포토 스폿이다. 영화와 광고에 숱하게 등장한 이 언덕 꼭대기에선 푸른 바다와 아기자기한 가옥이 어우러진 정경이 펼쳐진다. 길 중턱에는 감흥을 이어가기 좋은 카페가 자리한다. 옛 은행 건물의 보일러실을 개조한 셀렉트 커피숍 피스피스. 주인장이 직접 블렌딩한 원두로 정성스럽게 융 드립 커피를 내는 이곳은 개성 강한 디자이너의 작업실처럼 보인다. 실제로 주인은 카페를 상징하는 스모 선수 캐릭터를 직접 디자인했으며, 라벨 인쇄도 본인이 한다고.
ⓘ 커피 600엔, 12pm~5pm, 인스타그램 oshiocoffee
모토마치에서 베이 지구(ベイエリア)로 넘어가는 도중 담쟁이 넝쿨로 덮인 살굿빛 2층 가옥이 시선을 끈다. 여행 마니아인 주인장이 이스탄불에서 배워온 터키 음식을 내는 파자르 바자르다. 화덕에 굽는 샤슬릭 케밥과 치킨 커리, 피타 샌드위치 등 이국적 향신료를 가미한 터키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다락 구조로 된 2층에 테이블 4개가 전부일 만큼 아담하지만, 구옥의 목재를 활용해 손수 작업한 인테리어가 산장 같은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파자르 바자르는 터키어로 ‘선데이 마켓’을 의미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일요일은 휴무다.
ⓘ 케밥 1,200엔부터, 11am~5pm(금〮토요일 8pm까지),일 · 월요일 휴무, pazarbazar.org
유서 깊은 항구 도시의 분위기는 베이 지구에 이르러 확연해진다. 육중한 붉은 벽돌 창고 7동이 수로를 사이에 두고 이어져 있는 가네모리 아카렌가 창고 덕분이다. 오늘날 이곳은 하코다테 최고의 쇼핑 명소로 거듭났다. 각 창고마다 수십여 개의 기념품 상점과 레스토랑, 디저트 카페가 모여 있어 방문객의 발길을 수시로 지체하게 만든다. 겨울에는 창고 입구에 세워놓은 초대형 트리가 낭만적 정취를 더한다. 옛 우체국 건물에서 오르골과 유리공예품을 판매하는 하코다테 메이지관(函館明治館)과 지역의 대표 식자재를 모아놓은 해산물 시장도 함께 방문해보자.
ⓘ 9:30am~7pm, hakodate-kanemori.com
하코다테가 자부하는 음식을 꼽을 때 시오라멘이 빠지면 곤란하다. 소금으로만 간을 맞추는 시오라멘은 20세기 초 하코다테에서 탄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의 차분한 분위기를 닮은 담백한 육수와 탄력 있는 면의 조화가 일품. 그중 고료카쿠 타워(五稜郭タワー) 맞은편에 있는 멘추보 아지사이 본점은 현지인이 최고의 시오라멘집으로 추켜세우는 곳. 80년 내력의 노포 앞은 식사 때면 건물 바깥까지 긴 줄이 늘어선다. 회전율이 빠른 편이니 포기하진 말자. 오픈 주방에서 스태프가 일사분란하게 육수를 끓이고 면을 담고 고명을 얹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도 흥미롭다.
ⓘ 시오라멘 750엔, 11am~8:25pm, ajisai.tv
도쿄 다이칸야마에 있는 쓰타야 티사이트(T-Site)는 서점을 라이프스타일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일본 최초의 티사이트 분점이 바로 하코다테 교외에 자리한다. 700대 규모의 주차장을 갖춘 하코다테 쓰타야 서점은 대형 아웃렛처럼 널찍한 부지에 걸쳐 있다. 1층 한복판을 차지한 메인 홀은 2주마다 테마를 바꾼 마켓으로 운영하고, 스타벅스, 칼디커피 팜 같은 식음료 공간부터 라이프스타일 숍, 섹션별 서가까지 다채롭게 구성했다. 서점 전체를 제대로 둘러보려면 반나절 이상은 필요할 듯. 2층 높이의 서가에 낸 통유리 창 너머로 포근한 자연경관이 작품처럼 펼쳐진다.
ⓘ 7am~1am, hakodate-t.com
예술적 영감이 깃든 기념품을 찾는다면 주지가이(十字街) 정거장 앞의 하코다테 공예사 안으로 들어가보자. 1890년에 지었다가 화재로 소실된 후 1934년에 복원한 2층 구옥에 들어선 이곳은 하코다테를 비롯해 일본 각지의 수공예가 80여 명이 제작한 생활 소품을 판매한다. 주인이자 도예가인 도마에 모리토(堂前守人)가 만든 그릇과 찻잔 등의 도기 컬렉션도 진열대 한쪽을 채우고 있다. 상점과 이어진 다실은 녹차를 마시며 차분하게 사색을 즐기기 좋다.
ⓘ 녹차 700엔, 10am~6pm, kogeisya.blueboxcraft.com
고료카쿠 공원(五稜郭公園)은 에도 시대 때 요새이던 곳으로, 1914년 근대식 공원으로 재단장했다. 25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공원 가장자리에 별 모양 해자를 낸 것이 특징. 1.8킬로미터에 이르는 수로를 따라 1,600그루의 벚꽃나무를 식재해 하코다테 최고의 휴식처로 꼽힌다. 공원 한복판에는 과거 사무라이 막부의 관공서인 하코다테 부교쇼(箱館奉行所)를 복원해 놓았다. 공원을 포함해 하코다테 전경을 조망하고 싶다면 남쪽의 고료카쿠 타워에 올라가보자. 높이 107미터의 타워 상단부에 2층으로 이뤄진 전망대가 자리하며, 고료카쿠의 역사를 살필수 있는 전시관도 운영한다.
ⓘ 전망대 900엔, 9am~6pm(하절기 8am~7pm), goryokaku-tower.co.jp
가는 방법
인천국제공항에서 삿포로신치토세국제공항까지 아시아나항공 등이 직항편을 운항한다(약 48만원부터, flyasiana.com). 삿포로에서 하코다테까지 JR 열차(8,840엔)나 렌터카로 4~5시간 소요된다. 겨울에 렌터카를 이용할 경우 눈길 운전에 대비해 사륜구동 차량으로 예약하자(1일 8,500엔부터, rent.toyota.co.jp/ko).
돌아다니기
하코다테는 남북으로 연결된 노면 전차로 대부분의 명소를 이동할 수 있다(1일 승차권 600엔). 모토마치와 베이 지구는 도보로 돌아다니기에 충분하다.
잠잘 곳
하코다테 공예사 부근에 있는 빌라 콘도리아 리조트 앤드 스파(Villa Concordia Resort & Spa)는 스칸디나비아풍으로 아늑하게 꾸민 객실을 갖춘 디자인 호텔이다. 6층의 레스토랑 르 방(Le Van)에선 홋카이도 제철 식자재를 사용한 창의적 프렌치 요리를 낸다. 호텔 내 스파 트리트먼트를 제공하는 ‘스파 앤드 스테이’ 패키지도 예약 가능하다. 더블 룸1만3,000엔부터, villa-concordia.com
하코다테 시간 여행에 동행한 이는 김종관 감독. 그는 하코다테의 차분한 겨울 설경을 배경으로 남녀의 이별 여행을 그린 단편영화 <하코다테에서 안녕>을 연출했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는 론리플래닛 코리아의 온라인 채널과 일본정부관광국의 캠페인 사이트(welcometojapan.or.kr/jroute)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사진. 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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