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찬일 사진. 최갑수
거리에서는 무엇이든 요리한다
호 아저씨가 커다랗고 둥근, 아마도 50년은 썼을 도마 위에 생선을 올려놓는다. 그의 두툼한 채도(菜刀)가 재빨리 머리를 겨냥한다. 호 아저씨는 생선 토막을 밀쳐두고, 마늘을 채도의 옆면으로 두들긴다. ‘탕탕’. 어느새 웍에 기름을 붓고, 온도를 올린다. 연기가 피어오르자 그가 얼굴을 찡그린다. 마늘을 넣고 생선을 던져 넣는다. 공심채와 청경채도 썬다. 생선의 표면이 바삭 익자 술과 간장을 붓는다. 그는 어느새 다시 도마 위에서 무언가를 썰고 있다. 호 아저씨의 팔뚝과 어깨에 가는 근섬유가 도드라져 보인다. 세밀하고 연속된 동작을 하는 요리사의 전형적인 근육이다.
다이파이동(大牌檔). 홍콩 템플 스트리트(Temple Street)의 야시장 옆 포장마차 군락지, 라고 나는 메모에 썼다. 다시 메모를 읽는다. 날씨 좋음, 여행 최적. 10월이다. 아마도 이 날씨는 2월까지 이어질 것이다. 물론, 홍콩의 무더운 날씨를 피해갈 방법은 있다. 시내 어디서든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심지어 지하와 지상이 거미줄처럼 연결된 빌딩군에 들어가 쇼핑을 하거나 느긋하게 차 한잔을 마시며 더위를 쫓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날씨 따위야 무슨 상관인가. 당신이 사철 옥외에서 일하는 호 아저씨가 아닌 바에는.
다이파이동에서는 무엇이든 요리해서 판다. 이런 말을 옮겨도 될 지 모르지만, 두 발 달린 것 중에는 ‘부모님을 빼고’ 무엇이든 요리하는 곳이 홍콩이다. 네발 달린 것은 탁자, 날개 달린 것은 비행기를 빼고. 이 말을 두고 어떤 이는 ‘중국 요리사들은’이라는 전제를 걸었다. 틀렸다. 이건 어디까지나 홍콩과 광둥의 요리사를 뜻한다. 당신이 홍콩의 야시장이나 다이파이동이나 길거리 국숫집과 죽집, 무엇보다 얌차(飲茶, 아침과 점심 사이에 차와 딤섬을 먹는 광둥의 식문화)집에 가본다면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호 아저씨가 수조에서 막 살아 있는 게를 꺼내 매운 커리에 볶기 시작하고, 우리 일행은 맥주를 열심히 마셔댄다.
다이파이동은 언젠가 역사의 유물로 남을지 모른다. 이곳은 원래 조기 퇴직한 공무원의 생계 수단으로 허용됐고, 그들의 생애가 종료되면 영업도 끝난다. 전매되지 않으니, 한시적이다. 다이파이동은 그렇게 홍콩거(Hong Konger)의 사랑을 받았다. 언젠가 헐릴 것이고, 그러니 탁자와 실내에 투자하지 않는다. 플라스틱과 낡은 기물이 대충 쳐 놓은 천막 안에 놓여 있다. 홍콩거는 자신만의 은밀한 식도락을 이곳에서 해결했다. 관광객도 밀려들었다. 게 다리를 하나씩 빨고 있는, 젓가락질이 서툰 서양인 가족을 보는 건 다이파이동에서 익숙한 밤 풍경이다. 다이파이동은 카메라에 관대하다. 카메라를 응시하거나 웃어준다는 뜻이 아니다. 덤덤하고 무관심하다. 그들은 일해야 하니까.
영화배우의 아침 식사
카메라에 대한 남다른 응시는 배우의 몫이다. 그가 스마트폰을 보더니 우리를 불렀다. “어서 와. 사진은 이렇게 찍는 거야. 같이들 찍자고.” 그가 세 번 셔터를 눌렀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 나는 바보처럼 그의 뒤에서 착한 아저씨의 얼굴로 웃고 있었다. 저우룬파(周潤發, 주윤발) 형님과 같이 찍으니까. 카오룽(九龍)에서 그를 만났다. 영어 문법에서 '만났다'와 '보았다'는 엄밀하게 구분된다. 우리는 처음에는 우연히 그를 본 것이었고, 이윽고 감정이 소통되는 만남이 되었다. 그건 순전히 저우룬파 형님의 태도 때문이었다. 카오롱에 간다고 했더니, 가이드가 말한다. 잘하면 저우룬파를 볼 수도 있어요. 에이, 설마. 일행이 영화사에서 기록될, 아니 그의 영화 관람사에서 기억될 저우룬파의 멋진 장면을 술회한다. 바바리 깃의 흔들림, 지폐, 성냥, 영화감독 우위썬(吳宇森, 오우삼)의 클리셰에 등장하던 그의 액션들.
‘정말 그가 나타날지도 몰라’. 그의 단골집인 팀초이키(Tim Choi Kee)로 가던 우리는 그 말이 사실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가 그다지 넓지 않은 길을, 레깅스에 반바지를 입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이다. 그때 내가 외친 단말마는 일행에게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와! 주윤발이닷!”
그는 달려간 우리에게 카메라를 응시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일행의 스마트폰을 가져가더니 셔터를 세 번 눌렀다. 표정을 수정할 기회를 주려면, 세 번을 눌러야 할 것 같으니까. 그는 친절했고, 자기 시간을 남에게 기꺼이 썼다. 홍콩발 비행기가 서울에 닿자 뉴스가 떴다. 그가 8,900억 미국달러인가 하는 전 재산을 기부한다는 소식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일행은 그 뉴스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럼, 주윤발인데. 당연하지.” 그가 남긴 석 장의 사진보다, 나는 그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동네 산책을 나온 아저씨의 폼으로(그냥 아저씨라기에는 큰 키와 멋진 장발이 좀 튀기는 했지만) 휘적휘적 어디론가 걸어가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무도 그의 뒷모습은 찍지 않았다. 그게 예의 같았다. 물론 당신도 이 거리에서 서성거린다면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저우룬파가 사랑하는 밥집 팀초이키에서 우리는 아침을 먹는다. 홍콩의 식당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나는 이렇게 적는다. “무엇이든 잘할 수 있는 건 다 팔고 다 서비스한다.” 팀초이키도 마찬가지다. 아침 식사로 유명하지만, 맛있는 건 다 서비스한다. 오리 육수에 튀긴 면을 넣고 완탕을 추가할 수도 있다. 영국의 영향으로 들어온 토스트나 샌드위치, 밀크티도 마실 수 있다.
한 가족이 늦은 아침 식사를 한다. 완탕과 누들과 콘지, 티와 커피에 빵을 먹는다. 홍콩다운 퓨전 아침 식사. 이 집의 명물은 뎅짜이 콘지(deng chal congee)다. ‘어부의 죽’이라는 별명이 있는데, 돼지 껍질, 오징어에 쇠고기, 땅콩 등을 넣어 끓인 죽이다. 새벽 3시부터 6시 30분까지 푹 끓인다. 죽은 홍콩이다. 그들은 쌀을 다룰 줄 안다. 간을 하고, 재료를 섞는것만큼 중요한, 쌀이 어떻게 호화해서 죽의 부드럽고 뜨거운 감촉으로 변하는지 아는 사람이다. 후후 불어가며 걸쭉하고 뜨거운 액체를 식도로 넘기면서 홍콩거는 아침의 에너지를 얻는다. 아침밥은 전 세계 어디든 그렇지만(관광객이 들끓는 파리 중심가와 뉴욕조차도) 싸고 맛있으며, 현실적인 음식이다. 홍콩의 죽도 그 자리에 있다.
박찬일은 홍콩의 포장마차 거리와 재래시장을 탐미하며 먹는 것의 진지함을 되새겼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 만난 배우 저우룬파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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