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시 근교 주택가에 자리한 아담한 정원을 낀 일본 전통 가옥. 이곳에 문을 연 오카테이(桜下亭, Oukatei)는 일본 감성을 더한 프렌치 다이닝 레스토랑이다. 입구에서부터 눈에 띄는 수백 년 된 왕벚나무는 오카테이의 대표 자랑거리. 유명 정원 예술가인 시게모리 미레이(重森三玲)가 우연히 이 벚나무를 보고 한눈에 반해 어울리는 정원을 직접 설계해줬다고. 오랫동안 정성껏 가꾼 정원은 겨울에도 나무 밑동을 뒤덮은 이끼가 싱그러움을 뿜어낸다.
안으로 들어가자 말끔한 신사복을 입은 오카모토 다다후미(岡本忠文) 대표가 인사를 건넨다. “아버지께 이 고택을 물려받은 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이곳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사람들이 쉽게 올 수 있는 레스토랑을 시작하게 되었죠.” 오카테이에서는 메뉴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신선한 제철 식자재에 따라 매일 새롭게 메뉴를 구성한 셰프의 추천 코스만을 선보이기 때문. 새끼 방어회를 곁들인 샐러드를 시작으로 최고급 히로시마산 와규 스테이크, 녹진한 식감의 초콜릿 무스까지 모든 메뉴가 맛과 비주얼, 어느 하나 빠짐없이 완벽하다.
ⓘ 오카테이 코스 요리 5,000엔부터, oukatei.jp
히로시마시에서 차로 약 1시간 걸리는 신쇼지선과 정원 박물관(神勝寺 禅と庭のミュージアム)에서는 불교의 참선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다. 1965년에 세운 선종 사찰로 건축, 예술, 미식 등 선(禪)의 정신이 깃든 다양한 경험을 통해 그 의미를 깨우칠 수 있는 ‘신박한’ 곳이다. 먼저 약 23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부지 내 조성된 거대한 정원을 산책해보자. 정원을 가로지르는 연못을 따라 교토, 나라 등지에서 옮겨온 아름다운 고찰이 그림처럼 자리한다. 다음 코스는 고칸도(五觀堂)에서 출출해진 배를 채울 차례. 고칸도에서는 스님이 1주일간의 고된 수행을 마치고 먹는 사찰식 우동을 맛볼 수 있다. 물론 식사 과정도 수행의 일부다. 길고 두꺼운 젓가락으로 손가락만 한 굵은 면발의 우동을 집어 먹어야 하는데, 인내심을 갖고 젓가락질에 집중하는 동안 음식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참선의 과정은 아트 파빌리온 고테이(洸庭)에 이르러 완숙함에 다다른다. 나무 조각을 겹겹이 쌓아 만든 거대한 선박 형상의 건물에서 약 30분간 명상 체험이 진행된다. 암흑 속에서 느껴지는 건 오직 아스란한 빛과 물소리 뿐. 그 가운데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영혼까지 맑아지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 신쇼지 선과 정원 박물관 입장권 1,200엔, szmg.jp
히로시마만 남서쪽에 떠 있는 미야지마(宮島)는 예부터 신이 머무는 섬으로 숭배되어왔다. 페리를 타고 10분 정도면 닿는 작은 섬이며, 일본 3대 명승지 중 하나이자 히로시마 필수 여행 코스로 꼽힌다. 그 이유엔 미야지마의 랜드마크인 붉은색 도리이(鳥居)가 한몫했을 터. 섬 앞바다에 세운 도리이는 신과 인간 세계를 구분 짓는 관문이다. 즉 섬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신의 영역이라는 얘기다.
페리에서 내리는 손님을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야생 사슴이다. 신의 사자(使者)라 불리는 사슴은 섬에서 자유로이 노닐며 사람들과 공생한다. 부두를 따라 걸으니 곧이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쓰쿠시마 신사(嚴島 神社)가 등장한다. 6세기에 건립한 신사로 섬 전체를 신의 몸이라 여겨 바다 위에 지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조수 간만에 따라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밀물 때는 신사 건물 바로 아래까지 바닷물이 찰랑이고, 썰물 때는 갯벌이 드러나 도리이까지 걸어갈 수도 있다. 섬 중앙에 우뚝 솟은 신령한 산, 미센(弥山)도 빼놓지 말자. 울창한 원시림을 자랑하는 미센은 해발 535미터로 미야지마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로프웨이를 타고 정상에 오르면 일본의 지중해라 불리는 세토 내해(瀬戸内海)의 기막힌 풍광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 미야지마 페리 왕복 360엔, jr-miyajimaferry.co.jp/kr
“최고급 료칸 하면 떠올리는 모든 것을 실현시켜주는 곳이에요.” 이번 여정의 가이드를 맡은 N 트래블 도쿄 조수희 대표가 자신감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세키테이(石亭)를 소개한다. 미야하마 온천(宮浜温泉) 지역에 위치한 세키테이는 바로 앞에 미야지마가 내다보이는 독특한 뷰를 자랑한다. 비단잉어가 노니는 연못과 노송이 어우러진 일본식 정원을 중심으로 12개의 객실만 갖췄다. 그야말로 프라이빗 휴양을 즐기기에 제격인 셈. 체크인을 하자마자 본격적인 휴식 모드에 돌입한다. 다다미를 자박자박 밟으며 료칸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끽한 뒤, 노천 온천에서 여독을 풀어보자. 저녁이 되면 히로시마의 전통 요리를 접목한 가이세키 요리도 맛볼 수 있다. 료칸 안에만 머물러도 심심할 틈이 없다. 정원과 이어진 별관에는 주인장의 취향이 엿보이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숨어 있기 때문. 다다미가 깔린 고서점처럼 꾸민 라이브러리에서 책을 읽거나, 의자와 앤티크 오디오만 달랑 놓은 작은 동굴에서 음악에 심취해보는 등 소소한 낭만을 즐기다 보면 하룻밤을 꼬박 지새울지도 모른다.
ⓘ 세키테이 3만1,000엔부터, sekitei.to/ko
히로시마현 동쪽을 향해 끝까지 달리면 아담한 항구 마을에 도착한다. 허름한 부두에 걸터앉아 시간을 낚는 강태공과 그 옆을 유유히 지나가는 고양이. 잔잔하고 평화로운 풍경에 슬그머니 미소가 걸리는 도모노우라(鞆の浦)는 낯설지 않은 여행지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가 이곳에 머물며 <벼랑 위의 포뇨(2008)>를 구상한 걸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도모노우라에 매료된 건 그뿐이 아니다. 18세기에 일본에 파견된 조선통신사가 관광차 들러가던 곳이었으며, 숱한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부두 끝에는 도모노우라의 상징적 건축물인 조야토(常夜燈) 석등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1859년에 축조된 이 건축물은 한때 세토 내해 중심부 해상 교통의 요충지로서 부흥했던 근대 항만의 모습을 간직한 문화유산이다. 항구와 맞닿은 마을 또한 에도 시대의 정취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세월의 때가 묻은 목조 가옥이 골목골목을 이루고, 하야오의 단골 찻집이나 18세기부터 이어온 특산 전통주 양조장 등 전통 있는 상점이 여전히 자리를 지킨다.
ⓘ 도모노우라 tomonoura.npnp.jp
인천국제공항에서 히로시마공항까지 에어서울이 직항편을 운항한다(약 14만 원부터, flyairseoul.com). 100엔(JPY)은 약 1,000원이다(2018년 12월 기준). 기사에 안내한 장소 간 거리가 멀기 때문에 차량을 빌려서 다니는 걸 추천한다. 공항 옆에 렌터카 업체가 모여 있어 편리하다(1일 7,500엔부터, hertz.co.kr).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히로시마 관광 패스를 활용하면 가성비가 좋다. 3일 또는 5일간 히로시마현 내의 노면 전차, 버스, 선박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1,000엔부터, bus-kyo.or.jp/pickup/pickup-6249.html). 히로시마현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히로시마의 명소와 체험 프로그램, 숙소 등의 여행 정보를 제공한다 (kr.visithiroshima.net).
ⓘ 취재 협조 N 트래블 도쿄 +81 90 1709 0002, ntravel.tokyo
글/사진. 문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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