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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싱글 앨범 <아엠죠지>로 데뷔했고 2017년 싱글 앨범 <Boat>로 이름을 알렸다. 프라이머리, 기리보이, 서사무엘, 진보 등과 피처링 작업을 진행하며 일찌감치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올해 첫 EP 앨범 <Cassette>를 발매했으며, 올여름 선보인 ‘Swimming Pool’은 애플뮤직이 뽑은 ‘2018년을 빛낸 최고작’에 선정되었다.
인스타그램 hellorabbit8
어느 맑은 날, 대구에서 죠지에게 생긴 일
흰색 벤츠 쿠페가 대구 중구 거리를 미끄러지듯 나간다. 죠지는 조수석에 앉아 있다. 최근 작업한 김현철의 ‘오랜만에’ 리메이크 곡의 뮤직비디오에서처럼, 혹은 종종 친한 형의 차를 얻어 타고 드라이브할 때처럼. 지금 한창 뜨겁게 떠오르는 이 R&B 싱어송라이터는 며칠 전 스물여섯 번째 생일을 맞았고, 공연을 겸한 도쿄 여행에서 막 돌아왔다. 연말 일정은 피처링 작업과 공연 등으로 빼곡하다. 초겨울의 어느 맑은 날, 고향 대구를 몇 달 만에 방문하는 것도 포함해서.
거대한 파도처럼 흘러간 해였다. 첫 EP 앨범을 올여름에 발표했다. 가을에는 20세기 한국 시티 팝을 재조명하는 프로 젝트, 온스테이지 디깅클럽서울에 첫 번째 주자로 참여해 ‘오랜만에’를 리메이크해 불렀다. 몇 주 전에는 <유희열의 스케치 북>에 처음 출연했다. 오늘 아침, 옅은 회색 스웨트셔츠에 친구가 만들어준 키 링을 주머니에 건 청바지, 짙은색 패딩 점퍼 차림의 소탈하고 예의 바른 청년을 만났을 때 나는 신선한 충 격을 받았다. 데뷔 전 꾸밈없는 일상을 공유하며 구독자 1만여 명을 기록한 페이스북 ‘죠지라이프’나 낚싯배 위에서 친구들과 놀면서 찍은 뮤직비디오 속 날것의 얼굴 그리고 스트리트 브랜드 의상을 걸치고 포즈를 취한 전도유망한 아티스트 사이 어디쯤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춘의 시간은 급류처럼 흐른다. 20대 초반에 운영하던 죠지라이프는 더 이상 업데이트를 멈추고 내버려두었다. 그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다르지만, 그 모습 역시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차를 타고 대구 구도심을 돌아볼 계획을 세웠다. 대구 중구에는 20세기 초에 지은 건축물부터 1950~1960년대 음악 감상실과 다방, 번화가의 현대식 빌딩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세월이 촘촘히 겹쳐 있다. 복고에 열광하는 최근의 뉴트로 트렌드에 부합하는 지역인 것이다. 죠지는 서울로 이주한 지 1년이 넘었고, 지금은 망원동에 산다. 여느 20대처럼 심플한 디자인의 카페를 즐겨 찾고 빈티지 숍에서 옷을 구입한다. 10 대 후반부터 스티비 원더 등 R&B 음악에 빠져 지냈지만 지금은 장르를 딱히 가리지 않고 듣는다. 얼마 전까지는 포틀랜드 의 사이키델릭 록 밴드 언논 모털 오케스트라(Unknown Mortal Orchestra)를 줄창 들었다. 지금은 존 레넌을 비롯한 올드 팝에 꽂혀 있다. 죠지는 대구 출신 청년이라기보다는 우연히 여행한 중국 란저우(兰州)의 광대한 풍경에 압도되고, 파타고니아나 몽골의 자연 속으로 떠나고 싶어 하는 도시 청년이라 하는 게 정 확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든 한 고장에서 10 년 넘게 산다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지 않을까? 가령 매일 마시는 물과 수시로 지나치는 풍경, 계절의 온도로부터.
대구의 겨울 평균기온은 서울보다 1도가량 높다. 투명한 오전 공기를 가르며 3.1운동계단을 걸어 올라가 청라언덕 꼭대 기에 닿는다. 이 길은 인근 중‧고등학생의 등‧하굣길이기도 하 다. 죠지는 이곳이 “너무 예뻐졌다”며 아쉬워한다. 그의 학창 시절에는 말쑥한 표지판도, 잘 가꾼 길도 없었고, 20세기 초 선 교사 주택은 방치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여기 정말 자주 왔는데…. 낮에 따뜻할 때, 풀밭에 한참 누워서 음악 듣곤 했어요.” 선교사 챔니스 주택에 들어선 의료박물관을 둘러보고 언덕을 내려와 천주교계산교회에 들어가본다. 그가 가끔 찾던 장소다. 서서히 내려앉는 어둠과 침묵만큼은 예전과 같을 것이다.
대구의 겨울 평균기온은 서울보다 1도가량 높다. 투명한 오전 공기를 가르며 3.1운동계단을 걸어 올라가 청라언덕 꼭대 기에 닿는다. 이 길은 인근 중‧고등학생의 등‧하굣길이기도 하 다. 죠지는 이곳이 “너무 예뻐졌다”며 아쉬워한다. 그의 학창 시절에는 말쑥한 표지판도, 잘 가꾼 길도 없었고, 20세기 초 선 교사 주택은 방치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여기 정말 자주 왔는데…. 낮에 따뜻할 때, 풀밭에 한참 누워서 음악 듣곤 했어요.” 선교사 챔니스 주택에 들어선 의료박물관을 둘러보고 언덕을 내려와 천주교계산교회에 들어가본다. 그가 가끔 찾던 장소다. 서서히 내려앉는 어둠과 침묵만큼은 예전과 같을 것이다.
걸어서 5분 떨어진 미도다방 역시 죠지는 첫 방문이다. 오후면 테이블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모여 수다를 떠는 이 오래된 다방은 거의 대구의 박물관급이다. 금붕어가 헤엄치는 기다란 어항을 지나 겨울 해가 내리쬐는 테이블에 앉자, 곧바 로 전병과 웨하스를 그득 담은 접시가 나온다. 딱 룽고 양만큼 나오는 쌍화차는 약재 향이 별로 강하지 않으며 걸쭉하고 달콤하다. 견과류도 넉넉하게 넣었다. 원래 쌍화차에는 날달걀을 넣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리고 달걀을 주문하자 종업원이 이렇게 말한다. “요새는 달걀을 안 넣어요. 비리다고요.” 그래도 다방 초보답게 우리는 달걀을 고집한다. 날달걀을 퐁당 빠뜨린 쌍화차를 죠지가 과감하게 한 입 맛보더니 눈을 크게 뜬다. “생각보다 괜찮아요. 마셔보세요.” 크림을 첨가한 맛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미도다방의 정인숙 대표는 고아한 매너로 우리를 맞이하고는 우리나라 다방 문화를 지키는 게 얼마 나 중요한지 역설한다. 죠지는 사장님을 보러 또 오고 싶다고 말한다. 물론 날달걀 넣은 쌍화차도 마시러.
여정은 계속해서 시대를 뒤죽박죽 가로지른다. 과거 한국 담배인삼공사(현 KT&G) 사택을 개조한 복합 문화 공간 수창청 춘맨숀에서 설치 작품 감상하기, 우연히도 죠지가 아르바이트 를 하던 카페 앞에 있는(하지만 당시엔 몰랐던), 하이마트 음악 감상실에서 존 레넌과 퀸의 노래를 듣고 전기 파이프오르간으 로 즉흥 연주하기, 죠지가 즐겨 찾는 편집숍 엘비비 유나이티 드에서 캡틴 선샤인(Kaptain Sunshine)의 회색 더플코트를 걸쳐보기(엄청 잘 어울렸고 비쌌다) 등.
주택가 사이로 세련된 카페와 바가 삼삼오오 들어서고 있는 삼덕동으로 향한다. 오래된 단층 가정집을 개조한 이에커피가 여정의 마지막 장소다. 대구에 올 때 빼놓지 않고 들르는 카페에서 죠지는 골든 레트리버 보리와 놀아주고, 우연히 만난 동갑내기 팬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윽고 모두 떠나가고 죠지는 홀로 남는다. “나른하네요.” 그가 정말 나른한 얼굴로 두어 번 말한다. 긴 하루가 끝나간다. 따뜻한 조명이 그를 비 춘다. “이런 집에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마당이 딸린 조그마한 주택. 개도 기르고 싶고요.” 어릴 적 다녔던 영어 학원 이름에서 무심히 예명을 따온 데서 유추할 수 있듯 그는 신년 계획을 세우는 스타일이 아니다. 어쩌면 내년에 운전면허를 딸 수도 있겠지만. 그럼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건? “얼른 음악 작업을 하고 싶어요. 조만간 싱글 앨범을 낼 계획이에요.” 그는 자신의 음악을 특정한 장르에 묶어놓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가 원하는 건 ‘Boat’의 가사대로 “파도를 따라 흘러가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건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필요한 일이다.
Unknown Mortal Orchestra, <Sex & Food>
글. 이기선 사진. 최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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