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및 여행 작가 10인이 밝힌 자신만의 전망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와 협업한 사진가와 여행 작가가 1컷의 사진을 얻기 위한 자신만의 전망 포인트를 풀어놓았다. 취재를 위해 혹은 홀연히 떠난 여행이나 일상에서 우연히 발견한 뜻밖의 경이로운 장면들.
제주 삼양 검은모래 해변 by 여행 작가 안수연(@sooyeunahn)
첫 제주살이는 삼양 검은모래 해변 근처였다. 워낙 유명한 바다와 해변이 많은 제주에서 삼양 검은모래 해변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 그렇기에 늘 고즈넉하고 한적하다. 모래만으로 이뤄진 해변이 아니라 1층 정도 높이의 나무 덱이 넉넉히 놓여 있어 편안하게 야영을 하거나 비치 타월 1장을 펼쳐놓고 책을 읽기에도 좋다. 무엇보다 거울 같은 검은 모래밭 위로 비치는 하늘과 구름의 풍경, 해 질 녘 노을은 한 폭의 그림 같다. 그 그림 속을 걸으며 매일 저녁 산책을 하는 일상. 그것은 첫 제주살이의 잊을 수 없는 선물이었다. 그래서 나의 첫 번째 바다인 삼양 검은모래 해변은 정원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모든 곳이 아름다운 촬영 포인트인 제주를 걷다 보면 유난히 사진 찍는 사람이 많다. 특히 석양 사진을 사랑하는 이가 많은데, 제주에서 알게 된 친구 중에서도 석양 마니아가 있다. 근사한 석양이 펼쳐질 것 같은 날에는 그들에게서 연락이 온다. “오늘 삼양의 노을이 멋질 것 같아.” 그런 날이면 일과 끝의 행선지는 집 대신 바다가 된다. 특별한 볼일 없이도 석양을 함께 보기 위해 만나는 친구들. 근사하지 않은가? 해 질 녘 바다는 혼자 봐도 좋지만 함께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도록 아름답다. 늘 그곳에 있던 자연의 한 순간이 선사하는 충만함. 해는 매일 뜨고 지지만, 바라보는 그 순간은 매번 기적과 같다. 바다와 함께 있어서 더욱 그러한, 너무나도 사랑하는 제주 풍경이다.
제주 가파도 by 사진가 이규열(@kyuyeol_lee)
지난해 여름 끝자락, 모 여행 잡지 특집으로 제주 촬영을 떠났을 때 가파도를 찾았다. 낮은 지붕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가파도. 늘 그렇듯 첫날은 가볍게 스케치하고 대략적인 앵글을 기억한 다음, 이튿날 동이 틀 무렵 다시 촬영을 위해 나섰다. 섬의 북동쪽에서 바라본 제주도의 모습은 전날과 달리 나의 사진 톤과 잘 맞는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어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한낮이라면 평범할 장면이지만, 이른 아침에는 반 역광 상태로 빛과 안개가 낮게 드리운 덕분에 좀 더 몽환적이면서 단순하게 담을 수 있었다.
자연의 풍경이란 똑같은 장소와 같은 앵글이라도 시간과 일기 같은 여러 요인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이 사진에서는 한 앵글 안에 제주도를 상징하는 송악산, 삼방산 그리고 오른쪽 멀리 한라산이 자리하고, 그 앞으로 마치 엄마 앞에서 노니는 귀여운 아이들처럼 보이는 작은 형제섬까지 모두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어 마음에 든다. 여행 사진가로서 다니는 촬영은 시간 제약이 많기에 이러한 순간을 매번 마주할 수 없다. 그래서 가끔, 아주 가끔 만나는 이런 순간이 더욱 소중하다.
영덕 죽도산 by 사진가 박소현(@ifeel_lucky)
상쾌한 순간이었다. 바쁜 취재 일정, 카메라만 둘러메고 단숨에 오른 영덕 죽도산(竹島山)에서 마주한 풍경은 톡 터져 나온 박하 향처럼 시원했다. 일기가 좋지 않았던 그날. 먹구름이 몰려오기 전 일정을 재촉하던 중이었고, 방문객 하나 없는 죽도산전망대는 고요했지만, 쓰고 간 비니가 벗겨질 만큼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서둘러 뒤집어쓴 바람막이가 시끄럽게 펄럭이는 소리 때문인지, 오랜만에 한 산행 탓에 놀란 심장 때문인지 심란한 기분으로 전망대 촬영을 마쳤다.
올라온 길을 따라 내려가던 중, 우연히 사진 속 풍경과 마주쳤다. 조금만 기울이면 넘쳐흐를 것 같은 파란 물이 가득, 하늘과 맞닿았고, 불어오는 바람에 쏟아지듯 누운 대나무 군락의 푸른빛이 만들어낸 풍경은 거룩하도록 상쾌했다. 그 순간 심란했던 무엇이 사라졌고, 차갑기만 했던 바람은 더 이상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카메라를 다시 들어 그 풍경을 담았다. 바다와 대나무 이파리의 푸른 빛깔, 거기서부터 불어와 내 온몸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 그리고 바람 소리. 다음 일정을 위해 발길을 재촉해야 했지만 오감으로 담고 싶은 풍경이었다.
여수 구봉산 by 사진가 신규철(@cozy114)
잡지 촬영 덕분에 매달 전국 곳곳의 촬영 포인트란 포인트는 다 들쑤시고 다닌다. 반복되는 일정에 무감각해지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반짝이는 풍경은 찾아온다. 나에게 ‘남해’ 하면 떠오르는 여수 구봉산에서 본 야경이 그렇다.
해발 388미터의 여수 구봉산. 등산로 초입에서 30분 정도만 걸어 올라가면 정상에 닿을 수 있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정상에서는 여수 구도심과 남해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돌산대교와 거북선대교, 여객선 터미널과 멀리 여수항까지. 해 질 녘, 풍경을 밝히는 화려한 조명이 켜지면 더욱 매력적이다. 특히 이 사진을 촬영한 날에는 유명 출사지라면 항상 자리를 차지하는 사진 동호회원이나 관광객으로 붐비지 않아 홀로 조용히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인천 영종도 by 사진가 오충석(@travelozak)
몇 년 전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와 인천관광공사의 가이드북 사진 촬영을 위해 송도국제도시를 찾았다. 잘 계획된 송도국제도시는 웅장한 마천루와 드넓은 녹지를 갖춘, 첨단과 전통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었는데, 이런 특징을 아우르는 장면을 담고 싶었다. 송도국제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앵글로 도시를 촬영했다. 그렇게 수차례 송도를 방문하며 거듭 촬영을 시도했지만 간척지 위에 조성된 이 미래지향적 신도시를 사진 1컷에 담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송도국제도시의 이미지는 도심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복잡하고 거대한 모습이 아니었다. 오랜 항해 끝에 마침내 도달한 배 위에서 마주한 미래 도시. 그런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해 지도에서 후보지 몇 곳을 정해 답사를 했고, 최종적으로 영종도의 한 갯벌에서 송도국제도시를 조망할 만한 포인트를 찾았다. 신비로운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일출 시간을 택해 촬영을 시도했다. 사진에는 물이 들어오는 갯벌과 바다 그리고 인천대교와 송도의 스카이라인까지 어우러져, 결과적으로 내가 딱 상상하던 미래 도시의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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