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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리저우드 셰프의 남도탐미

레스토랑 에빗의 셰프, 조셉 리저우드와 함께 떠난 강진&해남 여행

한국 식자재로 파인 다이닝을 시도하는 조셉 리저우드 셰프와
남도의 풍류를 찾아 강진과 해남의 낯선 마을로 떠나다. 




▶ 조셉 리저우드 (Joseph Lidgerwood) 


실험적인 파인 다이닝을 선보이는 레스토랑 에빗(Evett)의 오너 셰프다. 에빗에서 그는 전국 각지의 제철 식자재를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테이스팅 메뉴를 내고, 요리에 어울리는 한국 전통주를 소개한다. 틈틈이 레스토랑 팀원과 전국 각지를 돌아디니며 새로운 식자재를 찾아 나서는 ‘On the Road’ 프로젝트 여행을 떠난다.











강진과 해남에 다다른 이방인 셰프


다산초당에는 정약용이 차를 만들기 위한 부뚜막과 샘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 최남용


초목의 싹이 돋고 동면한 동물이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 막 지난 3월 초순. 완연한 봄을 기대하기엔 아직 이르다. 한반도 최남단이라 해서 사정이 그리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서울에서 쉼 없이 달린 지 4시간. 강진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 차창 밖으로 겨우내 휴지기를 견딘 산야의 황토가 맨살을 드러내고,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스친다. 드문드문 파릇하게 순이 돋은 청보리밭과 하얗게 흐드러진 매화가 봄의 시작을 은밀하게 알리고 있다. 이곳까지 조셉 리저우드(Joseph Lidgerwood) 셰프와 여행을 떠난 이유는 막연한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생경한 남도 마을에 당도한 이방인 셰프. 그의 낯선 여정을 그려보면서.


리저우드는 2년 전 팝업 레스토랑을 열기 위해 한국을 처음 찾았고, 지난해 가을 정착하며 레스토랑 에빗을 열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Tasmania) 출신인 그는 나파 밸리의 프렌치 론드리(French Laundry), 런던의 레드버리(Ledbury), 코펜하겐의 노마(Noma) 등 유수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거쳐 실력을 갈고닦았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현지 식자재로 실험적 메뉴를 선보이는 ‘원 스타 하우스 파티(One Star House Party)’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중국, 태국, 베트남,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등 11개국 16개 지역을 돌아다니며 팝업 레스토랑을 연 그가 한국에 이토록 강한 애착을 보인 이유가 궁금하다. “한국의 식자재는 정말 놀라워요. 다른 나라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독특하고 다양한 풍미를 지녔죠. 게다가 지방마다 식문화가 다른 점도 매력적이에요.” 그가 꽤 진중한 표정으로 말한다.



백련사를 두르고 있는 동백나무 숲 한쪽에는 사찰에서 관리하는 차밭이 숨어 있다. 이곳에서는 만덕산 자락 너머로 강진만의 전경이 펼쳐진다. ⓒ 최남용


사실 강진은 이방인과 묘한 인연을 맺고 있다. 1653년 나가사키로 항해하던 스페르베르(Sperwer)호가 폭풍우에 밀려 제주에 표류한 하멜이 그 시작이다. 조선을 서양에 최초로 알린 인물이기도 한 그는 서울로 호송됐다가 강진에서 7년간 유배 생활을 보내야 했다. 전라 병영이 있던 마을에 늘어선 빗살 형태의 담장은 당시 하멜 일행이 남긴 흔적이다. 그후 150년이 지나 다른 의미의 이방인이 찾아온다. 조선 후기 최고의 학자 정약용이 천주교를 접했다는 죄명과 함께 한양에서 머나먼 강진으로 유배된 것이다. 연고 하나 없는 만덕산 기슭의 초가집에 터를 잡은 그는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는 대신 그간 익혀온 학문을 차분하게 정리한다. 다산초당 지척에 있는 백련사에서 정약용과 혜장 선사가 수년간 나눈 차담은 강진 다도 문화의 근간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호기심 강한 이방인 셰프가 하멜 일행이 쌓아 올린 돌담길의 한 고택에서 씨간장의 깊은 맛에 감탄하고, 다산이 거닐던 백련사의 오솔길을 산보하며 느슨하게 인연을 이어간다.



강진만 서쪽의 해안선을 따라 곧게 뻗은 해안관광로에서 리저우드와 웨사. ⓒ 최남용


강진은 남북으로 길쭉하게 만을 형성하고 있다. 만조 때면 물살이 사납게 차오르다가 간조 때는 드넓게 뻘이 형성된다. 여기에 완만한 산야가 사방을 두르고 기름진 논밭이 빈 대지를 넉넉하게 채운다. 제철 산해진미를 올리는 강진 특유의 밥상 문화는 이런 천혜의 자연 조건에서 완성됐다. 강진만 한복판에 유유히 떠 있는 가우도는 강진의 풍요로운 지형을 한눈에 담기 좋은 전망 포인트다. 섬까지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망호 출렁다리 초입에는 현지인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식당이 몇몇 자리한다. 동네 슈퍼를 겸한 월곶나루횟집에서 제철을 맞은 도다리 매운탕을 주문한다. 겨우내 단맛이 오른 미나리를 듬뿍 넣고 여기에 강진만 뻘에서 잡은 낚지를 곁들인 남도식 매운탕. 리저우드는 녹진한 도다리 살점이 후루룩 넘어가는 식감에 놀라워하며 금세 밥공기를 비워낸다. 


가우도 건너편으로는 주작산과 덕룡산이 부드럽게 능선을 그리고 있다. 이를 마주 보고 있는 단출한 기와집에서 하룻밤을 청한다. 욕심을 작게 갖고 소비를 적게 하는 삶을 지향한다는 의미의 소소원. 2개의 빈방을 객실로 내주는 주인 이승화 씨는 툇마루 앞으로 펼쳐지는 안온한 정경에 반해 귀촌을 결심했다고. 15년간의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지속 가능한 농부의 삶을 그리는 그녀의 계획은 정성스럽게 일군 마당 텃밭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주인장의 마음을 동하게 만든 툇마루에 앉자 초승달과 별을 이고 진 청명한 밤하늘이 펼쳐진다.



강진과 해남에서는 3월이면 곳곳에 하얀 꽃잎에서 은은한 향을 내뿜는 매화를 볼 수 있다. ⓒ 최남용


이튿날 아침, 주작산 너머의 해남으로 여행을 이어간다. 해남은 강진에 비해 산세가 제법 거친 편이다. 장대한 노령산맥이 남해를 향해 돌출된 이곳은 두륜산을 중심으로 산줄기가 사방으로 굵게 뻗어 나간다. 몇 차례 고개를 넘나드는 사이 짙푸른 바다가 시야에 들어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마침 이번 남도 여행에는 더스틴 웨사(Dustin Wessa)도 동행했다. 캐나다 태생인 그는 미국 워싱턴주에서 유년을 보냈다. 숲과 늘 가까이 지낸 덕분에 주변 생태에 왕성한 호기심을 보였고, 15년 전 한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자신의 노하우를 살려 야생 식자재로 메뉴를 내는 와인 바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의 유별난 호기심은 한국 전통주로도 이어졌다. 지난해 전통주 주예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에빗의 소믈리에로 합류할 만큼.



(좌) 설아다원에서 채집한 야생 버섯과, 쑥, 매화, 녹나무 잎. (우) 전통 다도법을 익히고 차를 시음하는 리저우드. ⓒ 최남용
설아다원의 주인 부부는 다도와 판소리를 결합한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 최남용


두륜산 자락의 설아다원에서 웨사는 자신의 장기를 유감 없이 발휘한다. 유기농 방식으로 차나무를 기르는 이곳 다원에는 광대나무, 개망초, 별꽃 등 희귀한 야생 초목이 서식하고 있다. 이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맛을 음미하던 그는 어깨에 멘 바구니에 하나씩 담으며 본격적으로 채집을 시작한다. 실제 레스토랑 에빗에서는 웨사의 주도 아래 서울 안팎의 산으로 채집을 다니며 야생 식자재를 익히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바탕 다원 일대를 누비던 웨사와 리저우드는 설아다원 주인 내외가 정성스럽게 달인 차를 음미하고 구성지게 부르는 판소리 가락에 추임새를 넣으며 남도의 풍류를 만끽한다. 


해남 삼산면의 목신마을에 이르러 양철 지붕을 덮은 목조 가옥 앞에 잠시 차를 세운다. 이곳에선 이세일 목수가 그린우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린우드는 숲에 버려진 나무를 사용하는 목공을 일컫는다. 기계 대신 수공구만 쓰기 때문에 인류가 행한 원초적 목공을 재현하는 작업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는 서양의 셰이빙 홀스(shaving horse, 목공 받침대)에서 착안해 손수 제작한 ‘목신말’에 앉아 숟가락, 그릇, 스툴을 섬세하게 깎아낸다. 자연의 원형을 고이 간직한 재료를 이용해 창작을 시도하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리저우드가 추구하는 자연 친화적 플레이팅과 제법 흡사해 보인다.



해남 목신공방을 찾은 조셉 리저우드와 더스틴 웨사. ⓒ 최남용


공방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해창주조장의 시계는 한 세기 전으로 거슬러 오르는 듯하다. 일제 강점기 때 곡물 창고와 청주를 빚는 양조장으로 사용하던 2층짜리 적산가옥은 해방 이후 막걸리 주조장의 명맥을 이어간다. 2008년부터 주조장 운영을 맡은 오병인 씨는 감미료를 일절 첨가하지 않고 쌀과 누룩, 물로만 빚은 오늘날의 해창막걸리를 완성시켰다. 웨사 역시 해창막걸리의 청아한 풍미에 반해 지난겨울 에빗의 식전주로 선보인 적이 있다고. 한국 술에 정통한 이방인과의 만남이 반가운 오병인 대표는 아직 출시하지도 않은 프리미엄 막걸리를 시음주로 인심 좋게 꺼내 놓는다. 


해남 닭요리촌의 원조 노포에서 닭의 가슴살과 모래집으로 만든 신선한 육회를 맛보고, 동백 꽃망울이 어지럽게 흐드러진 사찰의 야생 차밭을 산책하고,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 기와집 대청에서 수다를 떨며 보낸 이틀간의 여정.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동안 리저우드와 웨사는 남도의 정취를 차근차근 되짚으며 조만간 선보일 메뉴에 관한 아이디어를 주고받는다. 두 사람이 낯선 타국에서 난 산물에게 보이는 열정과 호기심은 이처럼 길 위의 여정을 통해 해소시키는 듯하다. 조셉 리저우드가 틈틈이 국내를 돌아보는 프로젝트 여행의 이름을 ‘On the Road’로 정한 것처럼.




▶ SPECIAL PLATE 

리저우드가 웨사가 남도 여행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소르베와 칵테일. ⓒ 최남용

리저우드와 웨사는 이번 남도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식자재로 디저트 메뉴와 이에 어울리는 음료를 개발했다. 먼저 리저우드는 해창주조장의 프리미엄 해창막걸리를 첨가하고 매화 시럽을 얹은 소르베 디저트를 만들었으며, 강진과 해남의 산야에서 채취한 꽃흰목이버섯과 산수유를 플레이팅에 활용했다. 이세일 목수가 그린우드 방식으로 손수 깎은 나무 숟가락도 곁에 두었다. 이어 웨사는 자신이 직접 빚은 청주에 설아다원의 녹차 씨앗 효소로 은은하게 풍미를 살린 칵테일을 제조했다. 이번에 개발한 소르베는 실제 레스토랑 에빗의 코스 요리 중 디저트로 서빙한다고. 리저우드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매주 새롭게 영감을 얻은 신메뉴를 테이스팅 메뉴에 추가한다. 예약제로 운영하는 에빗은 열 가지 코스의 디너 테이스팅 메뉴를 기본으로 운영하며, 토요일에는 다섯 가지 코스로 구성된 캐주얼한 런치 테이스팅 메뉴를 제공한다. 

ⓘ 디너 테이스팅 메뉴 13만 원(토요일 런치 테이스팅6만5,000원), 6pm~11pm(토요일 런치 12pm~3pm), 월요일 휴무, restaurantevett.com


취재 뒷이야기

참을 수 없는 이 남자의 매력 

평소 채집을 즐기는 더스틴 웨사. ⓒ 최남용

<온더로드> 남도 취재의 주인공은 분명 조셉 리저우드 셰프였다. 그런데 이를 자꾸 망각하게 만드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소믈리에 더스틴 웨사. 그는 일단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트로트를 흥얼거리고, 아재 개그를 남발하고, 양념게장을 야무지게 발라 먹는 건 기본. 야생초 하나도 놓치지 않고 술술 이름을 댈 만큼 식물에 통달했고, 직접 청주를 담글 만큼 한국 술에 조예가 남달랐다. 덕분에 이번 취재 내내 분위기 메이커이자 모델, 숲 해설, 시음까지 도맡으며 맹활약했다. 넌지시 다음 취재 아이템을 제안한 것은 물론이고. by 에디터 고현 



글. 고현 사진. 최남용



'조셉 리저우드 셰프의 남도탐미'에 이어진 이야기

조셉 리저우드 셰프의 남도탐미 pt.2 -강진, 해남 여행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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