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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Apr 26. 2019

부여의 어제와 오늘

백제의 숨결과 감각적인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동시에 만나는 여행. 

백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도심을 거닐고,
전통이 어우러진 도시재생을 꿈꾸는 자온길 프로젝트에 동참하자.
고색창연한 꿈을 꾸는 부여의 과거와 현재를 조우하는 여행.



THE PAST

백제의 보물을 찾아서

전시관이 모여 있는 국립부여박물관의 로비. ⓒ 박소현


백제의 마지막 도읍인 사비성이 있었던 ‘부여’란 지명은 귀에 제법 익숙하다. 그러나 명성에 비해 오늘날 부여는 지극히 평범한 소도시의 모습으로 여행자를 맞는다. 서울이나 경주처럼 과거의 영광이 깃든 도시가 그러하듯 고색창연한 문화재와 유적지를 기대해볼 법하나, 이마저도 부여에는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스러져가는 터나 전해 내려오는 설화에 기대어 백제의 흔적을 느낄 수 있을 뿐. 종종 이웃한 공주와 묶어 잠시 들러가는 당일치기 여행지로 취급받지만, 백제 역사의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부여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그 첫 번째 조각을 찾아 국립부여박물관으로 향한다.

“사실 부여에는 일제강점기부터 박물관이 있었어요. 1939년 조선총독부박물관 부여 분관으로 출범해 1993년에 이전 개관한 거죠. 백제와 일본 문화의 연관성을 연구하던 일본 학자들이 먼저 백제의 문화유산에 관심을 보이면서 부여의 역사적 가치가 재조명됐어요.” 홍문자 해설사가 나긋한 어투로 국립부여박물관 안내를 시작한다. 총 4관으로 구성된 전시실은 충청남도의 선사·고대 문화부터 부여의 백제 문화까지 아우른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백제금동대향로다. 백제금동대향로는 1993년 부여 능산리사지에서 출토될 당시 그 과정을 생중계 할 정도로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백제금동대향로가 백제의 뛰어난 공예 기술을 보여주는 최고의 걸작이자, 부여에서 백제 문화가 가장 화려하게 꽃피웠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유물이기 때문이다.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된 백제금동대향로. ⓒ 박소현


“국보 제287호입니다.” 백제금동대향로를 황홀한 눈빛으로 감상하던 홍문자 해설사가 마침내 입을 뗀다. “백제금동대향로에는 슬픈 사연이 있어요. 백제의 전성기를 이끈 성왕이 아들인 위덕왕이 일으킨 전쟁 중에 신라군에게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슬픔에 잠긴 위덕왕이 아버지의 넋을 기리고 전쟁에 지친 백성의 마음을 달래고자 사찰을 짓고 이 향로를 만든 거예요.” 이야기를 들으며 백제금동대향로를 마주하자 감동은 배가된다. 연꽃 봉오리 형태의 향로를 앞발을 치켜든 용이 물고 있고, 꼭대기에 봉황이 날아와 앉은 형상. 신령스러운 산을 표현한 뚜껑에는 다섯 악사와 신선, 상상의 동식물 등을 새겨 넣으며 신비로운 예술 세계를 펼쳤다. 당시 거푸집 기법을 이용해 이토록 정교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불교와 도교의 복합적 요소를 가미하고 여러 종교를 포용하는 백제의 사상관을 압축해 표현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국립부여박물관에서는 백제의 근초고왕이 일본왕에게 하사했다고 알려진 칠지도(七支刀)도 만날 수 있다. 아쉽게도 일본이 진품을 소장하고 있어 복제품을 전시한 것이지만, 백제가 일본에 문화를 전파했다는 중요한 근거를 입증하는 유물인 만큼 의미가 남다르다. 박물관을 나서는 길, 홍문자 해설사가 마지막으로 간곡하게 말한다. “나성,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 고분군 등 부여의 백제 유적지구 4곳이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답니다. 고구려, 신라 못지않게 찬란한 백제의 문화에도 관심을 기울어줬으면 해요.”

ⓘ 국립부여박물관 무료입장, 10am~6pm, 월요일 휴무, buyeo.museum.go.kr




영광과 한이 깃든 도시

백제문화단지의 제향루에서 바라본 능사와 5층목탑. ⓒ 박소현


부여는 최초의 계획도시라 할 수 있다. 538년 성왕이 사비 천도를 명하고 왕궁과 사찰, 성벽 등 기반시설을 한 곳에 구축한 것. 그 덕에 주요 관광지가 밀집한 부여 도심을 1바퀴 돌면 1,400년 전 백제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대략 그려볼 수 있다. 상상만으로 뭔가 부족하다면 백제문화단지로 방향을 틀자. 백제문화단지는 백제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1994년부터 총 17년간 6,904억 원을 투자해 조성한 곳이다. 330만 제곱미터의 대지 위에 왕궁인 사비궁과 대표 사찰인 능사를 고증을 거쳐 재현했는데, 수많은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500여 회를 심의한 후 국가무형문화재 장인의 손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좌) 백제문화단지 내 사비궁 전각에 그려진 백제 시대 양식의 단청. (우)  직선으로 뻗은 처마선과 처마 끝에 장식한 치미도 백제 시대 건축 양식의 특징이다. ⓒ 박소현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백제 왕궁에 대해 <삼국사기>에 이렇게 묘사돼 있어요. 이게 바로 백제의 정신이지 않을까요.” 양승만 문화관광해설사가 사비궁의 정전인 천정전을 가리키며 말한다. 천정전은 언뜻 보면 경복궁 근정전과 비슷하다. 백제의 건축 기술이 조선 시대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 그러나 하나하나 뜯어보면 또 다르다. 직선인 처마선과 지붕 처마를 길게 뺀 하앙 구조, 수수한 단청 등 하나같이 우아하고 기품이 넘친다. 왕궁을 빠져나오자 38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5층목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능사(陵寺)는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왕실 사찰입니다. 능산리 고분군 인근에서 발견된 절터를 동일한 규모로 재현한 것이죠.” 양승만 문화관광해설사가 설명을 덧붙인다. 능사의 웅장한 규모는 백제금동대향로가 추론을 뒷받침해준다. 진흙 구덩이에서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견됐지만, 사실 능사 내 공방 자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이를 똑같이 구현한 장소에 서니 과거 눈부시게 화려했던 백제의 전성기가 슬며시 오버랩된다.


(좌) 낙화암 꼭대기에 자리한 백화정. (우) 관광객을 실은 황포돛배가 백마강을 지나고 있다. ⓒ 박소현


부여 시내를 반달 모양으로 휘감아 흐르는 백마강은 해외 진출이 가능한 교통로이자 주변에 기름진 평야를 끼고 있는 요지로서 백제가 부여로 천도한 결정적 요인 중 하나였다. 결국 애달픈 최후까지 함께하며 백제의 흥망을 지켜봤지만.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낙화암도 바로 백마강 강변에 자리한다. 낙화암을 가까이서 감상하는 방법은 구드래나루터선착장과 고란사를 오가는 황포돛배를 타는 것이다. 배를 타고 고란사에 다다르기 전 낙화암을 눈도장 찍듯 지나치지만 풍경을 눈에 담기에는 충분하다. 고란사에서 약 200미터 더 올라가면 소나무에 둘러싸인 백화정이 나온다. 바로 삼천궁녀가 적군을 피해 몸을 던졌다는 그곳이다. 그 앞의 전망대에서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을 바라보는 것은 백제의 역사를 되새기는 마지막 코스로 더할 나위 없다.

ⓘ 백제문화단지 입장권 6,000원, 9am~6pm, 월요일 휴무, bhm.or.kr

ⓘ 구드래나루터선착장 황포돛배 왕복 7,000원, 041 835 4689, 부여군 부여읍 나루터로 72.

ⓘ 낙화암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글. 문지연 사진. 박소현

문지연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부여 궁남지에서 밤에 민속 그네를 타면서 최근 들어 가장 많은 별을 보았다. 취재에 동행한 사진가 박소현은 규암마을에서 이장님의 아침 방송 소리에 일찍 눈을 떴다.



'부여의 어제와 오늘'에 이어진 이야기

부여의 어제와 오늘 pt.2 -자온길 프로젝트

부여의 어제와 오늘 pt.3 -목공소와 떡 카페

부여 여행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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