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더로드 Jun 16. 2015

A Journey to the Last Island

베트남 끝자락의 섬에서

나만의 은밀한 섬으로 떠나고 싶은 몽상은 베트남 푸꾸옥에서 현실이 된다. 한적한 어촌 마을의 일상과 환상적인 해변이 공존하는 이 외딴섬에서 때묻지 않은 비밀 장소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고현사진 김태호



낯선 섬에 당도하다

우기가 짧고, 햇살이 뜨거운 섬의 일상에서 논라는 필수다. © KIM TAE-HO

베트남 섬 여행은 좀 낯설게 다가온다. 가까운 타이만 살펴봐도 안다만 해(Andaman Sea) 연안을 따라 지상낙원 같은 열대 섬이 흩어져 있는 반면, 베트남에는 할롱베이(Hạ Long Bay) 크루즈 여행 외에(배 위에만 머물기에 온전한 섬 여행이라 부르기에 무리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3,444킬로미터에 달하는 기다란 해안선이 우리나라 동해안처럼 굴곡 없이 매끈하게 뻗어 있고 섬을 거의 찾기 힘든 탓이다. 그런 연유로 캄보디아 국경에 맞닿은 남서부 끝의 하띠엔(Hà Tiên)에서 40킬로미터가량 더 떨어져 있는 베트남 최대 섬 푸꾸옥(Phú Quốc)은 일단 호기심을 자극한다.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에도 정보가 거의 나와 있지 않은 섬이네요.” 푸꾸옥국제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기다리던 중 앞서 가던 앨러스테어 니컬러스(Alastair Nicholas)가 말한다. 영국 출신의 니컬러스는 베트남항공에 근무하는 친구의 추천으로 이곳을 휴가지로 선택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푸꾸옥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고 봐야죠. 그래서 이번 여행이 더 기대돼요.” 2년 전 새로 지은 공항의 말끔한 분위기는 섬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푸꾸옥은 거리상 베트남보다 캄보디아에 더 가깝다. 실제로 100여 년 전 베트남 인이 본격적으로 이주하기 전까지는 크메르(Khmer) 인이 주로 머물던 섬이었다. 이후 두 나라 사이에서 푸꾸옥을 두고 지리멸렬한 영토 분쟁이 이어진 끝에 1982년 캄보디아 정부가 베트남 국토로 인정하면서 공식적으로 베트남 끼엔장(Kiên Giang) 성에 속한 것이다.


차를 타고 공항 밖으로 나오자 푸꾸옥이 직면한 현실이 한눈에 드러난다. 프로젝트 개발 승인을 막 끝낸 신도시인 양 도로 양쪽으로 공사 현장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정부에선 이곳의 여행 인프라 확장을 추진하면서 향후 불어날 여행자를 위한 리조트와 각종 편의 시설을 세우느라 여념이 없어 보인다. 외부의 주목을 받아본 적 없는 순박한 섬이 새로운 변화에 너무 기민하게 반응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 정도다.


거제도보다 조금 큰 면적의 푸꾸옥은 이동 루트가 무척 단순하다. 섬의 남북을 잇는 메인 도로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아직 비포장도로이므로 딱히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섬 북단에서 남단까지 이어진 도로를 따라 차로 1시간 정도면 충분히 닿을 수 있다. 번잡한 공사 현장 사이로 야자수와 푸른 열대우림이 시야를 채우면서 섬이 맨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간간이 지나치는 공산당 선전 포스터와 전통 모자 논라(nón lá)를 쓴 현지인이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지나가는 광경은 이곳이 베트남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섬을 관통하는 메인 도로는 푸꾸옥의 자연을 가르는 기준점이 된다. 도로의 북동쪽 방면은 유네스코에서 생물보호구로 지정한 푸꾸옥 국립공원(Vườn Quốc Gia Phú Quốc)으로, 산봉우리와 열대우림을 아우른다. 반면, 도로 남서쪽에는 완만한 해변을 따라 자연스럽게 어촌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그중 서부 해안가의 한복판에 중심 마을 즈엉동(Dương Đông)이 자리한다. 부둣가에 줄줄이 매달린 수십 척의 어선과 방파제 옆으로 늘어선 간이 좌판이 시끌벅적한 항구의 풍경을 자아내는 곳이다. 항구 옆 암석 위에는 우두커니 서 있는 등대 옆으로 딘꺼우(Dinh Cậu) 사원이 있다. 섬 주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어민의 무사귀환을 기리는 이 사원은 푸꾸옥에서 의미심장한 장소 중 하나다.

번잡한 공사 현장 사이로 야자수와 푸른 열대우림이 시야를 채우면서 푸꾸옥 섬이 맨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석양이 붉게 물드는 즈엉동 항구. 노점이 들어서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의 항구에는 현지인과 관광객이 자연스럽게 뒤섞인다. © KIM TAE-HO

섬을 풍요롭게 하는 것

© KIM TAE-HO

현지인은 푸꾸옥을 ‘뿌궉’에 가깝게 발음한다. 실제 ‘부국(富國)’이라는 한자에서 유래한 지명이기 때문이다. 그 이름에는 갖가지 자원이 풍부한 땅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베트남 남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외딴섬이 차지하는 위상은 이곳에서 난 무수한 식자재를 확인하는 순간 확 달라진다.


쌀국수부터 스프링롤, 죽, 볶음밥은 물론 바게트 샌드위치 반미(bánh mì)까지 베트남의 웬만한 요리에 빠지지 않는 느억맘(nước mắm). 우리나라 사람이 고추장에 보내는 것만큼 베트남 인의 깊은 애정이 담긴 피시소스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느억맘의 최대 산지가 푸꾸옥이다. 섬을 둘러싼 바다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까껌(Cácơm, 멸치)은 곧장 섬 안에 흩어져 있는 100여 개의 느억맘 공장으로 보낸다. 이어 까껌을 소금에 절인 후 약 1년 동안 거대한 나무 통에 담아 발효하는데, 차츰 양을 줄여 농도를 조절한 뒤 병에 담은 느억맘은 베트남 전국 각지의 주방으로 향하게 된다. 즈엉동 근방에 있는 틴팟(Thịnh Phát) 느억맘 공장의 발효 창고 안으로 들어서자 멸치액젓 비슷한 퀴퀴하고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강하게 자극한다.


차를 타고 섬의 내륙을 가로지르다 보면, 길 옆으로 나무가 규칙적으로 줄지어 있는 광경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이는 푸꾸옥에서 약 800가구가 종사한다는 후추 농장. 가구당 약 3,000그루의 후추나무를 키우는데, 1그루에서 1년에 약 5킬로그램의 후추를 생산한다고 하니 어림 잡아 계산해도 대단한 수확량이다. 실제 베트남 최대 후추 산지는 본토 남서부의 고원 도시 달랏(Ða Lat)이다. 그렇지만 푸꾸옥 사람들은 이곳의 후추가 향과 맛에서 달랏에 앞선다고 자부한다.


득팟(Dức Phát) 농장도 그런 곳이다. 촘촘하게 줄지어 세운 나무 기둥마다 후추나무가 덩굴을 이루어 뻗어있다. 높이 3미터까지 자란 후추나무는 평균 15년 정도 열매를 맺고, 7년 된 후추가 가장 맛이 뛰어나다고 한다. 마침 빨갛게 익은 후추 열매를 발견하곤 하나를 떼어 입에 넣어본다. 순식간에 입을 얼얼하게 만들 정도로 톡 쏘는 맛이다. 과거 유럽의 수많은 탐험가가 이 자그마한 향신료를 찾아 목숨을 걸고 인도양을 건너 아시아로 향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오른다.


푸꾸옥이 해외에 알려지는 데는 진주도 한몫을 톡톡히 했다. 30여 년 전 다이빙을 하기 위해 베트남을 찾은 호주 태생의 마이클 램스든(Michael Ramsden)도 바로 푸꾸옥의 진주에 매혹된 나머지 이곳에 정착한 사람 중 하나다. 베트남 아내와 함께 진주 양식장 응옥히엔(Ngọc Hiền)을 운영하는 그는 진주 양식 과정을 세심하게 설명하는 가이드를 자처한다. “여기 진주조개의 선명한 그러데이션이 보이나요? 바로 이것이 푸꾸옥 진주의 특징입니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화이트 진주나 옐로골드 진주와 달리 검은빛과 회색빛이 오묘하게 감도는 푸꾸옥 진주조개를 가리키며 램스든이 설명을 이어나간다. 이곳에서 키우는 진주조개는 보통 6년을 기본으로, 최대 세 번 채취한다. 그중 오래된 것은 18년까지 키운다고. 실로 대단한 정성이 필요해 보이지만, 그만큼 값이 올라가는 것도 인지상정이리라.

붉게 익은 푸꾸옥의 후추는 맛과 향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 KIM TAE-HO

관련기사

> 베트남 푸꾸옥 여행PART3, 배 위에서 누리는 만찬

> 베트남 푸꾸옥 여행PART4, 누군가의 비밀 장소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친구가 되어주세요.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페이스북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카카오톡

작가의 이전글 사진가 김중만이 포착한 싱가포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