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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Nov 17. 2015

호주 인디언 퍼시픽 미식 열차 여행

호주의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즐기는 특별한 방법. 호주 남부 아웃백을 가로질러 달리는 인디언 퍼시픽에서 미식에 빠져보기.


호주 음식이란 무엇인가


통통한 속살을 드러낸 새우가 판치 포론(Panch Phoron, 다섯 가지 향신료를 섞은 인도의 혼합 향신료)으로 양념한 감자 샐러드 위에서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 큼지막한 새우로 말하자면, 서호주 북쪽 엑스머스 만(Exmouth Gulf)에서 잡은 싱싱한 놈이다. 그리고 이 요리로 말하자면 인디언 퍼시픽에 탑승해 맛보는 첫 번째 메뉴다. 그래 봐야 기차에서 먹는 음식인데 왜 이리 호들갑이냐고? 호주 남부를 횡단하는 인디언 퍼시픽에 몸을 싣는다는 것은 단순한 기차 여행 그 이상을 의미한다. 퍼스(Perth)에서 출발해 시드니(Sydney)까지 달리는 동안 눈으로 기차가 지나는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고 입으로는 그 땅이 품은 훌륭한 음식과 와인을 음미하는 경험. 그러니까 이 여정에서는 식사 그 자체가 중요하다. 호주의 미식을 맛보기 위해 기차를 탄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말이다. 내가 올라탄 이 열차, ‘인디언 퍼시픽 푸드 앤드 와인 트레인(Indian Pacific Food & Wine Train)’은 특히 더 그렇다. 그레이트 서던 레일(Great Southern Rail)이 기차와 함께하는 미식 여행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니까. 그레이트 서던 레일은 인디언 퍼시픽을 포함해 호주 종단 열차인 더 간(The Ghan), 애들레이드(Adelaide)와 멜버른(Melbourne)을 잇는 더 오버랜드(The Overland)를 소유한 기차 회사다. 오늘 이 열차에는 호주의 유명 셰프와 와인 전문가, 현지 식자재 공급자 등이 탑승해 있다. 아, 물론 열차 내 모든 음식을 전담하고 있는 인디언 퍼시픽의 공식 셰프 2명도 함께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능숙하게 와인 잔을 나르는 대미언(Damien)은 친절한 서비스와 유머로 승객을 즐겁게 만드는 능력자다. © 정수임

정오 무렵 퍼스를 출발한 인디언 퍼시픽의 첫 일정이 바로 점심 식사. 오늘의 식탁에는 ‘서호주에서 잡은 것(Catch of WA)’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짐작하듯 서호주의 풍부한 해산물이 테마다. 새우에 이어 던피시(dhunfish)가 메인 요리로 나온다. 던피시는 농엇과(科)에 속한 바닷물고기로, 서호주에서만 잡히는 어종이다. 두툼하게 구운 생선 살에 로메스코(romesco, 고추와 견과류를 베이스로 한 카탈루냐식 전통 소스)와 렌틸콩, 올리브 오일을 곁들였는데, 맛이나 향이 과하지 않아 흰 살 생선 특유의 담백함과 부드러움을 그대로 음미할 수 있다. 요리에 사용한 모든 해산물은 서호주의 카일리스 브로스 시푸드(Kailis Bros Seafood)에서 공수한 것이다. 1926년 퍼스의 보잘것없는 노점에서 시작한 카일리스 브로스 시푸드는 오늘날 서호주는 물론, 호주 전역에서 알아주는 해산물 공급업체다. 디저트로는 프리맨틀 초콜릿(Fremantle Chocolate)으로 만든 타르트가 나오고, 3코스 요리가 이어지는 내내 스완 밸리(Swan Valley)와 마거릿 리버(Margaret River)에서 생산한 와인을 제공한다. 탁자 위의 식기가 규칙적으로 부딪히며 소리를 낼 정도로 기차의 움직임은 꽤 거친 편인데도, 플래티넘 레스토랑(Platinum Restaurant)의 담당 승무원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접시를 나르고 와인을 따른다. 창밖에는 거친 평야와 짙푸른 하늘이 전부인 풍경이 이어진다.

첫 점심 식사로 나온 서호주의 던피시. © 정수임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식사를 즐기다 보니 문득 궁금하다. 호주를 미식 여행지로 꼽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땅덩어리가 거대하니 식자재가 다양하다는 것쯤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지만, 이곳의 음식이 프랑스나 이탈리아, 일본처럼 여행의 목적이 될 정도로 널리 알려진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호주 음식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최근 호주관광청이 발표한 조사 결과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호주 방문 경험의 유무에 따라 음식을 호주 여행의 목적으로 선택한 비율이 2배 이상 차이가 난 것. 나 역시 프리맨틀이 퍼스 인근의 항구도시라는 건 알아도, 그곳이 초콜릿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은 조금전에 알지 않았는가.


이쯤 되면 애덤 랴우(Adam Liaw)가 식사 후 토론 주제로 고른 “호주 음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호주가 미식 여행지로 덜 알려진 것은 이 지역 음식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0년 방영한 <마스터 셰프 오스트레일리아(Master Chef Australia)> 시즌 2의 우승자인 랴우는 말레이시아 태생으로, 영국계 싱가포르 인 어머니와 중국계 말레이시아 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10대 때 호주로 이민 온 뒤 요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현재 일본인 아내와 함께 호주와 일본을 오가며 살고 있다. 그가 지닌 복잡한 문화적 배경은 그 자체로 호주 음식의 특징을 대변한다. “넓은 대륙, 다채로운 기후와 토양, 원주민과 이주민이 공존하는 문화적 다양성이 얽혀 호주의 음식 문화가 탄생했죠. 그래서 세계 각지의 음식을 현지 못지않게 훌륭한 수준으로 즐길 수 있지만, 정작 ‘호주 요리는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어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랴우의 고민은 호주 음식을 정의하는 일이 여행자뿐 아니라 현지인에게도 풀기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예로 든 것처럼 싱가포르의 치킨라이스나 하와이의 스팸 무스비도 따지고 보면 타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음식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호주 요리는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호주 사람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모든 음식을 호주 요리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실제 호주에선 유럽과 아시아를 포함해 전 세계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고, 맛을 내는 수준도 상당하다. 호주인이 어느 서양인보다 젓가락 사용에 능숙하고 새로운 음식에 관대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것저것 다 차치하고, 호주 어디를 가나 맛있는 음식과 와인이 있는데 그 이상 무엇이 중요하랴.

애덤 라우는 <마스터 셰프 오스트레일리아> 시즌2의 우승자인 그는 여러 문화가 뒤섞인 호주 요리의 특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 정수임

서호주 금광 마을에서 건배!


인디언 퍼시픽의 객차는 레드, 골드, 플래티넘 서비스로 나뉜다. 기차 안에서 짧게는 1박, 길게는 3박까지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만큼 레드 클래스를 제외하고 모두 욕실 딸린 침대칸이다. 밤에는 침대로 변신하는 좌석, 적당한 크기의 창문 하나, 창가에 달린 앙증맞은 테이블, 벽 속에 숨은 옷장과 샤워 시설까지 완비한 미니 화장실. 크지 않은 공간을 어쩌면 이렇게 알뜰하게 활용했는지. 인도의 마하라자스 익스프레스(Maharajas’ Express)처럼 호화로움으로 무장한 건 아니지만, 딱히 부족할 것도 없다. 여기에 마치 수시로 우렁각시가 다녀간 듯 눈에 보이지 않는 세심한 서비스가 더해져 럭셔리 열차의 면모를 완성한다. 특히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와 방문을 열 때면 포근한 매트와 이불이 깔린 침대가 기다리는데, 그 위에 사뿐히 올려놓은 초콜릿 꾸러미와 가지런히 개어놓은 손님의 옷가지가 일본 고급 료칸의 손길 못지않다.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호주의 자연은 이 기차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동반자다. © 정수임

‘인디언 퍼시픽’이라는 이름은 퍼스에서 시드니까지, 즉 인도양(Indian Ocean)과 태평양(Pacific Ocean)을 연결하는 열차라는 뜻이다. 1970년 2월, 운행을 처음 시작한 이래 4,352킬로미터를 끊임없이 왕복하고 있다. 3박 4일을 꼬박 기차 안에서 보내야 하는 이 일정이 부담스럽다면, 퍼스-애들레이드 구간(2박 3일, 2,659km) 혹은 애들레이드-시드니 구간(1박 2일, 1,693km)을 선택할 수도 있다. 탑승객이 타고 내리는 3개 역을 제외하면 인디언 퍼시픽은 운행 내내 다른 역에 거의 멈추지 않는다. 열차 시간표에 따라 2~3개의 간이역에 잠시 섰다 가는 게 전부. 하기야 집 1채 찾기 힘든 황야에 굳이 멈춰선들 무얼 할 수 있겠느냐만. 그런 의미에서 탑승 첫날 저녁 식사까지 마친 늦은 밤, 2시간 남짓 정차하는 캘굴리(Kalgoorlie)는 이 여정에서 꽤 중요한 장소다. 퍼스에서 동쪽으로 600여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은 19세기 후반에 생겨난 금광 도시로, 서호주 골드필드(Goldfield)의 대표 명소다. 낮이라면 타운 홀이나 박물관을 둘러보거나 금광 투어라도 했겠지만, 어둠 깔린 마을은 텅 빈 것처럼 고요하다. 이럴 때 맥줏집이 아니면 어디를 간단 말인가. 게다가 이곳에는 서호주 최고의 크라프트 비어를 만드는 브루어리도 있으니, 캘굴리 밤 나들이의 목적지로 다른 곳을 논할 이유가 없다.


머드 크랩과 바라문디(barramundi, 호주의 대표 민물고기)로 속을 채운 애덤 랴우의 덤플링. © 정수임

골드러시가 한창이던 1900년대 캘굴리에는 90여 개의 펍과 8개의 브루어리가 있었다. 거주 인구 3만 명에 불과한 현재도 25개의 펍이 성업 중이다. 마을 중심부에 자리한 더 캘굴리 호텔(The Kagoorlie Hotel)에 들어서면 안뜰이 있는 비어 가든이 나온다. 이곳에서 ‘2014 호주 인터내셔널 맥주 어워즈(2014 Australian International Beer Awards)’ 최고의 지역 맥주로 꼽힌 매시 브루잉(Mash Brewing)의 맥주를 시음할 예정이다. “보존료 같은 인공 첨가물을 최소화하고 좋은 재료를 사용해 맥주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이 핵심이에요.” 매시 브루잉의 브루어인 에디 스틸(Eddie Still)이 맥주잔을 건네며 말한다. 아메리칸 IPA, 잉글리시 IPA, 아메리칸 앰버 에일 등 여러 맥주가 차례로 나오는데, 맛은 제각각이지만 어느 것이나 부드럽게 넘어간다는 점은 같다. “호주의 크라프트 비어는 미국의 트렌드에 5년 정도 뒤져 있다”고 가감 없이 말하는 그를 보니 매시 브루잉 맥주의 그런 특징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것도 같다. 프로젝터 화면 속 뮤직비디오와 반짝이는 미러볼을 안주 삼아 컴컴한 정원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는 밤. 우리에겐 돌아가야 할 기차가 있다. 잔을 말끔히 비운 뒤 살짝 커진 목소리로 적막한 밤공기를 가르며 기차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뿐하다. 객차 입구에서 반기는 승무원에게 미소로 인사한 뒤 내 작고 아늑한 침대에 눕는 일만 남았으니까.

여행 내내 골드와 플래티넘 서비스 승객의 식사를 담당하는 퀸 애들레이드 레스토랑. © 정수임

널라버 평원 위에서 발견하는 대륙의 맛

롤리나 역은 크리스마스 시즌 동안 인디안 퍼시픽을 타고 온 산타클로스와 원주민 아이들의 만남의 장소다. © 정수임

잠결에 기차가 서서히 속력을 늦추는 것을 느낀다. 캘굴리를 출발해 꼬박 7시간을 달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롤리나’라고 적힌 표지판. 사실 이곳은 인디언 퍼시픽이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진행할 때만 정차하는 역이다. 매년 12월과 1월 사이, 산타를 태운 열차는 롤리나 역에 정차해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연다. 외딴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을 위한 위문 공연인 셈인데,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벌판에 등장하는 빨간 옷의 산타클로스는 이 지역 아이들이 1년 내내 애타게 기다리는 손님이다. 롤리나 역에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시프 스테이션(sheep station, 호주의 방대한 목양장을 가리키는 말)’. 이 일대가 호주 최대의 양 목장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른 아침 기차역 주변에선 양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양 6,500마리를 소유한 현지인 부부가 아침 인사를 건네고,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말 2마리가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하룻밤 사이에 이런 오지에 뚝 떨어졌다니! 순간, 지금 눈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길게 늘어선 은빛 객차 행렬을 마주하고 단출한 롤리나 역 앞에 차려진 야외 식탁. 따뜻한 커피와 빵이 있고, 나뭇잎 사이로 따스한 아침 햇살이 내리쬐며, 열차에 함께 타 있던 호주 출신 싱어송라이터 링컨 샤프(Lincoln Sharpe)의 라이브 공연이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산타복도, 선물 주머니도 없이 빈손으로 내린 것에 비하면 무척 과분한 환대다. 라면 한 그릇을 먹어도 야외에서 먹는 맛은 분명 다르지 않던가. 이미 수 차례 마신 인디언 퍼시픽의 롱 블랙(Long Black, 아메리카노의 호주식 표현)은 유난히 향이 좋고, 베이컨과 치즈를 끼워 넣은 미니 버거는 기차 안에서 나오는 푸짐한 아침 식사가 부럽지 않은 맛이다.


라이브 공연은 아웃백 간이역에서의 아침을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 정수임

롤리나 역을 지난다는 것은 기차가 널라버 평원(Nullarbor Plain)에 들어선다는 의미다. ‘널라버’는 라틴어로 나무가 없다는 뜻. 서호주와 남호주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이 석회암 지대에는 이름처럼 나무 1그루 없는 건조한 평원이 펼쳐진다. 그러고 보니 창문 너머 드문드문 눈에 띄던 초록빛이 거의 사라지고 키 작은 덤불이 메마른 땅을 가리고 있다. 이 드넓은 평지에서 인디언 퍼시픽은 세계에서 가장 긴 직선 철로를 달린다. 총길이 478킬로미터의 곧게 뻗은 기찻길 위에서 평원을 가로지르는 동안 호주 대륙의 진정한 아웃백 풍경을 원 없이 보고 또 볼 수 있다는 구간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야생 그대로인 황무지. 큰 변화 없이 이어지는 이 풍광이 지루해질 때쯤 마크 올리브(Mark Olive)가 마이크를 잡는다. “자, 지금부터 향신료 이름 맞히기를 해봅시다.”

마크 올리브의 조언대로 악어고기와 에뮤고기를 한층 맛있게 먹으려는 바쁜 손놀림. © 정수임

까무잡잡한 피부에 시원한 입매, 다부진 체격의 그는 한눈에 보기에도 원주민의 피를 물려받았다. 우람한 체구와 달리 언제나 웃는 눈을 하고 누구에게나 상냥해 탑승객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올리브는 호주인이기 전에 분달룽(Bundjalung, 호주 애버리지니 부족 중 하나) 사람이다. 뉴사우스웨일스 주 노던 강(Northern River) 일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 자연스럽게 애버리지니 전통 음식을 접했고, 현재는 호주 최고의 원주민 요리 전문가로 꼽힌다. 특히 호주 고유의 허브와 향신료가 그의 주 관심사. 테이블 위에는 그릇 20여 개와 이름표가 놓여 있다. 맛과 향에 의존해 각각의 이름을 알아내는 이 게임은 바꿔 말하면 올리브가 진행하는 ‘호주의 향신료 수업’이라 할 수 있겠다. 솔트 부시(salt bush), 레몬 머틀(lemon myrtle), 시 파슬리(sea parsley) 등 이름부터 생소한데, 호주 사람 중에서도 이를 구분할 줄 아는 이는 흔치 않다. 국적은 다르지만 허브에 문외한이긴 매한가지인 이들이 모인지라 넘겨짚은 문제가 반 이상. 그래도 너나 할 것 없이 진지하고, 정답이라도 나오면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이름을 알았으니, 이제 그 재료를 음식과 직접 섞어 먹어봅시다. 고기에 따라 솔트 부시를 찍어 먹거나 콴동(Quandong) 열매를 곁들이면 훨씬 맛있다니까요!” 우드 플레이트에 한가득 쌓아 내온 것은 호주를 대표하는 식자재인 에뮤(emu, 호주 고유종인 대형 조류), 악어, 캥거루 고기다. 셋 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지만 향긋한 훈제 향에 각종 허브로 풍미를 더해 다들 손에서 포크를 놓을 줄 모른다. 이 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맛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다음 세대에까지 전달하는 일에 누구보다 열정적인 마크 올리브. 금세 바닥을 드러낸 플레이트를 보니 그의 오늘 수업 역시 성공적이다.


달리는 레스토랑과 내일의 메뉴

인디언 퍼시픽의 주방을 책임지는 셰프 제니 테일러와 조셉 코비악. © 정수임

쇠고기 3만5,000접시, 양갈비 3만7,000개, 와인 4만 병, 우유 5만5,000리터. 연간 그레이트 서든 레일이 운영하는 열차 내에서 소비하는 식자재 양이다. 고작해야 내가 머무는 객실보다 살짝 넓은 부엌에서 셰프 2명이 골드 서비스와 플래티넘 서비스 승객의 모든 식사를 책임지고 있다. 그것도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그들이 식사 때마다 내놓는 요리를 생각하면 이건 거의 묘기에 가까운 수준이다. “쉽지는 않지만 여행을 하면서 요리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죠.” 이 열차의 공식 셰프 중 1명인 조셉 코비악(Joseph Cobiac)이 수십 인분은 될 법한 양의 채소 채썰기에 몰두한 채 말한다. 부엌 한구석에선 또 다른 셰프 제니 테일러(Jenny Taylor)가 팔팔 끓고 있는 냄비 앞에서 미소 짓고 있다. 승객들은 퀸 애들레이드 레스토랑(Queen Adelaide Restaurant)에서 그들이 만든 요리를 맛보게 된다. 양쪽으로 칸막이 테이블이 늘어선 레스토랑은 영화 속에 나올 법한 식당 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전적인 분위기다.

(왼쪽)맛있는 버거는 아웃백 간이역에서의 아침을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오른쪽)오래전부터 호주 원주민이 사용해온 고유의 향신료와 열매. © 정수임


커피부터 와인까지 각종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아웃백 익스플로어 라운지(Outback Explorer Lounge)와 퀸 애들레이드 레스토랑, 여기에 내년부터는 플래티넘 서비스 승객만을 위한 플래티넘 레스토랑이 인디언 퍼시픽에 새로 추가된다. 이번 미식 열차의 마지막 만찬은 일반 승객에게 아직 공개하기 전인 새 레스토랑에서 2015년 메뉴를 미리 엿보는 것. 인디언 퍼시픽에서 제공하는 모든 식사는 호주의 신선한 제철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는 게 핵심이다. 식사마다 몇 가지 메뉴 중에 선택할 수 있으니 여정 동안 같은 음식을 먹을 가능성은 거의 없고, 레스토랑 메뉴는 계절과 재료에 따라 주기적으로 바뀌니 1~2달 사이에 이 열차에 다시 오르지 않는 이상 같은 메뉴판을 볼 일도 없다.


오늘의 특별 만찬은 새우와 크랩 살을 넣어 끓인 비스크(bisque, 해산물로 만든 걸쭉한 수프)로 시작해서 ‘호주 해산물의 수도’로 불리는 포트 링컨(Port Lincoln)산 참치구이를 맛본 뒤 마거릿 리버 브리를 포함한 치즈 트리오로 입가심을 하면서 끝난다. 빅토리아 주의 야라 밸리(Yarra Vally), 남호주의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 등 유명 와인 지역에서 공수한 쇼비뇽 블랑, 피노 누아, 무스카트는 각 코스에 절묘하게 어울린다. 내년에 인디언 퍼시픽과 더 간을 이용하는 승객이라면 새롭게 문을 연 플래티넘 레스토랑에 앉아 이 메뉴를 맛볼 수 있으리라. 한발 먼저 그중 일부를 맛본 소감을 말한다면, 정말 기대해도 좋다.

퍼스를 출발한 다음날 이른 아침, 호주 최대의 목양지인 롤리나(Rawlinna)에 잠시 정차한 인디언 퍼시픽. © 정수임

 표영소 사진 정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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