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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Jun 03. 2019

오스카 와일드를 따라서 그리스에서

이상향의 땅을 가로지르며 빅토리아 시대의 작가를 좇아가는 여행. 

급커브를 돌자 태양의 열기를 받은 암벽의 가파른 측면이 등장했고, 길고 긴 오르막이 이어졌다. 나는 이미 기어를 가장 낮춘 상태였다. 쉴 새 없이 다리를 움직였고 머리도 마찬가지였다. 자전거는 점점 더 불안하게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밀기 시작했다. 아,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자전거 여행 중에 이렇게 내려도 된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는 그리스 바세(Bassae)의 아폴로 신전으로 가던 길이었다. 방문자는 적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장엄한 분위기의 이곳은 펠로폰네소스반도 서부에 솟은 1,130미터 높이의 암석 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신전 복원 작업을 위해 세운 거대하고 미래적인 천막 아래에 열을 맞춰 서 있는 도리아 양식의 기둥은 매우 훌륭하게 보존되었고, 특이하게도 주름 무늬의 석회암으로 만들어졌다. 천막은 고대 건축의 위엄을 깎아내리는 데 일조하지 못했지만, 우리가 여행에서 찾던 핍진성을 약간 깎아내리긴 했다. 우리의 목표는, 결국 역사와 관련돼 있다. 우리는 오스카 와일드의 여정을 따라가는 중이었다.


1877년, 스물세 살의 와일드는 그의 오랜 고전학 스승인 머해피(Mahaffy) 교수와 2명의 친구 그리고 시중을 들어줄 그리스 청년 1명과 함께 펠레폰네소스를 가로지르는 9일간의 여행을 떠났다. 나는 지난 6년 동안 위대한 작가 와일드의 전기를 쓰는 데 몰두하며 그의 삶에 중요하게 작용한 여러 장소를 방문했다. 이번에도 그의 그리스 여행을 내 나름대로 4명의 동료와 함께 재구성해보면 매우 재미있고 집필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와일드의 일행 중 2명은 여정을 자세하게 기록해놓았기에, 우리는 매일매일 하루 단위로 그 일정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서부 해안의 카타콜로(Katakolo), 올림피아, 안드리트사이나(Andritsaina), 바세,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 트리폴리스(Tripolis), 아르고스(Argos), 미케네, 나프플리오(Nafplio), 에피다브로스(Epidavros)를 거쳐 배를 타고 아테네까지. 와일드와 그의 일행은 말을 타고 여행했다. 말에게 적당한 두려움을 가진 런던 사람으로서 나는 자전거를 타면 와일드 일행과 비슷한 속도와 스타일로 여행을 끝마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자전거에 대한 나의 지식이 말에 대해 아는 것보다 그리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사실 그전까지 자전거 여행도, 그리스 여행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번 여행 계획 전반에 걸친 나의 흥분은 실현 가능성에 대한 거듭되는 의심으로 뒤바뀌었다. 이를테면 자전거를 구매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루트를 짜고, 숙소를 예약하고,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을 예상하고, 짐을 옮기고, 우리가 산악 지형을 통과하며 약 330킬로미터를 달릴 만한 컨디션인지 측정하는 일 따위를 포함해서 말이다. 결국 이번 여행은 순수한 기쁨의 정수를 입증했다. 


그리스 펠로폰네소스반도의 올림피아 신전. © dr. Le Thanh Hung/Getty Images



자전거 타기는 시골을 마주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다. 이는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명확해진다. 적어도 봄날의 지중해 국가 교외에서는 말이다. 자전거 여행을 하다 보면 누구나 풍경의 일부가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풍경 속 향기와 소리, 색감과 명소에 빠져들면서 말이다. 4월의 아르카디아는 야생화로 만든 천 조각 같다. 양귀비, 스카비오사, 캐머마일, 야생 히아신스가 붉은색, 핑크색, 노란색 그리고 흰색으로 피어 오른다.


박태기나무(유다나무)는 새파란 하늘 아래 보랏빛 꽃망울을 터뜨리고, 문배나무는 온통 흰색으로 치장한다. 염소 방울의 울림과 새의 울음소리가 언덕마다 울려 퍼진다. 아르고스의 평원으로 내려오자 오렌지꽃이 내뿜는 향에 취해 자전거를 타다 넘어질 뻔했다. 자전거를 이용하면 길 따라 펼쳐지는 광경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언제든 멈출 수 있다. 마치 점을 찍어놓은 듯한 오래된 벽돌 벽으로 지은 비잔틴 양식의 교회, 미케네의 사자 문(Lion Gateway)을 향해 굳건한 걸음을 내딛는 외로운 거북, 고대 그리스의 극장 외형에 영향을 끼친 반원형 탈곡장이 아르카디아의 언덕에 점점이 자리하고, 아스팔트 도로 위에는 가끔 납작해진 뱀이 보인다. 그러고나서도 여전히 많은 거리를 달릴 수 있다. 우리는 하루 평균 50킬로미터를 이동했다. 평지에 뒤바람까지 불어오면 1킬로미터 정도는 금방 달렸다. 드문드문 오르막을 마주치면 속력은 다소 느려졌다. 바세에서는 자전거에서 내려 밀고 올라가야 할 순간도 있었다. 다행히 말과 달리 자전거를 힘겹게 밀어 오르막을 오르기만 하면, 그 후에는 힘들이지 않고 내리막길을 달리는 즐거움이 보상해주었다.


그리스의 매력은 거의 변하지 않은 모습에 있다. 신화 속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와일드와 그의 친구들이 여행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확실히 그렇다. 머해피가 책에서 기술한 작은 마을과 고대 유적 대부분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는 와일드의 연인이었던 조지 맥밀런(George Macmillan)이 그리스의 헤어스타일과 송진을 넣은 전통 레치나(retsina) 와인의 끔찍함에 대해 묘사한 의견을 몸소 확인할 수 있었다. 아르고스의 버림받은 야외 극장에서는 황혼이 깃들 무렵 잡초로 뒤덮인 폐허 속에서 인식의 모든 기쁨을 누리며 와일드가 쓴 소네트를 읽을 수 있었다. 올림피아의 우아한 근대 박물관에는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의 팀파눔(tympanum)에 조각된 아폴로상을 복원한 유물이 서 있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유산 중 하나다. 1877년 와일드의 일행이 유적에 도착하기 하루 전에 제우스의 웅장한 두상 부분이 발굴됐다. 그들은 임시 창고에 놓인 그 두상을 보았다. 형편 없는 장소에 전시되어 있음에도 와일드의 눈에는 여전히 위엄 있게 보였다. 그는 “아직도 대리석 안에 깃든 신의 영혼”이라고 묘사했다. 오늘날 박물관에 멋지게 전시된 그 석상을 바라보면, 와일드가 옳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매슈 스터지스는 오스카 와일드의 전기

<Oscar: A Life>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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