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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Jun 16. 2019

디자이너 정승민, 제주에서의 하루

TRVR 정승민 대표와 함께 제주도를 여행했다. 단 하루동안.  

삶의 여행자를 뜻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TRVR을 이끄는 디자이너 정승민은 모험심 넘치는 여행가기도 하다. 봄날, 짙은 운무에 휩싸인 제주를 그와 함께 여행했다. 그리고 여행하며 디자인하는 삶에 대해 물었다. 


8AM. 이른 아침, 아테온을 타고 자욱한 운무에 휩싸인 제주 동부 해안을 드라이브하다 잠시 멈추고 해안가를 거닌다. ⓒ 김주원


혼자 떠난 첫 여행은 언제였나요?

고등학생 때, 목적지를 알 수 없는 버스를 타고 홀로 무작정 떠났다가 바로 돌아왔어요.


그 마음이 지금도 남아 있을까요?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필리핀, 호주, 뉴질랜드 등 총 20개국 정도를 여행했는데요. 어디에 가느냐가 아니라 목적지로 가는 과정에서 겪은 것을 어떻게 내 스토리로 만드는가가 제 여행에서 중요한 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여행지에서는 계획대로 이동하기보다는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고, 하루에 3만 보 이상 걷기도 해요. 점에서 점으로 이동하는 여행보다는 선의 여행을 좋아합니다. 선의 여행에서 만난 사람을 통해 면이 되는 거고요.


기억에 남는 여행의 순간이 있다면?

1달간 떠난 신혼여행에서 프랑스 파리에 2주간 머문 뒤, 니스까지 자동차 여행을 했어요. 사실 파리에서 니스까지는 10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요, 달리다가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멈춰서 둘러보고, 며칠 머무는 식으로 느긋하게 여행했죠. 어디선가 길 양쪽으로 동산이 펼쳐진 길을 달리는데, 그 순간 오디오에서 칼라 블레이(Carla Bley)의 곡 ‘Lawns’가 흘러나왔어요. 지금도 그 곡을 들으면 길을 달리던 순간이 떠올라요. 배경음악이 자동차 여행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듯해요. 그리고 물론 옆자리에 누가 탔는지가 가장 중요하지만요.



10AM. 성산일출봉이 바라보이는 섭지코지 해안가에 도착.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유민미술관 앞 들판에는 말 1마리가 쓰러진 듯 잠들어 있다. ⓒ 김주원



자동차 여행을 즐기는 편인가요?

네. 뉴질랜드 남섬을 2달간 캠퍼 밴으로 여행한 적 있어요. 구글 지도가 아닌 종이 지도와 감만으로 돌아다녔는데,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던 기억이 납니다. 제주도도 자동차로 여행하기 좋은 곳이죠. 건물 너머로 한라산이 보이고, 검은 현무암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지는 것처럼, 여러 층위가 켜켜이 겹친 풍경이 인상적이에요.


제주에서 특히 좋아하는 장소가 있나요?

2012년, 자전거로 여행하며 처음 갔던 사려니숲길과 용눈이오름이 기억에 남아요. 사려니숲에는 차를 대놓고 하룻밤 머물기도 했는데요, 잣나무, 전나무 등이 무성하게 우거져 한국 같지 않은 이국적인 풍경이 정말 멋있습니다. 아, 그 근처에서 먹은 교래칼국수가 정말 맛있었어요.



12PM. 빛의 벙커를 거닐며 음악과 어우러진 미디어 아트를감상한다. “좀 더 감상할시간 여유가 있을까요?” 정승민이 물었다. ⓒ 김주원



이번 제주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빛의 벙커에 갔을 때예요. 불완전한 공간이라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국가 기간 통신 시설이던 벙커 건물을 전시관으로 만든 곳이에요. 기둥이 많아 공간이 숨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이른 아침에 김녕에서 평대리, 하도리 등 안개 낀 동부 해안도로를 달릴 때에도 좋았습니다. 보통 제주 하면 떠올리는 맑고 파란 하늘 같은 이미지와 달리 이번 여행에서는 가까운 산이 제대로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고 날이 흐렸는데, 그 풍경이 오히려 몽환적이었어요. 그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어지더라고요.


오늘 하루 동안 폭스바겐 아테온으로 드라이브를 해보니 어땠나요?

적당히 숨기는 듯하면서 드러내야 할 것은 드러내는 세련된 디자인이 매력적이었어요. 주행 모드를 바꾸는 기능, 직관적 디스플레이, 노면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낮은 차체도 인상적이었고요. 충분히 ‘펀 카’로 즐길 만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 오랜 드림 카가 폭스바겐 골프예요. 좋은 의미로 ‘양의 탈을 쓴 늑대’랄까요?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그 안에 야성미가 숨어 있죠. 제가 좋아하는 디자인에 가장 근접해요. 적당한 절제미를 갖췄고, 본질과 기본에 충실하며, 눈빛 하나로 분위기를 제압하는 배우 같죠.



2:30PM. 이스트키친에서 딱새우 파스타를 맛본 뒤, 디자인 호텔 겸 복합 공간 플레이스 캠프 제주에서 에디터와 이야기를 나눈다.ⓒ 김주원



‘삶의 여행자’를 뜻하는 브랜드 TRVR을 전개하고 있죠. 어떤 디자인을 추구하나요?

좋은 디자인은 사람의 삶과 맞닿아 있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디자인은 빈 그릇을 제공하고, 거기에 스토리를 채워 완성하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죠. 소재든 형태든 본연의 역할에 가장 충실한 것을 중시합니다. 내일이면 사라질 소재는 가급적 쓰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왁스 캔버스, 면, 양모, 가죽 같은 소재를 주로 사용합니다. 타임리스, 클래식, 롱 라이프 디자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있을 디자인, 누군가의 곁에서 꾸준히 함께할 무언가를 만들고자 합니다. 그래서인지 한 가지 제품을 만드는 데 오래 걸려요. 10개월에서 1년은 기본이고 2년, 3년까지 걸리는 때도 있어요. 과하게 진지한 것 같기도 해요.


정승민의 여행과 TRVR의 디자인이 닿는 지점이 있을까요?

여행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는다고 하기는 어려워요. 다만 시간이 흐른 뒤 생각해보면 분명 여행 경험으로부터 영향받은 부분이 많더군요.



3:30PM. 카페 베케에서 정원을 거닐며 30년간 정원 조경에 헌신한 김봉찬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 키우는 화분 상담도 하고. ⓒ 김주원



TRVR의 올해 계획이 있다면?

작년 프랑스 워크웨어 브랜드 르 몽생미셸(Le Mont Saint Michel)과 협업을 진행했어요. 서로 상대방 브랜드에서 사용하는 소재를 활용해 만든 제품을 선보였죠.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어서, 올해부터 르 몽생미셸과 시즌별로 컬래버레이션 라인을 선보일 계획이에요.


언젠가 가보고 싶은 여행지는?

아이슬란드와 호주 태즈메이니아는 꼭 가보고 싶어요. 미국 서부에서 동부까지 로키산맥을 넘는 자전거 여행도 하고 싶네요.



5PM. 재주상회에서 운영하는 편집매장 겸 카페 사계생활에 들러 딸기 라테를 마신다. ⓒ 김주원




▶ 여행자를 위한 TRVR 아이템

사냥용 빈티지 의자에서 영감 받은 야외용 헌팅 체어, 천연 왁스를 도포한 캔버스 원단의 투웨이 토트, 사용할수록 자연스럽게 색이 변하는 코튼 소재의 견고한 버킷 햇.


정승민 대표는 대학생 시절 선물받은 영국산 사이클링 캡을 ‘뜯으며’ 디자인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디자인 브랜드 ‘TRVR’과 브랜드 · 디자인 전략 회사 ‘VACANTWORKS’를 이끌며 용산구에서 TRVR 쇼룸 겸 카페를 운영한다. trvr.cc, 인스타그램 @cafe_trvr


인터뷰 장소 협찬 플레이스 캠프 제주


ⓘ 폭스바겐코리아 로드 투어 캠페인 온라인 채널 vwroadtour.vwkr.co.kr에서 정승민의 제주 여행 영상을 볼 수 있다.


글. 이기선 사진. 김주원



'디자이너 정승민, 제주에서의 하루'에 이어진 이야기

▶ 제주 동부와 북부 

▶ 제주 남부와 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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