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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Jun 28. 2019

이스라엘의 혼란 너머에서 발견한 것

텔아비브부터 예루살렘까지, 이스라엘의 새로운 삶과 문화를 쫓는 여행.

이스라엘은 단지 성서 속 배경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힙스터 수도 텔아비브에서 외계 행성 같은 네게브 사막, 지속 가능한 삶을 모색하는 에일라트를 거쳐 규정할 수 없는 도시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삶과 문화를 발견해보자.



유머 감각을 지닌 도시

올드 야파 끝자락, 20세기 초에 지은 야파 시계탑(Jaffa Clock Tower)이 지중해를 내려다본다. © SEMBLER/SHUTTERSTOCK


호텔 B 베르디헤브스키(Hotel B Berdichevsky)의 로비는 늘 파티 중이거나, 파티가 끝난 직후처럼 보인다. 약장으로 위장한 문, 위스키가 빼곡한 진열대, 피아노로 꾸미고 벨벳 암막 커튼을 쳐놓은 로비는 벨보이(Bellboy) 바를 겸하는데, 언제나 어둑하며 바깥 세상과 동떨어져 보인다. 이스라엘 총선 결과 예측을 1면에 실은 일간지는 바 테이블 위에 놓여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이미 청소를 끝냈지만 간밤의 분위기가 숙취처럼 공중에 떠돈다. 시끄러운 펑키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검은 슬립 드레스와 진주목걸이, 크리스털 머리띠로 차려입은 플래퍼 스타일의 웨이트리스가 종달새처럼 어둠 속을 오갔다. 대화를 잇기 위해 모두가 고함을 질러댔다. 나는 불에 그슬린 솔방울을 곁들여 내는 칵테일 홀리 워터를 주문했다. 유칼립투스 시럽과 라임즙을 넣은 상큼한 ‘성수’는 여기가 텔아비브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켰다.


(좌) 신시가의 해변 너머로 올드 야파의 실루엣이 보인다. (우) 올드 야파의 16세기 알 바르 모스크(Al Bahr Mosque) 첨탑. © 이기선


리셉션 데스크 옆에 걸려 있는 흑백사진에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보인다. 이곳 거리와 호텔 이름을 따온 19세기 말 유대인 작가 미하 요세프 베르디체브스키(Micha Josef Berdyczewski)다. 20세기부터 이스라엘 영토가 된 이 땅의 장대한 역사와 종교적 배경을 대하는 유머 감각은 오늘날 세련된 것으로 통한다. 적어도 텔아비브에서는. 기원전 18세기부터 아시리아인, 바빌론인, 그리스인, 이집트인이 이곳에 몰려와 지중해에 면한 야파(Jaffa) 항구를 차례로 정복했다. 오늘날 이방인은 도리언 그레이가 늘어져 있을 법한 벨보이 바나, 더 야파(The Jaffa) 같은 곳을 정복한다. 더 야파는 올드 야파의 12세기 수녀원을 미니멀리즘 정신에 입각해 개조한 호텔이다. 높은 궁륭 천장의 기도실은 ‘더 채플’이라는 인기 바로 재탄생했다.


최근 텔아비브에는 바나(Bana)를 포함해 스타일리시한 비건 레스토랑이 인기를 끌고 있다. © 이기선


텔아비브는 모순을 재치 있게 활용한다. 아침, 호텔 앞 로스차일드 불리바드(Rothchild Boulevard)를 가로질러 커피 숍 51(Coffee Shop 51)으로 향한다. 동네 주민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로스터리 카페로, 싱글 오리진 원두 10여 종을 에스프레소, 모카포트, 핸드 드립 등 온갖 추출 방식으로 내려준다. 어째서 블렌드 원두를 다루지 않느냐는 질문에 바리스타 길라드 멜라무드(Gilad Melamud)가 무뚝뚝하지만 명쾌하게 대답한다. “와인과 마찬가지예요. 좋은 카베르네 쇼비뇽을 굳이 다른 것과 섞지 않잖아요.” 그러고는 번호표를 대신하는 깜찍한 인형을 건넨다.


(좌) 텔아비브의 명물 로스터리 카페 커피 숍 51. (우) 나할라트 비냐민 스트리트 공예 시장. © 이기선


그날 오후, 바우하우스 건축유산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셰인킨 스트리트(Sheinkin Street)를 걷다가 인상적인 인물을 만난다. 브라질계 싱어송라이터 겸 유튜버 엘리제트(Elisete)가 뒷골목에서 카메라맨과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그녀는 온몸으로 스타의 자태를 발산한다. 이윽고 우아한 환영 인사와 애완견 미슈카 소개, 인증 사진 촬영, 달콤한 작별 인사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어안이 벙벙한 만남 뒤, 나할라트 비냐민 스트리트(Nachlat Binyamin Street)의 공예 시장을 구경한다. 토요일을 맞아 북적거리는 텔아비브 최대의 시장인 카르멜 마켓(Carmel Market)을 가까스로 빠져나와 네브 체데크(Neve Tzedek)까지 간다. 거리마다 강렬한 햇빛과 오렌지꽃 향이 넘실댄다. 1892년에 개설한, 야파와 예루살렘을 잇는 철길을 지나자 2021년 개통 예정인 텔아비브의 첫 메트로 공사 현장이 나온다.


(좌) 현대무용을 전문으로 다루는 수잔 델랄 센터 근처에 그려진 이 벽화는 텔아비브 현대사를 담고 있다. (우) 네브 체데크에는 수공예품 숍이 많이 모여 있다. © 이기선


19세기 말 올드 야파 바깥에 조성된 유대인의 첫 거주 지역인 네브 체데크는 몇 년 전 힙스터 동네로 급부상했다. 신생 레스토랑, 아이스크림집, 수공예품 가게 틈에서 독립 서점 시푸르 파슈트(Sipur Pashut)는 2003년부터 변함없이 영업 중이다. 1960년대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슈무엘 요제프 아그논(Shmuel Yosef Agnon)의 ‘단순한 이야기’라는 소설 제목에서 서점 이름을 따왔는데, 아그논은 실제로 네브 체데크에 잠깐 살기도 했다고. “19세기 말 히브루어가 부활했고, 1940년대부터 1960년대 사이에 유대인은 스스로에 대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적 회고록, 혹은 여성과 퀴어에 관한 이야기를요.” 직원 아미르 파이나루(Amir Fainaru)가 설명한다. 그가 이 서점의 또 다른 자랑거리를 귀띔한다. “19세기 말에 창간한 영국 문학 잡지 <그란타(Granta)>의 히브루어 에디션을 저희가 발행하고 있답니다.”



▶ How to travel Tel Aviv

Tip 1. 구시가에서 예술 쇼핑을

아이릿 골그버그 쇼룸에 진열된 제품. © 이기선


올드 야파의 아티스츠 지구(Artists Quarter)에는 좁다란 골목을 따라 예술 갤러리와 지역 작가의 공방 겸 쇼룸이 모여 있다. 도예 공방 아이릿 골드버그(Irit Goldberg)는 비대칭 형태, 물결 같은 주름, 꽃과 파도 패턴 등으로 유기적인 느낌을 주는 제품을 선보인다. iritgoldberg.co.il


Tip 2. 세그웨이 투어

세그웨이를 타고 텔아비브를 신나게 탐험하자. 세고(SECO, sego.co.il), 세그스(SEGS, segs.co.il) 등의 업체가 세그웨이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해안 보도, 신시가, 올드 야파 등 여러 코스 중에 고를 수 있다.


Tip 3. 스피크이지풍 호텔

호텔 B 베르디헤브스키의 콤팩트한 객실. © 이기선


호텔 B 베르디헤브스키는 24개의 콤팩트한 객실을 갖춘 부티크 호텔. 조식 서비스가 없는 대신 근처 카페에서 사용 가능한 쿠폰을 준다. 로비에 밤마다 문을 여는 벨보이 바는 창의적인 크래프트 칵테일, 아방가르드풍 실내장식으로 무장했다. 예약은 필수. 195셰켈부터, hotelbtlv.com



글/사진. 이기선


이기선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이스라엘은 두 번째로 방문했는데 예루살렘 구시가에서 후무스를 못 먹은 것이 아쉽다.



'이스라엘의 혼란 너머에서 발견한 것'에 이어진 이야기

▶ 이스라엘의 혼란 너머에서 발견한 것 pt.2 - 네게브 &에일라트

▶ 이스라엘의 혼란 너머에서 발견한 것 pt.3 - 예루살렘

▶ 이스라엘 여행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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