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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Jul 15. 2019

올드독과 떠난 제주 여행

올드독과 풋코가 제주에서 남긴 일곱 번째 여름의 기억.


올드독(정우열)은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2012년 제주로 이주한 이후 <올드독의 제주일기> <올드독, 날마다 그림> <올드독의 맛있는 제주일기> 등의 책을 냈다. 반려견과의 일상을 그린 웹툰 <노견일기>를 네이버에 연재하며, 틈틈이 서귀포 앞바다에서 프리다이빙 강습에 나선다. @olddog











제주에서의 일곱 번째 여름

올드독 캐릭터는 2004년 처음 만들었는데, 풋코와 닮은 구석이 많다. © 최남용


올드독은 어엿한 7년 차 제주 도민이다. 지겹도록 들어봤을 ‘제주로 이주하게 된 이유’에 대해 묻자 차창 밖으로 바다를 응시하던 그가 곧 싱거운 답변을 내놓는다. “막연하게 바다에서 개들과 실컷 헤엄치며 살고 싶었거든요.” 올드독이 제주 정착 과정을 기록한 <올드독의 제주일기>에는 제주 아라동에서 집 구경을 다니다, 하필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만났고, 서둘러 계약해 속전속결로 이주를 감행했다는 부연 설명이 나온다. 그렇게 그는 2마리의 폭스테리어와 함께 도시 생활을 접은 후 40년 된 구옥으로 터전을 옮겼다. 여름이면 언제든 개와 함께 바다 수영을 즐기는 소망을 이룬 것이다. 제주에 정착한 지 1년이 조금 지나 엄마 개 소리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고, 남은 풋코와 제주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제주는 어디든 자연과 닿아 있는 곳이라 마음이 놓여요.” 제주 서부의 한경면 방면 일주서로를 달리면서 올드독은 7년간 제주에서 만난 숱한 바다와 숲, 섬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그는 요즘 중산간을 가로질러 서귀포 법환포구로 향할 때가 많다고 한다. 제주에 정착하고 나서 취미로 시작한 프리다이빙을 즐기기 위해서다. 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딴 이후로는 종종 강습에도 나서고 있다. “제주 바다에는 남국의 열대 어종 못지않은 다채로운 물고기가 서식하죠. 바깥에서 바라보는 제주 바다도 근사하지만, 그 안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숨어 있어요.”



(좌) 돌핀센터에서 해양 생태 서적을 살펴보는 올드독. (우) 신도리 앞바다에 이어진 노을해안로에서는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다. © 최남용


오늘은 다이빙 포인트 대신 대정읍의 신도리 바다로 향한다. 이름부터 제법 낯설게 다가오는 마을. 딱히 내세울 만한 관광 명소가 없는 이곳은 외지인의 방문이 뜸하다. 마을 어귀에 진한 분홍빛 외벽의 건물이 시선을 끈다. 지난가을 문을 연 핫핑크돌핀스 제주돌핀센터다. “기존의 환경 운동에서 벗어나 생동감 넘치는 활동을 위해 좀 튀는 이름으로 붙여봤어요.” 핫핑크돌핀스의 조약골 활동가가 말한다. 그와 올드독은 프리다이빙을 하며 몇 차례 만난 사이라고. 핫핑크돌핀스는 2011년부터 제돌이를 비롯해 불법 포획된 야생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등 지속적으로 제주 남방큰돌고래 보호 운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제주 앞바다에는 약 120마리의 남방큰돌고래가 서식하는데, 상당수가 신도리 앞바다에서 관찰된다. “제주의 다른 연안보다 개발이 덜 됐고, 배의 이동이 적어 돌고래가 살기에 알맞은 조건이죠.” 조약골 씨와 함께 신도리 해안을 따라 이어진 노을해안로로 향한다. 그는 전동 킥보드를 탄 채 바다를 주시하며 능숙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저기 보세요!” 놀랍게도 그가 가리킨 수면 위로 남방큰돌고래 네다섯 마리가 점프를 시도하고 있다. “이곳은 육안으로 돌고래를 관찰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장소입니다.” 조약골 씨는 매일 노을해안로에 나와 돌고래를 관찰하며 기록을 남긴다. “다이버라면 한 번쯤 돌고래와 함께 수영하는 순간을 상상하곤 하죠.”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남방큰돌고래를 관찰하던 올드독은 조만간 신도리 일대에서 다이빙을 시도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좌) 청수곶자왈 남쪽에 형성된 산양곶자왈은 인적이 드물어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기 좋다. (우) 첫째날 저녁 금능포구 앞에서 풋코와 재회했다. © 최남용


태양이 한라산 서쪽으로 기운 오후. 청수곶자왈의 탐방로를 걷던 올드독이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그는 몇 년 전 지인과 이곳을 찾아 반딧불이를 본 기억을 되짚는다. “길이 바뀐 게 아쉽네요. 원래는 울퉁불퉁한 흙길이라 더 운치 있었거든요.” 매끈하게 포장된 탐방로 곁에는 검게 그림자를 드리운 수풀이 슬며시 보인다. 숲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자 곶자왈 본연의 모습이 펼쳐진다. 빌레나무, 백서향, 섬다래, 가는쇠고사리 등 희귀 식생이 현무암 사이에 자생하고 있다. 느긋하게 숲을 거니는 도중 올드독이 속삭인다. “방금 노루 1마리가 지나갔어요.” 곶자왈 내에 가만히 서 있으니 적막을 깨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부지런히 여름을 나는 풀벌레와 푸다닥 날아오르는 야생 꿩 그리고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소리의 방향은 수시로 달라진다. “사실 도시에 살 적에는 자연에 무지했어요. 제주에 사는 동안 앞마당에 핀 나무와 꽃 이름을 하나둘 알아갔고, 차츰 호기심이 생겼죠.” 그는 원래 캠핑을 기피했지만, 제주로 이주한 뒤에는 종종 풋코와 캠핑을 떠난다고 덧붙인다. 언제든 바다와 숲으로 갈 수 있는 제주에서 캠핑은 그리 부담스럽지 않기에.



(좌) 올드독은 풋코와 함께 물이 빠져나가는 시간을 골라 함덕해수욕장을 즐겨 찾는다. (우) 관곶의 낡은 등대 앞에서 올드독과 풋코. © 최남용


이튿날에는 풋코가 여정에 동참한다. 함덕해수욕장은 올드독이 풋코와 즐겨 찾는 해변이다. 개와 함께 뛰어다닐 수 있는 너른 해변과 함덕의 아름다운 전경을 굽어보는 서우봉이 자리한 곳. 그는 풋코와 함께 물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함덕해수욕장 서쪽 백사장으로 걸음을 옮긴다. 인파로 북적이는 동쪽과 달리 서쪽 백사장은 제법 한산하다. 이내 그가 바다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자 풋코가 익숙한 걸음으로 뒤쫓아 간다. 얼마 전 열여섯 살이 된 풋코는 제주에 처음 왔을 때보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지만, 부드러운 백사장을 총총거리며 신나게 해변을 활보한다.


함덕해수욕장 서쪽으로 난 관곶에 잠시 차를 세운다. 제주에서 해남 땅끝마을과 가장 가까운 이곳 구석에 낡은 등대가 처연하게 서 있다. 등대 너머의 좁다란 둑방길 끝에서 가만히 바다를 응시하는 올드독과 풋코의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문득 그가 연재하고 있는 <노견일기>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올드독이 풋코와 제주에서 보내는 일상을 짤막하게 담은 에세이 형식의 웹툰은 반려견과 함께 사는 이라면 쉽게 공감할 에피소드가 이어지는데, 드문드문 애잔한 페이소스도 느껴진다. 머지않아 찾아올 풋코와의 이별을 그는 조심스럽게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천미천을 낀 송당리의 외딴 숲길 너머에는 제주의 싱그러운 자연이 응축되어 있다. © 최남용


제주로 이주하기 전, 올드독은 육류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의 삶을 택했다. “개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부터였어요. 그 후 다른 동물 모두 개와 비슷한 감정을 가진 생명이라는 게 마음에 쓰였죠. 단지 공감과 연민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는 육식을 포기하는 대신, 해산물은 섭취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다. 제주의 풍요로운 해산물과 독특한 향토음식에 감탄한 그는 제주 먹거리를 본격적으로 다룬 <올드독의 맛있는 제주일기>를 펴내기도 했다. 이번에 올드독과 찾은 애월의 코코리 파이프나 반려견 놀이터를 갖춘 세화의 환스쿠치나처럼 신선한 지역 식자재를 사용하는 제주 식당은 채식주의자도 부담 없이 즐길 만한 메뉴를 넉넉하게 낸다.


천미천을 낀 송당리의 외딴 숲길이 이번 여정의 마지막 행선지다. 우연히 만난 한 현지인의 안내로 내비게이션에 나오지 않는 숲길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놀랍게도 축구장 만한 초록 들판이 기다린다. 올드독 곁에서 제 집처럼 들판을 마음껏 뛰노는 풋코를 담담하게 바라본다. “해외에서도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데,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네요.” 그에게 문득 언제까지 제주살이를 계속할 계획인지 물어봤을 때 돌아온 싱거운 답변이다. 제주에서 일곱 번째 여름을 보내며 풋코와 바다 수영을 좀 더 즐긴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Tip ▶ 반려견과 함께하는 제주 여행 FAQ


항공 

항공사 규정에 따라 5~7킬로그램(케이지 무게 포함) 이내의 강아지는 기내 동반 탑승이 가능하다. 단, 기내에서 반려견은 케이지 안에 머물러야 한다. 7킬로그램 이상의 대형견은 위탁 수하물로 운송할 수 있다.


숙소

제주의 일부 펜션과 호텔에서 반려견 동반 투숙을 허용한다. 핫도그(Hatdog) 앱을 통해 반려견을 동반할 수 있는 숙소를 검색해보(iOS, 구글플레이 다운로드 가능).


렌터카

롯데렌터카 제주오토하우스는 반려견 동반 고객을 위한 펫카 서비스를 제공한다. 차량 실내 청결을 세심하게 관리하며, 반려동물 안전을 위한 드라이빙 키트와 개모자를 추가로 대여할 수 있다.


먹을 곳 

제주에는 반려견 입장을 허용하지 않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의외로 많은 편이다. 기사에 안내한 코코리파이프, 환스쿠치나, 한동리 화수목은 반려견과 동반 입장할 수 있다.


취재 뒷이야기

노견의 고단한 하루

올드독과 함께한 제주 여행 이튿날에는 그의 반려견 풋코가 동행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동그랗게 눈을 뜬 이 털 뭉치 녀석은 개에 관심 없는 (나 같은) 사람도 단번에 홀릴 만큼 사랑스러웠다. 처음 만난 누구에게나 붙임성이 좋았고, 카메라 앞에선 능숙하게 모델 역할도 소화했다. 문제는 풋코의 체력. 열여섯 살의 노견이기에 틈날 때마다 휴식이 필요했다. 빡빡한 일정 끝에 꾸벅꾸벅 졸던 풋코는 너른 들판을 만나 생기를 되찾았다. 해맑게 총총거리는 모습에 다시금 촬영이 시작되고 말았지만. by 에디터 고현



글. 고현 사진. 최남용



'올드독과 떠난 제주 여행'에 이어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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