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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Jul 18. 2019

최창수 피디의 청춘 여행

JTBC <트래블러>의 연출자 최창수 피디를 만나다. 

쿠바에서 들려온 청춘의 여행 연가, JTBC의 <트래블러>를 연출한 최창수 피디를 만났다. 손때 묻은 론리플래닛 가이드북부터, 배낭여행 루트를 기록한 세계지도, 15년 전 미니 홈피에서 발견한 여행 사진까지 인터뷰 내내 추억을 꺼내 보이던 그에게서는 한때의 여행을 향한 흥분이 새어 나왔다.



트래블러를 연출한 최창수 PD. © 조지영


ⓘ 최창수 피디는 20대의 한복판에서 17개월간 배낭여행을 다녀와 <지구별 사진관>을 펴냈다. 그후 방송국에 입사해 예능 프로그램을 맡았고, 진정한 여행을 보여준 <트래블러>를 연출해 호평을 받았다. 이제 그는 어디로 떠날지 알 수 없는 다음 시즌을 준비 중이다.


<트래블러>에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이 여러 번 등장했어요. 
쿠바로 답사를 갈 때부터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을들고 갔어요. 촬영하고 방송 제작할 때까지 여러 번 읽으면서 꼼 꼼하게 살펴봤지요. 배낭여행을 처음할 때부터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을 가지고 다니기도 했고요. 뭐랄 까요, 여행자로 폼이 나잖아요. 류준열씨도 그렇게 말했어요. 그도 평소 론리플래닛 가이드북만 보며  여행하는데, 쿠바에 딱 도착해서 아바나 챕터를 잘라서 가지고 다니는 순간 희열을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오랜 기간 배낭여행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2005년 8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장거리 배낭여행을 떠났죠. 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군 생활을 하다가 전역을 1년쯤 앞뒀을 때, 우연히 어떤 미니 홈피에서 사진을 하나 발견했어요. 바로 파키스탄 훈자였죠. 저랑 동갑인 사람이 세계 여행 중에 파키스탄에서 올렸더라고요. 제가 거기에 빠져든 거예요. 사진을 본 그날 밤 결정했죠. ‘나는 전역하고 무작정 세계여행을 떠나겠다’라고.

예능 PD로 여행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게 쉽지는않았을 듯합니다.
사실 방송 프로그램은 기획안만 보고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배우나 회사를 설득할 때, “여행의 본질에 집중하겠다”라고 말해도 상대방 입장에선 쉽게 이해하지 못했죠. 나 스스로도 “진짜 여행이 뭔데?”라고 물으면 답하기 어려웠으니까요. 그래서 몇 가지를 정했어요. ‘기존 여행 예능처럼 미션 등을 주고 제작진이 만들어놓은 틀에 가두지않겠다’ ‘일정과 장소만 정하고, 배우에게 여행의 모든 것을 맡 기겠다’ ‘예능 같은 분위기는 있겠지만 다큐멘터리에 가까울 것이다. 자막도 최소화하고 내레이션도 넣어서 다르게 만들 것이다’ 라고요.

여타 여행 프로그램과는 접근 방법부터 다른 것 같은데요.
여행 과정을 좀 더 많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대부분의 여행 방송 프로그램이 여행자의 이동이나, 식당을 찾거나, 숙소를 찾는 과정을 담지 않거든요. 그런데 우리 제작진은 그런 과정이 재미있다고 느낀 거죠. 그 속에서 여행에 대한 흥미가 생기고, 방송으로 보여줄게 많다고 생각했어요.

실제 촬영 과정은 어땠나요?
저희는 배우를 제외하고 15명 정도로 촬영했어요. 현지에서 이동할 때도 제작진은 두 배우가 숙소를 잡고 나서야 그 근처에 숙소를 잡았죠. 주변에 숙소가 없을 경우에는 배우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잘 수밖에 없었죠. 대략적인 동선이나 일정을 제작진과 류준열 씨가 함께 짰어요. 배낭여행 경험이 많으니까요. 본인이 생각하는 쿠바 여행 동선이 현실성이 있는지 정도만 제작진이 판단했어요.


두 배낭여행자를 따라가면서, 자신의 옛모습이 투영되기도 했을 것 같아요.
류준열 씨는 저의 이십대 배낭여행 시절의 페르소나처럼 잘해줬죠.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모습에 놀랐어요. 류준열 씨가 먼저 쿠바에 도착했는데, 걱정을 많이 했어요. ‘여행을 잘한다고는 하지만 이걸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늦은 밤에 쿠바에 도착해서 어떻게 갈 수 있을까’. 그런데 상황 판단이 빠르고 적극적이고, 저보다 더 거침이 없더라고요. 예를 들어. 흥정을 할 때도 저 같으면 그 가격에 그냥 가겠는데 류준열 씨는 한번 더 깎더라고요. 여행지의 감흥을 받아들일 때의 리액션은 이제훈 씨가 매우 잘해줬습니다. 아무래도 배낭여행이 처음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어떤 장면을 보더라도 감탄하는 반응을 잘 보여줬죠.

<트래블러>가 방영된 후에 아쉬운 점도 있었을 텐데요.
2명의 여행자가 현지에서 만나는 다른 여행자 혹은 쿠바인과의 소통을 방송으로 많이 표현하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첫 방송이라 카메라로 포착하지 못한 것도 있고, 두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여행 중 일어나는 주변 이야기를 우리가 충실히 담지 못한 면도 있고요.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를 쓴 진짜 여행자가 방송 작가로 참여했어요.
내레이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를 쓴 작가들을 섭외했어요. 2014년쯤 이분들의 포스팅을 봤는데 글을 잘 쓰고 표현력도 뛰어나더라고요. 물론 방송 제작 초반에는 내레이션 타이밍을 잡는 데 시행착오가 많았는데, 아예 제작 방법을 바꿔버렸죠. 일단 연출진이 가편집을 끝낸 후에, 작가가 직접 그 영상을 보면서 내레이션을 쓰고 가상으로 내레이션을 읽어서 호흡을 맞췄어요. 한 작가분이 집에서 휴대폰에 내레이션을 녹음해서 전달하면 그걸 참고해서 흐름에 맞춰 편집해나갔죠. 이런 방식으로 제작한 건 저희가 처음이 아닐까 하네요.

최근 여행 크리에이터들의 영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매우 재미있어요. 유튜브의 유명 여행 크리에이터 방송을 거의 다 구독하면서 챙겨 봐요. 저는 여행을 사랑하고, 여행과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동료라고 생각해요. 여행 유튜버와 블로거 등을 보며 대리 만족하는 게 저의 유일한 여행 욕구 해소책이죠.

혹시 자신의 여행에 영감을 준 책이 있나요?
한비야의 모든 책은 제가 여행을 떠나게 만든 원동력이에요. 저한테 크게 영감을 준 다른 책은 <미아와 루이 318일간의 버스 여행>입니다. 패션모델 최미애와 사진가 장 루이 롤프가 결혼 후 아이 둘과 함께 서울을 출발해서 파리까지 간 후 다시 돌아오는 여정을 담은 책이죠. 이 책을 여러 번 읽었고 소장용 책을 중고 책방에서 따로 구입하기도 했어요.

앞으로 어떤 여행을 꿈꾸시나요?
가족이 있기 때문에 혼자서 배낭여행을 떠날 생각은 없어요. 지금도 아내한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이들 휴학시키고 차로 어디를 횡단하면 어떨까라고 얘기해요. 그게 제 로망 중 하나죠. 혼자 다니는 배낭여행은 2005년 당시 했던 것으로 충분하다고 봐요. 제 인생에서 그 정도면 정말 행복하게 여행한 거죠. 그때 마지막 여행지가 미얀마인데, 바간에서 자전거를 타고 사원을 돌아다니면서 풍경을 보며 “이 정도면 죽어도 좋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진짜 저 자신에게 엄청난 경험을 준 것이죠.



▶ 최창수 피디가 알려주는 <트래블러> 영상의 비밀

<트래블러> 포스터와 스틸 컷. © JTBC


여행자를 따라가기

시청자가 마치 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짐벌로 두 여행자 뒤를 자주 따라다니며 촬영했다.


자연스러운 화각

눈으로 직접 보는 것처럼 20~30밀리미터 화각의 렌즈로 촬영했다. 사전 답사 때 여러 가지 렌즈로 아바나 시내 곳곳을 촬영하며 어떤 화각이 가장 자연스러운지 테스트했다.


느림의 미학

시청자가 여행지의 풍경을 관조하고 차분히 볼 수 있도록 고속 모드로 촬영한 슈퍼 슬로를 많이 활용했다. 이를 위해 촬영팀이 촬영 모드 전환에 숙달되도록 정말 많이 연습했다.


여행자의 교감

출연자가 여행을 능동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이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모든 에피소드에 들어 있다.


스틸 사진의 여운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마지막에 여운을 주기 위해 스틸 전문 사진가가 촬영한 사진을 사용했다.



글. 허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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