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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Jul 29. 2019

서울의 역사를 따라 걸으며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 한양도성. 조선 시대부터 서울을 품은 이 성곽을 따라 여름날을 걸었다. 인왕산과 백악 그리고 낙산으로.





성곽도시 서울


한양도성 인왕산 구간 정상부에 올라 바라본 서울 사대문 안 중심부. ⓒ 최갑수

서울은 성곽도시다. 조선 시대, 이 도시의 이름이 ‘한양(漢陽)’으로 불릴 때부터 그랬다. 1392년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고 1394년 10월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긴다. 곧이어 궁궐을 짓고 종묘와 사직을 정비한다. 국가의 기초를 닦기 위해 태조가 또한 일은 거대한 성을 만들어 도시를 둘러싸는 것이었다. 1396년 왕에 오른 지 다섯 해째, 태조는 정도전에게 축성을 명한다. 한양은 밖으로는 아차산(동), 덕양산(서), 관악산(남), 북한산(북)의 외사산(外四山)으로 둘러싸여 있고, 안으로는 낙산(동)과 인왕산(서), 남산(남), 북악산(북)의 내사산(內四山)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 한양도성은 바로 내사산을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성곽 공사는 1396년 숭례문에서 시작해 다음해 4월, 홍인문의 옹성을 완공하며 끝났다. 모두 19만7,400명의 백성이 동원됐다고 한다. 완성된 성의 평균 높이는 5~8미터, 전체 길이는 18.6킬로미터에 달했다. 이를 ‘한양도성’이라고 불렀는데, 1396년에서 1910년까지, 무려 514년간 도성 기능을 수행했다.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 그 역할을 다한 셈이다.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한양도성은 무너지고 훼손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전차를 개통하거나, 일본 왕세자가 방문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성벽이 철거됐고, 해방 후에는 도로와 주택, 학교 등을 지으며 성벽을 허물었다. 드문드문 잔해만 남아 있던 한양도성은 2012년 9월 서울시가 한양도성도감을 출범한 이후 꾸준히 체계적으로 복원됐다. 그 결과 어느 정도 제 모습을 찾아 서울을 품게 됐다. 덕택에 서울은 옛날의 한양처럼 여전히 성곽도시다.


부암동에서 시작된 한양도성 백악 구간은 가파른 경사가 초반에 이어진다. ⓒ 최갑수

여름날, 이 성곽을 따라 걸어본다. ‘한양도성길’은 백악, 낙산, 흥인지문, 남산, 숭례문, 인왕산 등 모두 6개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한양도성 홈페이지에 따르면, 한양도성은 순성길을 따라 하루에 돌아볼 수도 있는데, 내사산을 중심으로 한 인왕산과 백악, 낙산, 남산(목멱산) 구간과 도성이 멸실된 흥인지문, 숭례문 구간으로 나누어 걷기를 추천한다.


조선 시대 유득공이 그의 책 <경도잡지>에 “도성의 둘레는 40리인데, 이를 하루 만에 두루 돌면서 성 안팎의 꽃과 버들 감상하는 것을 좋은 구경거리로 여겼다. 이른 새벽에 오르기 시작하면 해 질 무렵에 다 마치게 되는데, 산길이 험해 포기하고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라고 썼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길이 잘 정비되어 걷는 데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성곽길이 자리잡은 능선은 아무리 높아도 400미터를 넘는 곳이 없다. 북악산과 인왕산이 각각 300미터, 남산이 200미터고, 낙산은 100미터에 불과하다. 반나절, 아니 2시간만 할애해도 서울의 역사를 더듬을 수 있는 셈이다. 하루 정도 마음을 다잡고 걷고 싶다면 인왕산 구간과 백악 구간을 함께 걷기를 추천한다. 돈의문 터에서 시작해 인왕산 정상을 지나고 창의문과 숙정문을 거쳐 혜화문에 닿는 코스다. 도합 6시간 정도 걸린다. 제법 땀을 쏟아야 하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만으로도 수고를 제하고 남는다. 물론 각각의 구간을 따로 걸어도 된다. 운동화로도 충분하다. 물과 간단한 간식 정도만 챙기자. 낙산은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 삼아 가볼 만하다. 한양도성의 모습도 가늠할 수 있고, 가족과 함께 가볼 만한 곳도 많다.


굳이 한 구간을 완주하지 않아도 된다. 중간에 빠져나와 짧은 여름 여행도 즐겨보자. 인왕산 구간에서는 돈의문박물관마을과 서촌, 박노수 가옥, 수성동 계곡 등을 함께 돌아볼 수 있고, 백악 구간은 부암동 나들이를 겸해도 된다. 낙산 구간에서는 낙산공원과 이화동 벽화마을을 함께 돌아보면 좋다.




최고의 조망, 인왕산 구간


홍난파 생가를 복원해놓은 기념관. ⓒ 최갑수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전시 중인 김원근 작가의 작품. ⓒ 최갑수

인왕산 구간은 한양도성의 위용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는 코스다. 인왕산 능선을 따라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성곽의 위용이 박력 넘친다. 탁 트인 조망도 걷기의 재미를 더해준다. 돈의문 터에서 인왕산 정상까지는 완만한 오르막길, 정상에 거의 닿을 즈음에 급경사 코스가 나오지만 오르는 데 그리 어렵진 않다. 지칠 때쯤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깊고 시원한 숲길이 계속 걸으라고 유혹한다.


돈의문 터는 도성의 서대문인 돈의문이 있던 자리다. 태조 때 처음 세웠는데,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이곳에는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강북삼성병원 건너편이다. 2003년 이 일대가 뉴타운으로 지정되면서 전면 철거될 뻔했지만, 서울시가 마을 내 건물을 살려 일부를 보존해놓은 것이다. 1960년부터 1980년대까지의 생활 공간을 그대로 옮겨놓은 역사 체험 마을이라고 보면 된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집도, 1950년대 이탤리언 레스토랑과 1970년대 영화관도 재현해놓았다.


인왕산으로 향하기 전, 박물관마을에 자리한 전시실에 잠시 들른다. 일명 ‘깡패 조각’으로 유명한 김원근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짜리몽땅 배불뚝이에 깍두기 머리, 시큰둥한 표정의 ‘츤데레’ 조각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난다. ‘봉선화’ ‘고향의 봄’ 등으로 유명한 작곡가 난파 홍영후가 살던 홍난파 가옥과, UPI 서울특파원으로 살면서 3·1 운동을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Albert Taylor)가 살던 딜쿠샤도 근처에 자리하니 가볼 만하다.




시인의 언덕에 서 있는 윤동주 시비. ⓒ 최갑수

성곽길에 오른다. 초입은 아늑한 숲길이다. 숲은 초록이고 그늘이 깊다. 바람 소리가 귓속으로 스민다. 새소리도 멀리서 들린다. 길은 그다지 급하지 않다. 동네 뒷산 걷듯 천천히 걷는다. 어디쯤 왔나 문득 뒤돌아보니 서울 도심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숲길을 빠져나오자 성곽이 인왕산 정상을 향해 힘껏 뻗어나간다. 성곽 끝에 멀리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버티고 서 있다. 인왕산은 해발 339미터에 불과하지만, 치마바위, 선바위, 기차바위 등 기암괴석이 많아 그 품새가 예사롭지 않다. 풍수지리상 서울을 지키는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한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 왼쪽으로 빠져나가는 일반 등산로가 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선바위에 닿는다. 기도터로 유명한 곳으로, 멀리서 보면 스님 두 분이 참선하는 모습과 꼭 닮았다. 선바위에서는 조선 개국의 두 주역인 무학대사와 정도전이 기싸움을 벌였다. 무학대사는 선바위를 도성 안에 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정도전은 이에 반대했다. 각각 불교와 유교를 대표하는 이들이 조선의 통치 이념을 유교와 불교 중 무엇으로 선택할지 기싸움을 벌인 것이다. 결과는 유학자 정도전의 승. 그는 태조 이성계를 설득해 선바위를 성밖으로 밀어낸다. 이를 두고 무학대사는 “이제 승려들은 선비들의 책 보따리나 지고 따라다닐 것”이라며 한탄했다고.


다시 성곽길에 오른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다리에 힘을 준다. 정상까지는 곧장 오르막길이다. 몇 걸음은 로프를 잡고 가야 한다. 인왕산 정상에 오르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광화문과 경복궁, 청와대가 아득하다. 멀리 N서울타워도 보인다. 인왕산에서 내려다보면, 정도전이 경복궁을 그 자리에 놓은 이유를 알 수 있다.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내 눈에도 궁을 짓기에 이보다 좋은 명당은 없는 것 같다.


여기서 잠시 다리를 쉰다. 돈의문 터에서 천천히 걸어 1시간 정도 걸렸다. 기온이 섭씨 30도를 넘긴다. 인왕산 정상에서 맞는 날씨는 초가을 같다.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시원하다. 정상부터 창의문까지는 내내 내리막길이다. 힘들 것 없다. 숲도 좋아 동네 뒷산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으면 된다. 걷다 보면 어느새 시인의 언덕이다. 청운동 인왕산 일대는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하숙하며 산책을 즐기던 장소다. 이곳에 윤동주문학관이 자리한다. 독특한 형태의 문학관은 2012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국무총리상, 2014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받았고, ‘한국의 현대건축 Best 20’에 선정되기도 했다. 건축가 이소진에게 2012년 ‘젊은 건축가상’을 안긴 작품이기도 하다. 외관에서부터 윤동주의 시를 닮은 듯 단아하다.





최갑수는 1999년 우연히 여행자의 길로 들어선 이후 지금껏 여행을 이어왔다. 최근 잔잔한 시선으로 사진과 글을 채운 <밤의 공항에서>(보다북스, 1만6,800원)를 펴냈으며, 언제나 다음 여행을 준비 중이다.




글/사진. 최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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