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더로드 Sep 25. 2019

타히티 리듬 속에 춤을

폴리네시아의 정령을 부르는, 타히티 원주민의 의식을 따라서. 

‘부우우!’ 공중을 찌르는 소라 고둥 소리가 사방에서 울리면 티아레 목걸이를 걸고, 심장을 두드리는 타악기 리듬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자.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잃어버린 폴리네시아의 정령을 부르는 그들의 의식을 따라서.


헤이바 축제의 시작

헤이바 축제의 시작을 여는 후라 마이 팀의 공연. ⓒ 신진주


라우티니 테우루(Rautini Teuru)가 식물 코스튬을 가득 채운 커다란 바구니 3개를 들고 메인 무대인 토아타(To’ata)에 도착한 무렵, 타히티 파페에테(Papeete)에는 이미 긴장과 기대감이 뒤섞인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차분하게 인사를 건넨 테우루는 1시간 후 토아타에서 열리는 예술 축제, 헤이바 이 타히티(Heiva i Tahiti)의 첫 번째 댄스 팀 소속으로 무대에 오를 것이다. “수 개월 동안 재료를 구해 직접 만든 의상들이에요. 이제 메이크업을 하러 갑니다!” 그는 의상을 점검하며 서둘러 어디론가 향한다. 무대 바깥에서는 테우루처럼 공연을 준비하는 참가자들이 해안에 늘어선 벤치와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각자의 치장에 몰두하고 있다. 그사이 타히티 서쪽 동네 부족을 태운 대형 버스가 주차장으로 들어온다. 며칠간 이어지던 비가 멈추고 흘러가는 구름 아래 알맞게 시원한 바람이 분다.


“요라나(Ia ora na)!” 관광객이 우루(uru, 빵나무) 껍질을 직조해 만든 타파(tapa) 옷과 조개 껍질을 엮은 헤이(Hei, 목걸이), 야자수 패턴의 원피스를 판매하는 작은 부스들에서 우르르 빠져나오고, 요란함 속에서도 사람들은 살갑게 인사를 건넨다. 상대가 이방인이든 이웃이든 중요하지 않다. 레이스 문양의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붉은색 화관을 쓴 여성과 메투아푸아(Metua Pua)라는 타히티 식물로 머리를 장식한 남성이 뒤섞인다. 관람객과 댄서의 구분이 사라지고, 토아타 광장은 순식간에 200년 전으로 이동한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약간의 얼룩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순백의 복장은 폴리네시아 고유 문화를 통제하던 가톨릭의 영향이다. 타히티 역사를 소개할 때마다 등장하는 기록 사진에는 흰색 롱 드레스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타히티 여인들이 교회 앞에 나란히 서 있다.



잃어버린 전통

(좌) 누쿠 히바(Nuku Hiva)섬의 댄서들. (우) 독일 과학자 카를 폰 덴 슈타이넨이 남긴 기록 자료를 바탕으로 전통 문신이 부활 중이다. ⓒ TAHITI TOURISME


대영제국의 해군 새뮤엘 월리스(Samuel Wallis)가 그의 선박 돌핀(Dolphin)을 몰고 타히티 소시에테제도(Îles de la Société)에 처음 도착한 지 30년 후인 1797년, 선교사 25명이 처음으로 타히티 땅을 밟는다. 타히티 원주민의 환영과 달리 개종은 실패로 끝난다. 1819년의 포마레 코드(The Code of Pomare)가 시행되기 전까지 말이다. 추장인 포마레 2세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며 시행한 강력한 종교적 법률은 폴리네시아의 고유 문화를 과격하게 몰아냈는데, 여기에는 전통 춤인 오리 타히티(Ori Tahiti)와 타악기 음악, 마르키즈(Marquises)제도에서 기원한 타타우(tatau, 문신) 그리고 타히티 언어도 포함됐다. 심지어 티아레를 꽂고 교회에 입장하는 행위도 엄격하게 통제했다. 금기를 깨거나 반항하는 자에게 유배와 죽음은 흔한 형벌이었다. 오리 타히티 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 건 20세기 중반이 다 되어서다. 무려 1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박해와 상실의 시간이 이어진 것이다. 1956년 댄서 마들렌느 무아(Madeleine Moua)는 헤이바(Heiva)라는 이름의 댄스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지금껏 잊혀온 그들의 리듬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헤이바 축제는 그들 고유의 춤인 오리 타히티를 부활시키려는 장대한 항해인 셈이다.


“오리 타히티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대부분 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말로, 몸으로 배웠을 뿐이죠. 공연 중에는 오로지 타히티어를 사용하고 전통 방식을 고민하는 헤이바 무대야말로 오리 타히티의 뿌리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해요.” 타히티관광청의 마라니아 테우루(Marania Teuru)가 토아타의 백스테이지로 안내하며 말한다. 그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0여 년간 오리 타히티에 몰두한 댄서였다. “요즘에는 학교에서 타히티어와 오리 타히티를 배울 수 있고, 수십 개의 댄스 커뮤니티가 활동하고 있어요. 헤이바 축제의 수상팀은 해외에서 초청 무대를 열기도 합니다. 선조의 전통이 세계에 알려진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러워요.”



오리 타히티의 부활

소라 고둥과 전통 드럼, 현악기 합주로 구성된 전통 오케스트라. ⓒ TAHITI TOURISME


무대 대기실에사 테우루는 완벽하게 오리 타히티 댄서로 변신하는 중이다. 폭포수처럼 풍성한 검은 머리카락은 오리 타히티의 필수 조건처럼 보인다. 한쪽에서 이미 분장을 마친 댄서 1명이 코스튬에 식물을 촘촘하게 엮고 있다. 두터운 식물로 일정 패턴을 만들어 꿰매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신중하고 능숙하다. “여섯 살 때부터 이모, 삼촌이 춤추는 모습을 보고 자랐어요. 제 힘으로 댄서가 되고 싶었기에 스물다섯 살 생일까지 기다렸죠. 교사로 일하고 딸을 키우며 춤 연습을 하기란 쉽지 않지만, 오리 타히티를 향한 열정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오리 타히티는 엉덩이춤인 오테아(Otea)가 가장 유명하고, 감정을 강조한 아파리마(Aparima)는 다른 폴리네시안 춤과 확연히 달라요.” 무대로 나갈 준비를 하는 테우루가 말한다.


헤이바 축제는 심판이 부족 대표들을 소개하고 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라히리(Rāhiri) 의식에서 출발한다.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큼지막한 바나나 잎사귀를 들고 심판 대표 중 1명인 피에로 파레르(Pierrot Faraire)가 힘찬 목소리로 알 수 없는 타히티어를 쏟아낸다. 뜨거운 환호를 보내던 관람객은 그의 격정적인 톤과 응시하는 눈빛에 침묵하며 몰입한다. 마치 주술을 부리는 연금술사나 오페라 가수의 무대를 보는 듯하다. 전통 타악기 토에레(to’ere)의 경쾌한 비트가 울리자 테우루의 팀 후라 마이(Hura Mai)의 댄서들이 우르르 무대로 쏟아진다. 1미터 남짓한 높이의 거대한 화관 때문에 중심을 잃지 않을까 걱정도 해보지만,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듯한 표정으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타악기 협주가 별무리처럼 밤의 공백을 채우고 식물 코스튬에 달린 잎사귀가 사정없이 떨린다. 우아한 몸짓과 힘의 균형을 강조한 여성 솔로에 가장 많은 박수가 쏟아진다. 남태평양 한가운데 자리한 미지의 세계, 식량과 에메랄드빛 라군을 찾아 떠난 유럽의 탐험가들이 타히티에 도착했을 때 이 아름답고 섹시한 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란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무대 밖 바다가 보이는 경계에 앉아 넘실거리는 함성 소리를 듣는다. 오리 타히티는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는 전설이 아니다.




글/사진. 신진주

신진주는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외부 필자다. 토에레 드럼 소리가 들릴 때마다 엉덩이를 흔들며 주저앉는 습관이 생겼다.

ⓘ 취재 협조 타히티관광청(tahititourisme.kr), 에어타히티누이(airtahitinui.com)



'타히티 리듬 속에 춤을'에 이어진 이야기

▶ 타히티 리듬 속에 춤을 pt.2 - 보라보라

▶ 타히티 여행 노하우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와 함께 최고의 여행을 만나보세요.

▶ 론리플래닛 코리아 웹사이트

▶ 론리플래닛 코리아 페이스북         

작가의 이전글 남인도에서 요가와 휴식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