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정취가 남아 있는 원효로에 작은 변화가 시작됐다.
빌딩 숲 사이로 아직 때묻지 않은 옛 정취가 남아 있는 원효로에 작은 변화가 시작됐다. 탄탄한 내공을 지닌 이들이 조용히 실력을 발휘하고, 젊은 예술가는 골목의 창창한 미래를 그린다.
한산한 골목 안쪽, 살구색 타일로 덮인 낡은 3층 건물. 시간의 무게를 짊어진 공간에서 창의적이고 과감한 전시가 줄기차게 열린다. 이곳은 2007년 삼청동에서 예술가를 위한 커뮤니티로 시작해 2015년 원효로로 옮겨온 아카이브 봄. 전시는 대부분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신진 작가의 작품으로 이뤄진다. 환경문제, 청년층의 고민, 사회 비판 등 젊은 예술가들이 전하고 싶어 하는 메시지가 주를 이룬다. 12월 13일까지 난민 혐오 현상을 기후 문제와 병치해 영상과 설치미술로 풀어낸 배한솔 작가의 <불안정 대기>가 전시장을 채울 예정. 같은 건물 지하 1층에 자리한 레스토랑 동휴는 요리 만화 속 레시피를 창의적으로 구현한 요리를 선보인다.
ⓘ 무료 입장, 12pm~7pm, 월요일 휴관, 인스타그램 @archivebomm
11월에 오픈한 프롬스카이는 일러스트레이터 기마늘의 오프라인 숍 겸 작업실이다. 기마늘은 요소를 최소화하고 그림자와 색 대비를 강조한 미니멀리즘 일러스트를 추구한다. 그림 속 여백을 통해 분주한 현대인이 여유를 갖고 사유하기를 바라는 것. 그의 일러스트는 A3 포스터와 달력, 엽서, 에코 백, 휴대폰 케이스 등으로도 선보인다. 프롬스카이는 단순한 숍의 기능을 넘어 작가와 내밀하게 소통하는 역할을 한다.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조니 미첼(Joni Mitchell)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몽상가들(The Dreamers)’ 시리즈를 감상할 때 작가와 음악을 함께들으며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오프라인 숍에서 제품 구매 시 5퍼센트 할인해주고, 사은품도 증정한다.
ⓘ A3 포스터 1만5,000원, 2:30pm~8pm, 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official.fromsky
“최근 2020 기마늘 일러스트 캘린더를 출시했어요. 2019년에 작업한 작품을 한데 모아 계절에 맞게 일러스트와 색상을 구성했죠. 디자인에도 신경을 써서 벽에 붙여 인테리어용으로 사용해도 좋답니다. 매년 이렇게 이전에 작업한 일러스트를 되돌아보는 캘린더를 만들 계획이에요.”
by 프롬스카이의 기마늘 대표
2011년부터 효창공원 앞을 지킨 사랑받는 동네 빵집이다. 리모델링을 마치고 돌아온 우스블랑은 ‘변화는 있지만 변함은 없도록’이란 김영수 셰프의 모토처럼, 메뉴 구성에 변주를 주면서도 여전히 건강하고 맛있는 빵을 굽는다. 모든 빵은 70퍼센트 이상 국산 밀을 사용하고 부재료도 대부분 국산을 고집하며, 설탕 대신 원당으로 단맛을 낸다. 인기 메뉴는 역시 페이스트리류. 그중 바삭한 파이 시트와 아몬드 크림이 조화로운 갈레트는 눈 깜빡할 새 매진되곤 한다. 주문 즉시 만들어주는 샌드위치도 놓치면 아쉽다. 이번에 새롭게 메뉴에 추가됐는데 바게트를 갈라 소금집 델리의 잠봉(jambon, 햄)과 버터, 그뤼예르 치즈로 속을 채운 잠봉 바게트를 추천한다.
ⓘ 갈레트 4,600원, 8am~8pm, 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ours_blanc__
더 셰프는 상당한 내공을 자랑하는 스페니시 가스트로 펍이다. 21년차 요리 경력의 마누엘(Manul) 셰프가 정통 방식 그대로 조리한 스페인 요리를 선보이는 것. 이를 위해 최고급 하몽을 직접 잘라내고 5시간 동안 생선 육수를 우려 파에야를 만드는 등 정성스러운 과정을 기꺼이 감내한다. 매일 최대 10개까지 늘어나는 스페셜 메뉴도 눈길을 끈다. 그날그날 시장에서 구입한 신선한 식자재에 맞춰 다양한 메뉴를 준비한다. 스페인산 버섯과 국산 우럭으로 만든 스페셜 파에야와 현지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먹는 파스타를 할머니의 레시피로 구현한 스페니시 파스타가 대표적. 여기에 20여 가지의 와인과 맥주, 상그리아 등의 스페인 주류도 풍성하게 갖췄다.
ⓘ 스페셜 파에야 3만 원, 5pm~10pm(우선 예약제), 주말 12:30pm부터, 화요일 휴무, 070 8845 7494.
“에스프레소는 첫 경험에 따라 반응이 완전히 달라져요. 쓰디쓴 기억이 되거나 반대로 그 매력에 푹 빠질 수 있죠. 저는 좋은 에스프레소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각종 바리스타 대회 우승 경력을 자랑하는 최현선 바리스타가 겸손한 포부를 내비친다. 그가 지난 8월에 오픈한 바마셀은 정통 이탤리언 스타일의 에스프레소 바. 과테말라,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인도의 네 가지 원두를 혼합한 에스프레소는 풍성한 바디감과 다채로운 향미가 일품이다. 설탕을 미리 넣은 후 추출하는 카페 콘 주케로, 차가운 에스프레소 크림인 카페 크레마, 에스프레소 셔벗인 그라니타 디 카페 등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을 제안한다.
ⓘ 에스프레소 4,000원, 8am~6pm, 토요일 11am~8pm, 일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bamaself_coffee
‘혼술’이 당기는 날에는 원효림으로 향하자. 이곳은 양과 가격은 부담되지 않되, 혼자서도 분위기를 낼 수 있는 혼술의 조건을 모두 만족시킨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소용량으로 나눠 파는 주류. 와인은 1잔·반 병·1병 기준으로, 위스키·보드카·럼 등의 고급 주류는 30밀리리터와 150밀리리터 병에 담아 판매한다. 이에 곁들이는 안주 또한 인상적이다. 젓갈을 올려 먹는 수제 닭발 편육, 꽈리고추와 버터를 함께 볶아낸 오징어입 볶음, 소 내장인 양을 토마토 소스에 조린 이탤리언 요리 트리파 등, 개성 있는 제철 식자재를 사용해 재료 고유의 맛을 살린 요리를 내는 것. 12월에는 굴을 활용한 파스타를 추가할 예정이라고.
ⓘ 닭발 편육 1만3,000원,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pm~12am, 토요일 4pm~12am, 일요일 4pm~10pm, 월·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1__hyolim
“저는 도시의 경계가 되는 지역을 좋아합니다. 앞에는 대로가, 뒤로는 경의선숲길이 지나는 지금 가게 위치가 그러하죠. 최근까지도 기차가 다녔던 길이라 주변에 버려진 창고와 가건물이 많아요. 여기에 일제강점기에 지은 일본식 목조 건물도 뒤섞여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원효림 건물도 1970년대에 지은 걸로 추정되는데, 4겹짜리 페인트를 벗겨내고 옛 시멘트 벽과 골조를 최대한 살려 인테리어했습니다. 이 동네는 번화하진 않았지만 서울의 중심지인 용산과 가까워 접근성이 좋아요. 지하철도 6호선과 경의중앙선이 지나는 효창공원앞역이 있어 어디서든 오기 편하답니다. 골목 여행을 한다면 역사적 장소를 따라가보세요. 독립운동가의 묘소가 있는 효창공원, 기해박해의 아픈 역사가 깃든 당고개순교성지 등을 추천합니다. 또 도심 사이로 긴 띠처럼 녹지가 형성되어 연남동까지 이어지는 경의선숲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려도 좋습니다."
by 원효림의 배익환 대표
글/사진. 문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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