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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Jan 13. 2020

베일 너머의 미얀마 여행

수도 양곤에서 발견한 뜻밖의 장소들.

금빛 파고다, 다리 노 젓기를 하는 어부 같은 유명한 이미지 너머, 미얀마는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무수한 얼굴로 이뤄진 나라다. 작가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의 이 말은 지금 더욱 새롭게 들린다. “이곳이 바로 버마다. 이 나라는 우리가 알던 그 어떤 나라와도 다르다.”


슈웨다곤 파고다의 중앙 사리탑을 중심으로 12신 신상, 사원, 소형 전각, 수도원 등이 들어서 있다. © 윤정빈


사원 중의 사원


미얀마의 첫 이미지로 새벽의 슈웨다곤 파고다 (Shwedagon Pagoda)만큼 강렬한 장면이 있을까? 빙글빙글 돌아가는 전깃불 후광을 단 불상을 지나 높이 112미터의 본탑 앞에 이르렀을 때,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여명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탑 주위를 빙글빙글 돌거나, 불상에 물을 끼얹거나, 탑을 향해 앉아 기도를 하거나, 눈을 감고 앉아 있거나, 사진을 찍는 데 열중한다. 2,500년 역사의 이 파고다를 중심으로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이 형성되었다. 그간 영국군의 수탈과 지진, 화재를 견뎠고, 미얀마 독립 운동의 중심지기도 했다.


바람이 불어와 새처럼 작은 황금 종을 끊임없이 울려댄다. 만화경처럼 돌아가는 색색의 파스텔 톤 세상 속을 천천히 걷자니 해가 밝아오며 27톤의 금박과 수천 개의 보석으로 장식한 황금빛 돔이 감미로운 장밋빛으로 빛난다. 탑 안은 석가모니의 머리카락 8가닥, 부처의 사리와 더불어 사람들이 기부한 황금 불상, 보석으로 가득 차 있다. 풍문으로는 사원의 총가치가 한화로 32조 원에 상당한다고 한다. 탑 앞에서는 상인이 탑에 붙일 얇은 금박을 팔고, 입구엔 ATM 기계가 보인다. 세밀한 부조를 새긴 담 위에 부처에게 바친 음식을 비둘기가 탐낸다. 기도하는 현지인 사이에 섞여 앉아 이 모든 시각적 자극을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노라면, 이곳의 아름다움은 무수한 작은 요소가 합쳐진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35개의 소수민족과 다양한 자연환경으로 이뤄진 이 나라에 대한 메타포처럼 말이다.


바텐더 라 민 산(La Min San)이 페구 클럽을 제조하고 있다. © 윤정빈


옛 영광을 위하여 건배


1901년에 문을 연 더 스트랜드 양곤(The Strand Yangon)은 동남아시아의 첫 럭셔리 호텔로, 싱가포르의 래플스(Raffles)와 말레이시아 페낭의 이스턴 앤드 오리엔탈(Eastern & Oriental)을 소유했던 유명 호텔리어 사르키스(Sarkies) 형제가 연 곳이다. 조지 오웰, 헤밍웨이, 믹 재거 등 유명 인사가 묵었음에도 1979년 토니 휠러가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을 위해 방문했을 때 이곳은 쥐가 들끓고 허물어져가는 폐허였다고 한다. 그간 두 차례의 복원 공사 끝에 이제 옛 영광을 완벽하게 되찾았다. 층마다 버틀러가 대기하고, 티크 목재 패널, 침대 기둥 등 객실은 옛 구조를 세심하게 되살렸으며 미얀마의 옛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 전통 칠기 등이 곳곳을 채우고 있다.


무엇보다 더 스트랜드 양곤은 미얀마의 시그너처 칵테일 페구 클럽(Pegu Club)을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이 칵테일은 양곤에 있던 동명의 영국인 사교 클럽에서 1920년 발명했다고 전해지는데, 그 맛을 충실히 구현한 사르키스 바(Sarkies Bar) 바텐더의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진을 기반으로 라임 주스, 쿠앵트로, 오렌지 주스, 앙고스투라(Angostura) 비터스를 섞은 뒤 마지막으로 오렌지 껍질로 잔을 문지르는 것. 만일 낮에 호텔을 찾았다면, 바 맞은편 카페에서 전통 칠기에 담아 내는 미얀마식 하이티를 꼭 맛보길. 마지막으로, 호텔 바와 레스토랑이 높은 수준에 비해 놀랍도록 합리적 가격을 내건다는 사실도 덧붙인다.


로즈우드 양곤의 노바(NOVA) 브라스리의 오픈 키친에서 요리하고 있는 총괄 페이스트리 셰프 기욤 쿨브랑 (Guillaume Coulbrant). © 윤정빈


그리고 또 다른 호텔


양곤의 역사적 건축물을 보존하는 데 힘쓰는 양곤 헤리티지 트러스트(Yangon Heritage Trust)의 탄트 민우(Thant Myint-U) 대표에 따르면 양곤은 아시아에서 식민지 시대 건축물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도시다. 지금껏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복원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추세다. 이를테면 더 스트랜드 인근, 1931년 완공한 법원 청사는 불과 몇 달 전 로즈우드 양곤(Rosewood Yangon)으로 변신했다. 미얀마가 독립한 이후에는 경찰국장 사무실, 버마 사회주의 계획당 본부 등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대영제국 시대에 호주의 시드니 하버 브리지 등을 건설한 엔지니어링 회사의 철제 구조물을 뼈대로 한 이 건물은 고전주의적 웅장함을 간직하고 있다. 복원 공사 전, 양곤 헤리티지 트러스트가 조사한 결과 건물 중정에서 17세기 유물이 발굴되기도 했다고.


호텔 도처는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감각만 뽑아서 채웠다. 미얀마 현대 예술 작품과 애슐린(Assouline) 아트북으로 무장한 로비 너머에는 유명 셰프가 이끄는 다이닝과 카페가 도사리고 있다. 객실에는 전통 칠기 공예품,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아포테케리 코비글로(C.O. Bigelow) 욕실용품, 자체 제작한 데스티네이션 책자를 비치했다. 객실 테라스에서 내다보이는 열기 가득한 양곤의 도심 지붕 그리고 기하학적 완벽함을 뽐내는 정문에서 보이는, 노점이 늘어선 골목 풍경은 아이러니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이기선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에디터다. 2018년 론리플래닛 코리아의 제2회 라이징 포토그래퍼 콘테스트 우승자인 사진가 윤정빈이 후지필름 카메라 GFX 50R, X PRO2를 들고 미얀마의 풍경을 감각적으로 포착했다.




'황금 베일에 싸인 나라로' 이어진 이야기

황금 베일에 싸인 나라로 pt. 2 - 바간

황금 베일에 싸인 나라로 pt. 3 - 인레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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