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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Apr 19. 2020

집에서 이국을 여행하는 법 - Part 5

청각으로 여행하기

김동영 작가가 안내하는 음악으로 여행 떠나는 법.






턴테이블 틀기

여행 중 수집한 음반을 살펴보는 김동영 작가. ⓒ 오충석



나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반드시 음반 숍을 찾곤 한다. 도시마다 이름난 음반 숍을 찾아가는 건 내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과 같은 행위다. 진열된 음반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일하는 스태프와 대화를 나누며 그 도시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추천해주거나 그 도시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의 음반을 사는 건 언제나 설레고 기분 좋은 일이다. 음반 숍을 통해 여행지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취향이 어떤지를 엿보기도 한다. 진열된 음반과 한쪽 구석에 놓인 잡지나 벽에 붙은 공연 포스터를 보면 이 도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어디서든 지역의 최신 트렌드는 늘 젊은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음반 숍이나 서점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산 음반을 여행하며 듣다 보면 내가 마치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이 된 기분에 잠긴다. 이처럼 여행지에서 음반을 구입하고 듣는 건 여행을 기억하는 나만의 소중한 방법이다.



사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어서 여행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오면 많은 걸 잊게 마련이다. 유독 기억력이 좋지 못한 나는 금세 많은 걸 잊어버리곤 했다. 그렇지만 늘 여행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가슴 한가득 여행의 욕구가 차오르면 나는 내 방안 한구석에 놓인 턴테이블 위로 여행 때 샀던 레코드를 올려놓는다.



김동영 작가의 방 한쪽에 놓인 빈티지 턴테이블. ⓒ 오충석



익숙한 내 방을 낯선 장소로 뒤바꾼다. 커튼은 나뭇가지가 되고, 이불은 열대의 바다가 되며, 침대는 시베리아의 야간열차가 된다. 때로 천장은 북유럽의 하늘로 변한다. 이렇게 여행 중 그러모은 음악을 통해 마음만 먹으면 과거에 내가 거닐던 장소로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다. 멜로디에 따라오는 낯선 풍광 그리고 리듬 위에 실려오는 단편적인 기억들…. 이 모든 것은 내가 당장 어디에 가지 않아도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


그래서 내게 여행은 음악이고, 음악은 여행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감각 중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게 청각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리를 통해 많은 걸 기억하고 보다 많은 것을 담아낼 수 있는지도.


— 여행 작가 김동영



김동영 작가의 추천 음반

Max Richter, Sleep(2018)


지금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든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음반 수집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요즘은 주로 레코드를 모으는데, 30×30센티미터라는 애매한 사이즈 탓에 짐이 될 때가 많지만, 집에 돌아와 이를 턴테이블에 올렸을 때의 감동은 남다르다. 영화음악 감독이기도 한 막스 리히터의 이 앨범은 파리에 머물 때 구입했는데, 언제 어디서든 당시의 여정을 떠올리게 한다. 앨범의 이름처럼 잠이 들기 전이라면 더욱.




Wes Montgomery, Road Song(1968)


1960~1970년대 재즈 레코드를 수집하는 일에 심취한 적이 있다. 세계 각지의 중고 음반 숍에서 상태가 괜찮으면서 희귀한 재즈 앨범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기에 여행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포틀랜드에서 구입한 이 앨범 역시 재즈 기타리스트 웨스 몽고메리가 비틀스의 히트곡을 그만의 섬세한 스타일로 커버한 곡으로 채워져 있다. 어두운 밤, 방 안에서 그의 기타 소리를 듣고 있으면 전망 좋은 라운지 바에 앉아 있는 기분이 샘솟는다.




Pulp, Separations(1992)


음반을 모으는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구매 리스트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 펄프의 이 앨범은 그 리스트 상단을 차지하고 있었다. 영국 밴드라 영국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작 방콕의 한 음반 숍에서 구했다. 이처럼 여행을 하다 보면 운명인지 우연인지 모를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그런 탓인지 촌스러운 전자 사운드가 매력적인 펄프의 이 초창기 앨범을 들을 때마다 혼돈의 방콕 거리가 떠오르곤 한다.





지금 시대의 턴테이블


레트로 붐과 함께 바이닐 문화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지만, 여전히 턴테이블은 초심자에게 진입 장벽이 높은 아이템이다. 가격이 천차만별인 데다, 관리하기 까다롭고, 사이즈도 부담스럽게 다가오기 때문. HYM 듀오(Duo)는 이런 고민을 단번에 해결해줄 신개념 턴테이블이다. 지난해 킥스타터 펀딩으로 화제를 모은 이 레고 블록처럼 보이는 녀석은 홀쭉한 플래터 상단에 7, 10, 12인치 바이닐을 거치해 재생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하단에 장착된 블루투스 스피커와 페어링하는 시스템이라 앰프나 별도 음향 기기와 연결할 필요도 없다. 스피커만 별도로 분리해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고, 아마존 음성인식 서비스인 ‘알렉사’도 지원한다. 음질의 짜임새가 하이엔드급과 비교할 순 없겠지만, 방 안에서 나홀로 청음하기엔 충분하다. 세 가지 컬러로 출시한 듀오는 와디즈 펀딩으로 국내에 첫선을 보였으며, 조만간 새 펀딩을 시작할 예정이다. 

ⓘ hym-originals.com






이어폰으로 여행 계획하기


누군가의 목소리와 이국적인 소음은 여행의 영감을 찾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언제든 방 안에 서 여행을 떠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오디오 콘텐츠를 안내한다.

— 편집장 고현



밤을 지새우며 낭독 듣기

핀란드 라플란드의 숲 위로 펼쳐진 오로라 광경. © Simons passion Travel/Shutterstock



올빼미 울음이 사방의 적막을 깨고, 삐걱거리는 문이 열린 뒤 누군가 나직히 말을 건넨다. “알프스의 밤이 깊었습니다. 오래된 호텔 방. 나무로 된 창가엔 책상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위로 달빛이 쏟아져 내립니다.” 헤르만 헤세가 오랜 기간 머물던 스위스 몬타뇰라(Montagnola)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하는 이는 배우 공유.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론칭한 공유의 베드타임 스토리는 비 내리는 파리, 모닥불 타는 몽골의 게르, 산티아고 순례길의 끝자락, 핀란드의 숲속 오두막 등을 떠돌며 그곳을 무대로 삼은 거장의 문학 작품을 낭독하는 오디오 콘텐츠다. 현장감을 증폭시키는 효과음이 적재적소에 더해지면서 여행의 무드를 끌어올린다. 러닝타임 1시간이 지루할 틈 없이 지나가지만, 20분으로 압축한 숏 버전과 현장음만 별도로 편집한 ASMR 버전도 함께 서비스한다.


ⓘ audioclip.naver.com



백색소음의 신세계, ASMR

노마딕 앰비언스는 공항의 ASMR을 촘촘하게 담아냈다. © Classen Rafael/EyeEm/Getty Images



도시와 골목, 호텔, 카페를 넘나들며 현장감을 살린 ASMR 콘텐츠를 제작하는 수많은 크리에이터가 여행의 대리 경험을 선사하는 중이다. 유튜브의 노마딕 앰비언스(Nomadic Ambience) 채널 운영자 역시 마찬가지. 비건 여행자이자 UX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카일러 B.(Kyler B.)는 자신이 살고 있는 미국 워싱턴 D.C.를 비롯해 뉴욕, 멕시코, 아이슬란드, 상하이 등 세계 각지를 떠돌며 일상과 여행의 순간을 촘촘하게 사운드로 기록했다. 그녀는 방 안에서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부터 빗속의 숲길, 유빙의 이동 과정 등을 스테레오 사운드로 녹음한 콘텐츠를 꾸준히 업로드하는 중이다. 15분부터 장장 10시간에 이르는 세계 각지의 백색소음은 당장이라도 낯선 타국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마법을 선사한다. 그곳이 공항 대합실이나 기차 플랫폼이라면 더욱.


ⓘ 유튜브 nomadicambience



글. 김동영, 고현 사진. 오충석






'집에서 이국을 여행하는 법' 이어진 이야기

▶ 집에서 이국을 여행하는 법 - Part 1 시각으

 집에서 이국을 여행하는 법 - Part 2 꾸미기로

▶ 집에서 이국을 여행하는 법 - Part 3 활자로

▶ 집에서 이국을 여행하는 법 - Part 4 인스타그램으로

▶ 집에서 이국을 여행하는 법 - Part 6 칵테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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