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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May 30. 2020

에디터의 실패한 여행 - Part 3

파리행 열차가 취소된 뒤

시행착오를 겪은 여행의 추억을 소환하며, 역설적이게도 다시 떠나고 싶어졌다.
프랑스의 낯선 도시 바르르뒤크에서 환승 기차가 취소된 덕분에
평생 잊지 못할 은인을 만났듯이.






그의 말처럼

쾰른대성당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독일 쾰른의 크리스마스 마켓. ⓒ IMAGEBROKER/SUPERSTOCK



2010년, 대학생 때 홀로 떠난 여행에서 나는 여정이 순조롭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괜찮을 거란 믿음이 생겼다. 오히려 근사한 추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이 앞서기도. 이 모든 것은 단 한마디에서 비롯되었다.


겨울방학을 맞아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둘러보고 싶었다. 11월 말부터 유럽 각지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데, 원조 격인 독일을 중심으로 돌아볼 계획을 세웠다. 12월 초에 여정을 시작해 프랑크푸르트, 쾰른, 트리어(Trier), 슈파이어(Speyer) 등 독일의 큰 도시부터 작은 마을까지 10곳을 구경했다.


크리스마스 당일은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가장 유명한 스트라스부르에서 보냈다. 그리고 일정을 변경해 스트라스부르에서 기차로 2시간이 걸리는 룩셈부르크로 향했다. 룩셈부르크는 트리어에서 훨씬 가까운데, 트리어에 갔을 때 시간상 방문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다소 무리한 이 선택은 당시 여정에 그리고 여행을 바라보는 관점에 전환점이 되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크리스마스 시즌 풍경. ⓒ REINHARD SCHMID/4CORNERS



룩셈부르크에서 하루를 지낸 후, 원래 목적지인 파리로 가고자 TGV를 예약하려는데 연말이라 이미 모든 기차 편이 만석이었다. 어쩔 수 없이 여러 번 갈아타야 하는 지역 열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프랑스 북동부에 있는 낯선 도시 바르르뒤크(Bar-le-Duc)에 내린 후 전광판에서 갈아타야 할 기차 편을 확인하는데,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하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전광판은 온통 프랑스어였지만, 파리행 열차가 취소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저녁 7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바르르뒤크에서 파리까지는 지역 열차로 3시간 이상을 가야 했다. 더 지체하지 않기 위해 역무원에게 영어로 파리에 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그런데 영어를 하지 못하는 역무원은 내게 프랑스어로 얘기했고, 언어의 장벽 앞에 서로 어쩔 줄 몰랐다.


그때 누군가 통역을 자처했다.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 주인공인 폴 워커를 닮은 청년이었다. 그는 목적지가 멀지 않은 승객의 경우 프랑스철도청이 마련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고 알려줬다. 파리는 이곳에서 23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기 때문에 프랑스철도청에서 내게 하룻밤 묵을 호텔과 TGV 표를 무료로 제공해준다는 것도. 이를 처리하는 과정이 꽤 걸렸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귀찮은 내색 없이 내내 곁에서 통역을 해줬다.


그 역시 파리로 향하는 길이었는데 다행히 아버지가 데리러 온다고 했다. 혹시라도 내가 오늘 꼭 파리에 가야 한다면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잠시 고민했지만, 차를 타고 가면 자정을 넘겨 파리에 도착하는 데다 약 1달 동안 누적된 피로 때문에 생경한 이 도시에서 쉬어 가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가 근처에서 저녁을 먹으며 아버지를 기다리겠다고 하기에 신세를 갚을 생각으로 같이 식사하기로 했다.


우리는 따뜻한 포토푀(pot-au-feu, 고기와 채소를 넣은 수프)와 블랑케트 드 보(blanquette de veau, 진한 화이트소스로 요리한 송아지 고기 스튜)를 먹으며 추위에 얼어붙은 몸을 녹였고, 서로 여행담을 늘어놓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리고 내가 계산할 생각으로 웨이터를 불렀는데, 이미 그가 훨씬 전에 계산을 마쳤다는 얘기를 들었다. 도대체 언제 한 거냐고 묻는 내게 그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나는 귀가 따갑도록 더치페이를 주장했지만, 그는 프랑스에 와서 본의 아니게 불편함을 겪은 여행자에게 대접하고 싶은 마음을 알아달라며 한사코 거절했다. 그렇게 그는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덕분에 즐거운 여정이었다고. 나를 도운 게 그에게는 하나의 여정이 되었다니 여행의 세계가 확장된 것 같았다. 그동안 내게 여행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나야말로 고맙다는 말로는 부족한 느낌이어서 헤어지기 전에 물었다. “신세를 많이 졌는데,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까?”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마지막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네가 다른 여행자를 도우면 그걸로 된 거야.”



독일 북서부에 있는 도시 브레멘(Bremen)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15세기 초에 건축된 고풍스러운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다. © GÜNTER GRÄFENHAIN/4CORNERS



이 여행의 사진을 꺼내 보면 온통 크리스마스 마켓의 오색찬란한 야경뿐이다. 그와 함께하는 동안 나는 온전히 그 시간에 집중했다. 그때의 사진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2010년 12월 27일의 추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주 평범한 도시의 풍경과 그와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눈 가로등 불빛 아래 온기까지. 이 마음속 사진은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을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럴 때마다 늘 누군가가 손을 내민다. 단지 여행자라는 이유로 말이다. 도움을 준 이에게 보은하고 싶다고 하면 모두 약속이나 한듯 손사래를 친다. 그럴 때마다 그와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 나 또한 곤경에 처한 여행자에게 먼저 다가간다.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여행자이면서 여행자를 돕는 누군가가 될 수 있다. 이 또한 여행의 과정이고 즐거움이다. 그의 말처럼.



글.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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