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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May 31. 2020

호누를 찾아서

하와이 오아후

매달 여행 작가가 기록한 길 위의 경험을 공유하며,
그들이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여행을 되돌아본다.
이번 호에서는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에디터 문지연(@dal_ji33)의
하와이 오아후 여행을 소개한다.






ⓒ OVERBOARDDADPHOTOGRAP/GETTY IMAGES



언젠가 책에서 멸종위기종인 야생 바다거북을 만날 수 있는 해변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하와이 오아후(O‘ahu)섬에 위치한 라니아케아 해변(Laniakea Beach)에서는 하와이어로 ‘호누(Honu)’라고 불리는 푸른바다거북이 바위 주변에 자생하는 미역을 먹기 위해 모래 위로 올라온다고. 코앞에서 일광욕하는 푸른바다거북을 관찰하거나 운이 좋으면 함께 수영도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환상적인 경험은 없을 거라는 코멘트가 기대감을 한껏 부풀게 했다. 하지만 푸른바다거북을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오아후  북쪽 끝에 자리한 해변까지 차로 1시간을 이동해야 했으며, 도착해서도 같은 목적으로 해변에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실망한 건 푸른바다거북이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 파라솔이 없는 해변에 내리쬐는 정오의 볕은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목덜미가 점점 빨개질 동안 모두 한마음으로 푸른바다거북을 기다리며 먼 바다만 응시했다. 30분 정도 기다리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돌아가려던 그때, 멀리서 새끼 푸른바다거북 2마리가 눈에 띄었다. 검은 등딱지만 수면 위로 보일 뿐 파도에 휩쓸려 해변에 다가오지 못하는 듯했다. 결국 푸른바다거북이 허우적거리는 모습만 본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하와이에서의 마지막 날,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도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이 남아 있었다. 그중 꼭 도전하고 싶던 아침 서핑을 하기 위해 잠에서 깨자마자 와이키키(Waikīkī) 해변으로 향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결코 서핑을 잘하지 못한다. 그저 서퍼들의 천국이라는 와이키키에서 파도 타는 기분을 내고 싶었을 뿐. 역시나 익숙지 않은 길고 날렵한 서프보드 위에서 중심을 잡는 것부터 고전이었다. 파도가 한 번씩 출렁일 때마다 보드는 뒤집어졌고, 인근 해안가에서 계속 보드에 올라타기만 반복했다. 그러던 중 수면 아래로 천천히 움직이는 검은 물체를 발견했다. 처음엔 바위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갈고리처럼 휘어진 지느러미로 헤엄치는 무언가 다가왔다. 내 발밑을 유유히 지나가는 건 분명 거대한 푸른바다거북 호누였다. 이날 나는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로 과감히 서프보드에 올랐다. 푸른바다거북이 가져온 행운 덕분인지 높고 힘 좋은 파도가 계속 밀려와 파도 위에 설 수 있는 기회도 몇 번 있었다. 어딘가 내 곁에서 헤엄치고 있을 푸른바다거북과 함께 파도를 타고, 청명한 하늘과 투명한 바다 사이에 온몸을 던지며 원없이 놀았다. 짧고 강렬했던 순간이지만 자연과 하나가 되는 기분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었다. 내가 늘 상상해오던 진짜 하와이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글. 문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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