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에디터 김민주의 뉴욕 여행
“축하해요.” 센트럴파크에 있는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자마자 자원봉사자가 메달을 걸어주며 나를 꼭 안아준다. 1킬로미터 달리는 것도 버거워하던 내가 42.195킬로미터에 도전하다니. 그것도 생애 첫 풀코스를 세계 6대 대회 중 하나인 뉴욕마라톤에서 완주해내다니.
“완주자는 지하철 요금이 무료예요.” 목에 메달을 걸고 있는 내게 역무원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절뚝거리며 만원 지하철을 타자 “축하해요”라며 누군가 선뜻 자리를 양보해준다. 레스토랑에서는 주문하지 않은 요리와 디저트까지 대접받는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차에 타고 있던 뉴욕경찰(NYPD)이 창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 “축하해요. 기분이 어때요?”라고 묻는다.
뉴욕마라톤은 완주자가 대회 다음 날에도 메달을 목에 걸고 다니는 문화가 있다. 25달러를 지불하고 메달에 이름과 기록을 각인한 나 역시 어제처럼 메달을 목에 건 채 뉴욕 곳곳을 활보한다. 우선 자유의 여신상을 가까이 감상할 수 있는 크루즈에 승선한다. 메달에 자유의 여신상이 새겨져 있어 실제 자유의 여신상과 함께 사진을 남기고 싶었는데, 나와 같은 동지가 꽤 많다. 우리는 서로 축하 인사를 건네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제 뉴욕의 새로운 랜드마크인 베슬(Vessel)로 향한다. 15층 높이에 계단 약 2,500개가 얽히고설킨 곳이라 풀코스 완주 후 뜻밖에 강도 높은 리커버리(근육 회복을 위한 가벼운 운동)가 예상된다. 사실 처음부터 계획을 세운 건 아니다. 대회 참가 전 배번과 물품 수령을 위해 방문해야 하는 재비츠 센터(Javits Center) 근처에서 우연히 베슬을 발견했다. 입장을 하려면 예약이 필요한데, 웬만한 날짜와 시간대는 이미 마감된 바람에 의도치 않게 완주 이후의 강제 훈련이 된 셈. 입구부터 스태프들이 축하한다면서 박수를 치고 환호해준다. 다리가 아직 온전치 않지만, 생각보다 힘들지 않게 무수한 계단을 올라 꼭대기 층에 도착한다. 한 바퀴 쭉 돌아보는데 엘리베이터가 있다. 그냥 지나치려는 찰나, 스태프가 내 메달을 보고 꺅 소리를 지르며 “정말 축하해요. 여기 줄 서 있는 사람들 제치고 1등으로 엘리베이터 타게 해줄게요. 당신은 그럴 자격 있어요”라고 얘기한다. 대기하던 사람들 모두 기꺼이 양보하며 한마음으로 축하를 전한다.
뉴욕을 떠나는 날, 뉴어크(Newark) 공항에서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는데 갑자기 요원이 나를 부른다. 짐에 문제가 생겼나 싶어 가슴이 철렁한 순간, “축하해요. 완주하는 데 어느 정도 걸렸어요?” 짐을 투시하다가 내 가방 안에 들어 있는 뉴욕마라톤 메달을 발견한 모양이다.
여기까지는 내가 받은 축하의 일부에 불과하다. 내게 뉴욕은 살면서 가장 열렬한 환호와 박수 세례를 받은 도시로 기억된다. 스태튼 아일랜드(Staten Island)에서 출발해 브루클린(Brooklyn), 퀸스(Queens), 브롱크스(Bronx), 맨해튼까지 뉴욕을 이루는 다섯 자치구를 달리는 동안 주로를 가득 메운 인파가 보내준 격려와 응원 역시 내가 살아가는 데 여전히 큰 힘이 된다.
BEHIND THE SCENES
뉴욕마라톤에 참가하기 몇 달 전 다리를 접질리는 바람에 훈련 양이 부족했다. 가파른 다리가 나타날 때마다(무려 4개였다!) 곡소리가 절로 나왔고, 터벅터벅 걷기도 했지만 결국 무사히 완주해냈다. 그리고 이 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9년 대회 메달은 뉴욕의 애칭인 빅 애플(Big Apple)을 구현한 듯 커다란 사과 모양이었다. 그리스신화 속 황금 사과는 트로이전쟁을 낳은 불화의 씨앗이었지만, 내 인생사에서 이 황금 사과 메달은 생기발랄한 기운의 원천이 되었다. — 에디터 김민주
글. 김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