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 중인 이들을 위한 국내 여행지 추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더욱 근원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에 전국에 흩어져 있는 서원을 찾아 나섰다.
서원은 조선 시대 성리학을 전파하는 데 중심이 되었던 사립 교육기관이다. 세속적으로 성공하는 법이 아닌 삶의 방식을 가르치는 데 주력했다. 모범이 될 만한 성현을 모시고 그의 정신을 구현해놓은 공간에서 유생들이 그의 삶과 사상을 직접 체험하도록 했다. 전국에 분포된 600여 개 서원 중 제향자(祭享子, 성현으로 모신 분)의 정신과 전통이 가장 잘 구현되고 있는 9곳이 2019년 9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 9곳의 서원을 국내 여행지 추천 리스트에 담았다.
넓은 평야를 가로질러 하천이 흐르고, 뒤로는 고정산 줄기가 배산을 이룬다. 앞쪽으로 멀리 계룡산 줄기도 보인다. 돈암서원은 낮은 구릉에 기대어 높은 산을 우러르며 자리한다. 일찍이 공자도 높은 산을 우러르는 것을 높은 덕행을 본받는 것에 비유하며 깊이 찬탄한 바 있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566)은 이곳에서 학문과 후진 양성에 몰두하며 산림(山林)으로 살고자 했다. 사화와 반란, 잦은 전쟁으로 조선의 지배 체제가 크게 흔들렸던 16~17세기, 예학으로 나라를 바로잡으려 했던 그의 정신이 곧 돈암을 상징한다.
‘덕에 이르는 문’이라는 입덕문(入德門)을 지나자 정면으로 강당인 양성당이 보인다. 그 옆으로 동재와 서재가 마주보고 있다. 제자들이 늘 기숙하며 공부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이들의 목표는 관리가 아닌 군자가 되는 것이었다. 양성당 앞에 서니 서로 격려하며 공부하는 제자들과 그들을 살피는 스승의 눈길이 선연히 그려진다. 사당인 숭례사를 둘러싼 담장(아래 사진)에는 그림 같은 12개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러한 꽃담은 본래 궁궐 같은 공간에 연출된 독특한 전통 담장이다. 꽃담 옆을 거닐며 김장생과 그의 후손들이 어어가던 예학정신을 새겨놓은 글자를 천천히 곱씹어볼 수 있는 국내 여행지로 추천한다.
ⓘ 연중무휴, 041 733 9978, 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3길 26-14.
무성서원은 서원 9곳 가운데 유일하게 마을 중심부에 자리한다. 후기 권위적인 서원과 대비되며 민중과 함께 도덕과 윤리를 펼친 주민 친화적 정신을 오롯이 증명하고 있는 장소다. 이곳에는 외삼문 대신 2층 누각인 현가루가 들어서 있다. 현가루는 논어의 ‘현가불철(絃歌不輟)’에서 따온 말로,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그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예(禮)가 서로를 존중하는 역할을 했다면, 악(樂)은 화합의 역할을 했다. 자연보다 백성과 소통하기 위한 공간인 것이다. 어려움을 당하고 힘든 상황이 되어도 학문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현가루를 지나 서원 안으로 들어서면 강당 옆으로 커다란 은행나무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은행나무는 공자의 학풍과 가르침을 뜻한다. 신라 시대의 학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을 기리는 이곳은 공자의 현실 참여 사상을 반영해 지어졌고, 이는 자연스럽게 구한말 의병 활동으로 이어졌다. 강당에서 글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대에 맞서 싸운 선비의 기개와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연중무휴, 063 539 5182, 전북 정읍시 칠보면 원촌1길 44-12.
성황산을 타고 내려온 기운이 26바퀴를 돌아 무성서원 강당 중앙에 내리꽂혔다 하니, 강당 중앙에 서서 자연의 기운을 받아보자.
붉은 홍살문 옆으로 보호수인 은행나무가 반갑게 반긴다. 주변으로 들판이 펼쳐지고 걷기 좋은 공원이 조성된 덕분에 여유로운 풍류가 변함없이 이어진다. 홍살문 뒤로는 서원의 정문이자 누각인 확연루가 들판을 바라보며 서 있다. 누각의 목적은 자연을 감상하기 위해서인데, 확연루는 어딘지 독특하다. 들판으로 향하는 남쪽을 판벽으로 막아두고 사당 쪽으로 전망을 열어두었다. 여기에는 외부 자연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여 서원 안으로 들여놓음으로써 사사로움 없이 공평함을 실현하겠다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의 정신이 담겼다. 평지에 배치된 탓에 서원 내부는 확연루에 가려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나 서원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는 것 같다.
확연루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강당의 정면이 아닌 뒷모습이 나온다. 마당을 가로질러 왼쪽 쪽문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강당인 청절당의 정면이 보인다. 쪽문은 폭도 좁고 높이도 낮아서 들어서는 순간 저절로 고개 숙여 사당에 예를 갖추게 된다. 누각은 사당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강당은 사당인 우동사를 향해 대청마루를 열어 존경을 표한다.
ⓘ 연중무휴,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378-379.
서원 안 작은 연못에 하얀 연꽃이 활짝 피었다. 강학 공간에 연못을 설치해 공부하는 중간중간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한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의 정신을 이어 제자들이 이곳에 연꽃, 매화, 대나무를 심었다. 물처럼 맑은 자아를 닦고자 했던 주희의 사상과 세속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군자의 정신이 연못에 비치는 듯하다.
연못 앞으로 유생들이 거처하며 생활하던 양정재와 보인재가 있다. 그곳에도 손바닥만 한 누각을 만들어 애련헌, 영매헌이라 이름 붙였다. 유생들은 평소에는 창문을 닫고 학문을 하다 날이 좋으면 창문을 열어 연, 죽, 매를 눈으로 코로 느꼈을 것이다. 이는 학문과 휴식을 취하는 곳을 한 공간에 마련해놓은 최초의 실험작이다. 연꽃과 매화의 향을 쫓는 선비의 멋이 전해진다.
ⓘ 연중무휴, 055 960 6114, 경남 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길 8-11.
멋진 풍경과 학자의 이상이 공존하는 도동서원은 국내 여행지 추천 리스트에 올리기에 손색 없다. 이 곳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은행나무에 시야가 닿는다. 400년 넘은 나무다. 사방으로 뻗은 나뭇가지는 무성한 잎의 세찬 기운으로 하늘을 받들고 있다. 밑동은 아이 6명이 두 팔을 벌려야 안을 수 있을 정도로 굵다. 조선 시대 유학자인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의 외증손이 심은 나무다. 성리학 이론 중에서도 실천윤리를 강조한 그의 정신을 담아 ‘공자의 도가 동쪽에서 곧게 왔다’는 의미로 ‘도동(道東)’이라 이름 지었다.
이곳은 모든 건축물이 직선으로 배치돼 있다. 좁고 가파른 돌길이 수월루와 환주문을 지나 강당인 중정당을 가로질러 사당으로 곧장 이어진다. 사화기에 지조를 지키며 죽음을 택한 학자의 정신을 공간 안에 구현한 것이다. 중정당대청마루에 서서 마당을 굽어보면 처마 아래 낙동강이 걸린다. 그 너머 개구리 바위가 시선을 끈다. 강물이 넘쳐 오르는 것을 막고자 물의 신인 ‘용’ 네 마리를 중정당 기단에 장식했다. 개구리를 삼키려는 용의 모습이 민화처럼 머리에 그려진다. 개구리 바위는 김굉필이 도달하고자 했던 이상 세계라고 한다. 어쩌면 그는 매일 마음의 활시위를 당겨 개구리 바위로 날려 보냈을지도 모른다. 학문이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잊지 않기 위해.
ⓘ 연중무휴, 053 616 6407,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로 1.
경북 경주와 안동, 영주의 서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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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lonelyplanet.co.kr/magazine/articles/AI_00003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