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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Sep 03. 2020

자연주의 보컬 홍이삭의 강릉 로드 트립

‘자연주의 보컬’ 홍이삭과 강릉 소나무 숲길에서 나눈 대화.



싱어송라이터 홍이삭. ⓒ김주원


홍이삭을 이번 온더로드 ‘숲’ 편에 인터뷰한 것은 여러모로 잘된 일이다. 지난해 방영된 JTBC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에서 ‘자연주의 보컬’로 알려진 그는 나뭇잎 스치는 소리와 숲에 온 듯한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싱어송라이터기 때문이다. ‘별 같아서’, ‘구름’ 같은 그의 곡을 들으며 시작한 강릉 자동차 여행 준비는 꽤 설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촬영을 하기 며칠 전부터 일기예보가 심상치 않았다. 강원 지역에 폭우가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이제 목표는 ‘무사히 마치기만 하자’가 되었다. 홍이삭과 영상팀이 안전하게 도착하기만을 바라며 수시로 연락했다. “잘 오고 계시죠? 대관령은 어떤가요?” 휴게소에서 쉬었다 오기를 여러 번, 마음 졸이던 아침이 지나고 기적처럼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나와 너를 먹구름과 흰 구름에 비유하고, 서로 만나 비를 내려 빛을 보고 싶다고 노래한 홍이삭의 곡 ‘구름’이 떠올랐다. 


숲이 많은 강릉은 파푸아뉴기니에서 유년을 보낸 그의 가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장소였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처럼 산이 높고, 굽이굽이 펼쳐진 곳이었어요.” 대관령치유의숲으로 향하다 들른 양떼목장에서 그가 말했다. 홍이삭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바로 눈앞에 그려졌다. 숨 가쁜 하루가 지나고 영상을 위한 내레이션 녹음만 남았다. ‘흙, 나무, 구름.’ 세 단어가 그의 목소리라는 옷을 입자 아름다운 노래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촬영감독도 욕심이 났는지 녹음을 반복했다. 힘든 촬영에도 불편한 기색 한 번 내비치지 않던 그는 끝까지 더 좋은 것을 만들겠다는 열의로 가득했다. 인터뷰 중 어떤 음악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그가 한 대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좀 더 해봐야 알 것 같아요.” 그의 음악이 기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싱어송라이터 홍이삭. ⓒ김주원


파푸아뉴기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요.

파푸아뉴기니는 저에게 낭만과 이상의 장소예요. 초등학교 고학년 때, 동부 고원지대 해발 1,500m에 있는 우카룸파라는 마을에서 살았어요. 사방이 들판이고 산인 곳에서 친구들과 탐험을 떠나기도 하고, 솔방울을 던지며 놀기도 했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노을이에요. 10m가 넘는 초소탑에 매일같이 올라 숲 저 멀리 해가 넘어가는 광경을 보곤 했죠.


매일 노을을 바라보는 유년 시절이라니, 정말 부럽네요. 그래서 이삭 씨의 가사에 흙, 나무, 구름 같은 단어가 자주 등장하나 봐요.

싱어송라이터는 아무래도 자기 삶에 와 닿는 소재로 곡을 쓰게 돼요. 파푸아뉴기니의 자연에서 보낸 행복했던 기억이 강해서인지 자연에 빗대어 노래할 때 제 안에 있는 것들을 표현하기 가장 편하더라고요. 자연이 제 이야기를 폭넓게 감싸주는 느낌이 들거든요.


자연을 깊이 바라보다 알게 된 것들이 있나요?

평소에는 느끼기 어려운데, 별이 많은 밤에는 하늘이 둥글다는 걸 새삼 깨달아요. 당나귀를 타고 가야 하는 필리핀 투게가라오라는 마을의 밤하늘이 그랬죠. 빼곡한 별들이 하늘을 둥글게 감싼 그날 밤을 특히 잊을 수 없네요. 다른 이야기지만, 계절마다 느끼는 외로움의 질감도 달라요.


그런 것들은 어떻게 가사로 태어나는 걸까요?

최근에는 흙을 주제로 곡을 썼어요. 흙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잖아요. 늘 밟히는 동시에 나무의 뿌리를 감싸주기도 하죠. 낮은 곳에 있으면서 다 퍼주는, 든든한 지지대 같다고 할까요. 부모님이 떠올라서 흙에 빗대어 은유적으로 썼어요. 어떻게 보면 뭉뚱그린 건데, 오히려 더 정확한 느낌이 있죠. 구체적인 표현이 아닌 비유로 이야기해야 사람들이 더 잘 알아듣고 깊이 공감한다고 생각해요.


싱어송라이터 홍이삭. ⓒ김주원


<슈퍼밴드>에서 ‘봄아’를 불렀을 때 함께 출연한 김우성 씨가 “숲속 초록색 잔디에 누워 있는 기분”이라고 했어요. 어떻게 탄생했나요?

‘봄아’의 전반부는 할머니 댁에서 만들었어요. 사실 할머니 댁이 친구도 없는 낯선 도시여서 딱히 할 일이 없었거든요. 한겨울에 온돌 바닥에 앉아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기타로 만든 곡이에요. 장소보다는 순간이 떠올랐어요.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순간을 길게 펼친 거죠.


노래 ‘소년’은 윤동주 시인의 시 ‘소년’을 가사로 만든 곡이죠? 이삭 씨의 곡 스타일과 잘 어울리더라고요. 다른 시인의 시도 읽나요?

백석 님의 시요. 최근에는 팬들이 선물로 준 박준 시인의 시집을 읽었어요. 시는 적은 단어로 많은 말을 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싱어송라이터 홍이삭. ⓒ김주원


<슈퍼밴드>에서는 지금 하고 있는 음악과 전혀 다른 옷을 입었어요. 일명 로커 ‘흑이삭’이 화제가 되기도 했고요. 지금은 원래 색으로 돌아온 것 같은데, 방송 출연이 음악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솔직히 무대에서 부른 버전의 ‘Royals’ 같은 곡은 제가 편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였어요. 리듬감이나 역동적인 노래를 부르는 걸 좋아했는데, 쓰다 보면 항상 ‘봄아’ 같은 곡이 나오더라고요. 고민 끝에 <슈퍼밴드>에 나갔죠. 저의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그건 더 예상 밖인데요? “봄처럼 따뜻한 음악을 쓰고 부르고 싶다”라고 했는데, 지금 들려주고 싶은 음악은 뭔가요?

구름처럼 떠다니는 이런저런 생각과 구상을 붙잡아보려 노력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음악을 해보자는 마음도 들고, 앞으로 계속 부르며 살아야 하니 질리지 않고 즐겁게 부를 수 있는 곡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해요. 그런데 사람들이 가장 공감하는 건 개인적인 노래더라고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따뜻한 노래일까요? 좀 더 해봐야 알 것 같아요.


싱어송라이터 홍이삭. ⓒ김주원


영화 <다시 만난 날들>은 새로운 도전이었는데요, 시놉시스를 보니 주인공에게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을 듯해요. 어떤 마음으로 연기했나요?

감독님이 시나리오 쓸 때부터 캐릭터를 함께 만들어갔어요. 태일이라는 캐릭터에 저의 모습이나 생각이 많이 투영돼 있죠. 제가 하고 싶은 것과 대중이 원하는 음악의 간극에 대한 고민 같은 것들요. 그런데 저는 태일처럼 살지는 않으려고요. 좀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도 될 것 같아요.


코로나19가 종식되어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면 어디로 가고 싶나요?

아이슬란드에 정말 가보고 싶어요. 제 시야를 덮어버리는 압도적인 풍경이 거기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파푸아뉴기니에 살면서 느낀 건 자연의 스펙트럼이 정말 넓다는 거였어요. 자연의 광대함 앞에서 저의 무력함을 느끼고 싶어요. 어쩌면 신을 만나 제 자신이 변하고 싶은 걸 수도 있고요.



✽싱어송라이터 홍이삭의 강릉 자동차 여행 영상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와 롯데렌터카 SNS 채널에서 공개합니다. @lonely_planet_korea, @lotte_rentacar


글. 김성화 사진. 김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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