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환경은 여행자를 모든 것에 서툰 초보로 만드는 동시에 호기심 가득한 탐구자가 되게 한다. 한 번도 육지와 연결된 적이 없다는 화산섬 울릉도는 그 거리와 세월만큼 낯설고, 그만큼의 흥미를 유발한다. 제주도보다 가기 어렵고, 많은 탐험가가 탐방지로 갈망하는 섬. 울릉도로 향했다.
두 번의 큰 태풍 이후 어렵게 도착한 울릉도는 해무에 싸여 오후 2시에도 캄캄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먼저 저동항에서 북쪽으로 일주도로를 따라 섬을 살피기로 했다. 중앙선 없이 굽이굽이 이어진 도로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파도에 파인 응회암 터널이 나타나자 감탄이 터져나왔다. 섬목터널을 나와 삼선암으로 향하는 길에 지나게 되는 무명의 자연 터널이다. 울릉도 자연을 보고 느낀 첫인상은 이름 없는 절벽과 바위도 특별하다는 것이었다.
섬을 일주하는 동안에는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본 듯한 웅대한 풍경이 이어졌다. 주먹만 한 몽돌이 뒹구는 해변과 하늘을 찌를 듯 가파르게 솟아 있는 송곳봉 사이를 거니는 순간, 은하수 무늬가 황토색으로 빛나는 태하 황토굴 앞에 선 순간, 바다를 배경으로 거대한 조면암 바위가 국숫발처럼 쏟아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차로 달리던 순간. 귓가에는 아름다운 선율의 장중한 교향곡이 흘렀다. 나리분지에 오후의 햇살이 가득 담기고, 주홍빛으로 물든 봉우리들과 하늘을 평상에 누워 품에 안던 순간에는 시간이 정말 멈춰버렸던 게 아닐까. 노을마저 수줍게 물러서는 듯했다.
울릉도 곳곳에는 “바르게 살자”라고 적힌 커다란 비석이 있다. 지나치게 진지하고 단단하게 새겨놓은 긍정적 메시지에 웃음이 나왔다. 관광문화해설사 이소민은 울릉도에 없는 것이 도둑과 빈부 격차라고 말한다. 죄를 지으면 도망치기도 어렵고, 사람이 귀해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 생긴 호텔이 어땠는지 묻는 식당 주인에게 거기서 묵은 걸 어떻게 아시느냐 되물으면 “나오는 걸 봤다” 하고, 렌터카업체에 반납 시간을 물어보면 “서면 쪽에 계시죠? 12시쯤 저동항에서 뵈면 되겠네요”라고 답했다. 차에 위치 추적기가 달린 것도 아닐 텐데 주차한 지 5분도 안 된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클라우드보다 울릉도 소식 동기화가 더 빠르구나.’ 누구나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안정감을 주었다.
한편, 어제 만난 친구처럼 불쑥 말을 건네는 사람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섬의 서쪽 끝 태하 황토굴 앞에서 만난 두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태하에서 함께 자랐다는 두 남자는 어림잡아 40대 중반으로 보였고, 눈에는 장난끼가 가득했다. “황토굴 좋지요? 나는 여기서 매일 노래 연습해요. 홀숫날엔 진성, 짝숫날엔 두성! 이 친구 아버지는 테레비에도 나왔어요. <인간극장> 김두경.” 갑자기 만나 농을 나누고, 또 그대로 헤어졌으니 그의 아버지 이름밖에 알 수 없었으나 그 작은 인연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다음 날 일주도로에서 스치듯 만났을 때는 나도 모르게 반갑게 소리쳐 부르고 말았다.
출발 전, 울릉도는 한번은 꼭 가봐야 하지만 한 번이면 족하다는 말을 들었다. 서울에서 차로 3시간 달려 강릉까지 가고, 또 거기서 배를 타고 3시간은 더 가야 하기 때문이다. 평지가 적기에 비행기로 갈 수도 없고, 겨울에는 배도 거의 뜨지 않아 웬만한 해외보다 왕래가 어렵다. 실제로 6시간 내내 의자에 밀착해 앉아 있는 일은 고역이었다. 그럼에도 ‘한 번이면 족하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투박한 참견과 담백한 정을 매끄러운 매너보다 그리워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애플리케이션 ‘울릉도 알리미’를 통해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울릉도 생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여객선 운항 정보와 공영 버스 운행 변경 정보 등이 타임라인에 올라와 현지 사정에 어두운 여행객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울릉도 · 독도 지질공원’ 홈페이지에서 지질공원해설사와 함께하는 지질 탐방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 ulleung.go.kr/ge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