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이 머물고 갔다는 신비로운 절. 천등산 기슭, 긴 세월을 간직한 천년 고찰 봉정사에서 내면의 나와 마주했다.
‘정신 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안동.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의 화엄사상부터 조선 시대의 성리학,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까지, 당대 중심 이념의 근거지 역할을 충실히 해온 덕이다.
천등산 아래에는 만물의 융합을 강조하는 화엄사상을 품고 있는 절이 있다. 신라 시대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 스님이 창건한 봉정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극락전과 조선 시대 초기의 건축양식으로 지은 대웅전, 한옥의 미학이 돋보이는 영산암 등 여러 보물과 문화재 덕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곳에는 종이로 만든 봉황이 머물고 갔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봉황은 희귀하고 성스러운 동물로 꼽히지요.” 주지 스님인 도륜 스님이 인사와 함께 사찰에 얽힌 이야기를 건넨다. 숲에 둘러싸여 잔잔히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듣다 보면 봉정사의 전설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이틀 동안 진행하는 템플스테이를 신청하면 이러한 봉정사의 매력을 더 깊이 마주할 수 있다. 이곳에선 공양과 예불은 물론 타종, 참선, 차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그중 타종과 참선 시간이 사찰의 운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회다. 사찰의 악기인 목어, 법고, 운판을 스님이 차례로 연주하고 나면 범종을 직접 쳐보는 타종 체험이 이어진다. 나무 기둥을 앞뒤로 움직이며 숨을 고른 후 힘을 줘 종을 치면 ‘댕’ 하고 울리는 맑은 소리가 산 전체에 퍼져나간다. 잔잔한 호수에 파동이 일 듯 마음까지 물결친다.
산사의 전망이 한눈에 들어오는 만세루에서는 참선을 한다. 독하다는 산 모기가 온몸을 공격하지만 명상하는 이들 모두 흔들림이 없다.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천천히 호흡하며 온전히 자신의 내면에 집중한다. 나를 마주하고 알아가는 뜻밖의 경험이다.
신라 문무왕 12년(672년)에 창건된 봉정사는 그 긴 역사가 건물 곳곳에서 묻어난다. 국보로 지정된 극락전과 대웅전이 대표적이다.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도륜 스님과 사찰을 한 바퀴 돌며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극락전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고려 공민왕 12년(1363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건물을 조영한 시기는 그 이전으로 추측된다. 지붕 무게를 분산시키는 짜임새를 기둥 위에만 만든 주심포 양식과 지붕 양면으로 경사를 짓는 맞배지붕, 중간이 볼록한 배흘림기둥 등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의 건축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은 조선 초기에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불당 앞에 툇마루가 있는 점이 독특한데, 신발 없이도 이동이 편리한 통로인 동시에 문을 열고 닫음에 따라 내부 공간을 확장하는 기능을 한다.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민화풍의 여러 벽화가 그려 있는 암자, 영산암에 올랐다. 송암당과 응진전 안팎으로 계수나무 토끼를 포함한 다양한 동물 그림이 있다. 옛 사람들은 부귀공명, 무병장수 같은 소망을 담아 민화를 그렸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이의 바람이 이곳을 스쳤을까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곳. 마당 앞 소나무를 바라보며 소원 하나를 더했다.
가을의 봉정사는 단풍 명소로도 유명하다. 영산암 우화루에 서면 물감을 풀어놓은 듯 수채화 같은 절경이 펼쳐진다.